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임금 서양 선교사 영입 추진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자들 보다 앞서 |
|
| 당시 구베아 주교의 중국인 선교사 파견은 조선교회 관할권 확보를 위한 정략적 조치 한국 천주교 초기 신자들이 서양 선교사 영입을 추진하기 이전 이미 정조 임금이 비밀리에 문물 교류를 위해 서양 선교사 영입을 모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에 서양 선교사를 파견 일본 교회 재건의 교두보를 설정하려 한 반면 포르투갈 선교사들인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의 경우 조선교회의 관할권 확보를 위해 서 양 선교사 파견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중국인 선교사를 파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오는 5월16일 서울 목5동 성당에서 개최될 제1회 2천년 대희년과 순교자 시성 준비를 위한 「선교의 자유와 대박 청래 문제」 교회사 심포지엄에서 발표될 윤민구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 추진위 주간)의 「조선 신자들의 대박청래 운동에 대한 해외의 인식」 논문에서 드러났다 최근 18세기 후반 중국에 선교했던 구베아 주교를 비롯한 수자 사라이바 주교 길랭 로 그라몽 방타봉 신부 등의 서한을 수집 연구해온 윤민구 신부는 『이승훈 영세 이전 1782년 12월 조선의 재상(좌의정 정존겸으로 추정. 훗날 영의정이 됨)이 북경 연행사 일행으로 와서 그라몽신부를 만나 조선에 하루 빨리 유럽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싶다는 의사를 아주 열렬하게 표시했다』고 밝혔다 윤 신부는 또 『정조가 탕평책을 실현하고 방해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서양 선교사 영입을 비밀리에 추진했고 윤유일의 북경 파견 역시 정조의 묵시적인 동의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윤 신부는 또 『당시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는 자신의 조국에 충성하기 위해 조선교회의 관할권를 확보 포르투갈 영향권에 두기 위해 무척 노력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조선의 새로운 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마카오 출신 사제 중국인 레메디오스 오 신부를 선정했고 이로 인해 조선 신자들이나 정조 임금이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기대 즉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흥시키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켜 정치적인 입장을 강화시키려는 기대도 철저히 배격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결론지었다. |
|
| [기사원문 보기] | |
| [가톨릭신문 1998.05.10] | |
(기사) 정조임금 서양 선교사 영입 추진
2012. 8. 3. 오후 12:15:53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