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나병 환자 열 사람 치유 (루카17,11-19)

2022. 10. 9. 오전 9: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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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일 일요일

 

[연중 제28주일] 나병 환자 열 사람 치유 (루카17,11-19)

 

연중 제28주일



1독서<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2열왕5,14-17)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14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17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화답송시편 98(97),1.2-3ㄱㄴ.3ㄷㄹ-4(2 참조)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2독서<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2티모2,8-13)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연중 제28주일 제1독서 (2열왕5,14-17)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4)


열왕기 하권 5장 14절 계속적 '와우'(wau; and)와 미완료형 동사가 결합되어 동작의 연속적 진행과 함께 즉각적인 치유가 이루어졌음 보여준다.


여기서 '내려가서'에 해당되는 '와이예레드'(waiyered; then he went down)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아만이 엘리사가 있었던 사마리아 고지대로부터 저지대인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다는 것과 나아만이 자신을 낮추고 예언자의 말에 순종하였다는 의미가 동시에 내포된 것으로 본다.


또한 '몸을 담갔다'에 해당되는 '와이트뽈'(waitbol; and dipped himself)은 계속적 '와우'(wau)에 '파다', '파들어가다', '잠그다', '담그다'라는 의미를 지닌 '타발'(tabal)의 미완료형이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는 몸을 물에 완전히 적시거나(2열왕8,15), 물 속에 몸을 전부 집어넣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열왕기 하권 5장 10절에 나와 있는 엘리사의 명령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인데, 여기서 '웨라하츠타'(werahatstha)라는 명령형 동사를 쓰고 있다. '웨라하츠타'는 접속사 '와우'(wau)에 '씻다'라는 의미를 갖는 '라하츠'(rahats)의 완료형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라하츠'(rahats) 대신에 '타발'(tabal) 동사를 사용한 것은 나아만이 엘리사가 명령한 것보다 더 철저하게 몸을 씻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열왕기 하권 5장 14절의 표현은 나환자의 정결례 의식을 기록하고 있는 레위기 14장과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몸을 담그다'라는 의미인 '타발'(tabal)은 성경에 16회 사용된 단어로 주로 제사 의식이나 정결례 의식에서 피나 물에 몸을 담그는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또한 완전함을 나타내는 완전수로 레위기 14장 7절, 8절과 9절에 7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본문의 끝에 '깨끗해졌다'로 번역된 '와이트하르'(waithar; and he became clean)


계속적 '와우'(wau)에 '깨끗하다', '정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타하르'(tahar)의 미완료형이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계속적 '와우'(wau; and)가 사용된 것은 나병에 걸린 나아만의 흉측한 피부가 마치 어린 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된 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근 직후에 바로 단번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순간적인 변화는 나아만 뿐만 아니라 그 일행들에게도 매우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타하르'(tahar)는 병의 치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실 이 단어는 제사 의식이나 정결례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며, 레위기 14장 4절, 7절, 8절, 9절, 11절, 14절, 18절, 19절, 25절, 29절, 31절, 48절, 53절 등에 나타난다.


그리고 레위기 14장 문맥에서 '타하르'(tahar)는 단지 '깨끗하다'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열왕기 하권 5장 14절에서도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열왕기 하권 5장 14절과 레위기 14장과의 결정적 차이점은 열왕기 하권 5장 14절이 치유 절차의 묘사이지만, 레위기 14장은 병이 완쾌된 후에  행할 정결례 의식 절차에 대한 묘사하는 점이다.


이를 통해 엘리사는 단순히 나아만을 육적으로 치료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아만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데 근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간략해 보이는 치유 기사를 통해 신학적, 신앙적 메시지를 찾아본다.


먼저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령대로 요르단강(yordan)으로 내려갔다(yered). 나아만이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는 모습 속에서 그의 겸손을 볼 수 있다.


앞에서 그는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제는 요르단 강 물 속에 자신을 완전히 담글 정도로 내려갈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일곱 번 반복한다.


이처럼 내려감을 의미하는 '야라드'(yarad)를 어근으로 하는 두 단어는 철저히 겸손해진 그의 상태를 반영해 준다.


아울러 성경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주로 죽음을 상징한다(시편69,2~3). 따라서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옛 생명이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상징해 준다.



또한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에 순종한 결과 그 살이 '어린 아이'(naar qaton; 나아르 카톤; a little child)처럼 되었다. 


이것은 앞에 있는 '어린 소녀'(2열왕5,2~3)를 상기시켜 준다. 그 소녀는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과 순종을 갖고 있었다.


이제 나아만도 이러한 어린 아이가 되는 변화를 경험한다. 즉 그도 순종과 그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를 통해 어린 소녀가 가졌던 믿음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외형적으로 나아만의 살은 어린 아이의 살처럼 회복되었다 ('야샤브'; yashab; came again; was restored).


그리고 나아만은 이같은 회복을 체험한 후에 엘리사에게 '되돌아'온다(2열왕5,15). 성경에서 '돌아옴'을 의미하는 '슈브'(shub) 동사는 대부분 영적 회심을 수반하는 특징을 갖는다.


즉 나아만은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모두 하느님께 돌아오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아만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치유를 받았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왕과 장군의 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였고, 권력과 용기와 재물의 길에서 믿음과 순종과 은총의 길로 돌아와 생명과 구원을 받았다.


'나귀 두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17)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흙을 요구한 것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이 흙을 가지고 나아만은 자국으로 돌아가 제단을 쌓으려 했다는 견해가 있다.

 탈출기 20장 24절에서처럼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모세 율법에 따라 번제단을 쌓고 주님께 희생 재물을 바치려 했던 것이다.


두번째로 나아만이 흙을 요구한 것은 그 흙을 아람 땅 적당한 곳에 뿌려 그곳을 성역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거룩한 흙을 한 장소로부터 다른 장소로 옮기면, 그 옮겨진 장소까지 거룩해 진다는 것은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의 일반적 사고이기도 하다.


세번째로 자신이 받은 축복을 기념하며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흙을 가져가려고 했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며, 나아만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서 상호 보완을 해준다고 본다.


한편 굳이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려한 나아만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연약한 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나아만은 아직도 당시의 지역신(神) 개념에서 탈피하지 못하여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 그것으로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제사지내려 했던 것이다.


그는 아직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께서 무소부재하시어 온 천하에 충만하신 유일신 하느님이시라는 이해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열왕기 하권 5장 15절에서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라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지만, 아직도 나아만은 유치한 신앙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을 17절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불완전한 이해가 하느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신앙이나 하느님의 사람에 대한 진실성 마저 훼손하지는 않는다.

나아만이 흙을 요구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의 변화된 내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만이 주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의 흙을 취하고자 한 사실은 불과 얼마 전에 자신의 나병 치유를 위해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내린 명령과 관련해서 요르단 강을 멸시했던 그의 말(2열왕5,12)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그의 변화된  내면의 상태를 반영해 주는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오로지 주 하느님께만 제사를 드릴 것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열왕기 하권 5장 15절의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만이 참 신이심을 고백한 이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자연스러운 귀결인데, 나아만은 이방인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2022년 10월 09일 일요일

[연중 제28주일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 이야기는 치유자이신 예수님보다

그분께 은혜를 입은 나병 환자 열 사람의 행동을 더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졌기에,

다른 이들과 교류 없이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였습니다(민수 5,2-3; 레위 13,45-46 참조).

 

오늘 복음 속 나병 환자 열 사람도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멀찍이 서서’ 그저 자비를 청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와 다르게 그들을 바로 치유하지 않으시고,

사제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나병이 다 나았음을 사제에게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절차와 관련됩니다.

그들이 그분 말씀대로 떠났다는 것은 그분께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사제에게 가는 동안 열 명 모두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치유의 수혜자는 열 명이었지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온 이는 단 한 사람그것도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머지 아홉 명의 유다인 가운데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명령을 잘 따랐을 뿐이라고 이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셨고그들은 사제들에게 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이유일까요?

그들은 병이 나아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빨리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에 합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치유되었을 때그들에게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은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입니까?

사실 우리의 삶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자비로 가득합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느 것 하나 지금 있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에 인색한 듯합니다.

크든 작든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릴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8주일 복음 (루카17,11-1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5~16)


여기서 '병이 나은'에 해당하는 '이아테'(iathe; he was healed)의 원형 '이아오마이'(iaomai)는 '치료하다', '회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이아오마이'(iaomai)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한 치유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는데, 특히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이루어질 치유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단어로서, 구약 예언의 성취를 보여 주는 동사이다(이사35,3~6; 61,1).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든 치유의 본질이 기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 있는 말씀으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여신 치유자 예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열사람의 나병 환자들은 눈으로 아무런 증거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제들에게 검증받기 위해(레위14,2) 가던 도중에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루카 복음 17장 15절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보았다고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단순히 가시적으로 나타난 치유 기적을 이 한 사람만이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나병 환자만이 자신의 치유자가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고 감사하려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나병 환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치유 기적의 배후에 하느님께서 계셨고, 그분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깨달았기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며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b.c.722년 북부 이스라엘의 아시리아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 그들과 혼혈이 되어 혈통의 순수함이 변질되고, 아시리아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훼 유일신 신앙마저 변질시켜 혼합 종교를 섬기던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혈통의 순수함과 야훼 유일힌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여겨져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꼐 은혜를 입고 돌아와 무한 감사를 표시한 반면에, 선민으로서 다른 민족에 비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더 많이 받았던 유대인으로 여겨지는 나머지 아홉은 오히려 자신의 몸이 깨끗해진 사실에만 기뻐할 뿐, 최소한의 어떤 감사도 표시하지 않았다.


루카 복음사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더 합당한 삶을 산다는 모습을 통해서,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과 이름만을 소중히 여기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엎드려'에 해당하는 '에페센 에피 프로소폰'(episen epi prosopon; he threw himself; he fell down his face)은 직역하면 '그는 얼굴을 떨어뜨렸다'이다.


어떤 사람의 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떨어뜨려 땅에 대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존경과 경배의 표시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을 치유한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감사를 드렸다'로 번역한 '유카리스톤'(euchariston; thanked; gave thanks)의 원형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는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성찬례 축복 기도를 가리키는 용례로 쓰였다.


예수님께 대한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 행위에 이 용어가 쓰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치유에 대해 하느님께 돌리는 것과 같은 감사의 표현을 했음을 나타낸다.

다시말해서, 그는 자신의 치유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인식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2022년 10월 09일 [연중 제28주일]

 

세상은 하늘로 돌아가기 위한 징검다리.

 

복음(루카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스승님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신앙믿음구원의 완성은 하느님께 영광드림이다.(이사43,7) 그런데 왜 굳이 하느님은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생명이존재가 되게 하셨을까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곧 터져 나오는 사랑의 결과다그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낳으신 것이다.

그래서 피조물은 창조주의 사랑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한다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뜻욕망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하느님의 뜻을 배반하여 죄를 지었다(창세3.1-6) 그 죄로 사람이 다시 흙의 먼지로 돌아가 영원히 어둠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창세3,17-19)

하느님께서 그 어둠에서 구해(살려내시기 위해 아담(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사람의 뜻욕망영광을 위해 살아 보라고그래서 그 삶이 얼마나 허무요 헛된 것인지를 깨닫고(회개오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깨달음이 아닌 자신들의 뜻욕망영광을 위한 가르침과 배움으로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세상의 노예가 되어 그 노예의 삶에 만족해하며 복이라고 여기며자신들의 영이 죽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창조이래 모든 인간들이곧 사라질부서질 집을 위해 목숨까지 걸며 온갖 정성을 드리고 있다.

흙의 먼지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먼지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모두가 죄로 지옥의 집을 열심히 짓고 있는 것이다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그대로 계실 수가 없으셔서 당신의 분신인 사랑하는 외아들(독생자)을 이 세상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것이다.

 

(에페1,7. 2,13)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은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2,13 이제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성경(聖經)에서 하느님의 뜻을사랑을찾아야한다그래야 우리의 구원을 위해우리의 속죄제물(贖罪祭物)로 사랑하는 외아들(獨生子)을 내주신 하느님의 신성(神性)과 본성(本性)인 사랑을 드러내는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 수 있다.

교회(敎會)에서 그 하느님의 뜻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가르침을 들어야배워야 한다인간들의 뜻인간들끼리의 사랑을 위한 가르침을 받아서는 안된다또한 잘못을 반성하는 인간 차원의 회개(悔改)’를 살게 해서는 안된다그러면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감사가 없어 영광을 드리지 못하는 헛된 신앙으로 구원(救援)에 이르지 못한다.

하느님의 뜻길에서 벗어난 죄()에서하느님의 뜻길로 돌아오는 회개(悔改)의 가르침을 받아야한다그랬을 때 하느님의 성실하심길인 말씀이 우리를 이끌고 가신다.

☨ 참 사랑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봉헌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2년 10월 9일 연중 제2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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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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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16-20)22.10.23조회 58[연중 제29주일] 끊임없이 기도하라 (루카18,1-8)22.10.16조회 46[연중 제28주일] 나병 환자 열 사람 치유 (루카17,11-19)22.10.09조회 74[연중 제27주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 (루카17,5-10)22.10.02조회 60[연중 제26주일] 부자와 라자로이야기 (루카16,19-31)22.09.25조회 80[연중 제25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22.09.18조회 70[연중 제24주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15,1-32)22.09.11조회 64[연중 제23주일]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14,25-33)22.09.04조회 55[연중 제22주일] 招待를 받거든 끝자리에 앉아라. (루카14,1.7-14)22.08.28조회 58[연중 제21주일] 좁은 門으로 들어가라. (루카13,22-30)22.08.21조회 64[연중 제20주일]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3)22.08.14조회 79[연중 제19주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2-48)22.08.06조회 61[연중 제18주일]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22.07.30조회 76[연중 제17주일] “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 (루카11,1-13)22.07.23조회 68[연중 제16주일]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루카10,38-42)22.07.16조회 65[연중 제15주일]“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10,25-37)22.07.10조회 63[연중 제14주일]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루카10,1-12.17-20)22.07.03조회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