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21]

2012. 2. 3. 오후 11:05:30

글자

21.

검푸른 정글산 밑바닥에서부터 논과 밭으로 이뤄진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10m 폭의 희뿌연 강물이 산
기슭과 평야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강물 주변에는 대나무, 버드나무, 갈대 등이 어우러져 짙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베트공이 귀신처럼 출몰한다는 음산한 지역이지만 겉으론 인적조차 없는 평온한 들판이었다.
 

이 들판에 베트공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대나무와 버드나무로 형성된 숲이 강가로 가늘게
이어 나오다가,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만큼 둥그렇게 펼쳐져 있었고, 숲 속에는 겨우 한 사람이 다닐만한
소로들이 이리저리 연결돼 있었다.
 

그 숲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아무리 샅샅이 살펴 보아도 사람이 숨을 공간은 없었다. 그런데 미군은 어째서
이곳에 베트공이 많이 있다는 정보를 한국군에게 주었을까?
 

미군에는 특수 정찰기가 있었다. 날아다니면서 인체에서 발산되는 암모니아 가스의 양을 측정해서, 암모니아
지도를 만드는 정찰기였다. 우리가 이 곳에 작전을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 대나무 숲에서 암모니아 가스가
집중적으로 탐지됐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베트공들이 있을 리 없는 곳이었지만, 백마 28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사흘 째 그 벌판에 주둔 
하고 있었다. 낮이면 뜨거운 땡볕을 피하기 위해 숲 가장자리에다 텐트를 쳤고, 밤이면 소대 단위로 흩어져
매복을 했다. 병사들은 이미 통졸임 고기에 질려 있었다.
 

그런데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 Cㅡ레이션에 대한 향수가 새로워졌다. 몇 년 전까지도 남대문 시장에서
팔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살래야 살 수 없다고 한다.
 

열을 펑펑 내뿜는 메마른 밭에 드문드문 고추나무가 시들어 있었다. 고추라 해봐야 연필심 굵기보다 조금 더
굵었지만, 혀끝에 대면 혀기 잘려나갈 듯이 매웠다. 병사들은 Cㅡ레이션 캔과 뚜껑 사이에 고추를 끼워 넣고
작두질을 해서 잘라 몇 쪽의 고추를 고기 속에 넣은 후 고체 알코올로 끓였다.
 

느끼한 음식에 늘 실증을 느끼던 터라 매콤한 자극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병사들은 과자가 든 캔을 따서
과자를 버린 후 봉지 커피를 끓여 마셨다. 다른 용기에 커피를 끓이면 그런 희한한 맛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분하고 지겨운 땡볕을 이겨내려고 어쩌다 찾아낸 맛이었지만, 그 맛은 지금도 그리울 만큼 특별했다.
 

작전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 헬기로 이동하는 시간, 정글을 누비는 시간들로 채워지고, 정작
적과 어우러져 전투를 하는 시간은 극히 찰나에 불과했다. 나는 작전을 나갈 때마다 영문 단편소설을 철모 
밑에 넣고 다녔다. 병사들이 따분해서 몸을 뒤틀고 있는 시간에 영문 소설을 읽었다.
 

이는 훗날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됐다. 만일 내가 그런 식으로 조각난 시간들을 이어 쓰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미국유학이라는 새로운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프리렌서의 길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베트공에 대한 경계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병사들은 지루한 캠핑 상활에 따분해 했다.
다음날이면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렸다. 월남의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진다.
우기에 내리는 비는 언제나 장대비였고, 일단 시작한 비는 아침에도 사정없이 퍼부었다.
 

군화에 붉은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걷기조차 힘들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병사들은 낮잠을 즐겼다. 한
병사가 잠에서 깨어나 텐트 자락을 위로 올리고, 장대같이 쏟아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가,
우중충한 숲 속에서 가늘게 솟아오르고 있는 연기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옆의 전우를 툭툭치며 턱으로 가리켰다. 감각이 뛰어난 옆 전우가 판초우의를 입고 엎드려 기어갔다. 땅굴의
덮개가 감쪽 같이 위장돼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꽃아놓은 대나무 대롱이 나뭇가지에 숨겨 위장돼 있었다.
바로 그 대롱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 것이다.
 

아마도 베트공들이 닷새 동안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밥을 지었을 것이다. 닷새 동안을
한국군은 땅 위에서, 베트공들은 땅 밑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이 기 막힌 내용이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됐다.
연대장의 눈이 반짝 빛났을 것이다.
 

독 안에 든 쥐이긴 해도 잘못 시작했다가는 많은 병사들이 상할 수 있었다. 연대장은 주월한국군에서 전과를
가장 많이 올린 유능한 지휘관으로 소문나 있긴 했지만, 그는 꾀와 지혜를 활용하지 않고 "즉시 공격하라."는
성급한 명령을 내렸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기계처럼 내린 명령이었다.
 

병사들이 몇 개의 아지트로 접근하여 문을 열고 수류탄을 집어넣었다. 폭발음이 들리자 땅 속에서 숨어있던
베트공 소대 병력이, 여기저기에서 문을 열고 나와 필사적으로 덤벼들었다. 여러 대의 장갑차가 적탄통이라는 
원시적인 로켓 공격을 받아 파괴됐고, 타고 있던 병사들이 즉사했다.
 

그 같이 서로 맞붙어 싸울 때는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한 전투가 아니다. 결국 베트공과 한국군 양쪽 모두 
수십 명씩의 사상자를 냈다.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장대 같은 빗물에 씻겨 뿌옇던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퉁퉁 부은 시체 조각들이 강가의 나뭇가지에 걸려 이리저리 맴돌고 다녔다. 참으로 비참한 전투였다.
 

그러나 그 전투는 한국군에게 별다른 피해 없이 완전하게 이겨야 할 전투였다. 그렇게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얼마던지 치를 수 있었던 전투였는데, 성급하게 아무런 전략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싸운 결과인 것이다. 
 

"베트공은 비좁은 땅 속에, 한국군은 모든 게 자유로운 땅 위에!"
 

더구나 한국군은 베트공과 비교 안 되는 화력과 함께, 1개 소대인 저들에 비해 몇 배인 2개 대대 병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베트공은 안전하게 숨어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한국군은 숨어 있는 위치까지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누가 봐도 일방적으로 한국군에게 유리하여, 현장의 일개 소대장이 지휘해도 이겨야 하는 전투였다.
 

시간에 쫒길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 지휘관이 이처럼 유리한 조건들을 이용하지 못하고 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절단낸 것이다.
 

"입수한 정보가 이러 한데, 어떻게 공격하면 병사들을 상하지 않으면서 최대의 전과를 올릴 수 있을까?"
 

만일 지휘관이 간부들을 불러 이러한 회의를 했더라면, 방법은 매우 많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은, 숲 위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또는 그 숲에 나 있는 소로마다 부비트랩을 대량
설치해 놓고, 멀리 매복하여 움직이길 기다릴 수도 있었다.
 

또 미군 전투기를 부르면 10분 이내에 날아올 수 있었다. 손바닥만한 대나무 숲을 전투기가 쑥대밭을 만드는
일은 조종사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고, 신나는 일일 것이다, 한국군은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군 지휘관들은 불쌍한 병사들부터 투입했다.
 

바로 이런 것이 보병 장교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장교들이 장군이 되고 국방장관이 된다.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보병 장군들이 군을 이끄는 동안, 한국군은 과학화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군의
과학화는 과학 장비를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군의 운용을 과학화해야 하는 것이다.
 

병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지휘관은 없다. 하지만 많은 전투를 지켜보며, 그것을 실증해 준 지휘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많은 지휘관들에게는 전과가 병사보다 더 중요했다. 6.25 전쟁을 치른 어느 장군은
이런 기 막힌 말을 했다.
 

"병사들의 생명에 일일이 신경 쓰는 지휘관이 무슨 전투를 한단 말인가? 전투를 하면 누구나 죽게 돼 있다.
남한의 젊은이는 북한보다 2배 이상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
 

부상을 당한 병사들은 헬기가 날아와 싣고 갔다. 부상을 당한 병사에게 헬기는 구세주였다. 하지만 자기를
태우고 가는 헬기가 미군 소속이냐 한국군 소속이냐에 따라 부상자의 마음은 천지 차이였다. 미군 의료시스
템은 신뢰했지만 한국 의료시스템은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월남전에 42개월 참전했지만, 부하들 생명을 위해 머리를 써서 작전을 하는 지휘관은 내가 속한 부대의
제3중대장과, 그의 휘하에 있던 제1소대장 외에는 본 일이 없다. 만일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마 사정은 더 
악화될지 모른다. 머리를 쓰지 않은 작전의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한다.
 

넓고 큰 마을에 베트공 1개 중대가 들어왔다. 정찰기가 날아다니면서 주민을 상대로 방송을 했다.
 

"마을에 베트공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을이 곧 파괴됩니다. 모든 양민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십시오."
 

얼마간의 주민들이 부녀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전투기와 포병 공격이 시작됐다.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연대 병력이 또 강강술래처럼 손에 손을 맞잡고 마을을 포위했다며 좋아했다. 밤이 되자 적막이 찾아
왔다. 마을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낮에는 방심하지 말고 철통같이 경계하자고 다짐들을 했지만, 밤이 되자 병사들 마음에는 공포가 찾아들었다.
밤새 긴장했던 병사들이 새벽이 되자 하나 둘씩 눈을 감았다. 바로 이때 베트공이 50명씩 두 개 팀으로 나눠
한 줄로 늘어선 포위망 두 곳을 아무 소리없이 집중 공격했다.
 

50여 명이 집중해서 돌파하는 곳에는 5~6명의 한국군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그 5~6명이 50여 명 베트공에게
소리 없이 당하고 있을 때, 옆에 엎드린 병사들은 자기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군의 피해만 있었고 베트공들
피해는 한 명도 없었다.
 

바로 이런 것이 '선방어'의 진면목이다. 휴전선에는 한국군 30만 명이 155마일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만일
지금 전쟁이 터지면, 이와 똑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민군은 위 월남전 사례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문산과 철원 두 곳에 병력을 집중하여 돌파를 시도할 것이다.
 

문산 지역 10km 전선에는 겨우 국군 1개 사단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10km에 인민군은 5개 보병
사단과 전차 2개 사단쯤을 투입하면, 10km의 전선에서 국군 1개 사단이 인민군 5개 사단과 전차 2개 사단에
의해 유린 당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 북쪽을 응시하고 있는 수많은 사단들은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다.
 

철원 지역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산과 철원이 동시에 뚫리는 것이다. 그러면
문산과 철원 사이에 존재하는 수십 리 전선에서 적을 응시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부대들은, 싸우지도 못한 채 
이 두 지역을 돌파한 10여 개의 사단들에 의해, 마치 어머니 등에 업힌 어린 아기가 포대기에 둘러 쌓이듯이
졸지에 포위되고, 서울이 맥없이 함락될 것이다.
 

국군은 아직도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없이 "우리에게는 북한보다 젊은이들이 많다"며 느긋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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