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섬 이야기

2001. 7. 18. 오후 6:32:29

글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는 자우림의 [일탈]이다.

멜로디, 리듬, 물론 다 좋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노랫말이다. 탈선이나 혹은 타락 같은 웬지 음침하고 비도덕적으로 여겨졌던 일탈이란 말의 무거운 느낌을 보기좋게 깨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허가된 일탈이다.

 

매일매일이 마치 모눈종이의 칸메꾸기를 하는 것처럼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으로 계속될 때 이 허가된 일탈은 매우 유혹적이다.

아마도 그 첫번째 유혹이 이것일 것이다.

떠난다는 것.

그곳이 어디가 되었건, 누구와 떠나 건, 혹은 무엇을 하는지에 하등 관계없이 그저 이 반복되는 일상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매력적인 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 첫번째 유혹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일탈을 위하여 철저한 계획수립에 들어갔다. 이것이 여행이 가지는 세가지 매력 중 그 두번 째일 것이다.

상상력은 경험을 초월한다고 했던가..

여행계획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벌써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으며 하늘을 날았다. 자료를 찾기 위해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놀림과 표까지 그려가며 시간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의 눈빛은 우리가 있는 곳이 친구의 비좁은 작업실이 아니라 파도를 가로지르는 선실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우리는 보다 완벽한 [일상에의 벗어나기]를 위해 섬으로 가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계획 세우기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네여자는 섬으로의 일상탈출을 시도했다.

 

우리의 일탈 목적지는 [호도]였다.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데에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 딴엔 어패가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지만, 지금 있는 곳만 아니라면 그곳은 어디여도 좋을 터였다.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세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대천,

비소식을 전하던 기상청의 안내가 염려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대천에 도착하고 보니 섬에 대한 설렘으로 걱정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대천항에서 필요한 장을 몇가지 본 후 배에 올랐다.

점점 멀어지는 뭍, 파도를 가르는 배위에서 바람이 내게 들려주는 소리는 모든 상념을 버리라는 거였다.

배는 물위를 달리고

사람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건만

나는 그 한가운 데에서 홀로 고요했다.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적막함만이 나를 감쌌다.

섬에 도착했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 고요에서 깨어났다.

 

섬에 도착하니 배에 있던 아저씨가 민박집을 하나 소개해준다. 200여명 정도 수용하는 배에는 고작해야 서른 명도 채 승선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연락이 닿았던지 우체부 일을 한다는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를 맞았다.

이제는 전문 민박집도 꽤 많이 들어섰고, 우리가 갔을 때에도 아직 공사 중이 곳이 여럿 있었지만, 우리는 할아버지 댁의 빈 방에 머물렀다.

 

비구름이 잔뜩 깔린 하늘에선 일몰을 기대하기 어려워 동네 어귀만 서성이다가 자그마한 해수욕장엘 도착했다.

 

호도는 크지 않은 섬이다.

여우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호도라 불린다는 이 섬엔

규사로 된 자그마한 해수욕장이 하나 있다.

활처럼 휜 모래사장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한적하였다.

 

잠시동안의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려니

할머니께서 통발로 잡아온 것이라며 감탱이라는 물고기를 여남은 마리 주셨다.

빠듯한 차시간에 제대로 장을 보지 못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훈훈한 섬 인심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섬사람의 인정과 여행 첫날의 설렘은 부족한 요리솜씨에 요술같은 맛을 넣어주었다.

그렇게 여행 첫날 밤은 깊었다.

 

기상청의 예보는 적중하였다.

섬이기에 바닷바람이 센 것이라고만 여겼던 간밤의 바람소리는 아침내 쏟아지는 빗소리와 폭풍 주의보가 내려져 배가 뜨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씀과 함께 숙소에 갇혀 창문만을 내다보는 우리들 마음까지 서늘하게 해버렸다.

그저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서로 위로하고 있는 사이, 할머니는 아침에도 변함없이 스무마리 가까이 물고기를 가져다 주셨고, 우리는 구워지고, 조려진 채 밥상 위에 올려진 생선 만으로 섬에온 기분을 달래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야속했던 바람은 비와 함께 우리의 걱정까지 걷어갔다..

오히려, 폭풍주의보로 배가 뜨지 않은 덕분에 섬엔 오로지 우리들과 낮게 나는 잠자리 떼와 새벽잠을 깨우던 제비들 뿐이었다.

비가 걷히자 마자 도시락을 싸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비로 인해 낮아진 하늘엔 검푸른 구름이 가득하고, 바다는 그 하늘 빛 그대로 어둔 빛을 담았지만 구름 사이로 새어나는 햇살과 고운 모래는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는 내 부족함에 오히려 감사하게 했다.

무엇이든 그들을 표현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므로...

 

이것은 말 그대로의 일탈이었다.

우리는 완벽하게 세상으로부터 벗어났다.

천지간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우리들 뿐이였다. 아직은 선뜩하게 느껴지는 물 온도였지만, 물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흥겨워했다.

물 안이 지겨워지면 모래사장을 거닐었고, 그러다 지치면 그대로 모래위에 누워 잠을 청하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또다른 일탈을 모의했다.

아무도 없는 해변.

우리는 우리끼리의 누드비치를 만들기로 했다.

물 속에서 우리들은 세상과 문명과 세월, 그리고 태고적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준 원죄의 굴레를 모두 벗어던졌다.

지난 삼십년 간 꼭꼭 채워둔 체면까지 모두 버렸다.

그렇게 원시의 모습 그대로, 세상에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맞이한 것은 구름이 걷혀가는 푸른 하늘과 바다, 온통 바다 뿐이었다.

맨 살에 와 닿는 물의 느낌은 흡사 비단과도 같았다.

 

그리고 자유.

 

서로의 앞에서 체면의 껍질을 벗는 것은, 단순한 벗어던짐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였다.

서로에대한 완벽한 신뢰, 부끄러움 하나까지 모두 보여주는 솔직함, 그리고 내 밑바닥을 다 보여주었을 때 가질 수 있는 자유.

고작 삼십 년 뿐인데도 그동안 채워둔 체면의 단추를 모두 벗기까지는 길고도 먼 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더욱 편한 심경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로부터 자유로와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아니라 하늘이었으며, 물이었으며 파도였다. 한가로운 물새였으며, 잠자리였다.

그리고, 바람이었다.

 

간간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사람들 때문에 전라로 해변을 뛰어보자고 했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정말 모두에서 벗어났음을...

이것이 곧 우리의 일탈을 완성시킬 것임을..

 

좀 더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또 역시 나의 좁은 생각으로 끝났다.

침묵마저도 자연스러운 자리가 되었음으로...

 

다음 날 아침, 끊겼던 배가 다시 뜨고

섬을 새로 찾은 사람들 소리로 선착장은 부산스러웠지만 우리는 우리들만의 섬이라는 기억을 안고 호도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사이 그리워진 집을 향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자, 이제 여행, 그 허가된 일탈이 가지는 세번째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할 테지??

그것은, 우리에게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일 게다.

돌아갈 곳을 남겨둔 우리는, 매일 일탈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지난 일요일 폭우가 서울을 강타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여러분은 얼마남지 않은 열린마당 준비에 고군분투하셨겠지요??

저만 잘 쉬고 온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또 여러분의 쉼 없는 열정이 부럽기도 하답니다.

 

아래 병권이 글을 보니 더 마음이 놓이네요.. (흠, 역시 내가 없는 레지오 더 잘 돌아간다 라는 말이 맞는 듯..허걱..)

화이팅합시다!!

으쌰으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런 격려의 글과

기도 뿐이지만 그보다 더 많이 마련해주시는 하느님께서 다 챙겨주실거에요.

 

고생많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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