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재임시 업적**
김대중의 당선은 건국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자유민주연합과 공동정부를 구성한 그는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 삼았다.
그는 대통령 선거운동과정에서 공언한 '준비된 대통령'답게 과감한 경제개혁에 착수해
지난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한편,
기존의 완강한 대북 흡수통일론을 배격하고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꾸준히 견지함으로써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는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관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2000년 6월 13~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분단 사상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또한 한국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 국위를 선양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임기말 두 아들과 측근의 비리로 도덕성에 타격을 받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고
소수정권의 한계로 인해 정치개혁 역시 지지부진했다.
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노동조건은 악화되었으며,
아울러 지역감정과 지역분열을 해소하지 못했고
국민적 동의 없이 대북 송금을 추진해 대북관계에서 거둔 중요한 업적의 빛이 바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일관되게 추진한 햇볕정책은 남북관계에 극적인 진전을 가져와
금강산 관광이 가능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김대중은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국민기초생활법 제정, 여성부 신설, 정보통신(IT)산업 기반정착 등
인권과 복지분야에서 개선을 이룩해냈으며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책을 채택하는 한편
민주당에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젊고 개혁적인 정치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출처 : 네이버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