가까운 사람들에겐...

2003. 3. 4. 오후 10:13:43

글자

충분히 당신의 용돈을 여유있게 쓰실 수 있을 법한 분인데도,

내 어머니가 좀 퍽퍽하게 구는 분이긴 하지만,

아버진 늘 휴일이면 이른 아침 어머니에게 만원을 청하신다.

 

휴일마다 목욕탕에 가시는 아버지는

당신 생전에 함께 목욕탕 한번 가지 않은 아들이 가끔은 아쉬울 법한데,

혼자서 목욕탕엘 가신다.

중학교땐가 고등학교 때, 길에서 우연히

혼자서 목욕탕에 나오시는 아버지 모습이 안스럽고 속상해서

그 다음부턴 아예 목욕탕엘 잘 다니질 않았다.

지금도 두고두고 목욕 한번 같이 가 드리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속상할 때가 있는데

혼자서 목욕탕에 가시는 아버지를 볼 때가 가장 크다.

 

내 마음 한곳이 그런 아버지를 배웅할 때마다 한 마디 한 마디 줄어들고 있음을 아시는지

아버진 갔다가 늦게 올테니까 기다리지들 말라고 인사를 남겨두고 나가신다.

붐비는 목욕탕에 홀로 들어가셔서

아버진 또 분명히 그 사람 낭랑한 목소리로 등 좀 밀어달라고 옆사람을 툭-치실테고,

곤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면, 마루에 수건을 덮고 누워서 낮잠을 주무실거다.

어쩌다 목욕탕 앞을 지날 때 사이좋은 부자관계를 보면

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을만큼 얄미울 때가 있다.  

 

혼자 목욕 다니시는 게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재미있다고 쑥쓰러운 웃음을 지으시고,

아시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은데도 그냥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고 문제없단 표정을 보이신다.

이제 예순줄을 넘기셔서 아버지의 취미를 찾으신 거다.

늘 바쁜 생활에 마음 터놓을 친구하나 없이 바쁘게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이제는 내게 조금씩 기대오신다.

그 꼿꼿하고 고집스럽고 외롭던 반평생을 접어 내게 오시는 거다.

 

꼭 나만할 때 우리 누나를 낳으셔서,

서울의 파란한 1970년대를 맨몸으로 살아오신 아버진

이제야 내게 기대오신다..... 편해지신걸까....

첫월급을 받으면

멋쩍은 마음에 선심을 쓰듯 몇 만원을 내어드려야겠다.  

오랜 시간 나의 아버지를 원망해 왔지만...

정말 편해졌으면... 내가 아버지에게 기댈만한 언덕이었으면 한다.

오늘은 더욱 그 마음이 간절해진다.

 

가까운 사람들에겐..아니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가 한 만큼 돌려받는다.

어찌보면 조금은 무섭기도 한 일이지만,

그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인생이다.

이제서야 그것을 깨달은 내 자신이 조금 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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