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28일 일요일
[연중 제4주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 (마르1,21ㄴ-28)
제1독서<나는 예언자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신명18,15-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17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20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화답송>시편95,1-2.6-7ㄱㄴㄷ.7ㄹ-9(◎7ㄹ과8ㄴ)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제2독서<처녀는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1코린7,32-35)
32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33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마르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24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연중 제4주일 제1독서 (신명18,15-20)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15)
하느님의 말씀을 위탁 받아 전하는 자기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메아헤카'(meaheka; '너희 동족(형제) 가운데에서'가 강조된 것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자는 반드시 하느님의 계약으로 맺어진 백성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 예언자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동참자 이기에 누구보다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존재이다. 또한 살아 계신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 자이기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뜻만을 전해야 한다.
모세에 의해서 백성에게 선포된 말씀은 영속적인 예언자의 계보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예언자 제도를 세우시는 주된 목적은, 혼란한 이교도의 영적인 세력에 맞서서 하느님의 분명하신 계시의 말씀을 전하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같은 예언자'는 모세 자신이 행했던 예언자의 활동과 동일한 수준의 활동을 행하는 예언자의 의미가 아니고, 하느님의 대변자로서의 모습만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한다. 신약시대에 살던 유대인이 이 예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본문의 예언자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요한1,45; 6,14; 7,40; 사도3,20~22; 7,37).
그리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은 단순히 귀로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를 향하여 순종한다'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 누구를 향하여 순종 할 것인가 가 문제가 된다.
즉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가나안의 박수들이나 잡신들을 접한 자들이나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자들의 말을 듣거나 순종해서는 안되며, 유일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말을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 (16)
탈출기 20장 19절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자 자신들이 죽게 될까봐 하느님을 직접 만나지 아니하고, 모세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만나기를 모세에게 간청한다.
"온 백성은 우렛소리와 불길과 뿔 나팔 소리와 연기에 싸인 산을 보고 있었다. 백성은 그것을 보고 떨면서 멀직이 서 있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 (탈출20,19~20)
'저희 하느님'에 해당하는 '엘로하이'(elohai)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명칭 '엘로힘'에 1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형태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이처럼 '저희(나의) 하느님'으로 부르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본문이 모세 오경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자신의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하느님으로 고백한 유일할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호렙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세우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이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증거가 된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웰로 아무트'(welo amuth)는 앞의 두 가지 요청과 함께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나로 하여금 듣지 않고 보지 않게 하셔서 내가 죽지 않게 해주소서'이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드리는 요청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면 죽는다는, 하느님의 거룩함을 바로 인식한 자의 자연스러운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경외심이다.
주님을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한 자가 어찌 그 하느님을 오직 자기를 죽일 자로만 바라 보아야 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요청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17~18)
'그들이 한 말은 옳다'는 것은 '그들이 한 말은 잘한 말이다'라는 뜻으로 경우에 맞는 말을 했다는 하느님의 칭찬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중재자를 세워 죽음을 면하게 해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체험한 자가 해야 할 옳은 말이라고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는 것은 단순히 모세의 입을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입이 하느님의 말씀의 보관소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5장 14절에는 하느님께서 필요하실 때에 예언자의 입에 보관된 말을 꺼내어 사용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나 이제, 네 말이 너의 입에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은 장작이 되게 하여 그 불이 그들을 삼키게 하리라.'
참된 예언자는 자신의 뜻대로 예언하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만을 전한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참 예언자임을 보이기 위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1,18; 예레4,1)라는 관용적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에제키엘 3장 10절에는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귀담아 들어라'는 명령이 나온다. 이는 말씀이란, 단순히 입술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생각에까지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야 함을 알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 1장 9절의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직접적으로 내리시는 계시에 대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예언자를 세우시고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예언자로 임명하시는 장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결국 본문은 예언자라고 할지라도 자의로 말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들이 바로 예언자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19~20)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그 입에 말씀을 주어 선포하게 하신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결국 이방 나라들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예언자가 선포하는 그 말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경우로는 두 가지 상황이 있음을 밝힌다.
하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전하는 내용을 자신의 마음대로 지어낸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받은 내용을 그 존재의 이름으로 말하는 경우이다.
전자는 십계명 가운데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제2계명의 내용을 범하는 것이고, 후자는 우상 숭배에 관한 제1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내용을 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주제넘게'로 번역된 '야지드'(jazid)는 '끓어 오르다', '끓다'는 뜻이 있는'지드'(zid)동사의 사역 능동형 미완료형으로서 '주제넘게 행동하다', '건방지게 행동하다','방자하게 행동하다'란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거짓 예언자의 주제넘은 선포 행위는 하느님께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자기 속에 끓어 오르는 개인의 생각을 불쑥 내미는 행동이다.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권위를 세워 주제넘게 나서기 쉽다.
거짓 예언자는 부르심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권위를 부여받은 척하여 감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이다.
이것은 그 예언자 개인의 충동적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의 악한 영들에 의해 영향받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탈출18,11; 예레23,9~32; 에제13장). 뿐만 아니라 이러한 태도의 배후에는 종종 사람들 기쁘게 하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 (이사30,10~11; 예레14,14~15; 미카2,11; 3,11).
오늘날 교회에 이 문제를 적용해 볼 때,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전하는 자들에게 매우 중대한 경고를 주고 있다. 강론 때나 강단에 섰다고 해서 모두 참된 설교자나 강사가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세우신 자만이 참된 설교자요, 강사이다.
따라서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들은 날마다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인간적 생각을 전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풀어 전하는 거짓 예언자가 당할 최후는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신명13,6).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이사50,4)
하느님께서 아침마다 열어 주시고 입과 귀에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 영적으로 궁핍하고 갈증을 느끼는 자들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런 일에 소명을 받은 자가 오늘 날 하느님의 말씀을 맡은 봉사자로서 바른 자세를 갖춘 사람이다.
[연중 제4주일]
오늘 그분의 피로 죄가 씻기는 새로운 권위,
그 새 계약으로 예수님의 몸(성체)을 먹었는지,
(신명18,15-20)
15 모세가 백성에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 인간이 직접 하느님을 만나면 죽는다. 빛이 밝혀지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17 그러자 주님(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
= 모세와 같은 예언자- 예수님이시다. 모세는 어둠의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끈 구원자이고, 예수님은 세상(땅)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구하시어 빛이신 당신 안에 품으시고 하느님께로 이끄시는 구원자인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말씀을 입에 담고 오신 것이다.
(요한5,43-45)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인간의 뜻)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하늘의 의로움을 깨닫기 위한 열성이 아닌 자기 의로움을 위한 열성으로, 하느님의 영광 곧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은 추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믿겠니.’ 하신다.(로마10,1~참조)
사도는 이렇게 전한다.
(로마10,5-7) 5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 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7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 인간의 의로움은 땅에서만 통한다는 것이다. 대속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 그 말씀을 믿으라는 것이다.
(로마10,8-10) 8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요한5,46-47)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구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 구약의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라는 것이다.
(요한5,39-40)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 하늘의 생명보다 땅의 목숨, 곧 세상의 영광이 더 좋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 신앙인들이 그 세상의 것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19 하느님께서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공동번역 19 그가 내 이름으로 하는 말을 전할 때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친히 그에게 추궁할 것이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오셨다.(요한5,43)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만 하셨고, 하느님의 일만 하셨다. 당신의 뜻으로 한번도 없으셨다.(요한8,28 12,49 14,10외 참조)
20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의 말, 인간들의 계명으로 전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늘의 의로움인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가 아닌 인간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여겨 열성을 부리게 한다.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당신의 이름, 아버지의 뜻이 아닌 다른 이, 곧 세상 인간의 뜻, 그 자기 이름(뜻)으로 오면 기쁘게 받아 드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며 서로 높은 평가로 칭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자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그 자기 생각, 사람의 뜻을 죽이고, 否認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고집하면 하느님께서 혐오(嫌惡)하신다.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자신의 영광, 의로움, 안위를 위해 열심을 부리는, 그래서 예수님의 영광, 곧 십자가로 받는 의로움(새로운 권세, 새 계약)과 상관없는 신앙이 오늘 복음의 가파르나움(자기를 위한 고을, 성전)의 더러운 영(말)이 들린 사람이다.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새 계약, 그 말씀을 받지 못하고 인간들의 계명, 법으로 받아 죄의 용서를 몰라 죄의식과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인 것이다. 나의 신앙이 십자가의 복음(새 계약)으로 이루어 졌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로마8,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 곧 주님의 십자가로 용서받아 의롭게 된 이는 척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의로움에 의한 인간의 자기 의로움이 나온다는 것이다.
(갈라5,13)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 그렇다고 그 자기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은 아니다. 사람의 의로움은 지키려다 세상의 돈(명예, 칭찬)에 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주님의 十字架, 그 福音을 믿어 받는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은총이신 성령님! 하늘의 물, 하느님의 새 계약, 그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 깨닫고 믿어 구원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연중 제4주일 복음(마르1,21ㄴ~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5~26)
마르코 복음 1장 24절에서 더러운 영이 예수님께 대하여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나자렛이 예수님의 출생지는 아니지만, 유년 시절을 보내신 곳이므로 실질적인 출신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나자렛은 유대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므로(요한1,46), 더러운 영이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인 카파르나움에서 사람들 앞에 예수님을 그렇게 부른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리고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에 해당하는 '티 헤민 카이 소이'(Ti hemin kai soi; what do you want with us)를 직역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이다.
말하자면 예수님과 더러운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더러운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우리','저희'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는데, 더러운 영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서 말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러운 영이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악한 영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는 표현은 악한 영들이 내용적으로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며 자신을 방해하는 투의 설의적 형태의 문장이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던 악한 영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멸망시켜서 사탄의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고통 당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2,10; 1요한3,8).
그리고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ou theou; the Holy One of God)는 마르코 복음 1장 23절의 '더러운 영'에 해당하는 '프뉴마티 아카타르토'(pneumati akatharto; an evil spirit; an unclean spirit)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잠언1,7; 야고2,19).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여기서 '꾸짖으시니'이 해당하는 '에페티메센'(epetimesen; rebuked)의 원형 '에피티마오'(epitimao)는 '엄하게 경고하다','책망하다'는 뜻이다.
당시에 마술사들은 독특한 도구를 사용해서 주술적 행위를 하여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시늉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당신 자신의 말씀의 권위를 사용하셔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구마행위를 하시는 예수님의 선포는 '조용히 하여라'와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는 두 가지 명령으로 나눌 수 있다.
'조용히 하여라'는 첫번째 명령은 더러운 영이 이미 알고 있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발설을 엄하게 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전에 미리 알려지면, 사람들에 의해 정치적 메시야로 옹립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지장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용히 하여라'에 해당하는 '피모테티'(phimotheti; he quiet; hold your peace)의 원형 '피모오'(phimoo)라는 단어가 '입에 재갈을 물리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까지 그 함구령이 얼마나 비밀스럽게 지켜져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나가라'에 해당하는 두번째 명령은 직접적으로 '치유 행위'와 관련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항변하는 더러운 영을 잠잠케 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이어서 더러운 영에 들려 고생하는 부마자로부터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구마 행위를 하신다.
여기서 '나가라'에 해당하는 '엑셀테'(ekselthe; come)의 기본형은 '에르코마이'(erchomai)인데, 앞에 '안으로'에 해당하는 '에이스'(eis; into)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들어가다'는 뜻의 '에이세르코마이'(eiserchomai)가 되고, 앞에 '밖으로'에 해당하는 '에크'(ek; out of)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나가다'라는 뜻의 '엑세르코마이'(ekserchomai)가 된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 1장 21절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에 해당하는 '에이셀톤'(eiselthon; he entered)과 마르코 복음 1장 25절의 '나가라'에 해당하는 '엑셀테'(ekselthe; come)가 대조가 되어, 예수님께서 '회당 안으로 들어오심'이 더러운 영의 '회당 밖으로 (사람 밖으로) 쫓겨남'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들어 오심과 더러운 영의 쫓겨남 사이에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의 선포가 놓여 있다(마르1,22).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자로서의 신적 능력과 권세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은 자신의 지혜에 근거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거주하던 사람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당신의 장면을 '경련을 일으켜 놓고'에 해당하는 '스파락산'(sparaksan; had torn; shook violently)과 '(큰 충격에 의한) 큰 소리'에 해당하는 '포네 메갈레'(phone megale; with a shriek; with a loud voice)라는 두 단어를 사용해서 더러운 영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아래 저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시각과 청각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더러운 영이 자신이 머물렀던 사람에 대해서 행하는 최후의 학대 장면인 경련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면서도, 그가 내지르는 죽음에 이르는 듯한 비명과 통곡의 소리를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더러운 영의 극한 상실감과 마지막 저항을 묘사했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안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만의 독특한 표현인데, 사탄의 세력의 완전한 패배를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2024년 01월 28일 일요일
[연중 제4주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율법 학자들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율법 조항에 근거하여,
“악령에 들렸으니 저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고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분 짓고,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을 구분 짓는 것, 이것이 율법 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권위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 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율법 학자들과 달리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는,
당신 말씀이 악의 지배를 받는 자들까지도 구원으로 이끄는 힘을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이 말씀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던 악을 떠나가게 만든 것처럼,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악의 지배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다시 생명의 빛을 바라보고,
이렇게 살아온 나 또한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게 합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듣게 되는 복음 말씀 안에는 악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권위가 담겨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여 줄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여러분을 악에서 구원하여 줄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면서도 구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엄청난 권위가 담겨 있는 복음 말씀이 나에게도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미사 때마다 듣게 되는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있는지,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
하느님의 ‘말씀’을 담는 성전이 되자
복음(마르1,21-28)
21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 헛된 안식(일)을 사는 카파르나움에 급하게 올바른 안식(安息)을 위한 가르침을 주신 것인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 성전(聖殿)이라는 뜻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계약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로움을 거저 전가(傳家)받아 모든 죄(罪)가 씻겨 쉼, 안식(일)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뜻, 안식을 위한 성전, 신앙이 아닌,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안식에 이르려, 곧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뜻을 이루기 위해)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삶이 카파르나움이다. 그 카파르나움의 삶은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하는 교만(驕慢)의 죄(罪)다.
(루가10,15)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로마3,20)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 예수님께서 율법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참 안식을 위한 가르침을 주셨기에 사람들은 하늘의 권위를 느꼈던 것이다. 카파르나움(신앙)은 참 안식(安息)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거짓으로, 고침을 받아야할 거짓(더러운) 영(靈)의 말이 들린 것임을 오늘 보여주심이다.(2코린11,13-15)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24ㄱ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 맞다. 예수님은 스스로 안식을 누리려는, 곧 자신의 뜻을 위해 안식(安息)을 지키려는 그 교만(驕慢)으로 높아진, 거짓말이 들린 카파르나움을 부수시러 오셨다. 그래야 그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자비(慈悲)다.(루가1,51-55)
24ㄴ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거룩하신 분과 한 몸이 되지 못하고, 내 밖에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섬기는, 그 분리의 신앙(信仰)을 산다면 예수님과 나는 상관(相關)없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나)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곧 우리의 거룩을 위해 우리의 죄(罪)로 죽으러 오셨다.
그래서 마르타처럼 사람의 뜻(안식)을 위해 섬김의 열심(熱心)한 종교(宗敎)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안식)을 깨닫기 위한 삶, 말씀을 열심히 듣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
(루가10,42)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1테살2,13) 13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 진리(眞理)의 말씀이 거짓의 영으로 병들었던 사람에게서 그 거짓의 영을 쫓아내시고 살리신 것이다. 그것이 자비(慈悲)요 복음(福音)이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복음(福音)이 아닌 소문(所聞)으로 퍼져 나간다. 곧 보이는 대로 인간의 지각(知覺)으로만 보는 신앙(信仰)을 산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는 헛된 신앙을 사는 것이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이 신앙 생활(信仰生活)이다. 땅(세상)에서 하늘나라를 보는 것, 깨닫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로마1,18-20) 18 불의로 진리(십자가의 義)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 (에제28,6)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사랑)을 신의 마음(사랑)에 비긴다.
*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 하느님의 사랑, 지혜(智慧)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사랑, 지혜(智慧)의 삶은 신앙(信仰)이 아니다. 땅에서 끝나는 인간의 도리(道理)일 뿐이기에 구원자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1사무1,17-18)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 한나여!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福)되십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인간의 눈으로 보고, 말한 사제(司祭)의 말은 버리고, 그 사제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만을 붙들어 그 말씀과 하늘의 거룩하신 예수님과 하나되어 거룩(구원)이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