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 달간의 기초군사훈련은 일명 짐승훈련(beast training)이라고 불렸다. 이 훈련은 일과시간의 훈련과 일과
전후의 훈련으로 구분됐다.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과시간은 기본동작과 제식훈련, 소총 분해결합, 총검술,
사격훈련, 포복 같은 기본기를 반복해서 훈련받았다. 이는 점잖고 마음씨 좋은(?) 대위급의 선배 장교들이
맡았다. 그들 중에는 육사 12기 박희도 대위도 계셨다.
일과시간 이전은 오전 6시부터 8시까지이고, 일과시간 이후는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를 말한다. 이들 시간은
벌떼 같은 상급생들 즉, 육시 19기생들이 맡아 주관했다. 일과시간이 천국이라면 일과 전후의 시간은 지옥이
었다. 이들 4학년 선배들은 임무에 따라 구대장 생도, 중대장 생도, 대대장 생도로 구분되고, 대대장 생도에게
는 4명의 참모가 포진돼 있었다.
가장 높은 직책은 대대장이며, 대대장 생도 양쪽 팔뚝에는 노란 V자가 5개 겹쳐 있었다. 중대장 생도는 4개,
구대장 생도는 3개였다. 1명의 대대장 생도 아래 2명의 중대장 생도가 있었고, 각 중대장 생도 밑에 4명씩의
구대장 생도가 편성돼 있었다. 25명 단위로 묶여진 풋내기들은 구대장 생도에게 메어 있었다. 200명의 1개
학년이 8개의 구대로 나눠진 것이다.
풋내기들은 헐렁한 작업복 속에 파묻히고, 무거운 철모에 짓눌려 코흘리개 같이 보였지만, 이들 선배들은 날
씬한 몸매에 칼날 같이 주름 잡힌 작업복을 입고, 헌병 모자처럼 반짝이는 플라스틱 파이버 모를 쓰고 있어
여간 날렵하고 멋있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특히 가장 높은 대대장 생도는 누구라도 선망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귀공자의 표상이었다.
매 집합 때마다 4명의 구대장 생도는 그들의 중대장 생도에게 우렁찬 구령으로 보고를 했고, 2명의 중대장
생도는 대대장 생도에게 최종 보고를 했다. 보고를 받은 대대장 생도는 훈시를 하고,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육사의 문을 두드린 귀관들! 오늘도 조국을 지키는 훌륭한 간성이 되기 위한 수업을 쌓느
라 수고가 많다....귀관들은 사회에서 길러진 나태함과 썩은 정신을 청산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연마해야
한다... 우리는 안이한 불의의 길을 배척하고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는 명예로운 사관이 되기 위해 오늘도
심신을 단련해야 하는 것이다....."
자세, 걸음걸이, 군대언어, 군대예절, 군인행동 등을 일일이 교정해 주는 상급생은 구대장 생도였다. 구대장
생도의 구령 없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집합 1분전!"
"집합 5초전!"
"집합!"
후다닥거리는 소리, 가파른 숨소리, 팔딱거리는 새가슴, 반들거리는 눈동자, 집합은 언제나 이랬다. 모든 집
합은 선착순으로 시작됐다. 동작 빠른 녀석들부터 구대장 생도 앞에 늘어섰다. 앞에서 5명을 제외하고 보통
100~300m 거리에 떨어진 어떤 목표물을 돌아와야 했다. 6등 이하는 다시 뛰어야 했다. 체면이 있는 녀석들은
죽기 살기로 뛰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켰다.
이것이 거만한 것으로 비쳐지면 구대장 생도에게 엄청난 특별교육을 받았다. 개인적 기합인 것이다. 구타는
금지됐고, 완전군장을 메고 구보하는 것이 통상이었다. 선착순을 여러 번 치르다 보면 한 겨울에도 몸이 젖
었다. 턱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숨이 올려 받혔다.
지내놓고 보니, 이런 선착순은 동작을 민첩하게 하는 데에는 다소 도움이 되었겠지만, 불건전한 경쟁의식을
길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관찰한 것이지만 사관학교 출신 중에는 과도한 경쟁의식으로 기회주의와
출세지향주의에 젖은 인물들이 꽤 많았다.
경쟁의식으로는 위인도 탄생할 수 없고 위대한 작품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가슴을 황폐화시켜 편협한 인간
을 만드는 하나의 악습이었다는 생각마져 든다. 사관학교에 들어와 첫날 들은 청운의 꿈이란 것이 4성장군이
되는 것으로 이해됐고, 이는 출세지상주의로 연결됐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1,2학년 여름 훈련에는 화롯불 같이 뜨거운 진흙 위를 됭구는 훈련이 많이 들어 있었다. 갈증으로 인해 입술
이 타들어 갈 무렵이면 애타게 기다리던 10분간 휴식이 선포됐다. 사병들이 고무로 만든 물주머니를 나뭇에
매달아 놓았다. 검은 고무로 만든 물 자루는 언제나 한 개였다. 서로 먼저 마시기 위해 선착순으로 달렷고
누가 봐도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여러 개를 걸어 주었다면 아마도 다소간의 신사도가 몸에 밸 수 있었을 것이다. 물주머니가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 이 작은 선택이 생도들의 정신과 매너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신사도를 길러 주려면 신사
도를 기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정교하게 만들어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배들에게 가장 많은 간섭을 받는 것이 차려자세였다. 쉬운 것 같지만 매우 어려웠다. 양 무릎을 꼭 붙이고
어깨를 펴고, 턱을 당기고, 눈은 15도 위를 응시하는 자세이다. 하라는 대로 해도 누구나 다 모양 있는 차려
자세를 취하지는 못했다. 15도 위를 보려고 하니까 가슴만 내밀고 궁둥이를 뒤로 잡아 빼는 녀석들도 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녀석이 참지 못해 웃음을 터트렸고, 웃으면 웃는다고 넓적한 손바닥으로 후려 맞았다.
다리가 휘어서 양 무릎이 붙지 않는 녀석은 무릎을 붙이려고 바들바들 떨며 구슬 땀을 흘렸다. 호기심 많은
녀석들은 차려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눈알을 굴렸다. 옆의 동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복장 검사를 받을 때 바지의 단추 선과 상의 단추 선이 일치하고 있는지, 거기에 허리띠의 바클 선이 일직선
으로 일치하는지도 궁금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녀석일수록 눈동자를 많이 굴렸고, 눈동자를 많이 굴릴수록 웃기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귀관, 웃~ 어?"
두툼한 손바닥으로 어깻쭉지를 한 대 얻어 맞으면 웃음은 오간데 없고 금새 주눅든 강아지가 돼버렸다. 그
모습을 훔쳐본 또 다른 녀석들은 당장은 긴장하지만 선배의 눈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마자 킥킥거렸다. 키
작은 녀석과 큰 녀석이 마주보고 서 있으면 큰 녀석이 손해였다. 작은 녀석이 15도 상공을 보면 그 눈 길은
큰 녀석의 얼굴에 꽃혔다.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큰 녀석이 무의식 중에 작은 녀석을 내려다보면 바로 그 순간 키 큰 녀석의 어깨쭉지
에는 뜨거운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알것습니다."
"한당께?"
"화장실에 갔으면 참말로 쓰것습니다."
지금은 귀에 익은 사투리들이 당시에는 그렇게도 낯설었고 이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