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살이 공동체 - 지상에서 천국처럼
<박인숙, 야곱의 우물 2005년2월호>
영문학을 공부하며 독립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박형준(모세, 영문과3년)군은 라면을 안 먹는다. 공부와 취미, 놀이를 함께하는 친구들과 분식집에도 자주 가지만 최고 인기 메뉴인 라면을 안 먹겠다고 작심하고 1년째 실천하고 있다.
노래를 잘해 강남의 한 성당으로 찬양봉사를 다니는 한금실(로사마리아, 성악과3년)양은 휴대전화를 없앴다. 시흥동 집과 신촌의 학교, 강남까지 복잡한 서울 거리를 오가며 연습과 찬양에 몰두하다 보면 급한 연락도 많지만 공중전화로 해결한다.
둘은 벼가 자라 이삭이 패기 전 대가 불룩해지며 배동이 서는 무렵 같은 꿈과 열정이 넘실대는 청년들에게 "예수살이 공동체"가 여름/겨울에 진행하는 배동교육을 받은 후 라면과 햅버거, 휴대전화와 택시 타기를 끊어버렸다.
예수살이란 막강한 자본이 과학기술과 미디어로 지배하는 소비사회, 돈이 곧 복음이 된 세상에서 어떻게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의식생활운동이다. 지난 98년 "갈릴래아 예수의 인간성을 본받아 소유로부터의 자유, 소외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세상의 변혁을 위한 투신 정신으로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창립된 청년 신앙인들의 공동체.
매일 명상, 매주 섬김 활동, 매월 성찰 모임, 매년 공동체 생활의 ''사행(四行)''과 기도/노동/공유/배려/정직의 ''오계(五戒)를 지키는 예수살이는 꼭 사야할지 판단할 여지도 주지않고 거실 텔레비젼을 통해 호주머니로 마술처럼 파고드는 광고,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편다. 쇼핑/휴대전화/신용카드/텔레비젼/승용차/가공식품과 탄산음료/화장품과 장신구를 끊는 ''광야수행 오프(Off)운동''으로 과잉소비에서 벗어남으로써 환경 파괴도 막고자 한다.
"작년 1월 배동교육에 참가해 전국에서 모인 40명과 3박 4일을 보냈지요. 엄마 손에 이끌려 피정도 다니고 방학 내내 수도원에서 지낸 적도 있지만 배동은 정말 신기하고 멋진 경험이었어요. 사실 라면 참 맛있잖아요. 간단한 일 같아도 라면을 안 먹는다는 건 세상을, 시대를 거스르는 거죠.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이 되어 사실이라고 믿는, 정해진 틀 너머의 세상을 열어가고 싶어요"라고 형준군은 말한다.
금실양은 중3 때 시흥동 본당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박기호 예수살이 대표 신부(서울대교구 서교동본당) 소개로 공동체에서 음악봉사를 하면서 성악을 전공하게 됐고, 고3을 마치고야 교육받을 수 있었단다.
"유아세례 신자고, 봉사하는 동안 다 알게 된 내용이라 교육이 시시할 줄 알았는데 하느님이 정말 계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나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아프셨구나, 햄버거 안 먹어요, 휴대전화 없어요 할 때마다 눈이 둥그래지는 사람들, 축제 때 잔디밭에서 술판 벌이고 쓰레기는 안 치우면서 지하철역에서 음대 건물까지 택시 타고 오는 학생들, 5분만 걸으면 되는 성당을 커다란 자가용 끌고 오는 어른들 틈에서 가끔 숨이 턱턱 막히곤 합니다. 그때마다 공동체를 보면서 힘을 내요.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애를 쓰니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요."
2기로 교육받고 현재 예수살이 청년 대표를 맡고 있는 조상민(콜베, 법학과4년)군도 ''왕따'' 경험이 다채롭다. "자판기에서 음료 뽑아 건네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니까 넌 종이 컵 안 쓰지, 인정을 해요. 사납게 추운 날 선물 사러 다니던 주일학교 교사들이 택시 안 타려는 내게 보내던 짜증나는 눈길도 참을만 했지요. 그런데 군복무 때는...."
상부하달 명령으로 체계가 서는 군대. 고참이 건넨 캔 음료는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고 받아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주면 해결됐다. 하지만 신참 때 맞던 매를 고참이 된 후 때리지 않자 다른 고참들이 옥을 먹는,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곤란한 상황은 풀어나가기가 참 어려웠다고.
"예수님이 옳고, 그쪽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건 확실하지 않습니까? 전 별다른 재능이 없어 앞에서 이끌 수는 없지만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여 명의 선후배들이 세상 곳곳에서 실천하는 아름다운 삶에 저도 함께할 겁니다"하는 상민군의 얼굴엔 흔들림이 없다.
무수한 선택 앞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며 열정으로 꿈틀대는 젊음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광야를 지난다. 그들에게 사순시기는 봄맞이 통과의례가 아니라 일상이다.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고자 하는 모습 속에 오늘을 십자가 지며 부활을 꿈꾸는 ''청년예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