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그들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길 빌었습니다.
유정열(yoo7532) 기자
언젠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와 우연히 일요일 아침에 하는 ‘결혼이야기’라는 프로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수녀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여성이 한 남성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둘이 그 프로를 얼마나 재미있게 봤던지 나중에 또 한 번 보고 싶어서 컴퓨터를 켜고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수도자를 연모하고 사귀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이 컸던 것 같습니다.
오늘 화창한 가을 날씨가 온 세상을 축복하는 가운데 한 쌍의 아름다운 부부가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탄생했습니다. 신랑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다녔던 영수(가명)입니다. 지금은 한 조그마한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신부는 성당에서 오랫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피아노반주를 맡았던 예지(가명)입니다. 지금은 피아노를 배우기 원하는 아이들에게 개인 교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면서 그 둘을 가까이에서 보고 인사를 나누었던 사이인지라 따뜻한 가을햇볕을 쬐며 혼인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낮에 성당에 갔습니다. 20여 분을 걸어가며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영수는 신학교에 그대로 있었으면 올 겨울에 신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신학교 출신이기 때문인지 제단에 5명의 신부와 2명의 부제(부제품을 받은 성직자로 사제를 도와 강론, 성체 분배, 세례성사 따위의 집행을 위임 받게 됨)가 있었습니다. 2명의 부제는 바로 영수와 신학교 동기생들입니다.
영수는 방학 때만 되면 성당에 와서 살았습니다. 다른 신학생들과 똑같이 영수도 방학 동안에 성당 주임신부의 곁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생활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성당의 여러 단체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지를 만난 것도 바로 그 단체 가운데 하나인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회였습니다. 젊은 영수와 예지는 아마도 그 때부터 정이 들었나 봅니다. 영수가 나중에 신부가 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지의 마음에 피어나는 사랑의 연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수는 성당 교우들 한 명 한 명에게 언제나 다정한 말씨로 다가갔습니다. 교우들도 성당의 첫 번째 신부가 잘 탄생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기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린 복사(천주교회에서 미사를 지낼 때 사제를 도와 시중드는 사람)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수련회를 영수가 갔다 왔는데 얼마나 복사들에게 잘해주었던지 인기가 더 높아졌습니다.
그런 모습이 주일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로 젊은 청년들인 교사들과 오랫동안 초등부 캠프계획을 짜면서 영수는 적극적으로 그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남녀 교사들이 그를 잘 따르고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예지는 그런 영수가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의 시간을 갖기를 무척 원했습니다.
영수와 예지의 사랑에 이어 아픔은 바로 뒤에 찾아왔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영수 집에서는 신부가 될 아들의 앞길을 막았다고 노발대발했고, 예지 집에서는 딸이 큰일을 저질렀다고 한탄했습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영수의 부모님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도저히 교우들을 볼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당에 잘 나오시던 예지의 부모님도 잘 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영수와 예지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팠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에 불붙은 사랑을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둘은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잘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신학교에서 나온 영수는 몇 달이 지난 후 한 직장을 잡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둘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한 양가 부모님도 자식들의 결합을 마침내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에 집을 옮긴 영수의 부모님이 다시 이곳으로 오셔서 성당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눈물겨운 사연을 가슴에 간직하고 둘은 오늘 한 몸으로 맺어졌습니다. 오늘따라 검은 옷을 입은 신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주례신부는 영수의 사촌형이 맡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수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해 주었습니다.
예쁘게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지를 보았습니다. 환한 미소가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그동안 예지는 성당에서 혼인미사가 있을 때에 여러 번 피아노 반주를 맡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동료 교사가 반주를 했습니다. 예지는 몇 번이나 2층 성가대를 올려다봤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면서 나도 오늘 새로 첫 걸음을 뗀 영수 부부가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며 잘 살기를 빌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이상으로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며 늘 웃음꽃이 피어나는 삶을 영위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영수와 예지의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들도 아쉬움이나 분함 같은 마음은 다 훌훌 털고 짝이 된 자식들의 앞날을 축하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수를 생각했습니다. 미사를 도와주는 두 명의 동기 부제들을 보며 부러운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제에 대한 미련을 다 버리고 아내와 함께 남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지를 생각했습니다. 사제 (주교의 아래인 성직자, 의식과 전례를 맡아 봄)의 길을 가야 할 신학생을 좋아해서 앞길을 막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떠나보내고 남편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좋은 아내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