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20]

2012. 2. 3. 오후 11:03:42

글자

20.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6월 오후, 갑자기 헬기들이 줄을 지어 날아오더니, 내가 속한 중대를
어느 낯선 마을로 데려갔다. 김제평야 같이 광활하게 펼쳐진 논에는, 짙푸르게 자란 벼들이 정강이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논물도 풍부하게 채워져 있었다.
 

넓은 평야에는 띄엄띄엄 마을이 보였다. 숲 속에 묻혀있는 마을들이 송곳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이어 건너편에 있는 마을을 사정 없이 폭격하는 전투기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 대의 미군 전투기가 마치 먹이를 잡으려는 독수리처럼 수직으로 내리 꽃혔다.
 

야자수 높이 쯤에서 다시 날아오르면서 사정 없이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나뭇조각이
야자수 숲 위로 날아오르고, 연기가 온 마을을 자욱하게 덮었다.
 

"따다다다닥....쾅...."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 전쟁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구나 싶었다. 전투기 공격이 끝나자 포병
사격이 뒤를 이었다. 전투기가 뿜어내는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둔탁한데, 야포탄이 작렬할 때 내는 소리는
날카롭게 째졌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날아다니듯, 마을과 마을 사이를 쏜살같이 뛰어 다녔다. 4개 소대가 마을을 하나씩
배정 받았다. 소위 전략촌 마을이었다. 억센 가시나무가 빽빽하게 마을을 둘러쌌고, 그 가시나무 울타리에는
동그란 총구멍들이 촘촘하게 뚫려 있었다. 베트공들이 마을에서 밖을 향해 총을 쏘는 구멍이었다.
 

중대본부 역시 제4소대와 함께 장갑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앞으로 전진하면서도 온 신경은 뒷마을에 집
중했다. 장갑차가 논물을 가르면서 마을을 향해 달리는 동안, 장갑차 위에 있는 기관총이 뒷마을을 향해 불을
뿜었다. 사수가 공포감을 느낄수록 그만큼 기관총이 내뿜는 소리도 요란했다.
 

이에 질세라 뒷마을에서도 우리를 향하여 엄청난 사격을 가해왔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꺾을 때 "딱" 하는
여운이 없는 소리는 소총알이다. 그리고 "딱" 소리는 나에게 날아올 때 내는 소리이고, "따꿍ㅡ" 하며 짧게
여운을 남기는 소리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총알인 것이다.
 

Mㅡ16 소총의 초속은 마하 2.8이다. 음속보다 2.8배 빠른 것이다. 총알이 먼저 나가면 바늘에 실 따라 가듯
그 뒤를 총소리가 따라간다. 그래서 총알을 맞은 사람은, 그 총소리를 듣지 못하고 의식을 잃게 되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던 중대본부와 제4소대는 아무런 피해 없이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잡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제2소대 무전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수화기에 울렸다. 소대장이
전사했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마을과 불과 100m 떨어진 이웃마을에 도착하여 장갑차에서 막 내리는 순간,
뒷마을에서 베트공들이 무차별적으로 쏘아댄 총알에 머리를 맞은 것이다.
 

소대장 전사 소식에 모두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소대장의 죽음에 오래 애도할 여유가 없다.
중대장은 기지에 남아있던 부중대장을 불러 제2소대장 자리를 대신하도록 조치했다. 부중대장은 부대에 남아
작전지역에 보급품을 보내주는 등 내조 업무를 하고 있었다.
 

먹거리들을 포장하고, 고국에서 온 편지도 포장해서 헬기장으로 가져가 작전지역으로 보내 주는 일들이었다. 
이 처럼 비교적 한가한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부중대장에게,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를 
작전지역으로 데려오기 위해 특별 헬기가 마련됐다.
 

헬기는 그를 공동묘지가 있는 벌판에 내려 놓았고, 그 역시 그 벌판에서 장갑차를 타고 넓은 논의 흙탕물을
가르며 마을로 들어왔다. 장갑차가 속력을 다해 달리는 동안, 건너편 그 마을에서 또 다시 총알이 쏟아졌다.
잡갑차에서 내린 그의 얼굴이 시체처럼 사색이었다.
 

그는 나보다 1년 선배로 성격이 유순하고, 평소 행동할 때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를 볼 때마다 씨익ㅡ 웃던
그였지만, 그 때만큼은 얼이 빠져 있었다. 이 모습은 두고두고 그의 약점이 되었다. 훗날 그가 큰소리를 칠
때마다 나는 그의 기를 꺾곤 했다.
 

"아! 그때 얼굴이 굉장히 창백해 보였습니다."
 

이 농담 한 마디면 그는 기세가 즉시 꺾였다. 온통 숲으로 덮힌 마을에는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손으로 아무
곳이나 문질러도 수십 마리씩 뭉개졌다. 톡톡하기로 이름난 정글용 작업복이었지만 월남 모기의 침은 당하지
못했다. 독한 모기약으로 얼굴과 손 그리고 작업복 위에 범벅을 해도 떼거지로 달려드는 데는 소용없었다.
 

모기를 막기 위해 모든 병사들은 정글용 가죽장갑을 끼고 판초우의를 뒤집어 썼다. 야간에는 방어 초소들을
잘 선정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사한 소대장과 친하게 지낸 제4소대장은 슬퍼하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대신해 울타리를 돌며 병사들에게 초소 위치를 잡아 주고 대응 요령을 꼼꼼히 지시했다.
 

임무가 끝나자 잠이 쏟아졌다. 베트공이 우리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마구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6.25 때 형들이 적군 앞에서 잠을 잤다는 말이 비로서 이해되었다.
어릴 적에 바로 코 앞에 적과 대치한 상태에서 잠을 잤다는 형들의 말을 듣고 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장의 선머슴, 부중대장이 그날 밤 전과를 올렸다. 논 속을 포복해 마을로 접근해 오는 월맹 정규군 3명을
사살한 것이다. 공장에서 갓 뽑아낸 듯한 소총 세 자루와 적탄통(미니 반동총) 한 개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틑날 병사들은, 대나무 작대기를 뾰족하게 깎아 마을의 땅바닥을 촘촘히 찔러댔다.
 

분명히 땅속에는 비밀 땅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찔러서 발견될 땅굴이 아니었다. 불과 3일간
이었지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아주 기분 나쁜 전투였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다. 작업복에는 진흙과
모기약이 범벅이 되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철수용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 병사들은 전우들 시체를 나란히 눕혀놓고, 그 앞에서 Cㅡ레이션 깡통을 따서
시장기를 때우고 있었다. 전우의 죽음 앞에서도 배고프고 졸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기지로 돌아와 첫 밤을 맞았다. 있어야 할 소대장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제야 소대장의 죽음이 실감됐다.
그는 몇 달 전에 많은 전과를 올려 고국으로 포상 휴가를 다녀왔다. 그 휴가 때 많은 여학생들과 알게 되어
펜팔을 하고 있었다.
 

월남의 여름 해는 정말 길었다. 저녁 식사를 끝냈는데도 해는 중천에 있었다. 그는 식당에서 오자마자 편지
부터 읽기 시작했다. 편지 읽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왔다. 월남의 영웅, 미남 소위를 흠모하는 여고생들의
사연이었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언제나 꽃봉투가 한 뼘씩 쌓여 있었다. 읽을 때는 누워서 딍글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으면 18번인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를 불렀다. 약간 음치이긴 했지만 특유의 가락과
감정이 있었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마치 예배를 마무리하는 목사처럼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 목을 좌우로 저어가며 소리를 뽑아내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텅 빈 침대 위에는 임자 잃은 꽃봉투만 쌓여갔다.
 

그 소위는 침대 밑에 귀가 쫑긋한 귀엽고 통통한 황색 강아지를 길렀다. 그 강아지는 주인을 잃은 첫 날부터
식음을 전폐했다. 병사들이 안아주고 밥을 떠 넣어 줘도 먹지 않았다. 매일 밤 내는 애절한 울음소리가 병사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강아지는 천막이 보이는 모래 언덕에,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 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그 소대장에 대한 추억도 잊혀져 갔다.
 

나 역시 몇 명의 아가씨들과 펜팔을 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아가씨는 충남 조치원 아가씨였다. 글씨도
예쁘고 내용도 재미있고, 글 솜씨도 깔끔했다.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도, 서로의 신상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물론 사진도 교환하지 않았다.
 

생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보병대대로 파견된 포병 연락장교인 대위 한 사람이, 그녀의
편지를 탐내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양보하라고 매일같이 성화를 부렸다.
 

"야, 강 소위, 너는 많잖아. 그 아가씨 내게 좀 넘겨라. 응?"
 

결국 견디다 못해 그 대위에게 편지를 쓰도록 양보했다. 그 후 그 아가씨는 나에게도 그 대위에게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나에게 보내온 마지막 편지에
 

"사람은 내 남 할 것 없이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심어주었던 분위기가 섬세하고 깊었던 것만큼, 그 마지막 편지가 나에게 남긴 여운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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