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하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강냉이를 튀기는 아저씨가 다 튀긴 다음 기계문을 여는 소리같이 컸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고 버스는 벌써 멈춰서서 운전사가 급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버스 앞 저만치에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옆으로 누워있는 그 단발머리 아이의 곁에는 찢어진 자루와 그 자루에서 쏟아져 나와 흩어진 쌀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지않은 양의 쌀이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보아 그 아이는 넉넉한 집 아이는 아닌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 아이는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가게에서 그날 먹을 쌀을 사 가지고 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외상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처음보는 교통사고라 나는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운전사와 사람들이 잠시 상의하더니 축 늘어진 그 아이를 안고 버스에 올라 가까운 병원으로 떠났습니다. 아니, 병원으로 간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버스가 떠난 뒤에는 아스팔트 위에 흩어진 쌀알들만 남았습니다. 나는 그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받혀 날아가 넘어진 아이가 살았을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주인공 소년이 하루종일 돈을 벌어서 식구들과 함께 먹을 국수를 사가지고 신이나서 어두운 길에 집으로 뛰어 가다가 넘어져 국수가락을 모두 시궁창에 쏟고 앉아서 울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버스에 치인 아이의 가족은 그 까짓 쌀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가 살던 한국은 그렇게, 그야말로 억울하게 사람들이 다치고 죽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전쟁때와는 비교가 되지않겠지만 신문에는 날마다 그렇게 죽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교통사고, 남의집 쓰레기 통에서 주운 복어알을 먹고 죽은 가난한 가족, 대학에 합격한 다음날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내 동창등…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이 내세가 없다면,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이 사람들 모두를 품에 안고 어루만져 주시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소위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삶에 비하면 잠깐인 이 세상에서의 삶은 누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지병을 갖고 있으면서 나는 가끔 그 단발머리 여자아이 생각을 해 봅니다. 내 기억속에서 죽은 그 아이는 하느님곁에 앉아 짧았던 세상을 전혀 후회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나는 살아있을때에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