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에 핀 꽃
2022.8.28.~29/1박2일 (묵호, 삼척, 강릉, 양양)
<첫날 2022.8.28. 쾌청한 날씨>
카톨릭회관 후문에서 현양분과 해설사(1호차), 합창단(2호차) 강릉으로 출발했다.
차창 밖은 높은 하늘과 맑은 햇살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동해안의 꽃을 보러 출발했다.
최만기 바오로 과장님의 해설이 구수하게 시작되었다.
“이런 날씨를 천고마비라 하지만 천고마비란 말의 유래는 흉노족이 겨울이 되기 전에 농민들을 약탈해서 말을 살찌게 했다고 합니다. 기마민족인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하늘 높고 곡식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계절 속에 중국 농민은 두려운 계절이라니!
양양 고속도로를 바쁘게 달려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터널도 실감하며 지났다.
홍천 휴게소에서 내려 운영진에서 준비한 떡을 먹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행복해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중지되고 합창단 노래도 뭇 해서 서로 못 만났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손을 잡고 끌어안고(마스크 쓰고)
영동지역에 신앙의 씨앗이 싹튼 곳인 금광리 공소에 도착했다. 마당에 핀 분홍색 <꽃범의꼬리>가 작은 공소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현수 바오로 신부님의 집전으로 미사를 드렸다. 작은 공소지만 56명이 다 들어갔다.
합창단과 같이 미사를 드리니 작은 공소를 하늘로 들어 올리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기사님은 배고픈 우리를 묵호식당으로 데려다주었다. 동해안의 식당답게 가자미식혜, 코타리강정, 생선구이 4가지가 나오니 우리는 행복했다. 모두 흡족한 얼굴이다. 역시 여행의 진수는 맛집이 좌우한다.
진 야고보 신부님의 사목성당 묵호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당의 내력에서 전쟁의 흔적을 들었다. <라 파트리치오>신부는 우리 동족의 아픔인 6,25 전쟁을 같이한 외국 신부님이시다. 누구보다 우리 신자를 사랑하신 마음에 고개 숙여 존경을 표했다.
유명한 정동진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고 한국여성수련원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바닷물에 들어갔다. 몇몇 회원들은 어린애가 되어 물로 뛰어들었다. 나도 발을 담갔다.
밤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친교의 시간을 갖었다. 이창훈 기획분과장님의 노력으로 얼굴을 익히고 활동하시고 수고하시는 분야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 내 생활에서 보수 없이 시간을 내서 봉사하신 경험담에 박수를 보냈다.
고단함을 잠으로 달래며 노곤한 잠을 청했다.
둘째 날 (2022.8.29. 월요일 가을비)
아침 6시 40분에 3층 강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방송 출연을 했다. 평화방송에서 <9월의 동행>에 대한 프로그램 안내를 신부님께 부탁하셨다. 대담에서 우리는 몇 마디 구호로 참여했다. 모두 호기심으로 즐거운 표정들이다.
단체 인증샷을 찍었다. 합창단은 예술적 기질이 있어 사진 찍는 모습이 재미있다.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임당동 성당>으로 갔다. 해설사가 나와서 자세히 설명하는데 지역에 대한 안내까지 곁들이니 색다를 해설이다. 2010년에 국가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강릉 대도호부>를 못가고 박물관 5층에 올라가서 임영관 3문과(파르테논신전과 닮았으므로 서양과의 교류) 칠사당, 은행나무, 느티나무를 구경했다.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8년 이유일 안토니오와 심능석 스테파노는 그 나무에 묶었었을 나무라고 한다. 행정과 사법을 관장하던 곳이라 그 위세가 보인다. 고려 고종이 쓴 현판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밤재골에 가서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터에서 묵상기도를 하고 양양 성당으로 갔다. 3,8선 이북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전쟁을 겪은 사제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을 다시 새겨 보았다. 최초의 한국주교님이신 노기남 주교님께서 발탁하신 신부님이다. 차에서 이광재 신부님 영상을 보며 이동하였다. 둘째 마디가 잘못 붙어서 기형이 된 신부님, 7품성사가 아닌 팔품이란 별명은 명예로운 훈장이 되었다. 가난하던 시절 키가 자랄 때마다 한 단씩 늘어나 3단 수단이 된 것도 더욱 빛나는 수단이 되어 우리는 훈장을 하나 더 드렸다.
행정공소에 들렀다. 1924년 라파엘이 양평에서 이주하여 마을 전체가 옹기를 굽던 교우촌이다. 옹기를 굽던 가마에서 흙벽돌을 구워 공소를 지었다고 한다. 성당을 지으며 친교활동이 더욱 돈독한 신앙 교우촌이 되었다.
서울에서 대관령을 넘던 영동권을 양양 고속도로로 산 중턱을 뚫어 평평하게 도로를 놓았다. 전국에 박해가 진행될 때도 영동은 태백산맥이 가로놓여 신앙도 그 고개를 넘지 못하던 곳, 병인박해 때에 그 소식이 못 미치던 곳을 현대문명이 평준화를 해 놓았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역사의 획을 긋고 허준과 허난설헌이 시대에 걸맞지 않아 수난을 받듯이 종교와 한국전쟁은 나란히 신앙에도 힘들게 역사에 남아있는 곳이 되었다.
이창훈 알퐁소 과장님의 해설에서 늘 신앙에 견주어 생각하자고 하신다.
박해를 받으며 지키던 신앙이 지금 고속도로가 놓여 쉽게 가듯, 우리는 신앙을 너무 쉽게 다가가는데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만난 신앙을 순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느끼는 순례였다.
또 봉사자들끼리 그동안 한 가족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신앙 공동체가 되었다는 걸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거제도에서 오신 부회장님으로 우리는 한 가족임을 재 확인했다.
이런 순례를 계획해 주신 신부님과 운영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22. 8. 29일 밤 강명순 골롬바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