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선 해마다 11월 세번째 목요일 0시에..
햇포도로 담근 보졸레 누보가 출시된다는 걸..
정말이지 나는 처음 알았다.
우리 나라에 와인의 색깔과 숙성, 매너까지 제대로 갖추고 즐기는
와인 동호회가 그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두.
얼마전부터 와인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다고 한다.
케이블 TV에선 정규 프로그램까지 만들 정도고,
신문만 펼치면 와인, 와인, 와인...
와인의 맛을 알면 인생의 깊이를 안다..
다분히 과장된 이런 수사를 보고 있노라면,
막말로.. 나도 작심하고 한 번 와인을 배워볼까.. 싶은 생각이
아주 가끔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마치 와인이 품격의 상징이며 와인을 모르는 사람을 촌놈 취급하는..
소위 세련됐다는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선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내가 비록 술은 잘 못 마시지만 아직은 소주가 좋다.)
얼마전, 신라호텔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는 사람에게 와인 예찬론을 듣게 됐다.
내가 먼저 물었다.
"그래 맛이 어떻든?"
"세상에.. 그 맛이.. 뇌리에 박히는데.. 말로 형언할 수가 없어.
이전까지 그 어떤 것과도 달라."
도대체 무슨 대답이 저렇게 생겨먹었을까..
물론 자신의 빈한한 수사와 표현력의 한계를 탓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맛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형용사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고
무조건 와인을 신성시하려는데 정말 짜증~~
이제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도 보졸레 누보가 비치돼 있다.
사실, 보졸레 누보의 가격은 만 얼마 정도로 그다지 비싼 고급 와인이 아닌데.
그런데도 크리스마스에는 와인 한병 마셔야, 단란하고 화목한 중산층 지식인의 가정 흉내를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보졸레 누보보다 조금 더 일찍 붐을 일으킨,
스타벅스라는 커피숍을 보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던데.
종업원 머리 뒤에 걸려 있는 메뉴판(꼭 롯데리아처럼요)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낯선 커피 이름 때문에 헷갈려하고 있으면, 스물 안 된 종업원이 은근히 비웃음을 빼물며 '처음 오셨나봐요?' 라고 말하는 모습이란.
티지아이나 베니건스를 비롯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어떤가?
이 곳의 메뉴판을 보고 조금만 머뭇거리면 여지없이 촌놈으로 낙인찍히는 이 같잖은 트랜드, 먹고 마시는 기호품에도 점점 더 많은 계급이 주어지는 현실,
허나 아무렴 어떤가?
커피의 원산지와 적정온도와, 커피를 따라 마시면 가장 좋은 잔의 재질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따위는 모르더라도..
때로, 어둔 새벽 길가에서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은.. 정말 눈물 나게
맛있는 걸.
난........내가 새벽 길가에서 혼자 자판기 커피를 먹더라도 아무런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나와 함께 커피를 마셔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