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잘 견딘 나무

2004. 9. 6. 오후 10:54:52

글자

  얼마전 남편의 출장길에 동행한 나는 자투리 시간에 몇 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어렵게 마주앉았다.  마침 하루 휴가 중인 친구 역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단다.

  "너와 나는 운명적인 것 같아"

 

  한달음에 그녀가 달려왔다.  중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였다.  다른 친구 둘이 가세해 똘똘 뭉친 우리 사인방은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방앗간을 그냥 스치지 못하듯 한 달에 꼭 한번씩 튀김집을 찾던 추억이 있다.  그곳은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출입문에는 '어제도 오신 손님, 오늘도 오시었네.  내일도 오신다면, 얼마나 고마울까!'라는 글귀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 글을 떠올리며 소리내어 말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풋!" 웃고 말았다.

  일남 오녀 맏딸인 친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상업 학교에 진학하였다.  대학에 진학한 나머지 삼인방은 대학 생활과 미팅이야기로 즐겁게 웃다가도 그녀가 올 때쯤이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우리들과 곧잘 어울려지만 우리는 그녀를 의식하여 무척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우리들이 대학을 마치고 신참 출근길에 마음을 졸일 때쯤, 그녀의 결혼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남편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그녀 가족이 밤 도망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조차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친정 집에조차 전화 한 통 하지 못하는 친구의 고통을 나눌 길이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도시 근교 어느 농가에서 농사를 거들며 아이들 학교도 보내지 못하고 온 가족이 숨죽이고 있었다며, 친구는 웃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여 여러 달 구치소생활을 했다.  그녀는 밝은 세상으로 나온 남편에게 면회 가던 시외버스 안이 가장 마음이 편안했다고 회상했다.

  "나 요즘 수화 배월.  내가 가진 것은 없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성가를 들으며 자신처럼 음악을 듣고 부를 수 없는 농아가 떠올라서 고달픈 하루하루지만 퇴근 후의 자투리 시간에 수화를 배운단다.  이제는 농아 친구들과 상당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라는 그녀의 잔잔한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워보였다.  넉넉한 마흔 살 중년이었다.

  "난 우리 회사 청소부 아줌마의 미소를 닮고 싶어" 작은 회사에서 주문 전화 안내를 하는 친구는 그곳 청소 아줌마처럼 푸근한 노년을 보내겠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여력을 살펴 남에게 베푸는 그녀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겨울을 잘 견딘 나무는 새순이 튼튼하다.  늘 나무처럼 풋풋한 눈 빛으로 친구를 맞자고 다짐했다.

 

<퍼온 글 - 가톨릭다이제스트 9월, 전주교구 송학동성당 조은아자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이야기 마당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