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한문본

2014. 10. 5. 오후 10:30:47

글자
작성일: 2011/07/17
작성자: 윤민구 신부
 
  윤유일(바오로) 순교자의 <주님의 기도(天主經)>

                                                  윤민구 신부


<첨부한 사진을 참조하세요. 이 자리에 그 사진이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1999년 초 필자는 윤유일 등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추진을 위한 자료들을 찾기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찾은 나라가 영국이었는데 런던의 영국 국립 도서관(British Library)에서 아주 귀중한 문서를 찾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님의 기도>를 찾은 것입니다. 이 기도문은 윤유일 순교자가 1790년 북경에 가셨을 때 북경에 계셨던 로(Raux) 신부님과 필담을 나누시는 과정에서 로 신부님께 가르쳐 드린 것입니다. 한문으로 된 기도문을 우리 식으로 읽어 한글로 표기한 것인데 초기 교회 신자들은 기도할  때 이런 식으로 하셨습니다. 
 
필자는 이 기도문을 “윤유일의 <주님의 기도>”로 부르기로 하고 이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이 기도문을 ‘손골’지에 다시 게재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기도문을 큰 소리로 외우며 초기 순교자들과 호흡을 같이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윤유일 순교자가 한글로 소개한 <주님의 기도>를 한자(漢字)와 함께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천아등부쟈(在天我等父者)
아등원이명현셩(我等願爾名見聖)
이국님격(爾國臨格)
이지승어디(爾旨承行於地)
여어쳔언아등망이(如於天焉我等望爾)
금일여아(今日與我)
아일용냥(我日用糧)
이면아채여아역면(而免我債如我亦免)
부아채자(負我債者)
우불아허(又不我許)
함어유감(陷於誘感)
내구아어흉악(乃救我於凶惡)
아믕(亞孟)



앞 쪽의 사진에서 보듯이 이 기도문 밑에는 프랑스어로 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북경 라자로회 선교사이자 북경의 궁정 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Raux) 신부가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학장인 부레(Bouret) 신부에게 전달해 달라며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 전교회 대표부 대표(Procureur)인 레똥달(Létondal)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신부님께서(부레신부를 말한다) 제게(로신부를 말한다) 조선인들은 중국 한자와 다른 글자를 쓰느냐고 문의하셨습니다. 저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조선인들 가운데 지식층들은 중국한자를 공부해서 한자를 읽을 줄도 알고 쓸 줄도 압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우리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한자를 발음한답니다. 그 발음은 마치 지난 1798년 독일인 하나가 제 앞에서 발음했던 것과도 비슷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은 음절법도 갖고 있으며 타르타르인들과는 전혀 다른 글자도 갖고 있습니다. 바오로(윤유일을 말한다)가 이곳에 왔을 때 제게 자기네 글자를 써 준 적이 있습니다. (바오로는 그 후에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써 준 것을 라자로회 총장님께 보내드렸습니다. 또한 바오로는 제게 <주님의 기도>를 써서  읽어 주었답니다. 저는 그 기도문을 나무판에 새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바오로가 읽었던 발음을 그대로 우리 식의 글자로 써 놓았습니다. 이 조선어로 된 <주님의 기도>를 신부님께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신부님께 조선어로 된 책을 보내드리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입니다. 하지만 후에 신부님께 보내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 편지는 1843년 3월 28일에 존경하는 윌리스 모슬리(Rev. W. Willies Moseley) 님께서 기증하셨다.- (영국 국립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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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어떤 기도서를 갖고 어떻게 기도하셨을까? 척사론자(교회를 반대했던 사람) 홍낙안(洪樂安)의 진술에 따르면 초기 교회 신자들이 조만과(早晩課)를 외워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시 교회를 반대하던 이기경(李基慶)은 『벽위편』에서 1784년 이승훈 선생이 영세 후 귀국할 때 예수회 선교사 디아즈(E. Diaz)의 『수진일과(袖診日課)』를 갖고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주님의 기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윤유일의 <주님의 기도>는 초기 신자들이 기도서에 나오는 한문으로 쓰인 기도들을 이처럼 언문체 음(音)에 따라 암송하며 신심을 함양해 나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초기 교회에는 이 기도서 외에도 다른 기도서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신자들은 교리서나 신심서 등은 한글로 번역하였으면서도 기도서는 번역하지 않고 한문으로 쓰인 기도문을 언문체 음에 따라 암송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1837년말 우리나라에 입국한 제2대 조선 대리감목구장 앵베르(Imbert) 주교는 한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문을 번역하도록 하였습니다. 1838년 12월 1일 앵베르 주교가 교황청 포교성에 보낸 편지를 보면 한문본 『수진일과』와 모이에(J.M. Moyë) 신부의 『천주경과(天主經課)』 등에서 기도문을 번역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 번역된 기도문들은 1862년부터 『천주성교공과』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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