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림시기
교회는 주님의 축제를 거행하는데 있어서, 그 축제에 포함된 의미를 주제별로 나누고, 일정한 기간으로 분배한 다음 규칙적으로 반복하는데, 이것을 전례력이라고 합니다. 사회는 1년을 12달로 나누어 지내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1년을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로 나누어 주님의 축제를 기념합니다. 즉 교회력으로 우리는 대림시기를 통해 먼저 주님 탄생을 기다리고, 성탄시기때 구세주 오심을 기뻐하고, 사순시기를 통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동참하며, 부활시기때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그 부활의 힘으로 연중시기를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대림시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림시기는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성탄축제를 기다리고 또 준비하는 시기로서, 우리들에게 구세주가 오신다는 희망과 기쁨을 주는 시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곧 오실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 자신들이 회개와 속죄로써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를 봉헌할 때 사제는 회개와 속죄의 뜻으로 자색제의를 입고, 제대 주변은 화려함을 피하고, 미사 중에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는 대영광송은 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 동안 우리들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기 위해서 우리의 부족한 면들을 채우려 노력하고,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 온전히 향할 수 있도록 속죄와 회개의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대림시기는 성탄 대축일(12월 25일) 이전의 4번의 주일을 포함하는 기간 전체를 말합니다. 그래서 11월 27일부터 12월 3일 사이의 주일이 대림 1주일이 되고, 대림절이 끝나는 날은 성탄 하루 전날인 12월 24일입니다.
이 대림시기 동안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절과 마찬가지로 기도와 단식, 그리고 애긍의 세 가지 행위를 적극 권면해 왔는데, 보통 때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하던 것을 이 기간 중에는 교회 공동체 전체가 공식적이며 공동으로 실천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으로 십자가의 길, 공동 참회예절 등과 같은 전례 뿐 아니라 각자가 희생한 것을 모아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함께 방문하여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림시기가 되면 평상시 보지 못하던 여러 가지 관습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대림환입니다. 이 관습은 독일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상록수 잎을 따서 둥그런 환을 만들고 그 위에 초를 4개를 켭니다. 거기서 상록수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심을 뜻하는 것이고, 둥그런 형태는 어제, 오늘, 내일의 영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촛불 4개는 대림 4주간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어 기다려야 하는 신자의 생활 자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초는 한 주간씩 경과할 때마다 하나씩 켜지는데, 이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관습은 대림 달력입니다. 이것은 성탄 준비를 위하여 매일 달력을 한 장씩 뜯으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관습입니다. 매일 달력에는 매일 그날의 달력을 보며,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달력은 우리의 무관심과 나태함을 깨우치며 그리스도 오심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아주 유익한 관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대림기간 동안 실천할 것 등을 달력에 적어서 실천하도록 노력할 때 이 대림기간을 잘 준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지 2천 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구세주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림의 자세가 많이 흐려졌습니다. 바로 오늘밤에 오실지도 모른다는 기다림의 긴장감은 이미 우리들에게는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행하는 대림시기의 모든 것들이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오는 잔치에 불과하다는 인상마저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제주의 재림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해도 구세주께서는 매일매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에게 오셨고, 나에게 간절한 도움을 청하는 이웃의 모습으로 오셨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오셨고, 내가 읽고 들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보고 듣는 그 모든 것을 통해서, 또한 내가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통해서 구세주는 우리에게 조금씩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형태로 우리에게 접근해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기다리지도 않고 맞아들이지도 않는다면, 그분은 결정적인 때에 우리를 모른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