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연중 제29주일] 끊임없이 기도하라 (루카18,1-8)

제1독서<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였다.>(탈출17,8-13)
8 아말렉족이 몰려와 르피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였다.
9 그러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장정들을 뽑아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거라. 내일 내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언덕 꼭대기에 서 있겠다.”
10 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
12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그들은 돌을 가져다 그의 발 아래 놓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런 다음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 주니, 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처지지 않았다.
13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의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화답송시편 121(120),1-2.3-4.5-6.7-8(◎ 2 참조)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 눈을 들어 산을 보노라. 나의 구원 어디서 오리오? 나의 구원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
○ 그분은 너의 발걸음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리라. 너를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않으시리라.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 졸지도 않으시리라. 잠들지도 않으시리라. ◎
○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너의 오른쪽에 계신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
○ 주님은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신다. 그분은 너의 목숨 지켜 주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은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
제2독서<하느님의 사람은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됩니다.>(2티모3,14-4,2)
사랑하는 그대여, 14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4,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을 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루카18,1-8)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연중 제29주일 제1독서 (탈출17,8-13)
"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고,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그들은 돌을 가져다 그의 발 아래 놓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런 다음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 주니,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처지지 않았다." (10-12)
'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원문은 '와야아스 예호슈아 카아세르 아마르 로 모세'(wayaas yehoshua kaasher amar lo mosheh)이다.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수아는 모세가 그에게 말한 대로 행하였다' 이다.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와야아스'(wayaas)는 '행하다','하다' (탈출5,9), '만들다'(창세8,6)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아사'(asah)의 미완료형에 접속사 '와우'(wau; and; 그리고)가 결합하여 '그리고 그가 행하였다'는 완료의 뜻으로 해석되는 와우(그리고; 접속사and)계속법이 쓰이고 있다.
이처럼 원문은 와우(and; 그리고)계속법을 사용하여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을 듣고서 곧바로 그의 말대로 행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카아셰르'(kaasher; as)는 관계사 '아셰르'(asher)에 '~와 같이', '~처럼','~대로'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케'(ke)가 결합된 것으로서, '~한 것 같이', '~대로'라는 의미를 지니는 합성어로서, 여호수아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대로 준행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그런데 아말렉과의 이 전투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처음 치르게 된 전쟁이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있었기에 사실상 전투를 치를 만한n 능력이나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인간적인 계산으로 하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산의 가능성이 희박한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을 따라 즉각 그대로 행한 것은 여호수아의 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용기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세는 언덕에 자기 혼자만 올라가지 않고, 아론과 후르라는 두 명의 협력자와 함께 올라갔다. 전쟁이라는 중차대한 국가적 안위의 문제를 놓고서 동역과 합심의 지혜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최후의 십자가를 지시기에 앞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함께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마태26,37-40; 마태18,19참조).
한편, '존귀함' 혹은 '고귀함'이라는 뜻을 지닌 '후르'(hur)는 유다 지파 칼렙의 아들이며 (1역대2,19) 또한 유명한 성막 제조 기술자 브찰엘의 조부이다(탈출31,2).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
여기서 '모세가 손을 들면'에 해당하는 원문은 '웨하야 카아셰르 야림 모세 야도'(wehaya kaasher yarim mosheh yado)이다. 직역하면 '그리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 때 그것이 발생했다'(And it came to pass when Moses held up his hand) 이다.
여기서 '카아셰르'(kaasher)는 탈출기 17장 10절의 '~대로'라는 뜻의 '카아셰르'와 같은 복합어이지만, 여기서는 '웨하야'(wehaya)와 함께 특별한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새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웨하야'는 '있다'(창세1,2; 1사무14,25), '존재하다', '있다'(욥기1,1)등과 같이 '존재'를 나타내는 동사 '하야'(haya)의 완료형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한 형태인데, 이것은 본문처럼 전치사 '케'(ke)나 '뻬'(be)가 따라올 때는 '~할 때에 어떠한 일이 발생했다'(미완료시제로 해석될 때에는 '발생할 것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관용구를 이룬다.
이때 관용구는 뒤에 발생할 내용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모세가 그의 손을 들었을 때 어떤 특별하고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야림'(yarim; held up)은 기본적으로 '(드)높다'(2사무22,47;시편46,11)라는 뜻을 가진 '룸'(rum)의 사역 능동형으로 '높게 하다' 즉 '들다'(창세14,22)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본문은 '모세가 그의 손을 높이 들었다'는 뜻이며, 여기서 모세가 손을 든 것은 기도의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기도의 표현으로 손을 들어 간구하는 것이 종종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역대6,13.14.29; 시편28,2; 1티모2,8).
그러므로 모세가 손을 들 때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것은 모세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그 순간에는 이스라엘이 싸움에서 우세했다는 말로서, 그 싸움의 승패가 전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손을 내리면'에 해당하는 '웨카아셰르 야니아흐 야도'(wekaasher yaniah yado)에서, '내리다'는 뜻으로 번역된 '야니아흐'(yaniah)는 기본적으로 '쉬다'(탈출20,11)라는 뜻을 지닌 '누아흐'(nuah)의 사역 능동형으로 '쉬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어근은 '어떤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판관2,23), 이것은 본문의 '손을 내리다'라는 말이 '손을 들어 하느님께 기도하던 것을 멈추고 쉬었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아말렉족과의 전쟁은 하느님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싸움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쉬게 되면, 자연히 이스라엘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에페소서 6장 18절에서 사도 바오로도 말하고 있듯이, 기도야말로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이며, 하느님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원문은 '위데 모셰 케베딤'(wide mosheh kebedim)인데, 직역하면 '그러나 모세의 손들이 무거워졌다'(But Moses' hands were heavy)이다.
'무거워지다'로 번역된 '케베딤'(kabadim)은 '무겁다'(1열왕12,4; 2역대10,11) 라는 뜻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카바드'(kabad)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여기서는 모세의 손이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졌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피곤해졌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의 힘을 거의 상실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처럼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일지라도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육체적 연약성은 어쩔 수가 없는 인간의 한계이다(마태26,41).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영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왜 서로 협력해야 하는지의 이유를 보게 된다.
'그들은 돌을 가져다 ~ 그를 그위에 앉혔다~~두 손을 받혀 주니'
여기에서 아론과 후르가 어떻게 모세를 도왔는지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도자를 보좌하는 아론과 후르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아말렉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핵심은 기도하는 손이었다. 그 손이 피곤하여 내려옴으로써 전세(戰勢)가 이스라엘이 불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그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론과 후르가 우선적으로 취한 행동은 그의 손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돌을 가져다 그 위에 모세를 앉히는 것이었다.
아론과 후르는 눈앞에 벌어지는 아말렉과의 싸움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하느님의 도구이자 사자(使者)인 모세에게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그의 육신적 한계와 연약함을 최대한 보필하고 있는 것이다(히브13,17참조).
'해가 질 때까지'
원문은 '아드 뽀 핫샤메쉬'(ad bo hasshamesh)인데, 직역하면 '그 해가 들어가기까지'이다. 여기서 '아드'(ad)는 '~까지'(until)라는 뜻의 전치사이며, '뽀'(bo)는 '들어가다'(창세7,7; 레위16,23)라는 뜻을 지닌 '뽀'(bo)의 부정사 연계형이다.
따라서 '해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로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기까지 하루 종일 하느님을 향해 기도를 쉬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낸다.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연중 제29주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하느님께서 과연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계시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응답도 없는데 계속 기도해야 할까? 그냥 포기해 버릴까?’ 하는 유혹이 생기기도 합니다.
망설이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를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십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야말로 ‘불의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의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 반전의 계기가 생깁니다.
그 고을에 사는 과부 한 사람이 재판관을 자주 찾아와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끈질기게 졸랐던 모양입니다.
재판관은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주기로 결심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녀에 대한 동정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너무 귀찮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가 끝까지 찾아와 자신을 ‘괴롭힐’ 것이 뻔하였습니다.
여기서 ‘괴롭히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휘포피아조’는
본래 ‘눈 아래를 치다’ 또는 ‘얼굴을 때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격투 용어입니다.
과부의 끈질긴 청이 마치 재판관의 눈을 시퍼렇게 만들 정도의 심한 괴롭힘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향하는 논증을 펼치십니다.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임에도 과부의 끈질긴 청에 결국 항복하고 들어줍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과연 어떠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단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기도를 허투루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들어주시리라는 강한 믿음과 함께, 주님을 계속 귀찮게 하고 괴롭혀 드려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9주일 복음 (루카18,1-8)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8)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믿음'은 지속적으로 항구하게 하느님께 간구하는 실천적인 믿음을 말한다.
앞의 불의한 재판관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에게서 나타났던 것처럼, 이러한 곤경에 처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믿음을 말한다.
그리고 '찾아볼 수 있겠느냐'에 해당하는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 will he find)에서, '아라'(ara)는 부정적 대답이 기대되는 추론적 질문을 의미하고, '휴레세이'(heuresei)의 원형 '휴리스코'(heurisko)의 본래 뜻은 '만나다', '마주치다', '우연히 발견하다'이다.
따라서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에는 세상에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믿음을 발견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뜻이 들어있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사람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사악해져서, 하느님께서 당신이 간택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조차도 거부하며, 그들의 마음에 의로움보다는 악(惡)이 가득차서 간구조차 하지 않을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하느님의 신실한 약속과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음을 수호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루카 복음 17장에 나오는 노아와 롯의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22년 10월 16일 [연중 제29주일]
牘書, 福音, 모두 對照하여 하나를 보라
제1독서(탈출17,8-11)
8 아말렉족이 몰려와 르피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였다. 9 그러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장정들을 뽑아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거라. 내일 내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언덕 꼭대기에 서 있겠다.” 10 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
= 모세가 손에든 하느님의 지팡이는 구원(救援)의 승리(勝利)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선악(善惡)의 두 법이 아닌 선악을 하나로, 곧 선이 악을 대속(代贖)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그 생명 하나로 갖은 진리(眞理)의 말씀이다. 그 지팡이(말씀)를 위로 들면, 곧 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으면 구원, 생명이고, 아래(땅), 사람의 뜻으로 받으면 죽음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팡이(말씀)가 땅, 이집트(세상)의 뱀(말)을 삼켜버렸지 않는가?
(탈출7,10-12) 10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자기 지팡이를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으로 던지자, 그것이 큰 뱀이 되었다. 11 파라오도 현인들과 요술사들을 불러들였다. 이들 이집트의 요술사들도 자기네 요술로 그와 똑같이 하였다. 12 그들이 저마다 자기 지팡이를 던지자, 그것들도 큰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들을 삼켜 버렸다.
= 하느님의 지팡이(말씀)가 세상의 말로, ‘세상화가 된 나’를 먹어버리심이다. 곧 육신(肉身)을 죽이시고 말씀으로 하늘의 생명(生命)을 주시려고~
복음 (루카18,1-8)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 용서(容恕)의 문제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 참으로 그릇된 사람이다.
*우리 부주임신부님 주일 강론~ <그런 사람도 졸라대면 들어 주는데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는가? 그러니 도를 끊임없이 합시다.> 하셨는데 인간(人間), 재판관의 올바른 판결(判決)과 하느님의 올바른 판결은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의 차이점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리고 귀찮게 괴롭힐까봐 해 주는 판결이 올바른 판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관(裁判官)의 판결(判決)은 하느님의 말씀, 지팡이를 하늘 아래 사람의 뜻으로 받아 선악(善惡)의 판결(判決)로 죽음을 줄 뿐이다. 세상은 그것이 올바르다 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올바르신 판결은 악(惡)을 대속(代贖)하신 선(善),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容恕), 의(義), 생명(生命)이다.
그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請)하고 구(求)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祈禱)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 인간(人間)들에게 올바른 믿음이 없다는 말씀이다. 모두가 그릇된 재판관을 찾는, 그릇된 과부(寡婦)의 신앙(信仰)을 살고 있다 하심이다.
*재판관의 판결은 졸라대야 되지만, 하느님의 판결은 지체(遲滯)가 없다. 왜? 나와 적대자(敵對者) 사이의 문제, 곧 모든 인간은 서로 용서(容恕)할 수 없는 죄인(罪人)이며, 그 모든 죄의 용서는 이미 창조이전부터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에페1,4 묵시22,13)
그래서 말씀 안에 깨닫기만 하면, 찾기만 하면, 지체(遲滯)없이 문제해결(問題解決)이 되는 것이다. (마태6,33) 그러니 ‘낙심(落心)하지 말고 꾸준히 말씀을 되새기는 기도를 하라’ 하심이다.
위를 향한, 곧 하느님의 뜻이 아닌 아래, 내뜻, 소원을 위해 신비의 뜻, 의미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똑같은 소리, 빈 말로하는 묵주기도(黙珠祈禱)를 끊임없이 하라는 말씀이 아니다.(마태6,7)
나는 누구에게 올바른 판결(判決)을 구(求)하나? - 선악(善惡)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인 세상의 판결?, 악(惡)을 대속(代贖)하시고 생명(生命)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판결?
(로마8,1-2)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올바른, 진리의 성령의 판결이시다. 그 하느님의 지팡이(말씀, 교훈)를, 아래 ‘인간의 뜻, 계명, 말로 받은 도덕과 윤리의 인본주의는 절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빈정댄다.
(잠언13,1) 1 지혜로운 아들은 교훈을 사랑하지만 빈정꾼은 꾸지람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 하느님의 지혜, 계시의 영이시며 올바른 판결을 주시는 진리의 성령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