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일] “회개하여라” (마태3,1-12)

2022. 12. 4. 오전 7: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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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일 일요일

[대림 제2주일] “회개하여라(마태3,1-12)

  


인간 존중과 인권 신장은 복음의 요구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복음(福音)은 하나*

(갈라1,6-8)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독서<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리라.>(이사11,1-10)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화답송시편 72(71),1-2.7-8.12-13.17(7ㄴㄷ 참조)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니다.>(로마15,4-9)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복음<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 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대림 제2주일 제1독서(이사11,1~10)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6)

 

이사야 11장 3-5절에서는 주님을 경외함에서 우러나온 메시아 공의의 통치의 면모를 묘사하였다.

이제 이사야서 11장 6절이하 9절에서는 메시아 통치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신(新)세계적 평화의 나라를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단락은 신,구약 성경 중에서 매우 큰 사랑을 받는 본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들을 애송함으로써 고단한 삶 가운데에서 평화와 용기를 얻고 있다.

 

먼저 이같은 평화의 나라가 성취되는 시기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과 재림 사이 교회의 시간에 성취된다고 하는 해석이다.

이에 따르면 이 왕국은 교회와 동일시되며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교회에서는 원수와 싸움이 없고 평화와 사랑이 넘쳐나게 될 것임을 본단락이 예언한 것이 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성취된다고 보는 해석이다.

즉 이 나라를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뛰노는 세상이며, 젖먹이가 독사 굴 속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어도 아무런 해입지 않는,  생태계의 기본 원리인 천적 관계조차 사라진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신세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해석이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본단락의 묘사가 교회의 시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남아 있으며, 슬픔과 근심,걱정과의 싸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면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슬픔도 근심도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묵시21,4.5).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새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 예언서 11장 6절이하 9절의 예언은 교회의 시간에는 부분적으로 성취되다가 그리스도 재림 이후 완전하게 성취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메시아 왕국의 본질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왕국은 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실제로 새끼 양이 늑대와 함께 놀아도 해를 받지 않고, 사자 등 육식 동물이 옆에 있는 먹이조차도 물지 않는 세상이 된다.

즉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도 천적 관계가 없어지는 완전한 평화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 왕국은 영적인 나라인 것이다.

이 동물들은 인간의 다양한 영적 상태를 대표하는 것이 된다.

사나운 사람들, 압제적인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영적 세상에서는  가장 무력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서로 평화롭게 지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이 세상 가운데서 성령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가라지가 밀이 되듯이 악인이 변해 선한 사람이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시점을 메시아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시점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셋째, 이 왕국은 메시아 왕국에서 죄와 죽음의 모든 위험이 다 사라진다는 사실을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메시아 왕국의 실현 시기와 본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각각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해석의 가능성들을 열어 놓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이 단락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강생과 관련된 예언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 재림 이후 완전히 성취될 예언이며 영적인 현상에 대한 예언인 동시에 종말에 그리고 종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가운데 실제로 이루어질 예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예언은 이사야 예언서 65장 25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어 강조된다.

 

한편,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에 나타나는 첫번째 현상으로서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사는 것이 제시된다.

'늑대'(이리)  '제에브'(zeeb)는 매우 사나운 들짐승으로서 새끼 양이나 새끼 염소와 같은 연약한 동물들을 먹이로 삼는다(요한10,12).

늑대(이리)의 이러한 점은 스바이냐 예언자가 탐욕스럽고 불의한 판관들을 '이리'로 표현하였고(스바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은 마치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데서도 잘 드러난다(마태10,16).

 

또한 '새끼양'에 해당하는 '케베스'(kebes)는 아직 장성하지 않은 어린 숫양 의미한다(민수15,11).

이러한 '새끼양'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

그러나 이처럼 사납고 잔인한 늑대가 새끼양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천적 관계를 형성하는 이런 동물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러한 천적 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여기서 표범은 앞서 제시된 늑대와 동일한 이미지를 새끼 염소는 새끼 양과 동일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지내리라'에 해당하는 '이르빠트'(irbats)의 원형 '라바츠'(rabats)는  네 발 가진 동물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옆으로 드러눕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약육강식의 관계에서 서로 먹고 먹혀야 할 천적 관계에 있는 두 짐승은 한편은 먹기 위해 웅크리고, 다른 한편은 먹히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도피하고 도주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들 두 짐승이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 역시 메시아가 새롭게 창조하는 세상의 모습을 선명하게 묘사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어지는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라는 표현에서도 계속된다.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앞선 내용은 흉폭한 동물과 약한 동물,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천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함을 열거법을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이제 본문은 단지 짐승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짐승들과 인간들 사이에도 평화가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 가운데 가장 연약한 어린 아이가 초식 동물은 물론 사자나 표범 같은 사나운 육식 동물들을 몬다는 것 태초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1,28)고  축복하신 것이 다시 회복됨을 의미한다.

 

메시아가 통치하는 새 세상이 되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지만 그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파괴된 창조 질서와 섭리가 다시 완벽하게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어린 아이'에 해당하는 '나아르 카톤'(naar katon) 또 다른 측면에서 메시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어린 아이처럼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죄를 모르는 순수한 분으로서 죄와 무관한 새로운 세계, 죄를 청산하고 새롭게 조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지도자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7)

 

이사야서 11장 6절에 이어 7절에서도 암소와 곰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그것들의 새끼들도 함께 어울림을 묘사하고 있다.

원문에 보면 '곰'에 해당하는 '도브'(dob)는 여성형, 즉 암곰을 가리킨다.

잠언 17장 12절에서는 매우 사나운 짐승으로 '새끼잃은 암곰'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새끼잃은 암곰은 몹시 민감하여 새끼에게 다른 짐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통치하는 왕국에서는 이러한 동물의 본능까지도 변하게 될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다고 묘사된다.

'여물'(풀)에 해당하는 '테벤'(theben) 볏단을 말려 작두로 썬 짚을 지칭하는 것으로서(창세24,32),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집에서 기르는 소의 먹이이다.

육식을 하는 사자가 그 습성을 버리고 여물을 먹게 되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송곳니도 평범한 어금니로 변해야 하고 그 체질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차 메시아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이루어질 완벽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를 함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젖먹이가 독사 굴위에서 장난하며'  (8)

 

이사야서 11장 8절은 젖먹는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젖먹이의 피부는 유약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이처럼 유약한 아이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독사굴에 손을 넣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끔찍한 결과만이 예상된다.

 

그러나 본절에서 이사야는 그렇게 해도 전혀 해가 없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이것은 메시아가 통치하는 평화의 나라에서는 해를 받는 일이 전혀 없을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장난하며'에 해당하는 '웨쉬아샤으'(weshyashah) 원형 '샤아으'(shaah)는  어린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이사66,12).

이것은 세말에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따른 놀라운 변화, 제한없고 완전한 평화의 구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선명하게 확증하고 있다.

 

한편 이처럼 젖먹이, 젖뗀 아이가 아무런 염려도 없이 독사굴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이러한 일은 독사의 이빨이 빠지고, 그 독이 완전히 제거된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독사의 이빨이나 독은 악의 요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메시아를 통해 구현될 새로운 세계에서는 악의 요소가 자취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20221204일 일요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인간 존중과 인권 신장은 복음의 요구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

(갈라1,6-8)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마태오 복음 1-2장이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3장의 시작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도록 파견된 예언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공적으로 처음 등장하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이 먼저 등장하는데,

이러한 이야기 순서는 그의 위치와 역할을 설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등장을 묘사할 때 같은 그리스 말 동사 파라기노마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31절에서는 나타나다, 313절에서는 찾아가다라는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예수님과 맺어진 관계에서 설명될 수 있는 세례자 요한의 신원은 같은 복음 선포 문구의 사용으로 추가로 증명됩니다.

32절에서 사용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417절에서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선포됩니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설교의 중심에는 하늘나라가 있었고, 그는 하늘\ 나라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회개를 제시하였습니다.

35-6절과 7-8절에 묘사된 두 개의 예시는 세례자 요한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첫 번째 사례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에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찾아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곧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꾸짖으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경고합니다.

첫 번째는 긍정적 예시를, 두 번째는 부정적 예시를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선포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입니다(교황청 경신성사성, 강론 지침[Homiletic Directory], 2014. 6.2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2015], 90항 참조).

세례자 요한은 부름받은 백성또는 선택된 백성이라는 사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 곧 죄의 상태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심과 실천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어떻게 주님의 길을 잘 닦을 것인가? -회개, 위로, 기쁨-2017.12.10. 대림 제2주일


본능대로 살지 아니하고

 

찬미 예수님 , 사랑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태초부터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흔들렸지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시간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숨, 영을 불어 넣어주신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보면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쩌 가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이사11,6-7).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사자나 늑대는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있고 난폭합니다. 양과 염소, 송아지는 그들의 먹이가 됩니다. 더군다나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말씀은 사자나 늑대가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제 본능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난폭한 습성을 버리고 오히려 양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36,26).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 이루어졌느냐 하면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다음 수 백 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는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신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삶이 변했습니다. 몸을 파는 창녀가 제 습성대로 살지 않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왔을 때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 둘 다 떠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는 더러운 습성을 버리고 주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

 

 사납게 굴던 마귀들린 사람이 예수님의 한마디로 온순하게 되었고, 남을 등쳐먹던 세리 자캐오가 자기습성이나 본능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네 곱절로 갚았습니다. 서로 미워서 등진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 죽었던 나자로가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고 때로는 기적을 행하시며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은총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능이나 습성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놔두고 그야말로 삶의 터전을 떠나 기꺼이 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본능적으로 살았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박해하고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가 “나는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 달리고 있습니다.” 하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린 강도도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낙원에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20).하고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본능대로 살지 않고 악습대로 살지 아니하며 잘못된 것을 버리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의 못된 습성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눈을 뜨고 양치질을 하면서 컴퓨터를 켜는 겁니다. 그리고는 뉴스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더라고요.

아침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기도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성경을 읽으면서도 한눈으로는 컴퓨터에 눈이 가있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미사 봉헌, 아침기도를 끝내기 전에는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잠자기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는 강론 테이프를 듣다가 자든지 묵주기도를 하다가 자든지 했는데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는 겁니다. 자다가 깨보면 텔레비전이 켜있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자기도 모르게 좋은 것을 잃어버리고 나쁜 습성에 젖어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나 코미디프로를 볼 시간은 있어도 성경을 읽을 시간은 없습니다. 더더욱 좋은 시간을 마련하여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전에는 밤에 자다가 깨면 ‘조금 더 자야 하는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깨워주셨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새벽 3시가 되었든 4시가 되었든 성당에 갈 때도 있고, 성모자상 앞으로 갈 때도 있고.. 그리고 또 졸리면 잡니다. 어찌 되었든 좋지 않은 습성을 바꾸어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얘기를 하면 그래도 봐 줄 수 있는데 남 얘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남이야 상처를 받건 말건,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온갖 것을 다 떠벌립니다. 그것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진실성은 사라지고 자기 본능대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요.

 평상시에는 저는 말 주변이 없어서하고 꽁무니를 빼던 사람도 남 을 흉볼 때는 어찌나 그리 말을 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주님을 영접하려면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사자와 늑대, 표범이 사나운 입을 다물고 새끼염소나 송아지와 함께 지내듯 사나운 입을 다물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 신부님께서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들으셨기에 저런 말씀을 하실까? 누굴 두고 하는 말씀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누굴 두고 하는 얘기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자기영혼의 상태를 비추어 보고 고칠 것을 고치면 되는데 남에게 먼저 관심을 두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쓰고 싶은 대로 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폭음과 폭식을 하고는 탈이 나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요, 사촌이 땅을 사서 배아파하는 사람도 있고 시기와 질투로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보다 더 넓은 땅을 사면됩니다. 그런데 노력은 하지 않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마음이 있다면 오늘 그 본능적인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회개한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사도 26,20)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나의 좋지 않은 습관, 삶의 태도를 한 가지라도 바꿀 수 있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 3장 10절에는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 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도끼가 뿌리에 닿아있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은총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내일로 미룰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지금 좋은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선을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좋은 열매를 맺어 주실 것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속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마태3,12). 하셨으니 여러분은 부디 알곡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두 번째 대림초에 불이 당겨졌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밝아 졌기를 희망하고 준비된 마음 안에 아기 예수님을 낳아드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콜로새서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사제 -반영억라파엘-



마태3,1-12 <세례자 요한의 설교>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 에서 2 '회개하여라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선포하였다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4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그 때에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각 지방과 요르단강 부근의 사람들이 다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 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닥쳐 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9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하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말아라사실 하느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12 그분은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대림절은 전통적으로 준비의 절기이다여러 세기(世紀동안 교회는 그 해의 일상적인 일들을 젖혀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의 깊은 의미에 대해 숙고(熟考)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우리가 의도적으로 예수의 탄생을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약속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을 때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기쁨은 우리를 혼란스럽게만 할 것이다.


교회의 전통적인 대림절 관습은 현대 문화와 긴장 관계 속에 있다세속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사회의 리듬은 교회의 절기를 대치했다그런 사회에서 크리스마스를 위한 준비는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전등을 달고흥을 돋우는 명절 음악을 듣고사고 싶은 수많은 상품들을 응시하는 것이다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 마음속에서 마술과 같고 유아적인 경이와 선의가 솟구쳐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하느님의 약속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세운 이상과 소망(所望)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준비하라고 한 것과 얼마나 다른가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하느님의 약속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게끔 한다세례 요한은 우리에게 명절 분위기에 취해있지 말고자신을 살펴보라고 요구한다우리는 물질적인 어떤 것을 주거나 받는데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며 낙타 털 옷을 입은 요한은 거의 코미디 속 인물 같지만그의 메시지는 신랄(辛辣)하다. '회개하여라하늘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悔改)는 오늘날 많은 신자들에게 혼란스러운 개념이다그것이 우리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는 것인가더 좋은 사람이 되기에 노력하는 것과 관련되나우리의 삶이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 뒤에 숨겨져 있어도 우리가 여전히 회개를 해야 하는가어떤 신자들에게 회개에 관련된 표현은 죄책감과 자괴감을 각인시키고밀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하느의 심판에 관한 공포를 환기시킨다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하느님의 분노(忿怒)보다 하느님의 자비(慈悲)를 경험할 것이라는 게 과연 확실한가.’라는 질문이 절박하게 제기된다.


세례자 요한과 대림절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회개는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삶에 맞춰 다시 올곧게 해주시기 원한다는 사실과 관계된다는 점이다회개는 우리의 죄의식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변화시킬 하느님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요한의 이상한 옷과 거친 말들은 복음의 충만한 의미를 소통케 하는 필수적 요소이다성탄절과 관련된 따뜻하고 환상적 느낌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육신(肉身)을 입으면서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에 관한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태오는 우리의 시야를 확장하기 위해 몇몇 중요 이미지들을 사용한다중 하나는 광야(廣野)이다요한은 광야에서 가르치며 광야에서 외친다광야는 동시에 기쁨과 고통으로 점철된 이스라엘의 역사적 체험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속박에서 해방해 광야로 이끌었으나 사람들은 하느님이 거기서 죽도록 그들을 데려왔다며 두려워했다그들은 광야에서 하느님에 대항해 죄를 지었고 배반했으나 또한 거기서 하느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

교회에서 대림절 절기를 지킬 때도 이와 유사한 역동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각각을 속박으로부터 건지셨고우리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기억하며 그것을 확인할 것이다신자(信者)의 삶에서도 방황의 시간이 있기에 광야 시절의 망설임과 반항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광야에서도 하느님은 앞서서 갈 길을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마태오의 두 번째 중요 이미지는 세례(洗禮)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죄를 고백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요한이 말하듯이 이 세례는 앞으로 있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에 의한 더 완전한 세례를 지시하고 있다.

이 새로운 세례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우리의 결단에 관한 상징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왜냐하면이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하느님께서 우리 삶 전체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하느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림절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우리는 세례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정체성을 기억하고 확인하면서 회개한다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부활했으며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 다른 중요 이미지는 하느님의 심판과 분노를 환기시킨다도끼는 나무뿌리에 놓여있다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나무는 불에 던져질 것이다그리스도는 곡물(穀物)을 타작할 키를 가지고 있다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마태오는 하느님의 나라는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그 세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운행되지 않는다인간의 이상과 갈망은 그 핵심부터 뒤집힐 것이다또한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의 약속과 필수적으로 관련지어져 있다낡은 것은 지나가고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것이 온다.

이와 비슷하게 대림절 기간에 교회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최종적 권위를 갖지 못하며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희망으로 산다는 것을 믿고 확인하면서’ 깊은 회개를 한다.


대림절이 교회에 요구하는 준비와 마찬가지로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한 준비는 자정(自淨)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우리와 세상을 정화하신다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 신뢰(信賴)’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약속을 상기함으로 이런 신뢰가 자라고이 세상을 위한 신실한 섬김을 통해 그것이 확증된다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기억하고 확증하게 해 주고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특별한 기간이다.


대림절의 본래의 뜻을 되새기는 것은대림절 찬송과 크리스마스 캐럴의 차이가 무엇인지 배우거나오래된 대림절 단식의 전통을 되살리거나심판과 정화에 관한 주제를 중심으로 대림절 성서정과에 따라 기도하는 등의 작은 실천에서도 시작된다.

이런 대림절의 신앙 훈련은 우리로 마침내 그 날이 왔을 때성탄절의 기쁨과 환희(크리스마스 전등음악선물을 포함하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줄 것이다그러나 대림절 기간의 준비에는 다른 것도 포함된다그것은 성탄에서 비롯된 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가 정말 코앞에 다가왔다고 확신하며 사는 인생을 미리 연습하게 한다.


-대림절은 새로운 시작일 뿐만 아니라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대림절 둘째주일에 여기에 초점을 두었다세례자 요한은 한 발은 끝을 맺는 구시대에 올려 두고다른 한 발은 새로 탄생하는 새 시대에 올려 두었다사무엘과 마찬가지로 세례자 요한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한 시대와 다른 시대를 잇는 역할을 했다.

세례자 요한에 관한 마태오복음의 자료는 마르코복음과 Q자료(마태와 루가에서 발견되는 말씀자료들)에서 온 것이다마태오 설화의 원 자료들을 일별해 보는 것이 그의 문단 구성을 밝혀줄 것이다. 1-2, 4-6, 그리고 11절은 마르코복음에서 온 것이고, 3,7-10, 그리고 12절은 Q자료에서 온 것이다.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세례자 요한의 예언자적 증언과 광야생활(1-6) 2)기득권적 구세대에 대한 심판 선언(7-10) 3) 예수에게서 오는 새로운 희망(11-12). 각 부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6절에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대 세계에선 권력이 신전과 궁전이 있는 중앙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중앙도시에는 공물과 다른 직접 간접세를 거두어들이는 관료체계가 있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갖길 원하거나 하길 원할 때 중앙도시로 여행하게 된다변방에서 중앙으로 오지 중앙에서 변방으로 가지는 않는다.


광야와 변방의 모호한 예언자를 묘사함에 있어 세례자 요한은 변방(邊防)에 남아있고중앙에서 그를 찾아온다본문에는 예루살렘(중앙도시)과 온 유대와 요르단 강 부근(예루살렘 통치하에 있는사람들이 다 요한에게로 왔다고 했다물론 유대라는 것은 과장법이지만요한의 놀라운 영향력의 범위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변방인 유대 광야에서 로마제국이나 속국인 헤로데안티파스의 왕국과는 근본적으로 다 fms(자동시스템왕국의 도래를 선포하고 있다광야(eremia)는 유대 역사에서 율법이 주어진 갱신의 장소요강퍅한 세대가 믿음이 없어 멸망하는 심판의 자리이다이사야40,3은 마태오가 제2이사야에 깊이 새겨진 새 창조와 새 탈출의 주제를 원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기에 마태오에게도 광야는 심판과 구원의 자리가 되었다.


-세레자 요한은 예언자의 목소리와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을-세례-수행하는 예언자로서 분명하게 묘사된다그는 광야에서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누군가의 필요성을 선포하는 제2이사야의 전통에 서있다.

요한의 말은 그의 상징적 행동만큼 중요하다이사야서를 인용한 바로 뒤에 요한을 엘리야와 같이 묘사한 것(왕하1,8참조)에 주목하자요한은 이사야와 같이 중앙과 연계되어 있는 예언자가 아니었고 변방에 살았다그의 음식은 가난한 자의 음식이었고(들 꿀은 그의 발견한 꿀이었다), 그의 옷은 베두인들이 입는 낙타털옷이었다.


-이 강한 금욕적 예언자는 칭송받았고복음서 전통에 따르면 그의 세례는 하늘에서 온 것으로 여겨졌다(마태21,23-37). 변방에 산다고 요한이 변방화 되지는 않았다도리어 당시의 현실 이슈에서 예언자적 거리두기를 제공했다아마도 요한은 그의 선포와 세례줌을 통해 경계를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가 그의 예언자적 증언이 중심인 예루살렘과 유대성전에서 온 권력자들에게 어떤 도전을 주었는지는 아는 것은 쉽지 않다요한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는데이것은 보통 대제사장과 제사장 직분자들이 지배하는 성전과 제사제도에게 맡겨진 구원적 행위였다.


-7-10절에서 우리는 만약에 변방의 예언자가 중심으로 오지 않으면 중심에서 변방으로 그 도전의 심각성과 제기하는 위험을 평가하러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많은 것이 전치사(epi)의 의미에 달려 있는데세례를 받으러(for)오거나 또는 세례에 반대하여(against) 오거나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후자의 의미로 읽는 것이 전자보다 문맥에 맞을 것이다.

바리사이파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정결문제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으로 자신들을 지배계급(평신도와 사제계급 공히)의 한 분파로 세움으로써 그들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비록 바리사이인과 사두개인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달랐지만 요한이 그들의 이해에 위협이 된다는 것에는 인식을 같이 했는데 특히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주장함으로써(마태21,25-26) 성전의 영향력 범위를 줄이려는 시도에 대해서 그러했다.


-그들의 반대는 또한 그들이 나타났을 때 요한이 즉각적으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여줌을 잘 설명해 준다요한은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반대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말로 공격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공격했다이미지는 매우 강하다. “독사의 자식들아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뱀은 부정한 동물인데 요한은 여기에 상처 주는 모욕까지 더했다.

요한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특별한 지위에 호소하려는 것을 또한 공격했다그 호소는 내부자(아브라함 자손과 계약 공동체의 엘리트)와 외부자(요한의 광야공동체)를 규정하려는 시도였고이 본문에서는 그들이 내부자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심판의 여러 복합적 이미지로(도끼로 찍고쭉정이 키질불속에 때울 것, 10,12), 희망으로(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깨끗이 한다.11-12) 대응한다불은 심판과 희망과 연관된다는 것에 주목하자본문은 대전환을 바라보고 있다광야를 통해 길을 찾음으로서만 도달할 수 있고 심판을 통해 희망을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의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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