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올랜도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왔지요.
라파엘선배가 학회가는 길에 따라갔다가 공항에서 배웅하고, 저는 안드레아선배랑 올랜도 성당에 갔었어요.
어제는 한국 천주교회가 정한 전교주일이였죠.
근데, 미사중 실수로..
전례부장님께서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집회서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근데, 이 실수로 듣게된 집회서의 말씀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그의 간청은 하늘에 다다를 것이다. 겸손한 사람의 기도 소리는 구름을 꿰뚫는다.
또한 그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극히 놓으신 분께서 의로운 사람의 무고함을 판단하시어
그를 돌보실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주님께서 지체없이 오실 것이다." (집회서 20-22)
물론, 이곳 성당에서는 이 말씀으로 제1독서를 하셨겠지요...
그리고, 신부님 말씀 중에 가슴에 와 닿았던 몇가지 구절을 같이 올려 봅니다.
"고통을 봉헌하고 삶으로 증거하라."
"마음이 가난한 자"
지금껏 고통이 찾아오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을까"를 원망하고,
원망이 그치고 나면, 내가 가진 다른 것들을 되새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시련이 조금 지나고 나면, 시련에서 단단해진 나를 보며 그런 시련을 내게 주심에 또 감사하게 되었죠.
그러나 고통 그 자체를 봉헌하고자 하진 않았던 거죠.
예수님의 십자고상을 보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미사중에 지난 일주일 힘든 일들 있었지만
그 모든 일을 그곳에 봉헌하고 나오면서 새로운 일주일을 맞게 된다면,
처음 단계인 원망의 단계가 없어 질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늘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두 손에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과 함께 하기에 마음만은 부자인 사람이 믿는 우리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아, 행복할 것이다. 하늘 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제서야 '마음이 가난하다.'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마음의 탐욕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고, 자만이 없어지고, 교만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작은 마음도 행복해지고, 고마우며,
나를 해쳤던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여기는 사람에게도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였던 거죠.
그리고, 그런 상태를 '가난한 마음'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내가 어느 상태에서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라파엘선배와 안드레아선배 덕으로 우연히 올랜도에 가게 되어,
좋은 말씀 듣고 오는 시간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은성이를 그곳에서 만났었지요.
우리도 물론 너무 반가왔지만, 우리를 더욱 반기는 은성이를 보고 오니
마음이 따뜻하게 차올라왔습니다.
시간과 계획이 잘 맞으면 은성이랑 더 놀다가 오는 건데,
선배랑 저는 우성에 들러 베트남쌀국수 먹고 오는 것이 계획의 전부였고,
은성이에게 베트남음식점에 같이 가자고 얘기하자니,
올랜도 성당 공식 1호 커플의 결혼식이 일요일 저녁 5시에 있다고 해서...
시간이 안 맞을 거 같더라구요.
(은성아, 다음에 같이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