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4]

2012. 1. 14. 오후 10:17:37

글자

4.

며칠 후 경복고등학교 건물에서 필기시험이 있었다. 시험 첫날 아침 홍시 하나를 아침으로 때우고 용두동에
서 버스를 타 광화문에서 내렸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내리자마자 위경련이 시작됐다. 병원에 들러 진통제를
맞기는 했지만 위를 쥐어뜯고 골이 빠개지듯 아팠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자신 있던 물리와 수학이 들어 있
는 날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생각하니 불길한 생각이 앞섰다.
 

첫날 시험을 잘못보고 나니 그 다음 이틀간의 시험이 시들해졌다. 마음 속으로 육사를 포기한 후, 후기 대학
중의 하나인 성균관대학교를 지망해서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늘은 왜 이토록 나에
게 가혹할까! 절망적인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절망에 빠져있던 어느 날, 육사로부터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참으로 상상할 수 없
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독감이 찾아와 일주일씩이나 온 몸을 할퀴고 갔다. 어지
러운 몸을 추슬러 가지고 제2차 체력검정 시험을 치러야 했다.
 

체력검정 내용은 신체검사를 다시 한 번 반복한 뒤에 철봉 턱걸이, 역기, 장거리 구보 등의 능력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제2차 신체검사는 육사 지구병원에서 치렀다. 또 한 번 그 놈의 신장계가 크게 부각됐다. 바로 옆
에 서있던 지망생은 얼핏 봐도 나보다 키가 큰 것 같은데 키 부족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 광경을 본
나는 넋 나간 상태가 돼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신장계 옆의 체중계 쪽으로 밀었다. 키는 재지 말고 체중을 재라는 것이었다. 영문 모를  
일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와서 "야,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빨리 해" 하고 소리를 친 것 같았고
신장계 담당 하사관은 내 키가 충분한 수치로 기록돼 있고 바쁘기도 하니까 그랬던 것 같았다. 아니면 전에
육군병원에서 나와 실랑이를 벌였던 그 하사관이 나를 기억해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키 재는 신장계의 하사관이 마음이 변하여 다시 키를 재라고 할까 겁이나 얼른 체중계 위로 올라섰다. 
1차 신체검사 때 체중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심한 독감으로 체중이 3kg이나 증발됐
다. 체중계 담당 하사관은 조금의 배려도 없이 "불합격!"을 외치며 도장을 찍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또다시 넋 나간 상태가 되었다. 휑하게 뜷린 검은 눈에 순간적으로 무겁
게 눈물이 고였다.
 

"야, 비켜."
 

하사관이 소리를 쳤지만 나는 체중계 옆에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야, 안 들려? 빨리 비키라니까."
 

바로 그 때 키가 나 만큼이나 작고 통통하게 생긴 대령 한 분이 하사관의 큰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왔다.
 

"여기 요놈 뭣 때문에 그러냐?"
 

그 대령이 지휘봉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으니 하사관이 사정을 설명했다.
 

"그래? 요놈 용지는 따로 빼 놓아라. 내가 물 좀 먹여 가지고 올테니."
 

그 분은 치과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큰 주전자를 들고 나와서는 나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네 놈은 이 물을 다 마셔야 해"
 

갈증도 나지 않는데다 몸살을 앓고 난 검부러기 같은 몸으로 물을 생으로 마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었
지만 죽기 살기로 마셨다. 그 분도 안타까운 모양이었지만 아무 말 없이 나와 체중계 앞에 세웠다.
 

"요놈 체중을 다시 재봐라."
 

배가 터질 만큼 많이 마셨지만 겨우 1kg 남짖 보탰을 뿐이었다.
 

"아직 안 되겠나?"
 

대령은 나를 다시 화장실로 데려갔다. 겨우 5백미리 정도를 더 마셨다. 그 대령은 미달일 줄 뻔히 알면서도
나를 데리고 세 차례나 화장실과 체중계 사이를 왕복했다. 그때서야 그 하사관도 비로서 생각나는 바가 있었
던지 "대령님, 이제 됐습니다." 하고 정정란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대령은 나의 등과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
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대령은 육사 군수참모였다. 신체검사의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판정관 앞에 섰다.
그 판정관은 놀랍게도 키를 봐 준 바로 그 미남 소령이었다.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토끼 눈으로
나는 그 소령에게 꾸벅하고 절했다.
 

"너 몸살 앓았구나. 입교해서 공부 잘해."
 

그는 웃는 얼굴로 신체검사 용지에 마지막 도장을 꾸ㅡ욱 눌렀다. 너무나 고마워 나는 그에게 허리를 두 번
씩이나 굽히면서 뒷걸음으로 문을 나왔다. 꿈에서나 있음직한 아슬아슬한 악몽이었다.
 

목에까지 가득 찬 물배를 안고 병원 건물에서 나와 체력검사를 위해 연병장으로 걸어갔다. 500m 거리, 발을
뗄 때마다 배에서 물이 출렁거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물배를 안고 어떻게 장거리를 뛰지?" 앞이 캄캄했다.
먼저 턱걸이부터 시작됐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턱걸이를 한다는 것이 배걸이를 했다.
 

턱이 걸려 있어야 할 철봉대에 배가 걸린 것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휑한 눈으로 대위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이 워낙 초췌해서였는지 대위 시험관이 조교에게 나를 내
려 주라고 지시했다.
 

"아, 그 학생은 됐다."
 

그 대위는 남아있는 4회의 턱걸이도 면제시켜 주었다. 역기를 다섯 번을 들어 올려야 했지만 그 대위는 한
번만 들게 해주었다. 첫회를 들어 올리는데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입교해보니 그 분은 체육과의 명물로 통
하는 차 대위였다. 드디어 2km를 뛸 차례가 되었다. 20명 틈에 끼어 출발선상에 섰다.
 

"뛰다가 뱃살이 꼿꼿해지고, 힘이 모자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졸도하면 어떻게 하지?....."
 

어렸을 때에는 손기정 선수처럼 되어보겠다고 동네 꼬마들과 곧잘 마라톤 연습을 했다. 갈증 나는 여름철에
개울을 건널 때면 엎드려 소처럼 물을 들이마셨다. 마시고 나면 여지없이 뱃살이 꼿꼿해져 뛸 수가 없었다.
 

드디어 출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물이 출렁이지 않도록 배를 잔뜩 안으로 집어넣고 뛰었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에 내 몸을 수십 번씩 꼬집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2km를 뛰는 동안 뱃속의 물이 내내 잠잠
했다.
 

"아! 이제는 끝났구나!"
 

대부분 지망생들은 건강하여 신체검사는 하나의 절차이고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내게는 첩보영화의 주인공이나 겪을 수 있는 온갖 스릴과 고뇌의 장애물들이었다.

 

※ 옮긴이 주

그야말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격언이 실감되는 내용이다. 저자는 그 시절 사회에 만연해
있던 이른바 빽도 없었고 잘 봐달라고 부탁할 돈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번듯한 고등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매일의 끼니조차 단 하루 걱정하지 않은 날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런데 아무 관계도 아닌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도 높은 고급 장교들이 극적으로 꼭 필요할 때 나타나 도와주었다.
 

그런 일을 그냥 우연으로 치부해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일에 우연은 없다. 내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어서가 아니다. 저자도 절대자의 존재를 믿으며 경외한다고 했다. 우주 만물을, 하물며 먼지보다 더 작은  
미물들까지 당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께서 하시는 일에 우연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렇다면 절대자는 왜 무엇을 바라고 저자를 그처럼 도와준 것일까? 내가 볼 때 저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육사에 입교가 허락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면 비를
맞아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그후 비를 즐겨 맞았고 지금도 비를 피하지 않고 있다.
 

그 당시 각군 사관학교는 모든 고등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꿈의 학교였다. 돈 안 들이고 대학교를 다닐 수
있고, 군사정권시대라 군의 위상이 지금과 달라서 국민들 인식도 좋았다. 또 어려운 취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그 때문에 사관학교에 합격하면 학교는 물론 동네도 큰 잔치를 벌이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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