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주버니의 일기를 훔쳐 보다...

2004. 10. 29. 오후 8:22:16

글자


( 배경음악 : 개신교 CCM "왜" - 소리엘 곡/노래 )

 

왜 슬퍼하느냐 왜 걱정하느냐

무얼 두려워하느냐 아무 염려 말아라

큰 어려움에도 큰 아픔있어도

이젠 아무 걱정하지마 내가 널 붙들어주리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실망치 말고 나를 보아라 나는 너의 하느님이라

 

 

아래 글을 읽으며 어릴적 친구의 형이 생각났습니다.  친구의 집은 가난하여 반타작 소작을 지었으며 농한기에는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막일을 나가셨습니다. 그 형은 집의 형편을 생각하여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곧장 집을 떠나 서울로 가 사진관을 시작으로 먹고재워주는 일자리를 찾아 다니며 돈을 벌어 집에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내 친구는 고등학교를 그럭저럭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 형이 세상에 속고 그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배운 것, 가진 것 없음에 한탄하며 이세상과 이별하였습니다.  그 형을 보냈던 것이 내가 대학 3학년때(82년) 여름,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아래의 시아주버니처럼 굳세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내 친구는 작년 세례를 받았으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퍼온 글 -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시댁의 험난한 역사가 오롯이... 이만한 ''보물''이 또 있을까

  한미숙(maldduk2) 기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로부터 나의 시집살이는 시작됐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이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왠지 편안치가 않았다.

입맛 까다로운 시동생은 기껏 만들어 놓은 반찬이 짜네, 싱겁네 하면서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싱거우면 간장 찍어 먹고 짜면 쪼매만큼씩 먹으면 된다"는 말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친척이 거의 없는 친정에 비해 시댁에는 주변의 멀고 가까운 친척들이 정신 없이(?) 찾아와 나는 늘 피곤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했지만 그때만 해도 난 ''서울깍쟁이''였다.

저녁 후 상을 다 치우고 혼자서 차 한잔을 하고 있노라면 날이면 날마다 큰 시누이, 작은 시누이의 아이들이 갓 시집온 외숙모인 나를 보러 왔다. 그동안 스스럼없이 오가던 외할머니 댁이었는데도 새 식구가 들어온 후에는 혼자 오는 게 쑥스러웠던지 둘이나 셋이서 같이 오곤 했다. 그렇게 찾아온 아이들이 나는 반갑기는커녕 쉬고 싶은 시간에 뭐라도 대접해야 했기에 피곤할 뿐이었다.

하루 종일 긴장하며 있다가 이제 좀 내 방에 들어가 눕고 싶은데, 아무리 어린 조카들이라고 해도 시댁 식구들이었으니 내게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시댁 식구들과 부딪히면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불만에 몸과 마음이 늘 묵지근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께서 거처하는 안방에 있는 다락에 처음으로 올라가게 됐다. 그날 나는 아주 오래 된 ''일기''와 만났다. 펜에 잉크를 찍어 한글자마다 정성 들여 쓴 그 일기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고 이후 나를 다락방에 오르내리게 했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 일기장을 내 방으로 갖고 왔다.

그 일기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2학년이 된 4월 초까지 쓰여진 것이었다. 일기는 끝에서 다섯 장을 남기고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오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보다 큰 산에는 눈이 더 많이 왔읍니다. 쇠죽을 쒀 가지고 퍼다 주고 공부를 했읍니다.

오늘은 학교에 가는 날입니다. 그러나 저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집에 형편에 의하여 학교에 못 가게 되였읍니다…
(지금의 맞춤법이나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일기장에 쓰여진 그대로를 옮겼습니다)

▲ 청색 일기장
ⓒ2004 한미숙
이 일기의 주인공은 당시 열네 살 소년이던 남편의 형이었다.

시댁의 육남매 중에서 시아주버니만 서울에 뚝 떨어져 사신다. 대전에는 시아주버니를 뺀 나머지 오남매가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집안 대소사로 식구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옛날 얘기가 나온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절박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있다. 열네 살 시아주버니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여러가지 일기장
ⓒ2004 한미숙
일기를 몇 장만 읽어 봐도 시아주버니의 몸에 밴 부지런함과 부모 형제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당시 시아주버니는 끝없는 농사일과 아래로 동생을 줄줄이 둔 장남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짐은 짧게 중학교 생활을 마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쓰다 만 ''부모님 전상서''
ⓒ2004 한미숙
"니들 셋이 고생한 거 다 합쳐도 서울 형아 혼자 고생한 것만 못해!"
가끔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들 셋''은 남편과 시동생 둘을, ''서울 형아''는 시아주버니를 가리킨다.

옛날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정말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시댁 식구들은 힘겨운 세월을 보냈다. 농사밖에 몰랐던 부모는 가진 것 없이 도시로 나와 새로운 생활을 꾸려야 했고 그 밑에서 한창 공부해야 할 자식들은 새벽에 우유를 돌리고 신문 배달을 하고, 학교에서는 화부(火夫)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다들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시아주버니와 비교가 안된다니? 도대체 시아주버니는 어떤 기막힌 고생을 한 것일까? 난 늘 어머니의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혹시 어머니께서 장남인 시아주버니를 편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맏아들의 일기를 보시면서 피눈물을 흘렸을 어머니 눈물이 내게도 감전되듯 뜨겁게 전해온다.

…나는 매형님의 덕택으로 명성한의원에 있게 되었다. 식구는 선생님, 아주머니, 영준이, 영희, 영훈이 다섯식구였다.

깜키는 눈을 억지로 떠 일어나 깨끗이 청소하고 택시를 타고 종로로 나왔다. 오늘은 감초(甘草), 목향(木香), 아교(阿膠)를 썰고 볶았다. 웬일인지 약을 써는데 힘이 없고, 어지럽고, 퍽 고단했다.

오늘도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아궁이에 연탄을 갈고 마당 쓸고 아주머니 신 닦고 오광(요강) 부시고 방과 마루를 쓸고 닦고 하자니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한숨이 나온다. 월급 없이 이렇게 시켜먹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못살 것 같았다....

날은 점점 더워만 가고 옷은 없고 한 걱정이 되는구나. 오늘도 방과 변소며 다 (일)해야 했다. 그러나 한 가지 한숨이 나온다. 집에서도 공부에 원이 되었는데 여기 있어도 낮에는 못하지만 밤에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괜찮겠는데 밤에도 제대로 못하니, 참 큰일이였다....

요새는 어찌나 고단한지 약을 썰다가 꾸부렸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도 해가 다 갔다. 선생님은 도민회에 가시고 늦게 들어오셨다. 열시 경에 들어오셔서 저녁을 잡수신 후 저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일찍 와서 무엇했느냐고 야단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말 못했다. 지껄이는 소리 듣기 싫거든 나라가고 했다. 선생님의 성질이 이러했다....

식모는 부엌에서 일안해 준다고 공알(쫑알)거리고 아주머니는 딴 일을 시키고 아저씨는 부르시고 하니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참으로 험악한 일이었다....


▲ 시숙의 마음이 뜯기던 시절, 쥐가 뜯어 먹은 일기장
ⓒ2004 한미숙
낯선 타향,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만으로도 서럽고 외로운 ''소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단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었다. 그렇게 맞서며 버틸 수 있는 힘은 바로 희망이었다.

지금은 한의원에서 선생님네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고 있지만 한의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한, 요강을 부시는 일조차 소년에게는 공부였다.

하지만 시골에서 올라와 촌놈이라고 괄시하며 월급도 주지 않는 선생님이 자상하게 그 공부를 가르쳐줄 리 없었다. 소년은 독학을 결심하고 한문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한약 재료의 용도를 하루에 한가지씩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 한약 처방 공부
ⓒ2004 한미숙
지금 시아주버니는 부천에서 한약방을 하신다. 그곳에서 터를 잡으신 지도 이제 30년이 넘었다. 오래도록 품어 왔던 꿈을 이룬 것이다.

사는 일이 누구에게라도 그러하듯 인생은 횡단보도 앞의 신호등처럼 파란불인가 하면 빨간불로 바뀌는 일이 반복된다. 빨간불이 내 앞을 가로막는 그 때마다 당황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파란불을 기다리는 지혜와 담담함으로 맞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아주버니의 절절한 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결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시아주버니의 일기를 비롯해 시누이들의 낙서장까지 내가 보관하게 됐다. 이제는 주인들에게 이 일기장들을 돌려 줄까 하다가도 나는 망설여진다.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이만한 ''보물''이 또 어디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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