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존재

2002. 5. 12. 오후 10:20:54

글자

조세희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긴 좋아하는 작가는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지만서도-그의 작품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밖에 읽지 못했지만, 이 한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지만 작은 표현 하나들 때문에 읽으면서 계속 막혔던 기억이 난다. 난 정말이지 어려운 표현을 많이 쓰는 작가는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추상적이고 난해한 표현을 쓰지 않아도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알릴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가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고 있다.

그의 연작 소설의 하나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좀 새로운 느낌이었다. 일단 그동안 노동문제를 다룬 소설들이 대부분 노동자(피해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에 비해, 이 소설은 사용자(지배자)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난.쏘.공>이나 다른 여타의 노동문제를 제기한 소설, 예를 들면 <새벽출정> 등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표현과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난 '가난'을 잘  모른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게 시작했지만 부모님은 항상 자식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키우셨다. 결혼하셨을 당시 부모님이 가진 돈이라곤 25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자식들을 이렇게 키우셨는지 정말 존경스럽다.

각설하고, 가난을 모르기 때문에 70년대 노동문제를 다룬 소설을 읽어도 별로 감흥이 일지 않는다. 나름대로 '아, 힘들었겠구나.' 라고 안타깝게 생각은 하지만, 그건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구경꾼의 심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경험에 의해 판단하고 느낀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에는 거의 무감각하지 않나 싶다. 아무리 간접 경험을 많이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직접 사랑을 해보고 이별을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로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가난에 대해선 얘기할 자격이 없다. 노동문제도 마찬가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소유'의 문제다. 고등학교 시절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은 책 중에 <To be or to have(소유와 존재)>란 철학서가 있다. 상당히 어려운 내용이어서 거의 잊었지만 기본적인 것은 생각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예를 들어 재산, 성품까지도 존재가 아닌 소유로써 이해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끝없는 소유의 욕정을 가지고 있다. 돈, 명예,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이 소설의 화자도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소유의 정신만을 가지고 있을 뿐 거기에 사람은 없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유를 빼앗으려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돈이 없이 길을 걸어다닐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곤 한다. 나는 자유로우며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느낌. 일종의 포기와도 같은 것에서 자유를 느낀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버리게 된다. 그것이 물질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 버리고 버려지는 문제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조금은 건방진 생각을 갖고 살고 싶다. 남을 위해 산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난 나를 위해 살지 남을 위해서 살지는 못하고 있다.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 살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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