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버려진 어머님의 일기..

2006. 9. 26. 오전 11:13:25

1
글자

 

어느 버려진 어머님의 일기..

 

미안하구나, 아들아.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인데... 
모진 목숨 병든 몸으로 살아 
네게 짐이 되는구나.
여기 사는 것으로도 나는 족하다
 
그렇게 일찍 네 애비만 여의지 않았더라도 
땅 한평 남겨 줄 형편은 되었을 터인데 
못나고 못 배운 주변머리로 
짐같은 가난만 물려 주었구나.

내 한입 덜어 네 짐이 가벼울 수 있다면 
어지러운 아파트 꼭대기에서 
새처럼 갇혀 사느니 친구도 있고 
흙도 있는 여기가 그래도 나는 족하다.
내 평생 네 행복 하나만을 바라고 살았거늘 
말라 비틀어진 젖꼭지 파고 들던 손주 녀석 
보고픈 것쯤이야 마음 한번 삭혀 참고 말지.
 
혹여 에미 혼자 버려 두었다고 
마음 다치지 마라. 
네 녀석 착하디 착한 심사로 
에미 걱정에 마음 다칠까 걱정이다.
삼시 세끼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있으니 에미 걱정일랑은 아예 말고 
네몸 건사 잘 하거라.

살아 생전에 네가 가난 떨치고 살아 보는 것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다. 
행복하거라, 아들아. 
네 곁에 남아서 짐이 되느니 
너 하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라도 나는 족하다.
 
....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좋은글/따뜻한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