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돌아오라 [성 예로니모 사제의 ‘요엘서 주해’에서]

2022. 8. 26. 오전 6:56:04

글자

성 예로니모 사제의 ‘요엘서 주해’에서 (PL 25,967-968)

내게로 돌아오라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고” 단식과 울음과 통곡으로써 마음의 회개를 보여라. 지금 단식하면서 훗날에 흡족히 먹을 것이고, 지금 울면 훗날에 웃을 것이며, 지금 통곡하면 훗날에 위로를 받으리라. 슬프고도 언짢은 상황일 때 옷을 찢는 관습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대사제가 우리 구세주를 거슬러 하는 고소가 더욱 중대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옷을 찢었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모독이 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옷만 찢지 말고 죄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찢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술 부대처럼 터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이 이전의 죄로 말미암아 떨어져 나갔던 주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아무리 막중해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그런 절망감에 빠지지 마십시오. 죄가 아무리 막중해도 하느님의 자비는 그것을 없애 버릴 것입니다.

주님은 인자하시고 자비하십니다. 죄인의 죽음보다는 그의 회개를 더 원하십니다. 분노에 더디시고 자비에 넘치십니다. 쉽게 성을 내버리는 인간을 닮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악과는 거리가 머시고 악을 괴로워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주님께서도 당신의 위협을 거두시고 그것을 행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태도의 변화에 따라 주님의 마음도 변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위협과 악은 덕과 반대되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성서 다른 곳에서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하고 또 “도성에는 주께서 일으키지 않으신 고통이 있겠는가?” 하고 말할 때의 그 괴로움과 고통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요엘 예언자는 위에서 주님은 인자하시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비에 넘치시며 악과는 거리가 머시고 악을 괴로워하신다고 말한 다음,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가 우리 게으름의 핑계가 되지 못하도록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합니다. “주께서 혹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시고 복을 내리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예언자가 이 말씀에서 뜻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기를 간청합니다. 하느님은 다윗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그런 자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내 죄를 없이하소서.”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의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싶습니다. “주께서 혹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여기 “혹시 알겠느냐?”라는 말은 주께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시기를 우리가 희망하지만 그 일은 좀 힘들고 혹시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다음의 말씀, 즉 “곡식과 포도주를 내려 주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는 말씀은 “주님은 축복을 내리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다음 우리가 하느님께 희생 예물을 바칠 수 있게 해주신다.”는 뜻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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