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고린토 전서에 대한 강론’에서 ]

2022. 8. 24. 오전 6: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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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고린토 전서에 대한 강론’에서 (Hom. 4,3. 4: PG 61,34-36)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십자가가 온 세상을 설복시킨 것은 인간의 어떤 엄청난 힘으로써가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허망한 빈말이 아니라, 하느님과 참된 종교 그리고 복음적 생활 양식과 후세에 있을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무식한 사람들과 시골뜨기들을 지혜로운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느님의 힘은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까? 십자가는 사람들의 저항을 이겨내어 온 세상을 정복하고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이름을 없애려고 했지만 실은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더욱더 꽃피어나 한층 더 위대하게 되고, 한편 원수들은 멸망하여 시들고 말았습니다. 죽은 사람을 대항하여 싸운 이들은 산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교인이 나를 보고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할 때 그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보고 나의 신앙 때문에 어리석다고 말할 때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기는 그 이교인보다 나는 천 배나 더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를 약하다고 말할 때 그 말로써 그 사람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철학자도 임금도,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들도 세리들과 어부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고는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분명히 하느님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호수나 강이나 사막에서만 살아 무식했던 열두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엄청난 일을 시도할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도시나 또는 광장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을 터인데 어떻게 온 세상과 대결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겠습니까? 아무 속임 없이, 또 그들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거룩한 복음사가들은 그 제자들이 겁이 많고 용감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전기의 진실성을 말해 주는 최고의 증거입니다. 실제로 복음사가들이 제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말에 의하면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그리스도께서 붙잡히셨을 때 그들은 다 도망치고 그들의 으뜸인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직 세상에 계실 때 몇몇 유다인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이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묻히신 후 여러분이 말하듯 부활하시지 못한 채 남아 계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지 못하셨더라면 그들이 세상과 대결할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분은 당신 자신을 구하지 못하셨는데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시겠는가? 그분이 살아 계실 때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하셨는데 죽은 다음에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실 수 있겠는가? 그분은 살아 계실 때 한 민족도 정복하지 못하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이름만 가지고 온 세상을 설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보고 그분 능력의 힘찬 증거를 갖지 못했더라면 그렇게 큰 모험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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