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초등학교 4학년인 작은 딸의 책꽃이에서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란 제목의 창작동화책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평이하지 않은 제목에 이끌려 책장을 한두장 넘기다 보니 전부 읽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인 초등학생인 미진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풍요하지는 않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뇌종양이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그 가정의 단란함은 걱정과 번민 그리고 애처로움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암과 싸우는 고통에서 죽음과 삶의 애착 양 극단을 오고가는 엄마, 그 육체적 고통과 절망 그리고 가족과 이웃에게 품위를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자괴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하는 엄마.
나날이 병색을 더해가며 항암치료로 인해 없어진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 없는 머리를 감추려고 밖에 나갈 때는 모자를 눌러 쓰는 엄마, 그 엄마의 가엽고 불쌍한 모습에 눈물을 짓다가도 그 초라한 병자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챙피하다는 생각에 학교 어머니회 모임을 알리려하지 않는 딸 미진이.
암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난 버섯, 한약재 등 온갖 것을 구하려고 다니는 아빠.
결국 엄마는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 병원에서의 집중적인 치료와 수술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들 걱정을 하며 세상을 떠납니다.
동화의 내용이 저희 가족이 겪었던 것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제게도 몇년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누님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암으로 진단하며 6개월 선고를 받았지만 4년간을 암과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공기 좋은 시골의 요양소,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실험병원 그리고 기도원 등을 오갔으며 마지막 6개월의 대부분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야위고 가여운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른 새벽에 집으로 울려온 전화벨이 누님의 임종을 알리는 소리라는 것을 나는 그전의 경험을 통해 익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의 전화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법이 없이 매우 슬픈 소식, 소중한 사람이 우리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4년의 시간,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누님이 암을 이기도록 돕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누님을 시댁 선산의 묘지에 모시던 날, 우리 가족의 슬픔을 함께 하려는듯 하늘에서는 비가 억수로 쏟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래는 이 창작동화의 문선이작가가 쓴 책의 머릿말입니다.
우리는 한평생을 살다 보면 예쁜 꽃도, 무지개도, 똥도, 죽음도 보게 됩니다. 이는 살아가다 보면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좋은 일도, 슬픈 일도 다 겪게 된다는 얘기일 겁니다. 나한테는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게 바로 인생이지요. 그럴 때 굳건하게 삶이라는 텃밭에 우리를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건 아마도 '사랑'일 겁니다.
사람은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언젠가는 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겠죠. 자신의 죽음은 물론이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이 글은 주인공 미진이가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엄마가 병마와 싸우는 걸 바라본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삶에 대한 의지, 사랑, 아픔, 분노, 가족의 소중함과 더불어, 엄마는 떠났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엄마가 남아 있는 한 엄마는 영원히 함께 살아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한 동네에 살던 친한 친구의 집 앞에 어느 날 노오란 등이 걸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 밤에 갑자기 돌아가신 겁니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들이 그 친구를 둘러싸고 섰습니다.
"너네 아빠 죽었지?"
키만 멀쑥하게 컸던 한 친구가 물었지요.
그 때 그 친구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아무 말 없이 담벼락에 기대서서 발로 땅바닥만 헤집고 있었습니다. 숙인 고개를 잠시 든 그 친구는 건드리면 금세라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릴 것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차라리 그 친구가 무슨 말 한 마디라도 했더라면 그 모습이 제 가슴 속에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친구 가슴 속에 아빠의 죽음은 복받쳐 오르는 슬픔이었겠지요. 그 걸 바라보던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