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디로 (wohher und wohin?) 사랑 안에서

2010. 12. 4. 오후 7:35:25

글자
나는 왔누나,/ 어디서인지도 모르면서//
나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 죽으리라/ 언제일지 모르지만//
나 가리라/ 어디일지 모르지만//
놀라워라/ (그럼에도) 나 이렇게 즐겁다는 것.

Ich komme, ich weiß nicht woher,
Ich bin, ich weiß nicht wer,
Ich sterb, ich weiß nicht wann,
Ich geh, ich weiß nicht wohin,
Mich wundert's, dass ich fröhlich bin.


중세에서부터 전해 오는 글이라고 하는데요,
비슷한 내용으로 여러 번역과 기록이 있답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이며 신학자였던 Martinus von Biberach(1498)라는 분이 자신의 비석에 이 글을 남기도록 한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게 된 계기인 것 같은데요…
신학적으로 이렇게 표현되는 신앙에  거부감을 느꼈던 마틴 루터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온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하느님 뜻하시는 시간에 오고 가고 살며 죽고, 또 어디로 가는지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왜 삶이 슬픈지 그것이 놀랍다.’라고 바꾸어 설교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개신교 의사였다가  성인들의 신비주의적인 믿음과 삶에 깊은 영향을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사제가 된 신학자이자 시인, Angelus Silesius(세속명 Johann Scheffler 1624-1677)가 자신의 저서에 이 글을 넣어 전한 것이 많이 알려져서 이 분의 글로 알려지기도 했었구요…

사실 저는…
예전 어느 피정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카알 야스퍼스( Karl Jaspers)의 글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습니다.
8월 25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을 성소로 하는 수도원(Piarist)의 창설자
칼라상스(Calasanz)의 요셉 성인의 삶을 보며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그 부분에 야스퍼스의 글이 연결되서 생각이 났었거든요.

카알 야스퍼스는 독일 근대의 뛰어난 철학자이자 심리치료사로 알려져 있는 분인데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병을 지고 살면서,  
병약함 때문에 젊은 시절 많은 정상적인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생애
유태인인 아내와 나찌에 대항하고 박해당해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치매로 스스로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괴로움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죽는 것까지 고민했던 그의 마지막 시간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이 주신 삶에 의미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찾고 의미를 찾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있는 철학을 마무리했던 삶을 마치며
그 역시 자신의 묘비에 이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계시를 대면하는 철학적 신앙’(Der philosophische Glaube angeschichts der Offenbarung)이란
자신의 저서 첫 도입부에 적어놓았던 글을 자신의 삶에 담아 남겨두었던 거죠.
루터가 보았듯이 처음엔  하느님의 뜻 안에서 모든 순간 순간에 상응하는 답을 주는
크리스천 신앙에 대치되는 듯이 보이는 구절들이지만, 단지 인간의 오성으로만 대답을 찾지 않고
믿음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자신을 열고 받아들이려 하는 삶에 행복이 담겨진다는 경이로움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했던 것처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주어지는 것들을 믿고 받아들이는 마음에 주어지는 기쁨과 희망을
그렇게 삶에 담고 남긴 구절…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서, 필요한 후원도 얻고
제대로 교육시설도 설립해서 운영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수도회도 세웠지만,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해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하는 귀족들의 편견과 반감,
그의 성공에 대한  시기하는 사람들의 야심. 그리고 그 사이에 왜곡된 이야기들로 일어나는
오해들로 분쟁이 일어나고… 결국 교황청 지시에 따라 자신의 직위가 박탈되고 수도원이
해체되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님께서 주셨고, 주님께서 가져 가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찬미 받으소서."

욥의 기도를 드리면서,
언젠가 자신의 수도원이 반드시 다시 인정되리라는 믿음으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들끓는 지지자들에게 반대자들을 옹호했던 요셉성인의 삶.
그 삶에 대한 묵상이 연결해서 이끌어준 깨달음이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가 알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모두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손길 안에서 살아간다는 믿음으로
삶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을 대하면서 느끼는 경이로움 속에서.  
희망과 위로,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채우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댓글 3

  • 2010년 12월 4일 오후 7:40

    이 글은 박유미 수산나 자매님이 그녀가 cosione 에 (관리자 한 사람) 올린 글을 퍼 왔습니다.

  • 2010년 12월 5일 오전 11:25

    좋은 글 나누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 뭐가 이리 분주한지, 까페에 글 올릴 여유가 없은지 꽤 된듯합니다....

  • 2010년 12월 9일 오전 12:48

    놀라워라, 그럼에도 나 이렇게 즐겁다는것.. 정말 놀라운 말 인것 같습니다.. 우리카페를 잊고 지낸것 같습니다. 대림시기에 맞춰 색깔을 바꾸시는 현정님의 마음이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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