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그분은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38)

2022. 11. 6. 오전 6:09:12

글자


 

20221106일 일요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그분은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38)

 


1독서<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7,1-2.9-14)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 그들 가운데 하나가 대변자가 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를 심문하여 무엇을 알아내려 하시오? 우리는 조상들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둘째가 9 마지막 숨을 거두며 말하였다. “이 사악한 인간,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10 그 다음에는 셋째가 조롱을 당하였다. 그는 혀를 내밀라는 말을 듣자 바로 혀를 내밀고 손까지 용감하게 내뻗으며,

11 고결하게 말하였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

12 그러자 임금은 물론 그와 함께 있던 자들까지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 젊은이의 기개에 놀랐다.

13 셋째가 죽은 다음에 그들은 넷째도 같은 식으로 괴롭히며 고문하였다.

14 그는 죽는 순간이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화답송시편 17(16),1.45-6.815(15참조)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계명의 길 꿋꿋이 걷고, 당신의 길에서 제 발걸음 비틀거리지 않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 하리이다.

 

2독서<주님께서는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십니다.>(2테살2,16-3,5)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3,1 끝으로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2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지시하는 것들을 여러분이 실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행하리라고 믿습니다.

5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20,27-38)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연중 제32주일 제2독서 (2테살2,16-3,5)

 

"끝으로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로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3,1-2)

 

테살로니카 후서 2장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오해를 교정하기 위해  불법의 사람의 출현과 종말의 심판에 대해 교훈했다.

 

이제 테살로니카 후서 3장 1-15절에서는 올바른 재림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일상 생활에서의 합당한 삶의 태도를 교훈하고 있다.

그 가운데 테살로니카 후서 3장 1,2절은 사도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직 수행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사도 바오로는 중재(중보) 기도를 부탁하면서 테살로니카 교인들을 '형제 여러분' 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이러한 호칭은 사도 바오로와 테살로니카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로서의 동질성을 지니며, 한 지체임을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테살로니카 전, 후서에서 이 호칭이 무려 20회나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교인들에게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중재(중보) 기도를 요청하는 부분에서 이 호칭을 썼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즉 여기서 '아델포이'(adelphoi)라는 호칭은 테살로니카 성도들이 사도 바오로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지체이므로(1코린12,12.27) 서로의 영적 필요를 위해 기도해 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주는 것이다.

 

'기도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프로슈케스테'(proseuchesthe)는 '하느님께 기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 현재 시제 명령형이다.

여기서 현재 시제를 썼다는 것은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와 그 동료들은 자신들의 선교가 자신들 스스로의 능력과 지혜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을 부르신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선교 활동을 위해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동일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에게 중재(중보) 기도를 요청했던 것이다.

 

자신들이 친히 복음으로 가르친 자들에게 중재(중보) 기도를 요청한다는 것은 결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사목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겸손한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들이 중재(중보) 기도없이 주님의 사업을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과대 망상이며, 또한 공동체의 연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비교회주의적 발상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지체인 각 구성원들이 중재(중보) 기도의 끈으로 묶이기를 원하신다(요한17,6-26; 사도12,5; 야고보5,14).

사도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중재(중보) 기도의 제목은 '복음 전파'와 '사도 바오로와 동력자들' 에 관한 것이다.

 

한편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라는 표현은 말씀이 마치 힘차게 내달려 우승함으로써 상을 받는 것과 같은 영상을 떠오르게 한다.

여기서 '빠르게 퍼져 나가'로 번역된 '트레케'(treche) '급히 달려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트레코'(trecho)의 가정법 현재 능동태로서 말씀이 급속히 퍼져 나가는 것, 또는 말씀이 자유롭게 역사하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이것은 마치 이러한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테살로니카에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듣는 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여 신앙을 갖는 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복음이 신속하고도 역동적으로 전파되어 많은 결실을 맺도록 기도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찬양을 받고'에 해당하는 '독사제타이'(doxazetai)는 '독사조'(doxazo)의 가정법 현재 수동태로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의 힘에 압도되어 변화를 받아 그 말씀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말씀의 능력에 대한 찬양은 곧 말씀의 선포자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테살로니카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중재(중보) 기도의 두번째 내용으로서 이것은 사도 바오로 자신과 그 동료들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로 '뤼스토멘'(rysthomen)은 위험으로부터 구출해 내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뤼오마이'(ryomai)의 가정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 수동태 구출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사도 바오로는 시편 50장 15절의 "그리고 불행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나 너를 구하여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는 말씀을 적용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사도 바오로는 자신과 그 동력자들을 위협한 존재들을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고약하고'로 번역된 '아토폰'(atopon)의 원형 '아토포스'(atopos)는 '자리'(place)를 뜻하는 명사 '토포스'(topos)에 부정 접두사 '아'(a)가 접두된 형태로서 문자적으로 '제자리가 아닌', '자리에서 벗어난'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적합하지 않은', '어울리지 않은', '온당치 못한'더 나아가 '옳지 않은', '해로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 외에 신약에서 3회 더 사용되었는데, '신체적 이상'(사도28,6),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루카23,41; 사도25,5)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고자 하는 자들은 폭도들을 선동해서 복음 전파를 방해했던 유다인들(사도17,5)과 같이 비이성적인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선교사들을 가로막는 행위라면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강행하는 자들이다.

 

특히 사도 바오로가 본 서간을 코린토에서 기록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코린토에서 사도 바오로의 복음 전파를 대적하고 훼방한 유다인들(사도18,5.6)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넓게는 그들과 같이 행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악한'으로 번역된 '포네론'(poneron)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악의 속성을 나타내는 형용사로서 주로 다른 것에 고통과 해악을 일으키고 악에 물들게 하는 속성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마귀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사도 바오로는 마귀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악한 사람들에 의하여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문장 형태상 이 구절은 이유 부사절로서 본절 상반절에 대한 이유가 된다.

이것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이 왜 복음 선포자들을 적대하고 훼방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즉 복음을 믿는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없고, 또한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은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음 선포자들에게 악을 행한다는 것이다. 

 





 

20221106일 일요일

[연중 제32주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은 부활 신앙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듣습니다.

1독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받게 되는 어떠한 고문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형제들의 이야기입니다.

형제들이 차례로 죽기 전에 한 말에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함께, 자신의 지시를 잘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편지의 맥락으로 보면 그 지시 내용은 거짓된 종말에 관한 가르침과 왜곡된 부활 신앙을 경고하며

온갖 이단과 거리를 두라는 말씀으로 짐작됩니다.

한편 복음에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신앙을 전하고자 하셨지만,

당시 유다교 사제 계급이었던 사두가이들은 부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들과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다인에게 권위를 지닌 율법, 곧 오경에 근거하여 논증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친숙하게 지내셨다면, 죽음 뒤에도 영원히 그러하신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방식으로만 부활을 이해하는 바리사이들의 태도도 경계하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부활 신앙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단순히 현세의 삶을 무한대로 연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 이후의 상황과 영원한 생명은 현세와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명확히 이해하지도, 하느님을 직접 뵙지도 못하지만,

그때는 그분을 마주 뵙고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기쁨이 충만한 시간을 맞이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일]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복음(루카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우리(나)는 믿는가? 부활(復活)을 준비하는 신앙(信仰)을 사는가? 현세의 삶을 위한 신앙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28 “스승님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자식아들)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 하느님 나라의 성가정(聖家庭) 모습이다. 영원한 죽음에 갇혀야 할 죄인(罪人)이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풀려나 그분과 혼인(婚姻)하러 가는 하느님 나라다.

 

(마태22,2)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아들 야곱을 *낳았다. 그리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다. -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의 뜻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이들을 ‘살았다’고 하는 것이고, 그 깨달아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자식(산 이들)으로 보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한 삶을 살아가려 하기에 스스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반드시 후사(後事) - 자식(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聖經)은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죽었다.’고 ‘죄인, 짐승’이라고 하신다.

 

(이사1,2-3) 2 하늘아들어라땅아귀를 기울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 모든 피조물(被造物), 우주 만물이 하느님의 뜻을 위해 그분 뜻대로 살아가며 움직이지만, 인간만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拒逆)하며 원수(怨讐)로 살아간다고 하신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 그러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믿어야 할) 하느님의 뜻(일)은? 자신의 뜻, 현세의 것을 이루려 육의 양식을 위해 열심을 부리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罪)를 품으시고 대신 죽고 살리시어, 하늘의 새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 이시다.(요한1,9-14참조) 그러나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믿으려,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앞세운다.

 

(요한6,28-29)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죄인(짐승)들의 생명의 양식(糧食)으로 보내심을 믿는 것이다.

 

(요한6,38-40)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아버지의 뜻,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順從)하신 예수님을 진리(眞理)로 깨달아 믿는 것이 구원(救援)의 길이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 그래서 우리도 성모(聖母) 마리아처럼 아들을 낳아야(깨달아야)한다.

 

(루가2,7) 7 첫아들을 낳았다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짐승들의 먹이통에 누우신, 깨끗하고 따듯한 여관(旅館)에 들어가지 못한, 그 작은 아기가 구원자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곧 구유의 아기가 하느님의 뜻으로 구원의 진리, 새 계약의 말씀으로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가2,34) ~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쓰러지게 하신 후 일어나게 하시는, 곧 육(肉)의 교만(驕慢)을 죽이시고 영(靈)으로 살리시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그분이, ‘구원의 진리’이심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산 자,’ 곧 하느님의 자식(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그 길이 진리(眞理)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오늘 독서(1마카베오 6,13) 안티오코스처럼 세상의 권력(權力, 명예, 힘)을 떨칠 때에 쓸모 있고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육(肉)의 영광을 위해 따르게 되면, 곧 현세(現世)를 위해 믿는다면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마르8,31-33)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대속)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꾸짖다)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 하느님의 일(뜻)을 위한 죽음이다. 성경(聖經)의 모든 말씀과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奇蹟)과 표징(標徵)등, 모든 일이 땅의 일, 사람의 현세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 하느님 나라의 일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곧 어제 확인했듯,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며, 그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속죄(贖罪) 제물로 내주신, 인간의 지각(知覺)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사랑, 자비를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感謝)와 찬미(讚美)로 영광(榮光)을 드리는 것이다. 그들이 ‘산 이들’인 것이고, ‘그들의 하느님’ 이시다.

 

(로마6,3-5)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하늘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 아멘

 

*본문 38절을 다시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祈禱)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삶과 죽음에 초연한 부활 신앙  

 

이스라엘 백성의 부활신앙은 기원 전 164년 경에 기술된 다니엘서(12,2-3)를 비롯해 이사야서(26,19), 지혜서(7,1-6), 그리고 마카베오서 등에 나타납니다.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두고 바리사이들은 부활을 인정했으나(사도 23,8) 현세 사정이 부활한 뒤에도 지속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편 주로 고위 사제가문 출신들로 구성된 사두가이들은 성경으로 인정한 모세오경에 없다고 생각되는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와 영적 존재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해석에서는 보수적이었고, 정치적으로 부패한 유다 당국자들과 로마의 권력과 손을 잡고 실리를 챙겼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수혼법(신명 25,5-10)을 들어 부활세계는 지상 삶의 연장일 뿐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며 예수님을 비웃으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우리의 삶과 죽음의 주관자이시며(20,38), 부활의 삶이란 현세 삶의 연장이 아니며 하느님의 권능으로 시작되는 전혀 새로운 세계임을 가르치십니다(20,35). 바오로 사도도 그런 부활관을 지녔습니다(1코린 15,42-44).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생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 세상을 살아가며 형성되는 인간관계와 사랑, 삶의 수고와 고통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지나가버릴 현세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산다면 영원한 생명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 삶은 물질과 감각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참 행복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내세의 삶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부활 때문에 선사받은 새로운 생명입니다. 죽음은 그렇게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단절이나 절망과 허무의 골짜기가 아니라 영원으로 가는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따라서 마카베오의 형제들은 의로운 이의 부활을 믿고 순교했으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죽음을 자매(태양의 찬가 27절)라 하였지요. 

그런데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우리는 생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는 그런 희망을 지닐 때 세상살이에서 겪는 온갖 역경과 고통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굳건한 부활신앙으로 지상에서의 삶이 생명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차려 현실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세 재화나 명예, 다양한 인간관계 등 세상살이에서 주어지고 만나게 되는 그 어떤 것도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그 무엇에도 매이거나 연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과 허수아비 언론, 자본가들의 횡포에 하느님의 힘으로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오늘 생명과 죽음이 얼굴을 마주보며 또 다른 생명을 향해 달려가는 자연의 변화를 보며,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하며 지금 이 순간에 생명과 죽음 전부를 담아내도록 혼신을 다 하고, 희로애락이 산책하는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은 끝이 없고, 하느님 안에서는 삶도 죽음도 궁극적인 의미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제32주일복음(루카20,27-38)

 

끝은 시작입니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생사를 넘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삽니다. 주님을 닮아 아름답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히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밝히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은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34-36)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 하늘 나라입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이미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천사들처럼 천상 생활을 앞당겨 살아갑니다. 

 

삶이나 자연을 통해 이런저런 아름다움을 체험할 때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듭니다. 사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천상 아름다움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이미 하늘 나라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사람 눈에 죽음이지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당신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아멘.

 






 


2022년 11월 06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장가가 먼저다. (오늘 미사를 제사가 아닌 혼인 잔치로 드려야)


 


* 성경(聖經)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자주 표현한다. 그것은 당시 그들에게 익숙한, 그들이 약속으로 만들어 놓은 혼인풍습을 통하여 하늘의 언약, 계약을 설명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시청각 교육재료다.


당시 고대 혼인풍습은 7일간 이루어졌다. 왜7일까?(모든 것은 진리를 설명한다.)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랑이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당시에는 교통수단도 좋지 않았고, 사고도 잦고 해서 언제 신랑이 도착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7일 중에 아무 때나 신랑이 오면 되었다.


*신랑이 부모를 떠나 홀로 신부의 집으로 간다. 장인 장모가 있는 집으로 간다. 그것을 ‘장가간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에 장가간다.”고 하신 것은(예레31.32 호세2,21-22) ‘내가 먼저 너희들에게 찾아가겠다.’는 뜻이다. 신랑(하느님)이 장가를 먼저 가야한다. 그리고 신부는 그 신랑이 언제올지 모르기에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어야한다. 7일 동안~


그런데 둘러리(어리석은 세상)와 함께 기다린다. 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어떻게 찾나? 신랑, 자신이 미리 보낸 ‘빙폐물’, 곧 믿음을 갖고 있는 여자, 그가 신부다. 그 찾아낸 신부를 데리고 잔인, 장모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밤에 혼인예식을 치룬다.


밤 같은 세상에 신랑(빛)이 와서 그 신부위 집에서 먼저 같이 산다. 그리고 첫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


똑 같은 것이다. 하느님이 오셔서 우리와 혼인을 하신다. 그리고는 우리가 첫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후손을 낳을 때까지 여기에서 사신다.


우리가 이땅에 존재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첫 아들을 낳으면 그 첫 아들을 데리고 이제 자기 집으로 간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계신 시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말씀)이 장가를 오시면 우리가 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열매를 맺어 후손, 그리스도라는 아들을 낳고 시집으로 가면 혼인잔치가 완료된다. 그것이 우리 구원의 여정, 모형이다. 신랑(新郞- 새, 사나이) 곧 신랑을 맞는 것은 새 나라를 받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대로 시청걱 재료로 쓰셔서 당신의 약속, 언약, 구원의 계약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들, 고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쓰셔서 그렇게 밤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의 신부를 찾아 장가가시면 신부는 진리의 말씀으로 오신 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열매를 생산하게 된다. 둘이 함께 낳을 아들, 후손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맞아들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아들을 준비하다가 마침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낳은 여자(육신)는 삭제되고 그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랑이 그리스도가 아닌, 법의 신랑으로 인식되면 그 가짜 남편과 함께 열심히 ‘나’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 신랑을 법으로 인식하면~


그 ‘나’라는 아들과 함께 영원한 흙,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음 (루카20,27-38)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사두가이 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예전에 나처럼)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영원한 생명보다 현세의 삶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불행한 일이다.(1코린15,19)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 후사(後事)를 일으키다. - 후손(後孫)을 낳아 후손으로 하늘로 세워져야 함을 뜻한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 세상(육)에 대하여 죽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세례,(로마6,4-5) 그리고 마리아처럼 말씀을 잉태하여(받아) 구원자, 아들(후손)을 낳는(깨닫는) 것이다. 장가, 시집가는 혼인, 곧 구원의 모형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로마6,5)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자기 버림)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로마4,25)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아멘)


=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두 죽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다. 대속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以前) 세워지셨고,(에페1,4) 그분의 구원의 힘은 창조 전(全) 역사에 흐른다.(묵시22,13)


*혼인(婚姻)은 하느님 나라에 완성된 구원의 모형이다. 남자(하느님, 씨)와 여자(피조물, 인간)가 혼인을 하여 반드시 아들, 후손(그리스도)을 낳아야하는 이유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미사가 하느님(말씀)과 혼인잔치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후손(아들) 그리스도를 낳는(깨닫는) 믿음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2년 11월 06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장가가 먼저다. (오늘 미사를 제사가 아닌 혼인 잔치로 드려야)

 

성경(聖經)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자주 표현한다그것은 당시 그들에게 익숙한그들이 약속으로 만들어 놓은 혼인풍습을 통하여 하늘의 언약계약을 설명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시청각 교육재료다.

당시 고대 혼인풍습은 7일간 이루어졌다7일까?(모든 것은 진리를 설명한다.)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신랑이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당시에는 교통수단도 좋지 않았고사고도 잦고 해서 언제 신랑이 도착할지 몰랐기 때문이다그 7일 중에 아무 때나 신랑이 오면 되었다.

*신랑이 부모를 떠나 홀로 신부의 집으로 간다장인 장모가 있는 집으로 간다그것을 장가간다.’고 한다하느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에 장가간다.”고 하신 것은(예레31.32 호세2,21-22) ‘내가 먼저 너희들에게 찾아가겠다.’는 뜻이다신랑(하느님)이 장가를 먼저 가야한다그리고 신부는 그 신랑이 언제올지 모르기에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어야한다. 7일 동안~

그런데 둘러리(어리석은 세상)와 함께 기다린다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어떻게 찾나신랑자신이 미리 보낸 빙폐물’, 곧 믿음을 갖고 있는 여자그가 신부다그 찾아낸 신부를 데리고 잔인장모의 집으로 들어간다그리고 밤에 혼인예식을 치룬다.

밤 같은 세상에 신랑()이 와서 그 신부위 집에서 먼저 같이 산다그리고 첫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

똑 같은 것이다하느님이 오셔서 우리와 혼인을 하신다그리고는 우리가 첫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후손을 낳을 때까지 여기에서 사신다.

우리가 이땅에 존재하는 기간이다그리고 첫 아들을 낳으면 그 첫 아들을 데리고 이제 자기 집으로 간다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계신 시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말씀)이 장가를 오시면 우리가 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열매를 맺어 후손그리스도라는 아들을 낳고 시집으로 가면 혼인잔치가 완료된다그것이 우리 구원의 여정모형이다신랑(新郞사나이곧 신랑을 맞는 것은 새 나라를 받는 것이다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대로 시청걱 재료로 쓰셔서 당신의 약속언약구원의 계약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들고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쓰셔서 그렇게 밤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의 신부를 찾아 장가가시면 신부는 진리의 말씀으로 오신 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열매를 생산하게 된다둘이 함께 낳을 아들후손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맞아들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아들을 준비하다가 마침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낳은 여자(육신)는 삭제되고 그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그런데 그 신랑이 그리스도가 아닌법의 신랑으로 인식되면 그 가짜 남편과 함께 열심히 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신랑을 법으로 인식하면~

그 라는 아들과 함께 영원한 흙어둠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음 (루카20,27-38)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사두가이 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다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예전에 나처럼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영원한 생명보다 현세의 삶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정말 불행한 일이다.(1코린15,19)

 

28 “스승님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후사(後事)를 일으키다. - 후손(後孫)을 낳아 후손으로 하늘로 세워져야 함을 뜻한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죽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세례,(로마6,4-5) 그리고 마리아처럼 말씀을 잉태하여(받아구원자아들(후손)을 낳는(깨닫는것이다장가시집가는 혼인곧 구원의 모형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로마6,5)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자기 버림그분과 결합되었다면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로마4,25)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아멘)

아브라함이사악야곱모두 죽었다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다대속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以前세워지셨고,(에페1,4) 그분의 구원의 힘은 창조 전(역사에 흐른다.(묵시22,13)

*혼인(婚姻)은 하느님 나라에 완성된 구원의 모형이다남자(하느님)와 여자(피조물인간)가 혼인을 하여 반드시 아들후손(그리스도)을 낳아야하는 이유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미사가 하느님(말씀)과 혼인잔치가 되게 하소서그래서 후손(아들그리스도를 낳는(깨닫는믿음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몇 년에 한 번씩 어머니 꿈을 꾼다 / 장영일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그리스도왕 대축일]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23,35ㄴ-43)22.11.19조회 74[연중 제33주일]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가21,5-19)22.11.13조회 79[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그분은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38)22.11.06조회 56[연중 제31주일]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 (루카19,1-10)22.10.30조회 98[연중 제30주일]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16-20)22.10.23조회 58[연중 제29주일] 끊임없이 기도하라 (루카18,1-8)22.10.16조회 46[연중 제28주일] 나병 환자 열 사람 치유 (루카17,11-19)22.10.09조회 73[연중 제27주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 (루카17,5-10)22.10.02조회 60[연중 제26주일] 부자와 라자로이야기 (루카16,19-31)22.09.25조회 79[연중 제25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22.09.18조회 70[연중 제24주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15,1-32)22.09.11조회 64[연중 제23주일]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14,25-33)22.09.04조회 54[연중 제22주일] 招待를 받거든 끝자리에 앉아라. (루카14,1.7-14)22.08.28조회 57[연중 제21주일] 좁은 門으로 들어가라. (루카13,22-30)22.08.21조회 63[연중 제20주일]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3)22.08.14조회 79[연중 제19주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2-48)22.08.06조회 59[연중 제18주일]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22.07.30조회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