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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겠다"는 사진기자의 한 마디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저마다 부끄럽다는 말을 하면서도 밝게 웃으며 카메라 앞으로 모여드는 여학생들. 그 모습이 경쾌하고 발랄했다. 사진 기자의 "하나, 둘, 셋!"이 떨어지자 밝게 웃는 표정이 절정에 이르렀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소정이(가명. 고1)의 모습은 다른 친구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밝은 미소, 조금 부끄러운 듯한 눈빛, 친구들과의 재잘거림. 17살 소정이는 특별하지 않았다. 세상의 '특별 대우'가 불편했던 소정이 그러나 소정이는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다. 특히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너 같이 아빠 없는 애하고는 못 놀아. 저리 가! 가까이 오지마! 우리 엄마가 너랑 같이 놀지 말라고 했어!"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의 이 말을 듣고 소정이는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빠가 없는 게 내 잘못이 아니라서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닌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상해 집에 와서 엄마 앞에서 엉엉 울면서 엄마께 투정을 부렸어요. 나에게는 왜 아버지가 없는 것이냐고 따지면서요." 그 순간 엄마는 소정이를 그저 말없이 안아주기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버지가 없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엄마의 사랑과 노력으로 소정이는 조금씩 세상의 '특별한 대우'에 당당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라는 말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상처로 얼룩졌던 가슴속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남들이 열심히 하면 나는 꾀부리지 않고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구나"하는 삶의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소정이는 아버지 없이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자신의 가정을 긍정하고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에는 아버지가 있어야만 한다'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두 모녀의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특히 세상의 편견과 차별은 쉽게 웃어넘기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잘 극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소정이가 1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엄마는 식당일을 비롯해 신용카드 영업까지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도 가난의 무게는 두 모녀의 곁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대신 16년 동안 홀로 소정이를 키워온 엄마의 몸은 날로 쇠약해졌고, 요즘엔 소정이가 몸을 주무르지 않으면 밤새도록 앓는 날이 많다. "엄마는 별로 늙지 않으셨는데 요즘 밤마다 발이 아프다며 힘겨워 하세요. 다리 쪽에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발이 딱딱하게 굳어 있거든요. 제가 주물러 드리지만 가끔은 저도 피곤해서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게 되요. 그러면 저는 또 엄마에게 미안해서 화장실에서 혼자 울구요" 뒤로 미뤄지는 엄마의 병원 치료 소정이는 엄마를 모시고 큰 병원에 한번 가보고 싶지만 언제나 마음뿐이다. 엄마는 몸이 아파 예전처럼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정이네의 한 달 수입은 60만원 정도. 국가 보조금과 엄마가 가끔씩 일용직으로 벌어오는 수입을 합친 금액이다. 이 수입으로 임대아파트 관리비 20만원을 내고 나면 두 모녀가 한 달을 살기에도 빠듯하다. 그래서 엄마의 병원치료는 소정이의 바람과는 달리 언제나 뒤로 미뤄지고 있다. 소정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고집했던 이유는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항상 몸이 아픈 엄마를 보고 자라오면서 가지게 된 꿈이다. 손글씨로 빽빽이 채워진 소정이의 희망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건강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의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돼 병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돌봐드리고 싶다. 그리고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의사가 되려면 학비로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의사의 꿈을 포기할까도 생각해봤지만 포기하기에는 꿈이 너무 커버렸다."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소정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학원에 다닌 적이 거의 없어 혼자 공부하는 게 더 익숙하고 좋다"는 소정이의 말은 대견스러웠지만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했다. "우리 소정이는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살아서 엄마가 홀로 키운 보람이 있네." 소정이는 엄마로부터 이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엄마도 이 말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얼굴이 된다. 그 행복한 순간을 맛본 이후 소정이는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원에 다닌 적 없는 소정이의 성적과 학교 생활은 학교 선생님들을 감동시킬 정도다. 소정이의 담임 장미숙(43) 선생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으며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선생인 저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만약에 지금 대학에 간다면 소정이는 어느 대학이든 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에요. 그렇지만 선생으로서 솔직히 많이 걱정이 돼요.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거라 믿지만 요즘은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하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교육자로서 미안한 마음도 크고…." 장 선생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학습이 보편화 된 지금 소정이는 컴퓨터가 없어 선생님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장 선생님은 "만약 소정이 같은 아이가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 세상이 크게 잘못 된 것"이라며 기자에게 연신 "많이 도와주시고 신경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상고에 진학해서 일찍 취업하기를 바라시던 엄마도 지금 소정이의 '위대한 증명'을 기다리고 있다. 소정이도 그 때까지 엄마가 건강하길 바라고 있다. 서로의 기다림과 소망을 위해 소정이는 오늘도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학교 문을 나서 집으로 향한다. "남들은 우리를(엄마와 소정이) 보며 많이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엄마와 저는 이제 친구 사이처럼 편안하고 대화도 잘해요. 함께 시장에 가고 요리를 하면 얼마나 좋은데요. 꼭 신혼부부 같다니까요.(웃음)" 아픈 엄마가 계시는 집으로 향하는 소정이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웠다. | ||||||||||||||||||
가난한 소정이는 의대에 갈 수 있을까...
2004. 9. 15. 오후 4: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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