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한조각을 발견했어!

2004. 11. 14. 오전 1:54:15

글자

교부(敎父)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우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번은 악마가 그의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들은 산책길위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던 어떤 사람이 허리를 굽혀 길 위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습니다.
악마의 친구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악마야, 저 사람이 발견한 게 뭐니?"

 

악마가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은 진리의 한 조각을 발견했어!"

 

친구가 다시 물었습니다.

 

"사람이 진리 조각을 주었는데도 명색이 악마인 너는 속상하지도 않니?"

 

그러자 악마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속상할 것 전혀 없지.
난 저 사람이 그 진리조각을 자신의 종교적 신조(信條)로 믿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야!"

 

이 우화가 깨우쳐 주는 바데로, 스스로가 진리에 가까이 있다고 느낄수록 아집과 교만에 사로잡힙니다.
신심(身心)에 자신감이 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점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자기안에서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다고 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대신하게 합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 막는 장벽이 되어 버립니다.

 

영국의 로이드(K. F. Lloyd)박사는 사람이 스스로 여섯 가지 감옥을 짓고 그 속에서 괴롭게 살아 간다고 했습니다.
'자아도취의 감옥'을 시작으로 '비방의 감옥', '증오의 감옥', '근심의 감옥', '향수의 감옥', '선망의 감옥' 등입니다.
그리고 이 감옥안에 사람을 가두는 자물쇠는 다름이 아닌 교만과 자만입니다.
때문에 그 자물쇠를 부숴야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자아도취의 감옥'에 갇힌 사람은 하느님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스스로 '의로운 인간'이라 생각하는 한 그에게 회개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죄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로마 3,9)

 

어느 누가 주님앞에 의롭다고 내 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이 엄격히 심판하려 든다면 당해낼 자 누구이겠습니까?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끊임없는 고해성사로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알량한 정의와 어설픈 공로를 앞세웠던 그 옜날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1 고린 3,21)

 

- 송현 신부 (캐나다 해밀턴)

댓글 4

  • 2004년 11월 14일 오전 10:08

    정말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4년 11월 14일 오후 2:22

    저도 이전에(아직까지?) 자기만에 빠져서 살았던거 같습니다.

  • 2004년 11월 14일 오후 7:52

    하느님의 바다에 빠지고 싶다던 안드레아 형제의 말이 생각납니다.

  • 2004년 11월 16일 오전 10:34

    정말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