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15,1-32)

2022. 9. 11. 오전 5:36:11

글자


 

20220911일 일요일


[연중 제24주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15,1-32)

   


1독서<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탈출32,7-11.13-14)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화답송시편 51(50),3-4.12-13.1719(루카 15,18 참조)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2독서<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1티모1,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15,1-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 (탈출32,7-11.13-14)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9-10)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뻣뻣한'이라고 번역된 '케셰'(qesheh)는 아마 농경 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것은 '멍에를 지우는 데 대한 황소의 반항적인 반발'을 의미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는 '뻔뻔스럽고'(shameless), '오만(거만)한'(insolent), '완고한'(harden)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신명9,6; 2역대30,8; 느헤9,16; 사도7,51).


즉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센 모습이 마치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버티는 미련한 소와 같다는 말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나를 말리지 마라'로 번역된 '한니하 리'(hanniha li; leave me alone)에서 '한니하'(hanniha; '말리지 마라','하게 하라')의 원형은 '누아흐'(nuah)인데, '내려앉다','멈추어 서다'(민수10,36), '쉬다'(탈출20,11), '휴식을 취하다',  '편안히 쉬다'(이사23,12)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편히 쉬게 하다','홀로 쉬게 하다'(이사28,12)라는 의미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된 것을 감안해서 '나를 홀로 있게 하여라'(let me alone)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절교선언(絶交宣言)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노예생활하던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켜 인도하시고  이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나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완고하고 사악한 백성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제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내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창세12,2). 그런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이 아닌 모세에게 다시 주어지고 있다.

모세에게 주신 이 약속은 단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계약의 상속자라는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주신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제2의 아브라함으로 삼아 그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20220911일 일요일

[연중 제24주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뒤 하느님 앞에서 느낀 첫 감정은 두려움과 수치심이었습니다(창세 3,9-10 참조).

이렇게 죄는 인간이 거룩함을 잃어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의 관계를 끊기게 하고,

다시 그분께 선뜻 다가가기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잃었다가 되찾은 은전아들에 관한 세 개의 비유들을 연이어 배치하면서(루카 15,1-7.8-10.11-32 참조),

죄인이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는 일을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강조합니다.

1독서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면서 하느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을 때,

그분의 용서를 얻고자 모세의 애원과 중개가 필요하였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께서는 용서에 소극적이신 분이 아니라 길 잃은 죄인을 먼저 찾아 나서시는 분으로,

착한 목자요 소중한 은전의 주인이시며 탕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이유였다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매번 자신의 부당함에도 주저앉지 않고 곧바로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그분의 한없이 자비로우신 본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비유 속

잃어버린 양과 동전 그리고 탕자가 바로 자신임을 알지 못하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알면서도 용기 내어 예수님의 식탁에 모여든 세리와 죄인의 마음을 닮아야겠습니다.

당신께로 발걸음을 돌리는 죄인을 가장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되돌아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생명의 말씀(2022911(다해 연중 제24주일)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중요한 물건이 보이지 않아 간절히 찾았던 경험,

만나야할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아 애타게 기다렸던 경험이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마침내 발견하게 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감정에 빠지기도 했을 테지요.

이를 떠올리다 보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중간에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이미 와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간절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지요.

오늘의 복음은 이렇게 우리를 간절히 찾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려주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 양을 고생하며 찾고 기뻐할 리 없습니다.

긴 복음의 돌아온 탕자 비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그를 너그럽게 용서할 수 없었겠지요.

당시 유다 민족은 주로 유목 생활을 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땅은 목초지가 별로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지가 아닌 가파른 벼랑과 사막으로 둘러싸인 고원 지대였지요.

 

한편, 양은 굉장히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물건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며, 그래서 그런지 겁이 많고 우둔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이목자를 잃고 헤매다 보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밖에요.

그러므로 가파른 벼랑을 살피며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은 불안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양이 발을 헛디디지는 않았을지,

어디서 추위에 떨며 어둠을 헤매고 있을지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양을 찾게 된 순간의 환희와 기쁨을 상상해 보세요.

다른 양들이 덜 소중해서가 아니라, 되찾은 한 마리의 무사함이 목자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지은 우리를 살펴보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길을 잃어버린 어린양처럼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곤 하지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미련과 불신으로,

당장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으로, 주변 환경에 대한 원망으로,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가까운 것을 보지 못하고 어둠에 갇혀 헤매곤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주님이 이러한 우리를 간절히 찾으며 기다리고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이 중심에는 우리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이번 한 주,

여러 가지 유혹들을 마주할 때마다 길 잃은 우리를 찾아 헤매는 하느님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어떨지요.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찾으며 속삭이고 계실지 모릅니다.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연중 제24주일 복음 (루카15,1-32)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2)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 혹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애초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한결같이 거부하므로(루카14,18~20), 그들은 단 한 명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루카14,24).


그래서 대신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사람들, 곧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세리들,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식사를 즐기셨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랑하는 율법과 거리가 먼 이들을 받아들이고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서슴지 않고 강행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선취하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루카14장).


여기서 '받아들이고'로 번역된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 receives; welcomes)의 원형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어떤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며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로마16,2; 필리2,29).

즉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는 도움을 얻거나 존경하기 때문에 맞아들이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대하실 때, 마치 유대인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하듯 하신 것이다.

경멸받으며 기피되던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파격적 행동은 당시의 사람들, 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루카7,34).


유대인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사람들 중에서도 경멸받는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필리2,7).

하지만 잃어버린 자들인 세리들과 죄인들이 초청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들이 분명하기에,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당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 15장 6절과 10절이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 '잃은 은전 한 닢의 비유'의 결론이 되어서, 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그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기쁨은 한 명의 죄인이라도 찾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발견할 때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들을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 돌아온 죄인들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쁨이 생겨난다.

루카 복음 15장 10절의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죄인의 회개가 하느님께 속한 천사들도 기뻐할 정도로 너무도 중요한 사건임을 나타낸다.





 

2022년 0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말씀 안에 담겨진 하나를 찾는 것이회개(悔改)

 

복음(루카15,1-32)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자신들이 죄인(罪人)임을 아는 이들과 스스로 의인(義人)인줄 아는두 부류(部類)의 사람들이다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罪人)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광야(廣野), 물이 없어 물(말씀)을 먹을 수 없는 곳세상(世上)이다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보고 지켜 스스로 의롭다하며 말씀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깨닫지 못해 하늘의 의(), 그 하나(한가지)를 먹지 못한 아흔아홉이다. (요한7,21참조)

그리고 잃었다는 것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곧 하느님의 품()을 떠난 죄인을 찾을 때까지 뒤 쫒아 가 찾아내겠다는 구원의 약속(約束), ‘계약(契約)의 말씀을 지금 쏟아 붇고 계신 것이다.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 어깨에 메고’, 곧 그의 죄()를 어깨에 메고죄를 없애시고 의로움으로 데려오심이다.

 

(요한1,29)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상 죄를 없애시는’- 깨끗하지 않으면의롭지 못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함께 할 수 없음이다.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스스로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죄인(罪人)임을 인정하는 이를 하느님께서 찾아 데리고 오신 것을 회개(悔改)’라 하신다회개는 하느님께서 찾으심으로 시작하신다는 말씀인데찾아오심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안에 하느님의 찾으심부르심이 들어 있음이다. (야고1,2.12 참조)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또 다른 비유(比喩)은전(銀錢)은 예수님의 몸값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속전(贖錢)을 뜻한다.(마태26,1)하느님의 십계명(十誡命)을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보고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새 계약을 깨닫지 못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저 얻는 하늘의 의(), 그 하나한 가지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주님의 한 가지 일을 찾을 때까지곧 십자가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으로 나의 모든 죄()가 씻겨 거저 하늘의 의로움이 됨을 깨달을 때까지성경 말씀에 머물러 등불이신 성령(聖靈)께 의탁(依託)하여 샅샅이 뒤져야한다. (적어도 매일미사의 독서(牘書)와 복음(福音)에 충실해야한다)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깨달으면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하늘의 의(), 그 하나를 깨달아 찾는 것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悔改)라는 것이다.

 

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스스로 의롭다하는 양()과 죄인(罪人)인 양()의 다른 비유(比喩).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살아계신 아버지 앞에서 유산을 달라’ 하니 당연히 죽을 죄인(罪人)이다당연히 크게 야단으로 가르치셔야한다그러나 그냥 유산을 주어 보내신다가르쳐 들어먹을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아버지의 말씀을 자기 것곧 세상의 것을 위한자기 뜻을 위한사람의 말로 살았다는 것이며그 사람의 말로 사는 것은 구원(救援)의 무력(無力)함을 뜻하는 방종(放縱)한 생활이며아버지의 뜻새 생명(生命)의 말씀을 허비(虛費)한 것이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구원(救援)의 양식(糧食)이 없음을그래서 줄 수가 없음을 뜻한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아버지의 뜻(말씀)을 떠난 세상의 삶이 돼지우리’ 삶이며 세상의 양식이 돼지짐승들의 먹이임을 깨달은 것이다곧 참 생명(生命)의 양식(糧食)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아버지께만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아버지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세상의 힘(원리)으로 구축하려했던 자신(自信)을 버리는 자기(自己부인(否認)의 모습이다아버지는 자기 버림의 깨달음을 위해 유산을 주어 보내셨던 것이다교육용 훈련장인 어둠인 광야(廣野), 세상(世上)으로... 생명의 나라아버지 하느님나라를 깨닫고 돌아오라고...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아들이 세상(世上)적 자신을 버리고 부인(否認)해야 살 수 있음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매일 밤낮을 뜬 눈으로 기다리셨기에 멀리서 오는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안아주신 것이다그렇게 다시 한 몸(하나)이 된 것이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전형적인 자기 버림(부인)의 모습이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다시 아들로 회복(回復)시키시는 무한(無限)한 사랑자비(慈悲)의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먹고 즐기는 잔치미사(missa)의 본질이며 하느님의 뜻이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처럼아버지를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교리(敎理)로 열심히 섬겼다헛되이 섬긴 것이다.(마태15,6)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얻는 의(), 그 한 가지를 깨달아 의로운 이로하느님의 아들로자유(自由), 안식(安息)을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그러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교리(敎理)를 참으로 알고 지키는 아흔아홉큰아들의 사람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도믿지도 않고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 그래서 보십시오 저희들의 섬김이 옳지 않습니까저희들의 제사(祭祀)드림그 우리의 정성(精誠), ()가 오른 것입니다.’ 우긴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자신(自信)의 생각()을 고집(固執)하는 죄인(罪人)을 미워하지 않으시고포기(抛棄)하지 않으시고타이르심으로당신의 생명의 말씀을 계속 쏟아 부으신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죽이는 그 죽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어제 공부했듯이이 세상은 쏟아 부어주시는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두려워하지 말고세상 힘의 원리인 세상 논리로 구축된 아를 버리는(부인),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얻는 하늘의 의(), 그 하나(한 가지)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몸이 되어 돌아오라고 보내신 교육용 훈련장(訓鍊場)이다.

이 세상의 의(), 재물(財物), 명예(名譽), 직분(職分온갖 것을 짊어지고 오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다.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마음에 지켜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이 세상의 것을 버리는부인하는 훈련을 잘 마치고통과할 수 있도록 늘 함께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돌아온 탕자 - 렘브란트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26주일] 부자와 라자로이야기 (루카16,19-31)22.09.25조회 79[연중 제25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22.09.18조회 70[연중 제24주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15,1-32)22.09.11조회 64[연중 제23주일]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14,25-33)22.09.04조회 54[연중 제22주일] 招待를 받거든 끝자리에 앉아라. (루카14,1.7-14)22.08.28조회 57[연중 제21주일] 좁은 門으로 들어가라. (루카13,22-30)22.08.21조회 63[연중 제20주일]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3)22.08.14조회 79[연중 제19주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2-48)22.08.06조회 59[연중 제18주일]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22.07.30조회 75[연중 제17주일] “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 (루카11,1-13)22.07.23조회 68[연중 제16주일]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루카10,38-42)22.07.16조회 64[연중 제15주일]“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10,25-37)22.07.10조회 62[연중 제14주일]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루카10,1-12.17-20)22.07.03조회 59[연중 제13주일] “나를 따라라.” (루가9,51-62)22.06.25조회 65[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루카9,11ㄴ-17)22.06.18조회 74[삼위일체 대축일]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요한16,12-15)22.06.11조회 65[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23)22.06.05조회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