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 (루카19,1-10)

2022. 10. 30. 오전 7: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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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일 일요일

[연중 제31주일]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 (루카19,1-10)


   



1독서<주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십니다.>(지혜11,22-12,2)

22 온 세상도 당신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습니다.

23 그러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 주십니다.

24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5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26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12,1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주님, 당신께서는 탈선하는 자들을 조금씩 꾸짖으시고 그들이 무엇으로 죄를 지었는지 상기시키며 훈계하시어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화답송시편 145(144),1-2.8-9.10-11.13ㄷㄹ-14(1 참조)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2독서<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2테살1,11-2,2)

11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12 그리하여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2,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1-10)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2022년 10월 30일 제2독서 (2테살1,11─2,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2,1~2) 

 

테살로니카 후서 2장 전체는 본 서간의 본론부인 1장 5절~3장 15절의 연속 부분으로서 당시 신앙 생활 가운데 가장 혼란스러운 문제였던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오해를 시정하며, 그들에게 재림의 징조와 심판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질 것을 교훈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사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망라해서 본장만큼 재림 전(前) 적 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하여 상세하게 다룬 곳도 없다.

 

세상의 종말에 이루어질 일을 제시하는 본장은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하므로 해석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며, 어떠한 해석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테살로니카 후서 2장에서 테살로니카 교인들에게 교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때 성도들이 그분앞에 모이게 되는 일에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 '재림'에 해당하는 '파루시아스'(parusias)의 원형 '파루시아'(parusia)  원래 고대 사회에서 왕이나 황제 등 통치자가 지방 도시를 방문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황제의 방문을 받은 주민들은 그의 방문을 환호하면서 모여들어 축하 행렬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를 나타내는 '파루시아'(parusia)라는 용어가 신약에서는 거의 대부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24회의 용례 중에 17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고 있으며, 17회 중에서 7회가 테살로니카 전,후서에 집중되어 있다.

 

한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천사들이 선택받은 모든 성도들을 그분 앞에 모을 것이다(마태24,31).

 

테살로니카 후서 2장 1절에서 '그분께 모일 일'에 해당하는 '에피쉬나고게스 에프 아우톤'(episynagoges ep' auton)은 성도들이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가까이에 모여드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에피쉬나고게스'의 원형 '에피쉬나고게'(episynagoge)는 본절 외에 예배의 목적으로 모이는 것을 지칭하는 용례로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 단 한번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이 명사의 동사형은 8회나 사용되었으며, 특히 마태오 복음 24장 31절에서는 재림의 날 천사들이 선택하신 자들을 순식간에 모으는 것을 나타내는 용례로 사용되었다.

 

테살로니카 후서 2장 1절의 의미도 마태오 복음 24장 31절과 같은데, 즉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재림을 대망하던 성도들간의 만남을 말한다(1테살 4,17참조).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테살로니카 교인들로 하여금 마음이 흔들리게 하고 불안하게 한 핵심 내용이다.

여기서 '왔다고'로 번역된 '에네스테켄'(enesteken)은 현재 존재해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에니스테미'(enistemi)의 완료형이다. 그러니까 '이미 와 있다'(has already come)라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8장 38절과 코린토 전서 3장 22절에서 '에니스테미'(enistemi)의 완료형이 현재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즉 거기에서 '에니스테미'의 완료분사 '에네스토타'(enestota)는 장래 일이라는 의미를 지닌 '멜론타'(mellonta)와 대조적으로 '현재 일'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통해 주님 재림의 날, 심판의 날이 이미 도래했다고 오해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박해와 환난이 너무 심해서 최후 종말의 산통 (the eschatological birth pangs)이 이미 시작되었고,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이 세상에 오시는 주님의 날이 이미 도래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들은 '너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이미 이르렀지만 너희가 인식하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들 중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님의 날이 이미 도래하였다고 믿어 동요하거나 두려워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여기서 '마음'이라고 번역된 '노오스'(noos)의 원형 '누스'(nous)는 마음 중에서도 지각하고 이해하는 기능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즉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성, 정신을 의미한다.

 

또한 '흔들리거나'로 번역된 '살류테나이'(salleuthenai)의 원형 '살류오'(salleuo) 심하게 흔들어 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며, 여기서는 수동태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쉽사리'로 번역된 '타케오스'(tacheos)는 '속히','빨리','경솔하게'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이다.

 

따라서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라는 표현은 밖에서 일어나거나 유포되고 있는 어떠한 사실을 여과없이 쉽게 받아들여 이성(理性)이 갈피를 못잡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당시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모습을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0221030일 일요일

[연중 제31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는 세관장이었습니다.

세관장으로 번역된 그리스 말 아르키텔로네스가 당대의 세금 징수 체계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세리들 가운데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 제국의 이익을 위하여 이스라엘 동족들을 착취하던 세리들은

온갖 미움과 멸시를 받았고 죄인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 세리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자캐오는 특히 죄인 중의 죄인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부자였습니다.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였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예리코 사람들 사이에서

자캐오는 그야말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았던 자캐오는 군중에 가로막혀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작은키는 마치 예리코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느꼈을 소외감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갈 자신이 없었던 그는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 예수님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입니다.

그런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거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이 말씀이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감히 자기 집에 초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던 자캐오가

이제는 얼른 내려와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사람들의 투덜거림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일어서서

보란 듯이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재산의 절반을 나누겠다고 까지 선언합니다.

이제 자캐오는 더 이상 소외된 자가 아닙니다.

그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서 결코 배제되지 않았음을 예수님께서 확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죄인으로 낙인찍힌 많은 자캐오가 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 자캐오에게 일어난 변화는 예수님의 접근에서 시작됩니다.

두려워하는 자캐오에게 먼저 말을 건네시며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듯이,

예수님께서는 다른 자캐오들에게도 먼저 다가가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구원의 길을 막아서는 자들이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구원 사업의 방해꾼이 아닌 협조자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우리의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31주일]

 

내려와야 만나는 용서(容恕)

 

복음(루카19,1-10)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네.” (1요한4,10) 로 알린다곧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나가고 계신 것이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 로마(세상)의 힘, 법(法)을 이용하여 부자(富者)가 된 세리(稅吏)들의 장이다. 얼마나 악착을 부렸으면 세리장(稅吏長)이 됐을까. 보든 이들도, 자신도 인정하는 죄인이다. 그래서 늘 죄책감(罪責感)에 시달려 살았던 것이다.

엄청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경험(經驗)이 있었다면 알 것이다. 자신의 처지(處地)를 알아줄,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그때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 군중(群衆)에 가려 볼수 없었다? 이 표현은 많은 사람(군중)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소원(所願), 뜻을 이루어줄 분로 알고 자신들의 생각, 길로 열심을 다해 따랐기에, 세관장(稅關長)은 자신의 사정, 죄를 없애주실 대속의 속죄(贖罪) 제물(祭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만날 수)가 없었음을 성경(聖經)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로, 속죄 제물로 죽으시고 구원을 주시는 그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진리의 포도나무와 반대인 구원(救援)을 주지 못하는 율법(律法)을 뜻한다. 그러니까 세관장 또한 율법으로 열심을 부려,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 표현(表現)이 ‘키가 작은이가 예수님을 앞질러 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얼른 내려오너라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 그게 ‘아니지’ 하신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얼른 내려와야 한다. 곧 자신의 죄(罪)를 없애주실 대속(代贖)의 구원자를 만나려면 율법(제사와 윤리)의 나무에서 얼른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律法)의 열심, 그 의로움은 용서(容恕), 구원(救援)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려오면, 부자(富者) 세관장(稅關長, 세리-죄인)이 아닌, 자케오(완성을 얻다)가 된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 로마, 곧 세상의 힘, 법으로 완성을 이루려했던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의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예수님을 용서(容恕)의 그리스도로 기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서, 구원의 진리(眞理)를 깨닫지 못한 군중은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삶을 어리석음으로 보기에~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주님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 네 곱절로, 직역하면 ‘넷으로~’ 곧 땅(4)의 구원을 위해 갚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세상)의 것을 위해 살았던 그 땅의 죄인(罪人)들의 구원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에서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살도록 노력(努力)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사랑이며 구원의 완성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브람과 맺으신 계약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가져 오라는 하늘(3)의 제물을 하나(1)로 완전(完全)하게 가져오지 않고, 사람(아담)의 본능대로 둘(2)로 나누어 반(半)으로 잘라 바쳤기에 죽음이 왔다.(창세15,9-12참조) - 말씀을 선(善)과 악(惡), 그 둘의 법으로 드린 것이다.

 

(창세15,17) 17 해가 지고 어둠(죽음)이 깔리자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죽음)들 사이로 *지나갔다.

= 횃불, 곧 불이신 하느님께서 쪼개놓은 제물, 그 죽음들 사이를 홀로 지나가심으로 죽어야할 아브람을 살리시고~

 

(창세15,18)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땅은 약속의 땅으로 하늘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아브람을 살리신, 그 구원의 계약(契約)으로 세관장(稅關長)이 살아났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이 예수님께서 예리고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홀로 죽음들 사이로 들어가시어 죽음들을 살리시겠다는 대속의 계약, 그 구원, 용서의 말씀을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군중)들이 여전히 선악(善惡)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사람의 규정(規定)과 교리(敎理), 그 법의 신앙(信仰)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구원이신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잃어버려 하늘의 용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죽음들 사이를 다시 지나가시게, 곧 대신(代身) 죽게 하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구원의 길로 십자가(十字架)를 지러 오신 것이다. 잃은 아들을 찾아서....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히브9,11)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하늘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땅의 것에서 일어나 완성된 하늘의 것을 향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1주일 복음(루카19,1~10)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2~4)

 

'자캐오'에 해당하는 희랍어 '작카이오스'(Zakcaaios; Zacchaeus)는 '순결한'(pure),'무죄한'(innoce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작카이'(zakai)에서 유래되어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캐오는 그의 직업이 당시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허가받은 도둑'인 세관장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세관장'에 해당하는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a chief tax collector)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아르코'(archo)와 '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명사 '텔로네스'(telones)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당시 예리코는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늘 머물러 있었고, 세관원들은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일이 세금을 징수한 게 아니라, 그곳 유대인들과의 임대차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고, 그들 세리(세관원)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세관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루카 복음 19장 2절에는 세관장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말한다.

'부자'에 해당하는 '플루시오스'(plusios; was rich, wealthy)라는 표현은 그가 단지 잘먹고 잘사는 정도가 아니고,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식민지 생활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것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그가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카 복음 19장 3절에 '그가 ~ 애썼지만'에 해당하는 '에제테이'(ezetei; he sought)는 '집요하게 찾아'라는 뜻이 있는 '제테오'(zeteo)의 미완료 능동태이다.

희랍에서 미완료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자캐오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 뒤에 '보려고'로 번역된 부정사 '이데인'(idein; to see)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 위해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캐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장애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환경적 장애로 말미암아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했음을 말해준다.

 

자캐오는 자신들을 경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죄도 용서해주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러한 외롭고 수치스런 상황에서 구원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자캐오는 가까이에서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 요인, 즉 수많은 군중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자신의 키가 작음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첫째로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인 예수님 보다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가'로 번역된 '프로드라몬'(prodramon; he ran)은 능동태 분사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더불어, 결단을 내린 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강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갔다'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and climbed up)는 자캐오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한편, 자캐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코모레안'(sykomorean; a sycamore-fig tree)는 루카 복음 17장 6절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뽕나무'; '모폰'; mopon)와는 다른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이집트 무화과 나무', '시카모어 무화과나무', '백뽕나무'로 불리는데, 잎사귀는 뽕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며, 가지가 사람이 올라가기 쉬운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2년 10월 30[연중 제31주일]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한 하늘나라의 모형(그림자)이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돌아오라고 잠시 주신 교육용 교재일 뿐이다.

 

복음(루카19,1-10)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죄인 세리들의 대표 세관장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높이 올라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인간의 뜻(방법)이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얼른 내려오너라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어둠의 집(나라)에 빛의 나라가 들어가심이다다른 말로 어둠(세상)적인 자케오()의 죽음이다그리고 하늘()로 다시 살리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주님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자케오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또 횡령했다면 곱절로 갚겠다는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인을 찾아 오셔서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로마5,15) 15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사실 그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희생그 큰 사랑으로 받은 구원이기에 너무나 감사해서 나오는 열매가 나눔인 것이다그 나눔 때문에 받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은총(은혜)으로 주시는 구원그 하늘의 선물을 깨닫고 믿기 위한 신앙으로 가야지자케오가 자신의 재물을 이웃과 나누겠다고 한 그 나눔을 실행하려 그리로 먼저 뛰면 안된다그것을 목적으로 하며 만족해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곧 과녁을 벗어난(하마트리아-것이다.

 

(로마9,10-16) 10 레베카가 한 남자 곧 우리 조상 이사악에게서 잉태하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하느님께서는 당신 선택의 뜻을 지속시키시려고, 12 또 그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당신께 달려 있음을 드러내시려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고 레베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 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하느님 쪽이 불의하시다는 것입니까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5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이루신다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이시다곧 구원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그분의 뜻방법으로 이루어지며 그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일이니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믿느냐믿지 않느냐의 문제 일 뿐이다믿지 못하면그는 구원이 이루어진 천국에서 지옥을 살게 된다.

 

1독서(지혜11,22-12,2)

22 온 세상도 당신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습니다. 23 그러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대속그 피의 새 계약으로 넘기심이다그리고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히브10,16-17)

 

24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5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26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12,1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주님당신께서는 탈선하는 자들을 조금씩 꾸짖으시고 그들이 무엇으로 죄를 지었는지 상기시키며 훈계하시어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아버지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뜻에서 이탈한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잘못된 삶에서 돌아오도록 이끌어주시어 자케오 처럼 자신이 스스로 오른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구원의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의 집에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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