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2 '신라 마리아 성모상'이 불상인 이유

2012. 7. 26. 오후 9:38:29

글자


2 '신라 마리아 성모상'이 불상인 이유

 

이제 본격적으로 '신라 마리아 성모상'의 허구를 분석할 차례이다.

 

이번 조선일보 기사에서 특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불교에서는 성모자상이 없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측이 주장한 내용이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 관장은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의 불상은 없다'며 '당시 중국의 경교 선교사들은 목탁을 두드리며 예배를 보는 등 불교와 융합되는 현상을 보였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모상을 불상처럼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더욱 경악했다. 기독교가 불교와의 문화적 교류를 주장하는 유물을 다루는 숭실대의 기독교 박물관에서 어떻게 이렇게 불교 문화를 모르고 있을까 하는 점에서다.

 

과연 '불교에는 성모자상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이른바 '불국사의 돌십자가, 성모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어떤 리서치도 그 어떤 불교 유물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는 말이다.


 



위의 사진은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이 주장하고 있는 문제의 그 '신라 마리아상'이라고 주장하는 그 물건이다. 분명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이다. 한 눈에 보기에 이것이 기독교의 성모상은 아니다. 그것을 지금 필자는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먼저 불교에도 관음보살상에서 '모자(母子)불상'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숭실대 최관장은 여기에 대해서 분명한 오류를 안고 있는 발언을 한 것에서 위의 '성모자상'이 결코 기독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증한 것이 될 것이다.

 

이글에서 여러 사진 증거들을 필자가 첨부해두겠지만, 불상의 역사는 관음보살상의 역사와 함께 '모자불상'이 수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이른바 '성모상' 또는 '모자상'이 마치 기독교에만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박물관측의 주장을 볼 때 기독교인들의 문화 역사 인식의 폭에 대해서 참으로 배타적 무지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기독교권 외적인 곳에서 종교적으로 찾을 수 있는 '모자상'은 고대 인도 및 메소포타미아 유물, 동아시아의 도교 유물들은 물론, 불교의 관음보살상을 포함한 수많은 '모자불상'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 불교 및 도교 그리고 토속 신도(神道)에 남아 있는 모자상 또한 모자불상(母子佛像)과 더불어 많이 남아 있다.

 

성기문씨도 일본의 모자상들에 대하여 겨우 '일본 천주교의 성모자상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편협한 인식의 폭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마리아관음상. (사진: 성기문)

일본에는 이와같은 천주교 성모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남아있는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는 일본에서 발견되는데, 1638년 이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시대에 천주교인들(카쿠레 크리시탄)이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서 관음상과 같이 생긴 성모자상을 만들고 관음상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고 한다. 이는 비밀리에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였던 성모관음상(Maria Kann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기문의 앞 글에서)

 

성기문의 '일본에는 천주교 성모상만 있다'는 말은 일본에는 기독교적인 성모상 또는 기독교 박해로 성모상을 속이기 위하여 '성모관음상(Maria Kannon)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기독교인들마저 일본 종교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일본에도 '모자불상'은 무수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에서 이른바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오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이 왜곡 선전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출토된 불보살상(佛菩薩像) 모양의 마리아상이다.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교와 불교문화의 교류와 경교의 한반도 유입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화형보관(花形寶冠)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이 손을 입에 물고 있는 어린 아이를 무릎 위로 안고 있는 형상이다. 전체적인 신상의 양식은 당시의 불보살상을 따르고 있으나,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기존의 불보살상 양식과 차이가 있다."

http://blog.cbkmc.com/blog/index.php?article_id=333&blog_code=sunghwa

 

위의 주장을 보면 '어머니와 아들'이 나오는 성모상은 무조건 기독교의 것으로 보려는 그릇된 판단에서 기인하는 '성모상 = 기독교의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의 오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상이나 보살상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전혀 모르는 결과이며, 불상만이 아니라 도교적인 성모상 및 태양숭배시대의 대지지모(大地之母) 등의 무속적인 성모상에 대한 인식 또한 완전히 결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은 관음보살상에 대한 인식 또한 다양한 역사적 배경의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결과이다. 관음보살상 중에는 송자관음(送子觀音), 자모관음(慈母観音)등의 불교적 배경이 있고 도가적인 성모자상으로서는 대지지모(大地之母) 선도성모(仙桃聖母) 등이 있다. 인도 힌두교의 하리티(hariti) 계통의 성모자상 또한 그 파급이 세계적으로 넓다.

 

기독교인들이 '성모상 = 기독교의 것'으로만 그릇 인식한데는, 무엇보다도 서양 기독교 측면에서 보더라도 마리(Mary) 여신이나 소피아(Sophia) 여신 등의 성모적 위치를 비롯한 유럽이나 중동에서 기독교 외의 또는 기독교 이전의 전통 토속 종교들이 가진 'Divine Mother(또는 Holy Mother)'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결과라고 하겠다. 마치 기독교 성현들의 광배라고 하면 그것이 고대 인도 불교의 영향을 전혀 모른 채 광배가 그려진 인물만 보면 '기독교 성현'으로 주장하는 꼴과 같은 것이다.

 

필자는 문화비평으로 <광배(光背)의 유래는 일광신(日光神)의 무지개> 라는 글에서 동서양 광배를 다룬 바가 있다. http://cafe.daum.net/zoomsi/XBd3/9

 

비잔틴 기독교에서 시작한 기독교 성현들의 광배(aureola 또는 aureole)는 역사적으로 동양의 광배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성모상의 전신광배인 이른바 만돌라(Mandorla) 또한 그 이름에서 보듯이 고대 인도의 만다라(Mandala) 문양의 영향이라는 것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교의 영향이 당나라까지 들어왔다고 해서, 성모자자상이 그때 처음 들어온 듯한 착각은 버려야 한다. 이미 동양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있는 선불 신불의 성모자상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경교가 마치 오늘날 천주교에서도 별로 강조하지 않는 '캐토릭의 동방 이단'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인데 오늘날 타문화에 배타성을 버리지 못하거나 문화수용의 제한에서 이단논란을 가장 강하게 고집하고 있는 기독교에서 마치 경교가 기독교의 정통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도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부처와 마니를 일치시켜 신앙화했던 마니교가 그랬듯이 네스토리우스 경교 또한 지중해로 간 기독교와는 전혀 다르게 부처와 예수를 일치시킨 어떤 면에서는 불교의 합성종교적 성격까지 있는 그런 종교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차별화하여 '경교(景敎)'라고 표현한 것이다.

 

경교(景敎)는 그 심벌에서도 십자가보다 '卍' 자를 중심 로고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중국 당나라 경교가 종교간 융화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단에서 진실 여부를 무시한 채 '불국사에서 성모마리아상이나 돌 십자가를 발견했다'는 식의 주장을 다시 재개하고 있는 것은 종교간의 대화나 우리 문화의 올바른 이해에서 커다란 문제를 보여주고 있으며, 진정한 기독교 이해의 차원에서도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행태일 뿐이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개신교의 타종교에 배타적인 자세와 너무나 모순적인 행태라 할 수 있다. 경교를 예를 들면서 진정한 종교 포용 정신이라면 십자가와 성모상이 무엇이 중요할 것인가. 이웃사랑 문화간의 대화를 선교 이상 적극 추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일인 것이다.

 

진정한 대화는 하기 싫어하고 일찍 '기독교'가 동양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건지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행태일 뿐인 것이다. 불교 유물들을 거짓으로 기독교의 것으로 주장하려 '돌 십자가'나 '성모 마리아상'을 기독교의 팽창주의 상징으로 이용해보려는 약은 술책의 자세가 노출되고 있을 뿐이다.

 

역사적 유물의 감정으로 보아도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신라 성모 마리아상'은 경교 유입의 결과로 나타나는 성모상일 수가 없다. 당나라에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신라가 모두 수입했다고 보는 것도 역사적 사대주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인도와 당나라의 법난으로 퇴색해 가는 것을 보고 신라 불교는 서역 천축국 중심 세계관에서 신라 즉 동축국 중심의 불국사상에 의하여 불국사를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적 차원에서도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측이 다시 전시 주장하고 있는 '신라시대 기독교 유물들'에 대한 선전은 전혀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자세히 그 유물들을 감정해보면, 전통 불교 모자불상일 따름이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따라서 숭실대 전시의 성모상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기독교 성모상이 아니라 불교의 관음보살상의 하나로 송자관음상 또는 자보관음상이라고 필자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숭실대 '신라시대 기독교 유물들'에 대한 첫 분석일 것이다. 우선 문제의 성모상을 자세히 보라!

 

 

 

 

 

 

1) 연화대가 있다

 

먼저 위의 모자불상(母子佛像)의 사진을 자세히 보라. 앞서 올린 숭실대측이 조명을 어둡게 하여 퍼트리는 사진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성모상 기단 아래에 연화대(蓮花臺)가 보일 것이다. 숭실대 전시 '성모상'의 기단부의 연화대가 기독교의 것이겠는가?

 

연화까지 기독교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모르겠으나, 기독교 성모상에는 연화대가 없다. 있다면 그 증거 유물들을 제시할 수 있을까? 더더욱 연화대가 있는 위의 모자불상을 이것을 '불교화된 성모상'이라고 고집한다면 다시 '우물'로 갔다가 '암석'으로 갔다가 하는 헤메는 말이 될 뿐이다.

 

 

2) '성모상'의 전신광배인 오레올라(aureola)의 문양이 불교적이다.

 

기독교 성모상에는 전신광배가 톱니바퀴 모양이 기본이고 작은 여러 개의 불상 모양들을 두른 전신광배를 하지 않는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전신광배 오레올라(aureola) 주변에 '염견(焰肩) 불상'의 작은 불상 얼굴들을 새겨넣고 있다. 위 사진의 '성모상'의 꼭대기 부분 또한 또 하나의 작은 불상이다. 이러한 중앙 불상 주변에 여러 작은 불상을 새겨 넣는 불상을 댜니 불상(Dhyani Buddha)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모자불상으로서 관음보살상 중에 송자관음(送子觀音) 또는 자모관음(慈母観音)의 모자불상이라는 것을 이 글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관음보살 계열에서 바다(또는 물)와 관련하여 불보다 물인 파도를 전신 광배에 두른 '수견(水肩)불상들'이 있다. 그러한 둥근 파도 문양이 전신광배로 둘러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양은 때로 '수견(水肩)불상'이 불상의 얼굴이 아닌 파도 이미지인 둥근 무늬로 대신하기도 한다. 문제의 숭실대 '신라 성모상'과 비교해 보라.

 

*수견(水肩)불상 계통의 관음보살의 기본적인 모습

Cosmic Kwan Yin Mini Statue

 

중앙 불상 주변에 작고 둥근 문양을 넣는 것은 기독교 성모상이 아니라 불상 전통에서 중요한 계통의 하나이다. 지장보살 계통의 오지여래(五智如来) 또는 대일여래(大日如來)에서 볼 수 있는 다중 소불의 전신 광배 모양을 한 티벳의 탄트라 불상의 댜니 불상 바이로차나(Dhyani buddha Vairochana)에서 그러한 모양을 볼 수 있다.

 

 

 

 

인도 티벳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에 영향을 주어 이러한 댜니 불상의 역사는 '모자불상'인 송자관음 및 자모관음에서도 표현되어 있다.

 

 

3) 불교에서 모자불상이 있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측은 '유물들이 가짜라면 박물관을 문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왜 닫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이 불교의 모자불상이라면 그것은 가짜 기독교 성모상을 선전한 것이 되기에 박물관은 문을 닫아야 한다. 아래의 송자관음(送子觀音)과 자모관음(慈母観音) 불상들을 보라.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 관장의 말과는 전혀 달리 '불교에도 아기를 안은 불상'이 있다.

 

*연화대 위에 아기를 않은 송자관음의 전형적인 예.

불교에도 '성모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点击查看原图

*送子觀音像 淸朝 木雕

 

 

moja.jpg

*청대 中期, 弘寶齎博物館

http://expo.sc001.com.cn/collector/hbz/detail.asp?vid=16014

 

 

*일본의 지보칸논(慈母観音)

 

 

*티벳의 댜니 보살 바이로차나 (Dhyani buddha Vairochana)

http://www.mydzi.blogspot.com/2008/06/dhyani-buddha-vairochana.html

 

이쯤 해서도 이미 결론은 난 것이다.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은 이미 70년대 사회적인 논란으로 문을 수십년간 닫은 바가 있다. 2004년 다시 재 개장하여 허위선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불국사 등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폄훼의 문제를 유발시키는 문제라는 면에서 그냥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모자불상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우리는 더 이상의 쓸데없는 논란에 휩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6. 전통적인 모자불상: 송자관음(送子觀音)과 자모관음(慈母観音)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신불(神佛) 또는 선불(仙佛)의 전통이 약화되고 오히려 선불(禪佛)의 영향이 강하여 어떤 면에서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관음보살 유물들의 다양성이 적어진 면이 있다. 통일신라시대까지 강하게 존재했던 신선 도가사상이 고려 오백년 불교시대와 조선시대 유교 오백년의 영향으로 무속적인 전통으로 퇴화된 감이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 문화재 반출사건은 천문학적인 일이었으며, 전란 속에서도 사라진 유물들이 부지기수였다.

 

반면에 짧은 왕조시대의 교체 속에서 중국의 불교는 오히려 관음불상에서 다양한 도가적 토속적 선불(仙佛)의 전통이 남아 질 수 있었다. 일본 또한 고대 한반도의 무속적 신선(神仙) 사상이 신도로 발전하였던 바, 중국과 일본의 관음상의 전통에는 상대적으로 송자관음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송자관음(送子观音)을 일본에서는 지보칸논, 즉 자모관음(慈母観音)이라고 한다.

 

왕조의 역사와 식민지 및 전란을 통하여 없어졌을 또는 반출되었을 우리나라의 모자불상의 이해를 위하여 우리는 지금 중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송자관음과 자모관음으로부터 그 역사와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

 

 

1) 중국의 송자관음(送子观音)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릇 불교 성모상에 대한 배경 이해가 약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불교의 송자관음(送子观音)에 대한 유래를 여기에 필자의 번역으로 첨부해 둔다.

 

 

 

《法华经》中说:“若有女人设欲求男,礼拜供养观世音菩萨,便生福德智慧之男;设欲求女,便生端正有相之女。”这是民间“送子观音”的由来。

 

“送子观音”俗称“送子娘娘”,是抱着一个男孩的妇女形象。“送子观音”很受中国妇女喜爱,信徒们认为,妇女只要摸摸这尊塑像,或是口中诵念和心中默念观音,即可得子。

 

中国佛教之所以创造出一个“送子观音”来,无非是基于下述原因:
  一、 受儒家“不孝有三,无后为大”思想的影响,认为婚后没有孩子,断绝香火,是对祖宗最大的不孝。所以创造出“送子观音”珲,使之成为没有孩子的夫妇叩拜、供养的主要神灵。

 

  二、 受封建伦理“多子多福”思想的影响,认为子孙满堂、香火旺盛,是最大的“福气”。所以创造出“送子观音”来,使之成为新婚夫妇祈求生儿育女的主要神灵。

 

  三、 受中国传统“母以子贵”思想的影响,认为“养儿可以防老”,没有儿女老了就没有依靠;儿子升官发财,父母也能富贵、享福。所以创造出“送子观音”来,使之成为天下母亲祈请保佑早生贵子的主要神灵。

 

送子观音是观音菩萨化身之一,通常作手捧婴儿的中年妇女相;也有作观音双手合十状,前立一童男。此外,还有“子安观音”,亦为中年妇女的形象。这是中国佛教为了保佑孕妇安全生产而创造的神灵形象。http://www.rjzd.cn/MarketTrade/TradeInfoDetail.aspx?InfoId=52

 

 

《法华经》에서 "만일 여인이 남자에 욕심을 내지 않고 관세음보살에 예배 공양하면, 복과 덕과 지혜의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여인이 다른 여자를 탐하는 일을 버리면 단정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송자관음'의 유래이다.

 

송자관음(送子观音)의 속칭은 송자낭낭(送子娘娘)이라고도 하는데 남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형상을 말한다. 송자관음은 중국의 여인들에게 많은 기쁨과 사랑을 주고 있고 불교신도들을 위하여 대단히 존귀하고 절실한 불상이다. 만일 마음을 모아 송자관음에게 묵념하여 기원하면 득남하는 수가 많다.

 

중국불교에서 말하는 송자관음은 유교에서 말하는 불효를 세번하면 나중에 크게 될 수 없다는 사상의 영향을 받아 혼인 후에 자식이 없게 되어 결국 제사가 끊어져 조상들에 최대의 불효를 범하게 된다. 송자관음은 그래서 아기가 없는 부녀들이 공양하는 신령한 불상이다.

  

나아가 봉건논리인 '多子多福'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손이 집안에 번성하여 제사가 번성하는 것이 최대의 복과 기운을 가져온다는데서 송자관음 신앙이 비롯되었다. 송자관음 신앙은 그래서 신혼부부가 신령한 송자관음상에 빌어 소생을 얻는 신령한 불상이다.

 

중국 전통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귀하게 한다(母以子贵)"는 믿음의 영향을 받아 "아이를 기르면 늙지 않는다(养儿可以防老)고 하고 자녀가 없으면 늙어 의지할데가 없게된다는 믿음이 있다. 아이을 낳으면 사회에서 벼슬을 하거나 부자가 되고, 부모는 부귀하게 되며, 복을 누리게 된다. 관음송자는 하늘 아래 어머니가 자녀를 귀하게 보호하는 것을 기원하는 신령한 존재이다.

 

송자관음은 관음보살의 화신의 하나로서 보통 어린 아기를 한 손에 안고 있는 중년의 여인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의 관음상이 아이를 앞에 세운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외에 아기를 안고 있는 불상으로 '자안관음(子安观音)'도 중년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 불교의 임신한 여인을 안전하게 출산하도록 보호하는 신령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번역/ 필자)

 

 

 

 

 

중국의 송자관음에 해당하는 일본의 자모관음은 다양한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태양숭배 영향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기에 우리나라 고대의 태양의 여신 숭배에서도 분명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존재했을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토속 모자상들 가운데는 신라의 '선도성모자상(仙桃聖母像)' 등의 신라의 유물들이 있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일본의 자모관음(慈母観音)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일본의 지보칸논(慈母観音)과 카리데이모(訶梨帝母)

 

지보칸논, 즉 일본의 자모관음(慈母観音) 불상은 글자 그대로 "자애로우신 어머니"의 의미를 지닌다.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의 그 '자비'의 표현은 다분히 태양숭배시대의 태양의 성모에 대한 믿음의 잔흔이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관음은 자비의 불교 여신이다. 자모관음의 그 오리지날 유래는 인도의 힌두교 하리티(hariti) 불상과 전통 태양숭배시대의 신도(神道)의 성모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보칸논이 관음보살상 계열의 모자불상이라면 카리데이모, 키시모진(또는 키시보진)은 신도모자상 계열의 불상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13세기 카마쿠라 시대의 성모자상인 카리데이모(訶梨帝母) 키시보진(鬼子母神)은 신도(神道) 유래의 성모자 불상이다.

 

 

*일본의 카리데이모(訶梨帝母) 성모자 불상. 13세기 카마쿠라. 시가현 온조우지(園城寺)

Kariteimo (Kishibojin, Kishimojin)
Kamakura Era (Early 13th Century), Painted Wood, Height 43.9 cm
Treasure of Onjouji Temple (園城寺, also called Miidera 三井寺)
in Shiga Prefecture (Designated an Important Cultural Property)

http://www.onmarkproductions.com/html/kariteimo.html


 

일본의 불상에도 이와같이 분명하게 성모자불상이 있다. 이것을 일본 천주교 성모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신도 종교의 배경에서 유래하는 성모자상을 보면 고대 한반도의 선도성모상 등의 모습에서 이와같은 성모자상이 존재했을 수가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 자모관음(慈母観音)의 전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힌두교와 신도의 자모관음이 합류하여 상호 거의 유사성을 지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아기를 잘 낳게 한다는 신도의 여신인 코야스사마는 불교의 코야스관음(子安観音), 코야스 지장((子安地藏), 코야스키시보진(子安鬼子母神), 자모관음(慈母観音),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In Japan, there are many deities who are worshipped especially for their ability to bless couples with children, and to protect and save children from disaster. These guardians often appear as heroes in modern stories and cartoons. Most originated in Hindu myth and over time were incorporated into Buddhism, while others sprang from Japan's indigenous Shinto tradition.

 

Over the centuries, however, the two traditions have merged, and many of the deities now share similar attributes. For example, the Shinto goddess Koyasu-sama, who grants easy childbirth, has Buddhist counterparts named Koyasu Kannon, Koyasu Jizo, Koyasu Kishibojin, and Jibo Kannon.
http://www.onmarkproductions.com/html/child-protectors.html

 

 

인도의 관음상은 남성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중국 한국 일본의 관음상은 여성적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것은 해돋는 동방의 나라들에서 태양숭배시대의 태양의 여신에 대한 고대 성모 신앙의 영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시조신으로 믿는 일본의 여신 신앙은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전통에서 일본의 지보칸논, 카리테이모 모자불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단지 에도시대 말기에 일본의 천주교 성모상들의 일부는 일본 전통 자모관음을 모방한 면은 있지만, 일본의 성모상은 모두 천주교 성모상이라는 관점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송자관음, 자모관음, 자안관음(子安観音), 자안지장(子安地藏), 키시보진(鬼子母神),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등의 성모상을 기독교 성모상이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독교박물관의 최관장은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의 불상은 없다"고 이번 조선일보 기사에서 말했다. 과연 불교에는 성모자상이 없는 것일까. 필자가 오랜 추적으로 찾아낸 자료들을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은 모두 '기독교 성모상'이라고 전시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漆彩绘木雕 送子观音菩萨像

新华网河南频道

http://www.ha.xinhuanet.com/fuwu/kaogu/2005-03/24/content_3912350.htm

 

 

 

 

 

*清 楠木雕送子观音像

http://blog.artron.net/indexold.php?50840/viewspace-197947

 

 

 

*명나라시대 송자관음상
德化窑 送子观音像,高62CM,印款:张寿山(明代德化窑瓷塑大师),劳请师友断代并估价。

http://image.baidu.com/i?ct=503316480&z=0&tn=baiduimagedetail&word=%CB%CD%D7%D3%B9%DB%D2%F4&in=27917&cl=2&cm=1&sc=0&lm=-1&pn=1845&rn=1&di=2016995656&ln=1987

 

*송자관음상

http://www.chcoin.com/bbs/read.php?tid-1502954.html

 

*명대 목조관음송자. 明代木雕观音送子 , 来自藏友

http://image.baidu.com/i?ct=503316480&z=0&tn=baiduimagedetail&word=%B9%DB%D2%F4%CB%CD%D7%D3&in=11718&cl=2&cm=1&sc=0&lm=-1&pn=70&rn=1&di=2182210536&ln=450

 

 

*송자관음(送子观音)

http://www.mycollect.net/trade/show-239898-2.html

 

 

 

 

 

*十五世 铜鎏金送子观音像

http://pm.cangdian.com/Data/2007/cj20071101/pz003679/html/pz003679-0093.html

 

 

 

 

*모자불상. 중국 쓰촨성 玉蟾山

http://www.hudong.com/wiki/%E7%8E%89%E8%9F%BE%E5%B1%B1



*모자불상, 타이완

http://trip.writers.idv.tw/2007_07_01_archive.html

 

後來世界之母濕娃女神投胎為陀剎的女兒莎蒂(雪山神女),最後成為濕婆的妻子。
看著上方的濕婆神與妻子雪山神女,在凱拉薩神山上,底下的多頭魔王『羅婆有那』用千隻手臂搖動這神山,山裡的獅子都驚惶失措的站起來逃跑,然後上一層有些鳥人、象人、馬人等半人半神的動物希望濕婆能夠打走這個魔王,但濕婆一付心不在焉的樣子,根本不把魔王放在眼裡

 

불교와 도교는 서로 오늘날 한국 산사에서 칠성각과 대웅전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관음보살상에 융합되어 있었다. 신선도가적인 선도성모(仙桃聖母), 대지지모(大地之母), 후래세계지모(後來世界之母), 처자설산신녀(妻子雪山神女),송자관음(送子观音) 등은 불교가 과거 태양 성모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結.불교에도 모자불상이 있다

 

일본의 카리테이모(訶梨帝母)에 영향을 미쳤을 신라의 선도성모에 대한 성모상은 지리산 성모제단에 남아 있었고 지금도 그 성모상 종류의 하나를 지리산 인근 천황사에다 옮겨 모셔놓고 있기도 하다.

 

신라의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삼국유사>에 나오며 <삼국사기>에는 김부식이 신라의 동신성모(東神聖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동신성모(東神聖母)의 '東神'은 뜻 그대로 동쪽에서 뜨는 태양의 여신이며 일본의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프로토타입이라는 것은 필자가 이미 <신화이야기> 시리즈글에서 수차 논하였다.

 

세계 신화에서 고대 여신은 어머니신을 말하며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태양신을 의미한다. 삼국시대 시조 신화들이 모두 태양의 여신과 관련한 그 시조 아기들이 탄생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한 성모자 신화이기도 하다. 이것은 기독교의 예수탄생과 성모 마리아의 배경에도 같은 작용을 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탄생 시대에 괌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중동 인도 문명의 하리티(hariti) 성모와 마리(Mary) 성모, 커어키 비잔틴 지역의 소피아(Sophia) 성모 전통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캐톨릭의 역사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과는 독립적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강하게 자리해 왔음은 이러한 고대 성모 신앙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칼빈 루터이래 개신교의 등장은 동아시아의 불교의 그것처럼 여성적 종교를 남성화시킨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불교는 태양의 여신이 관음보살에 융합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모자불상이 남게 된 배경이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캐토릭이 성모자상을 유지해왔다면 동아시아 불교에서 관음보살 신앙 역시 여성적이며 모자불상을 남겨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것은 '통일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그 유물의 정확한 감정에서나 불교의 관음보살상으로서 '모자불상' 특히 송자관음상 또는 자모관음상의 모자불상이라는 것이 판명난 것이다.

 

이제 '불교에도 아기를 안은 불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측은 스스로 말한대로 박물관을 문닫아야 할 것이다. 김양선 목사의 '돌십자가' 발굴에 경로에 대한 거짓은 물론 '신라 마리아 성모상'은 기독교 외의 불교모자상이라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들이 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유산에 대하여 허위나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계속되지 말아야 한다.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은 연화대가 있는 송자관음(또는 자모관음) 불상을 전시하고 있다. '불교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04/25/09 오두)

 

* 이어서 <숭실대 '신라 마리아 성모상' 주변의 아홉 얼굴의 정체>가 이어질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동아시아 불교 전통의 모자불상에 대한 필자의 분석이 전개될 것이다.

 

 

BHAIRAVA
 

인도 벵갈 팔라왕조. 바이라파(BHAIRAVA) 성모상

주변에 여러 명의 소불들이 있고 오른손에 아기를 안고 있다.
 

India - Bengal - Pala Dynasty - 10th / 11th Century
 
 
 

*댜니 불상 계열의 금동여래. 국보 제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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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관련 뉴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성모 마리아像이 있다고?

 

2009.04.25 03:29

 

"관세음보살상처럼 보이는 찰흙상 아기예수 안고 있는 성모 표현"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측 주장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해진 것은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의 일이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최병현)에선 이 진술이 '참'이다. 이 박물관에는 '경주에서 출토된 서기 8~9세기의 기독교 유물'이라는 설명이 붙은 소장품이 네 점이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1950년대 경주에서 출토됐다는 '성모(聖母) 마리아상(瑪利亞像)'이다. 높이 7.2㎝의 이 소상(塑像·찰흙으로 만든 형상)이
중국에서 신라로 들어온 유물이라는 것이다. 얼핏 관세음보살상처럼 보이는 이 소상은 배(舟) 모양의 광배(光背·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몸 뒤에 표현한 장식) 같은 형상이 더욱 불상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불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물을 자세히 보면 화관(花冠)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이 손을 입에 물고 있는 어린아이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 형상을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게 박물관의 해석이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한‘경교 돌십자가’. 박물관 도록에는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유물이라고 적혀 있다.

함께 전시된 유물은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됐다는 높이 24.5㎝의 '돌 십자가' ▲원형과 십자가 형태가 어우러진 동제(銅製) 십자무늬장식 ▲화살촉 모양의 십자무늬장식이다. 박물관은 일제시대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에서 나왔으나 지금은 사라진 '발해 삼존불'의 사진도 전시했는데, 세 부처 중 왼쪽에 있는 부처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박물관측은 일찍이 동양에 전파된 기독교의 한 유파인 경교(景敎)의 산물로 본다. 경교는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Nestorius)파를 말한다. 이 교파는 서기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이후 페르시아 등 동방으로 전래됐다.

7세기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들어온 경교는 매우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문화 풍토를 지녔던 당(唐)나라 조정의 환대를 받았다. 경교는 이후 150년 동안 중국 사회에 크게 유행했다. 이때 경교가 신라에까지 전파됐을 가능성이 큰데, 바로 이들 유물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경교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볼 때 성모상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네스토리우스파가 이단으로 몰린 이유 중 하나가 성모의 신성(神性)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의 한명근 학예연구원은 "7~8세기에 중국에까지 온 경교가 4~5세기 유럽에서 지니고 있었던 초기의 교리를 그렇게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불상일까, 아니면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상일까?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서기 8~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소개하고 있는‘마리아상’. 박물관 도록에는‘경교(景敎)와 불교의 교류 및 경교의 한반도 유입을 보여주는 중요 유물’이라고 적혀 있다. /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이 유물들은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자인 매산 김양선(金良善·1907~1970) 선생이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고학 전공자인 최병현 관장(숭실대 사학과 교수)은 "김 선생 생전에 본인으로부터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 밑에서 돌십자가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2004년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재개관하면서 이 유물들의 존재가 알려지자 일부 불교계 인사들로부터 '절에서 기독교 유물이 나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항의를 받았다고도 했다.

최 관장은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의 불상은 없다"며 "당시 중국의 경교 선교사들은 목탁을 두드리며 예배를 보는 등 불교와 융합되는 현상을 보였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모상을 불상처럼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 성모상'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정수일(일명 무하마드 깐수)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처럼 "고대 기독교 전래의 유력한 증거물"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상당수의 문화재 전문가들은 '기독교 유물'이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강우방 전
이화여대 교수(미술사학)는 "워낙 모호한 성격의 유물이어서 나도 시대나 성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성모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정확한 발굴기록이 없는 유물로 신라 때 것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본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성모상을 관음보살상의 형태로 만들었던 '성모관음상'처럼 이것은 혹시 근대에 만들어진 유물은 아닐까? 이에 대해 최병현 관장은 "만약 그렇다면 박물관 문을 닫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 관장은 "종교로서 들어온 것인지 문화로서 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모상과 십자가인 것이 확실하다면 이미 신라 때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 화합이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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