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14]

2012. 1. 25. 오후 11:11:56

글자

14.

나를 이쁘게 본 대대장은 일주일에 두 번씩 포대 앞에 1호차를 보냈다. 그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병사들이 
내게로 달려와
 

"소대장님, 1호차 왔습니다."
 

하면서 매우 즐거워 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며 따르는 소대장을 대대장이 끔찍히 사랑해서 저녁 같이 먹자고
데리러 왔으니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대대장은 나를 태워 집으로 가다 가게에서 2홉들이 소주 한 병을 사서 
자로 잰 듯이 반반씩 나누어 반주로 마시곤 했다. 이는 엄청난 영광이었다. 대대장이 나를 귀여워 해 주니까
참모들의 간섭도 없었다.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군대를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자유공간'은 있었다. 자유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었다.
 

추운 날 저녁, 대대의 최고참 상사가 나를 Px로 초청했다. Px라고 해봐야 막걸리와 과자들을 파는 곳이었다.
흙벽돌을 쌓고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얹은 오두막, 대대 내의 중사들과 상사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엉성한 나
무탁자에는 막걸리에 캔 꽁치찌개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상차림에도 마음이 충분히 설랬다.
 

막걸리는 상급부대에서 사오다가 중간에서 개울물을 약간 회석한 것이긴 해도 몇 사발 마시면 혀가 꼬부라질
만큼 위력이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모두가 거나하게 취했다. 그때부터 하사관들이 하나씩 둘씩 돌아가며
충격적인 경험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사 한 사람이 군화끈을 풀더니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렸다. 온
정강이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작전과장이 사정없이 발로 찼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분노가 확 치밀었다. 뺨을 맞은 상사, 눈퉁이를 맞은 중사, 막대기로 팔꿈치를 맞아 팔을 못 쓰는
중사, 타격 부위들을 차례로 보여 주었다. '저들의 부인들이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술 마시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불끈 두 주먹이 쥐어졌다.
 

"내가 군대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개새끼는 죽여 버릴 겁니다. 우리 갑시다!"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졌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오솔길이 울퉁불퉁해 보였다.
 

"예, 강 소위님, 우린 내일 죽어도 좋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모두의 눈에 초점들이 흐려져 있었다. 왁자지껄하며 좁은 숲길을 걷는 동안 모두가 비틀거렸다. 길의 여기
저기가 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걸음걸이가 일정치 못했다. 길과 숲이 모두 뿌옇게 보였다. 저 마다 굳어버린
혀로 허공을 향해 한마디씩 했다. 모두가 작전과장을 요절내자는 허풍 섞인 소리들이었다.
 

부대 뒷문으로부터 숲길을 따라 100m거리에 지어진 흙담집, 창호지를 통해 하얀 불빛이 봉당에 놓인 검은 
군화와 여성용 빨간 구두를 비추고 있었다. 작전과장의 거침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서 내려왔다는
애인의 애교 섞인 웃음소리도 들렸다.
 

"과장님 계십니까?"
 

성질 급한 작전과장이 가벼운 창살문을 성질대로 확 열어젖혔다.
 

"야, 이 개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술 쳐먹고 와서 행패야!"
 

문을 열고 나오더니 다짜고짜 나의 따귀를 갈겼다.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이내 나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하지만 합기도 유단자의 멱살을 움켜쥔 것은 큰 실수였다. 반사적으로 과장의 손목이 꺾였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면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오른쪽 무릎이 과장 얼굴을 강타했다. 그는 "억!" 하더니 경사진 언덕으로 굴러 내려갔다. 나는 굴러가는
그를 덮쳤다. 엎치락뒤치락 구르며 싸웠다. 10m 언덕을 다 굴러 내리자, 지켜만 보던 하사관들이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손목시계가 달아나고 없었다.
 

이튿날 나는 부대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 온 몸이 뻐근했고, 온 세상이 어두워 보였다. 하극상에 대한 처벌도
예상됐다. '에이 모르겠다. 까짓 제대하라면 제대하지 뭐' 컴컴한 자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소문을 들은 부대대장 부인께서 대위 부인들을 데리고 찾아오셨다. 갈비찜, 두부찌개, 김치찌개, 윤기 흐르는
쌀밥 등을 잔뜩 싸가지고!
 

보나마나 부대대장 부인께서 집집에 전화를 해서 한 가지씩 만들어 오라고 했을 것이다. 부대 비상전화기는
깻망아지처럼 생긴 푸르고 투박한 쇳덩이었다. 손잡이를 맷돌자루 돌리듯이 돌려 교환병에게 신호를 보내면,
교환병이 상대방에게 전화선을 연결해주는 그런 전화기였다. 손잡이를 돌릴 때 "딸딸" 소리가 난다고 딸딸이
전화기라고도 불렀다.
 

"강 소위, 이럴수록 정신 차려야 해,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좀 참지 그랬어! 색시처럼 수즙어하고, 순해만 보이던 강 소위한테 그처럼 불 같은 구석이 다 있었네~ "

"대대에서 강 소위 나쁘다는 사람은 없어, 평소 강 소위는 점수를 많이 땄고, 작전과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사람 고삐 풀린 망아지 아네요? 대대장님도 마음씨가 너무 좋으셔서 어쩌지도
못하시고... 하긴 그 사람 혼내줄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강 소위한테 잘 혼났지 뭐, 안 그래요 사모님?"

"그렇지만 술을 그렇게 마시고 상관하고 싸우면 손해 보는 쪽은 강 소위라구"

"반찬들 놓고 갈 테니 많이 먹고 정신 차려 응?"
 

회식 때마다 가장 어린 강 소위를 유난히 챙겨주시던 분들이었다. 평소 같으면 감격을 넘어 송구스럽기 이를
데 없는 모습들이었지만 정신없던 나에게는 마치 꿈속에 나타난 검은 환영들처럼 일정한 거리 밖을 스쳐가는
낯선 행렬 같기만 했다. 어둠 컴컴한 방에는 또다시 외로운 적막이 흘렀다. 대대 내의 모든 대위들이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우르르 떼 지어 달려올 것 같은 생각도 들았다.
 

"야, 이 새까만 소위 새끼가 감히 어디라고 고참 대위를 때려? 너 이 새끼 한 번 혼 좀 나 봐라!"
 

환청도 들렸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토끼잠이 들 때마다 여지없이 악몽이 찾아 들었다.
가위에 눌려 소리도 질렀다.


오후가 되자 수송과장이 찾아 왔다. 마음씨 좋고 시원 시원한 고참 대위였다.
 

"음, 자네는 얼굴이 깨끗하구먼. 작전과장 얼굴은 아주 엉망이야. 그 사람은 창피해서 출근을 못하고 있다네.
이보게 강 소위! 이럴 때 잘잘못을 따지는 건 부질없는 일일세. 따지지 말고 무조건 고개를 숙이게.작전과장
에게 숙이라는 것이 아니라 대위라는 계급장에게 숙이게.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쑥스럽지 않은 일이야. 잘못해서 잘못했다고 빌라는 게 아닐세. 남 보기 좋게 하자는 것일세. 그렇게 하는 게
앞으로 강 소위에게도 좋을 걸세. 자, 내 차를 타고 부대로 가세"
 

참으로 고마웠다. 그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의 손에 이끌려 작전과장 집으로 갔다.
그는 차마 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멍들고 상처가 난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리면서 나의 사과에 억지로
대답했다.
 

"괜찮아."
 

그 길로 다시 대대장에게 갔더니 애써 모른 채 했다. 부대내 중위들과 소위들 그리고 하사관들은 작전과장이
얻어터진 것에 대해 고소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며칠 후, 사단 헌병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헌병대로 오라는
것이었다. 헌병대장은 육사 출신 소령이었다. 그는 나를 수사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불러 물었다. 나는 사실 
그대로를 담담한 자세로 진술했다.
 

"작전과장이 자네를 고발했네. 그 사람 말을 들을 때는 강 소위가 덩치도 크고 우락부락한 장교인 줄 알았더니
아주 약하고 착해 보이는군! 육사를 나와 이제 막 장교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런 일로 처벌 받으면 되겠나? 사소
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일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네. 앞으로 이런 일 다시는 없도록 하게. 자네 대대장과
통화를 했네. 자네를 극진하게 생각하시더구면. 가서 열심히 근무하게."
 

"네, 감사합니다."
 

그는 마치 친 동생이나 되는 것처럼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맙고 황송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곧 작전과장은
먼 곳으로 전출되었다. 그가 없어지자 대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대리 포대장 노릇을 하면서도
육사를 나왔다는 것 때문에 대대 군기 장교로도 일했다. 이 부대 저 부대에서 차출되어 온 병사들이라 군기가
없었다. 어른이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나는 굵고 긴 서까래 하나를 구해 가지고 질질 끌고 다녔다. 폼으로 끌고 다니는 것이지 누구를 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 질질 끌고 다니면 병사들이 제대로 행동했다. 그게 억울하다 싶었는지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시험하려고 했다.
 

한꺼번에 30여 명 병사들이 식당에서 떼 지어 몰려나오면서 나를 힐끔보면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뻔히 바라보면서도 경례조차 하지 않았다. 식당은 영내의 조그만 언덕을 넘어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식사가 끝나는 대로 내무반으로 오는 병사라면 잘해야 3~4명 무리지어 넘어와야 정상이었다. 30명이
무리를 지어 넘어오고 있다는 것은 한번 떠보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나는 그들을 일열로 세웠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두꺼운 야전잠바를 입었기 때문에 줄을 서 있는 것이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줄이 길게 늘어나자 뒤에 있는 녀석들이 시시덕거리면서 장난을 쳤다.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다시 5열로 세웠다.
 

추운 겨울, 나는 느닷없이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녀석들은 한편으로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다른 한 편으론
옆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서까래를 높이 치켜 올려 곧 내려칠 것 같은 폼을 잡았다. 내려치면 내 앞에
서 있는 병사들이 맞을 판이었다. 바로 매를 맞게 될 그 녀석들부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내 눈초리가 닿는 녀석마다 하나씩 둘씩 상의를 벗었다. 벗을 때까지는 호기를 부렸지만 막상 벗고 나니까
추위가 살을 조이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5분이 채 안 되어 가슴이 오그라들고 턱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앞으로 30분간만 견뎌라"
 

물론 협박이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이 소리쳤다.
 

"잘못했습니다"

"귀관들은 아까 분당 10보라는 아주 느린 속도로 걸어왔다. 각자는 지금부터 옷을 들고 분당 10보의 속도로
내무반으로 걸어간다. 절대로 뛰면 안 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해산!"
 

녀석들은 처음엔 슬슬 걸어갔다. 그러다가 나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지자 하나 둘씩 나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시시덕거리더니 죽어라 하고 달렸다. 그 후부터는 부대내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은 없었다.
 

나는 사단 전체의 급식감독관으로도 일했다. 사단 전체의 김장을 담그는 일을 감독할 때였다. 양평과 용문을
흐르는 큰 냇물에 배추를 차떼기로 부어놓고, 부지런히 씻어서 김치 탱크로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해에는 갑자기 추위가 일찍 찾아와 하필이면 김장 날 냇물 전체가 얼었다.
 

물 속에 담근 배추가 얼어붙고 손발은 시리고 통제력은 상실됐다. 장교, 하사관, 병들이 여러 부대에서 차출
되었기 때문에 일을 다잡아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높은 장교들은 "작업 개시" 명령만 내려놓고 전권을 내게
맡긴 채, 탠트 속에서 난로를 피워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하사관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탠트 속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셨다. 이런 일은 어느 한 부대가 맡아서
해야 하고 그래야 통솔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새벽까지 나 혼자 병사들을 지휘했다. 여러 부대에서 
차출돼 온 병사들은 한동안 눈치를 살피며 일하는 시늉만 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병사들은 나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고참 병장들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더니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소대장님, 잠시 천막에 들어가 쉬십시오. 여기는 우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하자포리, 그곳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은 당직 날이었다. 행정반 병사들은 내가 당
직을 서는 날을 학수고대했다. 내 차례가 돌아오면 병사들은 반합에 쌀밥을 짓고, 꽁치 통조림으로 찌개를
만들고, 두부를 손바닥 크기로 썰어서 사이사이에 고추가루를 넣어 끓이고, 막걸리를 받아왔다.
 

설렘에 들뜬 아이들처럼 싱글벙글하면서 행정반 책상 위에 상을 차리던 그 정겨운 모습은, 지금도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있는 그림이요, 그리움이다. 별마져 가물가물 얼어붙은 추운 야심한 밤, 산자락에 지은 시맨트
불로크의 내무반에 피었던 그 훈훈한 인정과 정취는, 그후 어느 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귀한 추억이 되었다.
 

검고 오동통한 얼굴에 순하게 생긴 큰 눈망울의 일등병, 키가 작고 통통한 몸집의 병장, 지금도 그들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육사 졸업 후 1년간 내가 보아 온 거의 모든 것들은 권태와 회의를 느끼게 했다. 박봉, 숨막히는 고정관념, 논리
없는 간섭, 답답한 현실,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모든 것들이 하위급 젊은이들의 숨을 콱콱 막았다.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어졌다. 우선 부대를 떠날 생각으로 공수낙하훈련지원서와 파월지원서를 동시에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의 질곡과 어두운 미래! 장교들은 한시나마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어디에나 할 것
없이 불만과 스트래스가 분출됐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기세들이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 한 줄기
구멍이 뜷렸다. 1967년 5월 어느 날, 공수부대 낙하훈련 소집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나는 며칠 간 휴가를 보낸 후 다블백이라는 국방색 자루를 둘러매고 청량리행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그 열차
에서 우연히 부대원을 만났다. 그는 내 이름이 파월 대상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인사명령을 보았다면서 곧
바로 부대로 돌아가 보라고 했다.
 

"아! 내가 바라던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다니!"
 

물론 나는 공수훈련을 포기하고 월남행을 결심했다. 아마도 그때 내가 공수훈련을 택했었다면 나 역시 몇몇
동기생들처럼 1980년 5.18 사태 당시 공수부대 대대장으로 내려가 5.18 시위를 진압했을지 모른다.


월남에 먼저 간 동기생들 전사 소식이 속속 날아들었다. 그래도 초급 장교들은 참전기회를 꼭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참전 기회를 갖지 못하면 비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맹호는 간다"

"달려라 백마"
 

경쾌한 군가가 매일같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치고 이 군가에 눈 시울을 적셔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남을 도울 수 있다."

"우리도 민주주의 수호의 주역이 됐다."
 

그 시대에는 이런 자부심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했다.
 

"아, 자랑스럽다. 대한의 건아!"

"국위를 선양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보무도 당당히 이국만리 전쟁터를 향해 떠나는 저 늠늠
하고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들을 보십시오...."
 

방송국 아나운서들은 복받치는 감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광재 아나운서의 흥분한 음성이 청취자들 눈물을
자아냈다. 파월장병들이 늠늠하게 벌이는 퍼래이드가 국민들 가슴을 뛰게 했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
되고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할 때 온 시민들이 열광했듯이 서울시민들도 그렇게 열광했다.
 

가도에서, 건물 속에서, 옥상에서! 여학생, 주부, 연예인들이 퍼래이드 대열에 뛰어들어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모든 장병들의 목에 몇 개씩의 꽃다발이 걸렸다.
 

강재구 소령!
파월훈련 중에 한 부하 병사가 다른 병사들 속으로 잘 못 던진 수류탄으로부터 그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져 수류탄 폭발을 끌어안고 산화한 강재구 대위가 1계급 특진되어 영웅으로 등장했다.
 

이 사건은 타락했던 전후의 귀족세력과 침체됐던 사회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주월한국군의 눈부신
활약이 거의 매일 뉴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최근 월드컵 축구를 보며 국민들 마음이 하나가 되어 열광
하듯이 그 때는 파월한국군 뉴스에 국민이 하나 되어 열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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