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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0.토)
1. 전국 신앙선조 찾아가는 관문- 사당역 1번출구
사당에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봉사자들은 벌써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결전에 나서는 전사와 같이 결의에 차 보였다.
버스3대가 주차장에 들어오고, 우리는 물과 떡과 간식을 실었다.
한 봉사자(이종화)는 주차장 입구에 ‘현양회 띠’ 두르고 나가 인도하고...
순례객들의 얼굴엔 긴 여행이라선지 뭔지 모를 긴장감이 살짝 흘렀다.
분과장님과 1팀장님이 오셔서 음료수와 말씀카드를 나눠 주시며 안전순례를 격려하셨다.
먼 길 가는 터라 몇 칸 안 되는 화장실도 매우 붐볐다. 남자 칸도 점령한 여인들..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지원팀 봉사자(강명화, 송낙원, 곽현숙)들의 인원 체크도 바빠진다.
아직 안온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확인하고.
순례객 몇은 일행대표자의 전화번호로만 되어있어 연락도 안 되는 통에,
봉사자들은 발만 동동. 그래도 시간되니 다들 도착한다.
드디어 출발 약속시간. 7시30분.
그런데 1호차 1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늘 순례를 다니는 어떤 자매님. 속칭 단골손님이었다.
수군거림. 들리는 말로, 집이 사당역 근처래나...
집 가까운 사람이 늦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누군지 알기에 조금 기다리자니. 15분이 경과 되었다. 난처한 시간이 흘렀다.
몇 몇 순례객들은 늦은 사람 버리고 떠나란다. ‘그래야 정신 차린다’고.
말 떨어지기 무섭게 멀리 헐레벌떡 뛰는 한 사람이 주차장 초입에 들어섰다.
물었더니 8시인 줄 알았다나? 그 기준으로는 오히려 15분 일찍 온 셈이다.
순례객들의 얼굴에는 묘한 미움의 빛이 돈다. 말은 못하고, 울그락.
그래서 한마디 했다. ‘기도합시다~’
그러자 ‘와~ ’ 한번 웃고 풀었다.
출발!
2. 오! 아름다운 우리 강, 우리 산
순례가기 며칠 전, 이십년 가까이 카나다에 살고 있는 동생이 이번에도 잠깐 귀국하였다.
카나다 동부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아기자기한 산이 없다한다.
가도가도 호수와 숲뿐이라, 산을 보려면 멀리 4~5일 가야하는데,
그렇게 해서 보는 산은 작지 않은 어마어마하게 큰 산 이라한다.
록키나 애팔래치아 같은 큰 산줄기.
내려가는 동안 안성벌과 속리산줄기와 낙동강을 보았다.
동생은 후에, 이번에 순례를 함께하면서
“성지도 좋고 그랬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 산과 강이 매우 아름다워서 힐링되었다” 한다.
가을이라 영동으로 가는 차들이 많아져 아침부터 막힌다는 예보에,
계획된 길을 변경하여 상주고속도로로 갔고, 화서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화서는 경상도 상주 땅으로 속리산의 깊은 산 내음이 물씬났다.
산골의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3. 도배지에서도 꼿꼿한 선각자, 김범우
삼랑진 IC 에서 빠져 나와 김범우묘 입구에 도착하니 언덕이 나타나고,
초입부터 ‘십자가의 길’이 보였다.
계획대로 ‘십자가의 길’을 각 호차 별로 시작하였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언덕 오를 때는 이만한 기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골고타 언덕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간 중간 처처마다 쉬면서 힘 조절도 가능하여 숨 벅참이 덜하기 때문이다.
1호차 순례객들은 각처 중간기도를 영광송만으로 진행하여 매우 빠르게 마치었는데,
다른 호차들은 ‘주의 기도’ 와 성모송 까지 다 드린 까닭에 시간차이가 좀 났다.
성지 올라가면 바로 식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맨 뒤 3호차는 식사하기도 바빴고 후속 일정 참여도 늦게 되어 입이 툴툴 나왔을 테다.
식사는 찬이 제법 많았다. 다들 흐믓해 하였다.
그래서 순례객의 지적으로부터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 같았다.
그만큼, 성지순례에는 먹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여긴다.
얼마간 다녀본 바로는, 순례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에 실패하면 두고두고 말을 듣는다는 사실.
김범우 묘는 산 중턱에 잘 보존 관리되어 있었다.
묘는 멀리 삼랑진 골짜기를 굽어보며 시선을 내리 깔고 있었다.
마치 “대소실료, 당신들이 어찌 천주를 알겠는가?” 하는 듯, 선각자의 허허한 모습이 보였다.
동굴성당이 있었는데, 밖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 서늘하고 좋은 장소였고,
동굴 특유의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안온한 분위기였다.
제대 뒤에는 개묘시 발굴된 세조각의 돌십자가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천창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제대 위를 환하게 비추어 신비감이 더하였다.
멀리 경상도 남쪽 땅 까지 도배 와서,
고생하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선각자의 뜻을 기억하며,
잠깐 침묵기도시간을 가졌다.
4. 수로왕릉보다 큰 ‘조씨형제 묘’
길을 남쪽으로 내리 달려 김해로 들어섰다.
김해는 김수로왕이 나라 세운 곳. 가야의 본거지이다.
이곳에 그의 거대한 무덤이 있고 그 주위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다.
김수로왕릉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낮은 언덕이요 너른 들이다.
이곳은 낙동강이 바다를 만나기 전 큰 삼각주를 만들고,
영양 많은 흙으로 다량의 소출을 내며 풍요를 뽐내는 고장이다.
이곳에 천주를 믿고 따르다 영광의 순교를 한 두 형제의 의로운 묘가 있으니
‘조씨 형제묘’가 그것이다.
차를 세우고 산자락 밑을 끼고 5분 정도 오르니,
형의 우람한 덩치와 동생의 가녀린 몸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칭의 큰 쌍봉분이 눈에 들어왔다.
천주교를 신봉하다 죽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본인 창녕 조씨 문중으로부터 배척되어
자신들의 문중묘역에 들어가지 못하였다한다.
그럼에 신앙의 형제로 같은 천주를 믿은 배씨 문중의 배려로 이곳에 묘를 쓰게 되었는데,
교인들이 지금까지 자기 조상처럼 잘 살펴서 예쁘게 단장되어 있었다.
하늘에서 보기에는 신앙의 형제로 이보다 더 큰 사랑과 우애가 있으랴!
하느님 뜻 따라 살다 목숨 바친 이들과 이를 품어 안은 교우들 우애의 크기는
수로왕릉 보다 결코 작지않고 낮지않았다.
5. 미로찾기 ‘수영장대’
장대는 장수가 군진을 지휘하던 전망 좋은 지휘소이다.
특히 이곳은 수군을 지휘하던 곳으로 경상좌수영이다.
경상도에선 통영과 더불어 왜구를 막아내던 수군 진영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병인박해기에 8명의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어 군문효수 되었다한다.
그런데 김해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은 부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어느길로 가나 도심을 통과해야하는 막막한 일이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답사 시 알아두었던 새 루트로 가려하였다.
그런데 새 길 진입을 위해 동쪽 강변길을 빠져 나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승용차는 통과되는데 버스는 통과하지 못하게 제한한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앗! 실수.
어쩔 수 없이 멀리 돌아 시내로 진입하였고,
피하고자 했던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도심을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했다.
그리하여 예정보다 30분 넘게 지체하면서 목적지 가까이에 도달하였다.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려 있었고, 곧 어둠이 내리려 하였다.
해 꺼지기 전에 순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퍼뜩 판단을 하였다.
시간을 줄여보고자, 대로변에 세워 도보 10여분 걸어야 하는 거리를,
버스로 직선 골목을 들어섰다.
그리하여 순례객은 수영장대순교지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골치아픈 문제가 곧 발생하였다.
이 골목은 버스가 진행할 수는 있으나, 되돌기에는 좀 어려운 길이었던 것이다.
폭이 대로보다 좁은데다가, 치장물들이 있었다.
승용차들이 길가에 죽 주차 되어있었던 것이다.
난감했다. 순간 엄청난 기도를 하였다.
'살펴주세요! 제발 살펴주세요!'
그러자, 다행히도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그 곳 주민들 몇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천사였다.
천사들의 안내로 가까스로 버스를 나가는 길 방향으로,
순례객들이 수영장대순교지를 순례하는 동안에, 깜쪽 같이 돌려놓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숨은 돌렸지만,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등짝에는 땀이 축축하게 흘렀다.
6. 맛있게 고단한 하루, 마리아선교센터의 밤
저녁7시. 숙소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었다.
절기가 벌써 추분경이라 해가 많이 짧아졌다.
마리아센터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푸른군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당과 피정집이 검붉은 벽돌로 오래된 티를 내고 있었다.
숙소 배정은 뽑기로 하였다.
이번 성지순례에 부부나 형제 자매나 또는 같은 성당 동호회에서 왔을 수 있겠으나,
구분하여 분류하는 것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숙소의 여유사정도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3달 전부터 장소를 물색하였는데, 피정철이라 예약들이 다 끝나서 겨우 찾아낸 곳이었다.
게다가, 수용인원도 버스 2대분. 담당수녀님의 경험으로 3대분으로 꾸며주신다 했다.
침대2인실도 바닥에 요를 깔아 3인실로 만들어야 하는 정도로 빠듯 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었다.
그래서 3인실, 4인실, 5인실, 20인실(사실은 20인실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렇게 설명하고, 남·여로만 나누어 뽑기를 하였다.
배려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으리라. 어쩌랴 하룻밤인데...
식사를 마치고, 경당에서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 하였다.
SING ALONG!
에지도봉사자의 능숙한 기타가락과 율동에 얼마나 즐거워 하던지,
깔깔거리며 폭소를 지었다. 동심으로 돌아간 여흥이었다.
이로써 순례객들의 여러 가지 불편한 마음들은 확 일소된 듯 하였다.
성지순례임에도 이런 것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녀님의 파티마 성모님 소개도 알찼다.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지 생각하게 하였다.
내일 일정을 알려주고 나서 9시부터 취침.
그때까지, 피곤은 밀려오는데도, 봉사자들의 눈빛은 초롱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맛있게 고단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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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2.일)
7. 바닷가 성당에서의 새벽미사
5시20분. 기상음악이 흘러나왔다.
잠 자리를 챙기고, 동트기 전 컴컴한 계단을 올라 '파티마성모님 성당'으로 갔다.
6시 미사를 드렸다.
원로사제집전 미사여서인지 처음에는 덤덤하였으나, 강론말씀에서 정신이 번쩍 났다.
“우리는 오후5시를 사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씀.
포도원 주인이 오전에 오후에 그리고 늦은5시에 일할사람을 구하고는, 저녁6시에 일 마칠 때
모두에게 똑같은 품삯을 주셨다는 성경말씀의 강론이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순례하는 우리들에게 딱 맞는 강론이라 생각했다.
기타 반주에 순교자찬가를 부르며 성전을 나왔다.
미사를 드리고 나니 어느새 동이 트고,
성당마당은 부두와 갈매기와 붉은 아침햇살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여기가 어디런가..천국인감?
8. 감동의 깜짝 간식
버스에 오르면서 준비한 간식 봉다리를 나누어 주었다.
탄성이 울려퍼졌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와~ 첫 날은 떡주더니 이튿날 간식까지!'
여성봉사자(리오바,데레사,벨라뎃다)들이 바리바리 장보고, 리오바봉사자가 밤새 만든 봉지.
간식은, 벨라뎃다봉사자가 주문한 완두콩떡도 반응이 아주 좋았는데,
웬지 서운했을 마음들을 누그러트리는데 기여했다.
숙소가 오래 되었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2인실을 3인이 자게함에
봉사자로서 매우 미안했었기에 더더욱 준비하였었다.
간식마련은 숙소비용을 예산에서 대폭 절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피정집에선 4~5만원하는 숙식비용을 3만원으로 협의...)
9. 오륜대순교자 박물관. 알뜰하게 시간쓰기
8시 정각에 마리아피정센터를 떠난 이튿날 첫 일정은 오륜대순교자 박물관이었다.
예정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되었다.
9시반 박물관 문 열기 전까지 1시간을 다른 일정으로 채워야 했다.
그런데 마침 전날 못한 일정이 있어서, 그것으로 메꿈이 되었다.
이시간을 이용하여, 부산지역에 천주신앙이 들어온 시기와 통로를 도상으로 살펴보고,
언양지역의 신앙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할 수 있었다.
혼인관계에서 누이바꿈이 생길 정도로 겹사돈을 맺으면서까지
천주교인들은 신앙으로 굳게 뭉쳐서 공동체를 유지하였다는 것도 알았다.
약30분이 지났다. 그리고 남은 30분.
기념성당을 나오자마자 누가 하겠단 말도 나눌 것 없이,
이심전심. 전날 저녁 수영장대를 설명한 시몬봉사자가 앞장서서
이곳과 내용이 연결되는 이정식 가족 순교자의 묘역으로 인도하여,
마저 설명하고 기도를 드렸다. 역시 노련한 고참봉사자였다.
순교 박물관은 원래는 10시에 문을 연다. 그런데 특별히 섭외를 하여 30분 일찍 열어주기로
담당 순교복자수도회 수녀님과 협의를 마쳤었다.
9시30분. 순교박물관 문이 열리고 관람을 시작하였다.
특히, 강화도지역 순교자 묘역에서 출토된 성모상과
박해자 이씨 왕가의 왕족이 천주교에 귀의 하며 기증한
왕실 생활 용품들이 이채로왔다.
10. 영남지역 신앙공동체의 얼굴 ‘살티공소’와 김영제 묘
언양 지역을 대표하는 신앙공동체 살티공소.
지금은 산골이라하더라도 빛이 훤하디 훤한 창창한 곳이지만,
예전에는 숲으로 우거져 호랑이 나오던 무서운 곳이었다 한다.
이곳을 포함하여 이웃한 여러 마을들은
각지에서 몰려온 천주교 신자들로 붐빈 교우촌이었으며,
신심이 대단하여 많은 주교님과 신부님들이 살티에서 났다한다. 자랑할 만하다.
리오바 봉사자의 살티공소, 김영제와 그 여동생의 수난에 대한 찬찬한 설명과 더불어
살티공소 회장님의 옛이야기를 짧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봉사자와 공소회장님의 설명을 듣고나니,
공소회장님의 얼굴에서 여태까지 이곳에서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11. 10% 아쉬운 언양 불고기
언양하면 언양불고기와 미나리가 유명하다 한다.
진품 언양불고기는 예산상 먹지 못하지만, 불고기정식으로 흉내를 내기로 계획하였다.
원래 불고기는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 아닌감?
그런데 식당에 차려진 음식은 평범한 불고기였다.
순례하면서 음식 타박하려는 것은 아니나,
담는 그릇이 뚝배기가 아닌 냉면그릇이었다. 웬지 성의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좀 더 정성스럽게 나왔더라면 순례객들에게 감동을 더 하였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순례 전체를 아우르며 사전 연락하고 준비한,
더욱이 식당을 고르고 식단을 맞춘, 지원팀장 벨라뎃다봉사자가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10%쯤 조금 아쉬운 식사였다.
12. 천주교 민속박물관 같은 언양성당
언양성당에는 오래된 성당과 기념관이 있다.
성당에서 언양 일원의 설명을 듣고, 옆에 있는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기념관에는 이곳 출신 주교님과 신부님들의 사진이 벽을 돌아가며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여러 가지 미사에 쓰이는 성구들과 신앙서적들이 빼곡이 진열되어 있었다.
영세서류나 혼배증명서 등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게다가, 2층에는 70년대 초반까지 있었음직한 농가의 여러 기기와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민속박물관이었다.
몇 몇 순례객은 언양성당 뒷 산에 성모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모든 것을 우선하여 그리로 달려가려 하였다.
봉사자의 제지에도 막무가내로 올라가려함에, 할 수 없이 시간을 제한하고 양해하였다.
13. 꽉막힌 울산 .그 속에서 순교자 찾기
울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차량으로 매우 붐볐다.
언양에서 40분을 예상하였는데 그것의 배를 넘겨 도착하였다.
울산병영순교지에서는 신부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올 봄에 성지성당을 준공하고 많은 순례객들이 다녀갔다 한다.
성당은 십자가 모양의 천창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와 실내등을 켜지 않아도 환했다.
신부님은 열정적으로 이곳에서 순교한 분들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고,
퀴즈를 내어 선물을 주시면서까지
그 순교자들에 대한 사랑을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끝으로, 순례기간 내내 말없이 꼼꼼히 챙긴 데레사봉사자가
1박2일의 순례여정을 정리하는 뜻으로,
미리 준비한 '한 줄 순례기’ 용지를 각 차에 나눠주며 마무리 하였다.
14.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는 길.
버스에서 조용히 차창 밖을 보았다.
시간이 저녁으로 가면서 가을 하늘은 높은 노을로 가득찼다.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왜 순례를 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순례에 앞서고 준비하고 챙기고 머리 맞대는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이리도 가슴 저리게 순례에 미치도록 하는 것인가?
올라오는 내내 머리에 감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