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10일 목요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8,51-59)
제1독서<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창세17,3-9)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화답송>시편105,4-5.6-7.8-9(◎8ㄱ)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복음<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요한8,51-59)
예수님께서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17,3-9)
"그 무렵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3)
여기서 '엎드리다'에 해당하는 '나팔'(naphal)은 '떨어뜨리다'(15,12)는 의미 외에도 '붕괴하다'(이사3,8), '열등하다'(욥12,3)는 의미가 있으며, 본문은 마치 건물이 붕괴되듯이 몸을 숙이고 얼굴을 땅에 붙이는 행동을 말한다.
즉 하느님께서 13년 만에 나타나시자 아브람이 황급히 몸을 숙이며 엎드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것은 ① 아브람이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리지도 믿지도 못하고 하가르를 취해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에 대한 죄송함(창세16장) ② '전능한 하느님'(17,1)을 공경하고 경배하는 표시 ③ 하느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 들인다는 복종의 표시이다.
"나를 보아라. 너와 맺은 내 계약은 이것이다." (4)
히브리어에서는 주어가 동사의 접두어나 접미어에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내가'(ani; 아니)라는 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본문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자신을 소개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보아라'(보라)에 해당하는 '힌네'(hinne)가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특별히 계약을 새롭게 하실 것에 대해 주의를 환시기키고 있다.
이미 창세기 17장 2절에 하느님께서는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계약을 세우고,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에는 '베리티'(berithi; 내 계약을)라고 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내 계약'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나와 너 사이의 쌍방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약의 주체가 되어 아브람과 일방적으로 맺은 편무(片務)계약임을 표방하셨다.
그 이유는 아브람에게 계약을 온전히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기에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주시고, 이를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온전히 완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창세기 17장 2절에서 나온 '내 계약'이 이미 주어진 계약(창세15,17~18)을 재확인하는 성격을 지녔다면, 창세기 17장 4절에 나오는 '계약'은 그것의 구체적 실현에 그 강조점이 있다.
즉 이는 ① 아브라함의 개명(5절) ② 할례(7절) ③ 사라의 개명(15절) ④ 이사악의 출생에 대한 약속(19절) ⑤ 이스마엘의 번성에 대한 약속(20절)등과 같이 계속해서 언급될 구체적인 계약의 내용들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17장은 하느님께서 계약을 주시고, 그것을 점진적으로 성취해 가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창세12,2; 15,5).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4)
본문에서 '너는~될 것이다'로 번역된 '웨하이타'(wehaitha)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에서 완료형은 말하는 사람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료된 동작이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과거 완료나 현재 완료는 물론, 미래 완료를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는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된 것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라는 직분을 이미 소유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둘째는 미래적으로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을 약속하신다는 관점이다. 보통 '될 것이다'로 표기되어 두번 째 관점을 취하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의 선포는 이미 이루어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첫번째 관점을 취할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많은 민족들'(열국; 列國)로 번역된 '하몬 꼬임'(hamon goim)은 '나라들의 풍부' 또는 '나라들의 격동'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많은 나라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한 표현이다. 이것은 또한 창세기 12장 2절에서 주어진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의 범위가 훨씬 확장되어진 것이다.
즉 아브람은 그러한 많은 나라들의 아버지로 표현함으로써 아브람이 이룰 큰 민족이 그의 당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 의해 성취되어질 것을 내다보고 있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5)
'더 이상'에 해당하는 '오드'(odh)는 '다시', '아직도', '계속'으로도 번역되는 부사이다. 여기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는 '다시'로 해석하여 네 이름을 다시는 아브람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둘째는 '계속'으로 해석하여 네 이름을 계속 아브람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아브람은 아브람의 삶을 정리하고, 아브라함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아브람'(abram)이 '아브라함'(abraham)으로 이름이 바뀌어지는 역사적 순간이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의미를 넘어서 환경(탈출2,22), 소원(창세29,32~35), 가문(루카1,60.61), 사명(마태1,23)등과 같은 그 사람과 관계된 제반 상황을 반영한다.
아브라함의 개명은 야곱이 이스라엘로(창세32,28), 시몬이 베드로로(요한1,42), 사울이 바오로로(사도13,9) 이름이 바뀌면서 그들의 생애가 대전환기를 맞았듯이 그의 생애에 중요한 전환기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아브'(ab)는 동일 혈통의 창설자나 서열이 높은 자를 지칭한다.
'람'(ram)은 '세우다', '일으키다'는 뜻이 있는 '룸'(rum)의 분사형으로 '높은'(이사6,1), '강력한'(신명32,27)등으로 번역되어 높고 힘있고 존귀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라함'(raham)은 '군중'(multitude)이란 뜻의 '루함'(ruham)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아브라함의 개명은 '존귀한 아버지'에서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 혹은 '많은 자의 아버지'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개명은 하느님께서 그를 구세사의 핵심 인물로 지목하여 전 세계 모든 간택한 자들을 당신 자신의 나라로 이끄시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6)
'나는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에 해당하는 '웨히프레티'(wehiphrethi)는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열매를 맺게 하겠다'(번성하게 하겠다)이다. 즉 본문은 '파라'(pharah; 열매를 많이 맺다)의 사역형이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주체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주실 것이 약속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2절에서의 '번성하게 하리라'에 해당하는 '라바'(rabah)는 수량의 증가에 그 주안점이 있다. 반면에 여기서의 '파라'는 결과의 유용성에 더 큰 강조점이 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근본'(모태, 토대)으로 많은 영적이고 육적인 결실을 맺으실 것을 밝히신 것이다.
6절의 전반부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한 많은 민족들의 번성을 약속하셨다. 더불어 6절의 후반부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많은 임금들이 그의 후손 중에서 나타날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이 예언은 훗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많은 나라를 이루고, 그 자손 가운데서 많은 통치자가 생겨남으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본문에 대한 최고의 성취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것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다(마태1,1). 그리고 이것은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인 바로 우리 자신들이 영원히 왕노릇함을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약속이기도 하다.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묵시22,5)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7)
본문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과 만왕에 대한 약속이 결코 소멸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보통 계약을 세울 때 사용되는 동사는 '카라트'(karath; 자르다)이다. 이것은 계약을 세울 때, 1차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들에게 2차적으로는 그의 영적 자녀인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계속 적용되는 짐승을 자르고 맹세하는 예식과 관련된 용어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창세15,9-10참조)사이로 지나갔다.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창세15,17~18)
그러나 여기 창세기 17장 7절에서는 '와하키모티'(wahaqimothi; and I will establish; 내가 세울 것이다)에서 처럼, '쿰'(qum; 일어나다)의 사역형이 쓰여서 '확립하다','세우다'란 뜻을 가진다. 이것은 계약을 세우는 예식 보다는 그 계약을 지켜 가시고 성취해 가시려는 하느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엄정한 계약은 1차적으로는 이브라함의 혈통적 자손들에게, 2차적으로는 그의 영적 자녀인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도 계속 적용되는 놀라운 축복이다.
본문에서는 '올람'(olam; 영원한; everlasting)이란 단어가 뒤에 쓰여서 그 축복의 종결이 하느님께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그 영원성을 보증하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계약의 성취를 가로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이 귀중한 은총은 구약 전체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으며(탈출6,7; 레위11,45; 민수15,41; 이사55,3) 하느님 백성들은 이 계약 덕분에 구원받아 찬란한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과 동행하는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사도2,37).
그리고 '후손'은 '후'나 '뒤'로 번역되는 '아하레'(ahare)와 '씨'나 '자손'으로 번역되는 '제라'(zera)의 합성어이다.
이처럼 본문은 '후'와 '자손'을 반복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그들의 하느님이 되실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크고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한 개인을 부르시고 간택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그의 후손까지 함께 부르시고 간택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그네살이 하는'에 해당하는 '메쿠레카'(mequreka)의 히브리어의 기본형인 '마쿠르'(maqur)는 '잠시 머무는 곳'(창세47,9), '거주지'로 번역된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당시까지는 가나안 땅에 아무런 유업을 갖지 못한 나그네(stranger)요, 이방인(alien)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마므레 맞은 쪽 막펠라에 있는 에프론의 밭을 사서 그녀를 안장함으로서 약간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창세23,17.18).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땅의 소유보다는 하느님께서 그를 축복의 근원으로 세우신 것이 더욱 중요하다(창세12,2).
'가나안 땅 전체를'에 해당하는 '에프 콜 에레츠 케나안' (eth kol erets kenaan)을 직역하면 '가나안 모든 땅을'이다.
즉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의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 약속은 출애굽한 후 요르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 시대에 성취되기 시작하여(여호23,11~13), 다윗왕 때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성취되었고(2사무3,10), 솔로몬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그 영화가 최고점에 달했다.
'영원한 소유로 주고' 에 해당하는 '라아훗자트 올람'(laahuzath olam)에서 '소유'에 해당하는 '아훗자'(ahuzah)는 '기업'(예레25,33),'재산'(레위25,45)으로 번역되지만 더 나아가서는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가족 유산'도 의미한다.
그래서 '영원한 소유(기업)'이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대대로 유산으로 상속해 줄 것임을(1역대16,18) 표현한다. 이 약속이 땅 전체로 완전히 성취된 때는 다윗과 솔로몬 때이다(1열왕8,65; 2역대7,8).
그런데 '영원한'으로 번역된 '올람'은 본문에서는 단지 오랜 세월이란 의미로 쓰였다. 특히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물질적인 '땅'과 연결되어 쓰였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올람'이 말 그대로 시간적 제한이 없는 '영원'(eternity)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이 땅의 기업에는 시간적 제한을 두시지만, 이것을 이 땅의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영원한 영적인 것으로 옮겨 가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진정한 영원성이 있기 때문에 본문의 약속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넘어서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까지를 내다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9)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할 주체가 바로 '너'(앗타; atha)임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앗타'(너)란 말이 두 번 씩이나 사용된 것은 누구보다도 아브라함이 그 후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키고'에 해당하는 '샤마르'(shamar)는 '준수하다'(1사무1,12), '주의를 깊게 하다'(신명4,6)라고도 번역한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가나안 땅을 기업(소유)으로 얻기 위하여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 준수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이어서 언급되는 할례(오늘날의 포경수술)로서 남자의 양피를 베는 계약의 표이다(17,10~14).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아브라함을 비교하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그 시기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유다인들에게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그분의 축복을 백성에게 내려 준 가장 위대한 선조입니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그 뒤로 유다인들에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이 계약에 따라 하느님의 축복을 상속받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위대한 선조인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축복으로 장수하였지만 영원히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에게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들렸다고 하며, 더 이상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논쟁에서도 질문이 등장합니다.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선재(先在)’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 이전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계시는 분으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이 예수님에 관한 복음서의 내용을 기억하게 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사순 제5주간 목요일
하느님 사랑에서 떼어 놓으려는 거짓 사랑에 빠지지 말자
(요한 8,51)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 말씀을 법으로 받아 그 법을 지키는 행위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법으로 받으면 죄만 늘어날 뿐입니다. 착한 일과 나쁜 일로 드러나니까요(로마3,20)
하느님 나라는 완전한 오른 나라이기에 나쁜 일이 하나라도 있으면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자비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속죄 제물의 예형이었던 구약의 어린양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새 계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히브10,16-18)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십자가의 대속으로 덮으시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8,12)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살아계심입니다.
(묵시1,4-5-6)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 지금도- 호몬(지금부터 영원히~) 전에도- 호빈(전부터 끊임없이~) 앞으로- 멜로머노스(지금부터 계속되는~)
그래서~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제사와 윤리의 그 율법이 아닌 죄의 대속, 그 덮으심의 실체인 십자가의 복음, 그 말씀 안에 머물며 자유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본문51절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제사와 윤리, 그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빼앗기지 말고~ 내 마음 안에 지키면 영원히 죽음(지옥)을 보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늘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시련과 고통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시련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약속, 말씀으로 희망하며 감사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4,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세상의 물- 사람의 말은 다시 갈증을 느끼게 하지만, 주님의 물-말씀이 내안에 계시면 시련, 고통을 이기도록 내 안에서 일하십니다.
지금도 함께 하시며 이끄시는 그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로마8,38-39)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아멘
사순 제5주간 목요일 복음(요한8,51~59)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58~59)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이 존재했다는 예수님의 주장은 요한 복음사가가 이 복음서의 서두에서부터 강조한 예수님의 신성(神聖)과 선재성(先在性)에 대한 신학적 주제와 관련된다.
특히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에서 자신의 정체를 나타낼 때, 그리고 신적 본질을 나타낼 때 흔히 사용한 '에고 에이미'(ego eimi; I am)라는 양식의 진술을 통해 자신의 신성(神聖; diety)과 선재성(先在性; pre-existence)을 동시에 명백하게 나타내셨다.
'에고 에이미'(ego eimi; I am)라는 양식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인 탈출기 3장 14절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이 선언의 중요성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적 권위를 나타내며 중요한 영적 진리를 선포하실 때 주로 사용하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에 해당하는 '아멘 아멘 레고 휘민'(amen amen lego hymin; I tell you the truth)으로 시작된다.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아브라함은 과거 어떤 시점에서 태어난 존재임에 반하여, 예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였음을 명백하게 나타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아담 이전, 즉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광 중에 계신 하느님이심을 유대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요한17,5),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요, 신성(神聖)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유대인들은 규정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적 본질을 모르면 그분의 주장을 믿고 수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람들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당신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는 예수님의 주장을 그들이 존경하는 조상 아브라함을 비하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당신 자신이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를 범한 죄인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예수님께 돌을 들어 던지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중죄인, 특히 신성 모독죄를 범한 자들은 돌로 쳐 죽이는 관습이 있었다(레위24,16).
따라서 유대인들은 그 당시 자신들을 반대하는 예수님께 대한 적대감과 더불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성 모독죄라는 죄목을 들어 돌을 던지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셔야 할 더 큰 일을 자각하시고, 잠시 뒤로 물러나시는 지혜로운 행동을 보이신다.
여기 '성전 밖으로'에 해당하는 '에크 투 히에루'(ek tou hierou; out of the temple)는 '성전에서 밖으로'라는 뜻이다. '히에루'(hierou)는 '히에론'(hieron)의 단수 소유격이다.
여기서는 건물과 마당을 다 포함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성전 밖으로 몸을 숨기셨다는 것은 결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이미 당신 자신을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기 위한 희생 양으로 내어 놓으셨으므로 새삼스럽게 죽음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다만 아직 아버지께서 정하신 떄가 이르지 않았기에 피하셨을 뿐이다. 그분께서는 언제든지 하느님의 계획 및 목적에 보조를 맞추셨다. 앞서 나가거나 뒤에 처지는 일이 없이 언제든지 그분의 뜻을 따르셨던 것이다.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성주간이 가까워지면서 오늘 독서와 복음은 ‘계약’에 집중합니다.
독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이야기하고, 복음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질 새로운 계약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라고 약속하심으로써 이 계약이 후손들에게도 유효할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리고 이 계약의 결과로 “많은 자손”과 “땅”이 약속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새 계약의 결과로 약속하십니다.
옛 계약이 많은 자손과 땅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면 새 계약은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내용으로 갱신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은 곧장 유다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아브라함보다 우위에 계시고, 이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보다 훨씬 중요하고 강력한 계약이 체결될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새로움’에 대한 불편함은 유다인들을 분노와 광기로 몰아갑니다.
돌을 들어 던지려고까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도발을 뒤로하신 채 성전을 빠져나가십니다.
끝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새 계약의 제물로 내놓으시지만, 이 새 계약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입당송 히브9,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율법, 계명)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독서(창세17,1-11.14)
1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2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계약을 세우고,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 원문을 직역하면, 앞에 후손들은 복수가 아닌 단수 후손이다.(공동번역성서 참조) 곧 원시복음(창세3,15)의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갈라3,16참조)
그러니까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후손들’인 우리가 하느님의 것이되는 영원한 계약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곧 그분으로만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모형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10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 14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지 않은 자, 그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가야 한다. 그는 내 계약을 깨뜨린 자다.”
= 할례는 다른 계약, 곧 새 계약을 가르키는 표징이다. 할례는 남자(사람)의 힘(씨)을 베어내는, 잘라내는 것이다. 곧 하느님은 인간의 힘(씨)을 통해 구원의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99세된 할아버지에게 할례까지 하라 하신 후, 후손인 예수의 모형인 아들 이사악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의 씨, 곧 사람의 힘(씨-말)을 의지 하지말고, 베어버리고 하느님의 힘인 후손, 아들, 새 계약이신 예수님(씨-말씀)을 의지하여, 성경 안에 기록된 모든 하느님의 은총, 은혜의 약속인 하늘의 복(의, 거룩, 생명)을 받으라는 말씀이다.
복음(요한8,51-59)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 말씀을 율법(제사와 윤리, 계명), 그 옛 계약으로 지켰던 자신과 그로 얻은 자신의 모든 것(영광, 의)을 베어, 잘라버리고 대신 율법을 다 지켜 내시고 전가시켜주신 , 또 율법으로 드러난 모든 죄를 십자가에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피, 새 계약으로 거저 얻은 용서, 의, 영원한 생명을 받았음을 믿고,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진리로 마음에 간직하고, 믿고 으ㅟ탁하며 자유, 쉼, 안식을 사는 것,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그 간직한, 지킨 새 계약의 말씀(그리스도)을 이웃과 나누는 것, 말씀을 지키는 것이며 그 아드님을 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의롭게 착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신앙, 구원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성경을 깨닫지 못한 소리다. 성경은 인간의 목숨을 먼지, 없음으로 죽었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담았을 때, 생명이다. 살았다. 하신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느님, 구원의 예수님을 모형 할 뿐이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 ‘영광’ 히브리어 ‘독사’는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그 이타의 사랑이 드러나 나타난 것을 말한다. 그 영광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십자가’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영광이신 것이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 앎(야다-* 함께 눕다), 안다는 것은 아는 분과 하나,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한다. ( 요한17,3.21-23 참조)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 아브라함은 독서 창세17,1~‘계약의 후손(그리스도)으로 흠 없는 이가 될 것임을 믿었다’는 말씀이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 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그리스도시다.(히브1,1-3 에페1,4~ 참조)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 아직 십자가의 때가 아니기에 숨으신 것이다.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로 받는 하느님의 은총이다.
(에페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구원의 완성, 신앙의 최종 목적지가 하느님께 영광드림이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흠 없는 이로 하늘의 온갖 축복을 받도록 보증이 되어 주시며 구원의 완성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구원의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