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0일 화요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루카1,26-38)
제1독서<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이사7,10-14)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화답송시편 24(23),1-2.3-4ㄱㄴ.5-6(◎ 7ㄷ과 10ㄷ 참조) ◎ 주님이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복음<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루카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7,10-14)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렵 합니까?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7,10~14참조)
아람과 북부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아시리아에 반기를 든다. 남부 유다의 아하즈 임금(B.C.735~716)이 아시리아에 반대하는 그들 동맹을 거절하자 아람과 북부 이스라엘이 남부 유다를 침공한다.
아하즈의 목숨뿐 아니라 다윗 왕조의 운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이사야는 저 유명한 임마누엘의 표징을 아하즈에게 알리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아하즈는 하느님께 매달리는 대신 아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 댓가로 아시리아의 이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사야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그가 반아시리아 동맹에 가담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시 근동의 초강대국인 아시리아에게 무모하게 대항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아시리아 의존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10)
이사야서 7장 1~9절은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하즈에게 남부 유다가 북부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략에서 보존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이사야서 7장 10~16절은 남부 유다의 보존 예언을 확증하는표징으로서 임마누엘의 예언을 주는 내용이다. 즉 이것은 주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아하즈에게 다시 한 번 주님을 믿고 그에게 도움을 구하라는 일종의 신앙적 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표징을 구하지 않는 그에게 주님께서 친히 표징을 주심으로써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이르셨다'는 말씀은 7장 13절의 '이사야가 말하였다'와 연결되는데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자신의 지성과 언변에 담아 아하즈에게 전달하였던 것이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11)
여기서 제기되는 '표징' 즉 '오트'(oth)는 어떤 추상적 사실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표적과 같은 것을 지칭한다.
아하즈에게 하나의 표징(징조)을 구하라는 것은 그가 주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주님의 능력을 얼마나 믿는지를 표현하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 제안을 표면적으로 보기에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의미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하즈의 믿음을 시험하는 제안이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구하는 어떠한 표적도 다 보여줄 수 있다.
더욱이 주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이 시공간을 벗어나 가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 가운데 실제 역사하는 것이어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즉 이것은 세상에서 그분이 구체적으로 행사하시는 일, 실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보다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제안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느님을 가리켜 '너의 하느님' 즉 '아하즈의 하느님'이라고 칭한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헛되고 무력한 거짓 신을 섬기는 이방 민족의 왕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계약의 백성들 중에 통치자로 존재함을 확인시켜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는 지금껏 이방 신을 섬기고 온갖 패역을 자행하는 자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느님을 다시 자신의 하느님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계약 국가 유다를 하느님의 섬기는 나라로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11)
아하즈가 표징을 구하되 그 표징을 깊은 데서 오게 해 달라고 혹은 높은 데서 오게 해달라고 구하라는 의미이다.
이 두 장소는 인간이 도달하기 불가능한 곳으로서 음부와 하늘을 지칭한다.
만약 그곳에서 표징이 보인다면, 이것은 하느님께서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요구까지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사야는 아하즈에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징표로 구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12)
이것은 아하즈가 주님께서 제안하시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였음을 보여주며, 그가 아시리아와 손을 잡고 그 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것을 이미 결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아하즈는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서 주 하느님이 아닌, 장차 유다를 침공할 이방 아시리아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본문은 두 절 모두 강한 부정어 '로'(lo)와 더불어 동사의 미완료형이 사용된 구문으로서, 결코 영원히 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써 아하즈가 얼마나 완고하고 사악한 자인지, 그리고 하느님께 대체 얼마나 무관심한 자인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시험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아낫쎄'(anaseh)의 원형 '나싸'(nasah)는 구약성경에서 34회 사용된 동사로서 어떤 물건의 품질이나 인격의 진정성을 알아내기 위해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아하즈도 신명기 6장 16절의 '그분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근거삼아 이렇게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명기의 말씀은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그를 시험하는 불신앙적 행위를 금한 말씀이다.
반면에 지금 이사야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그 믿음을 하느님께 어려운 징조를 구함으로써 표현하라는 것이므로 이 둘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 그 점에서 볼 때 아하즈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그의 백성이 마땅히 올려야 할 기도인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기도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능력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한다는 표시이며, 하느님을 도무지 신뢰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13)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 왕실을 가리켜 '아하즈의 왕실'이라고 칭하지 않고 '다윗 왕실'이라고 칭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윗 왕실은 다윗 임금이 다스리던 시대의 이스라엘의 왕실을 의미하는데, 그 왕실은 주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통치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수백년이 흐르면서 그 믿음의 표상은 불신앙의 표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응당 믿음의 표상이 되어야 마땅한 유다의 왕실이 어찌하여 불신앙의 표상이 되었느냐고 물으면서 한탄의 어조로 이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유다 임금 아하즈는 유다 왕실을 대표하는 자로서 그의 뜻은 곧 왕실 전체의 뜻이기에 아하즈의 태도에 따라 왕실과 나라 전체가 복을 받기도 하고, 심판을 받기도 하는데 말이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렵 합니까?' (13)
여기서 '사람들'에 해당하는 '아나쉼'(anashim)은 흔히 유한하고 병약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 '에노쉬'(enosh)의 복수형이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주권자를 의지하여 도움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유다 왕실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통만 당하는 무력한 백성들을 의미한다.
이사야서 7장 11절까지만 해도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너의 하느님', 즉 아하즈의 하느님으로 지칭하다가 여기서는 '나의 하느님', 즉 이사야 자신의 하느님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렇게 호칭이 바뀌게 된 것은 이사야서 7장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아하즈의 불신앙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불신앙과 교만으로 가득하여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탄없이 등을 돌리시는, 겸손하게 그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의 하느님이시다.
'성가시게 하고서'의 '할르오트'(haleoth)의 원형 '라아'(laah)는 구약 성경에서 19회 사용된 단어로서 피곤하게 하고 진절머리가 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탈출7,18; 욥4,2; 16,7; 예레15,6).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14)
아하즈가 구하기를 거부한 표징을 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실 것이 선포된다. 하느님께서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아하즈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하느님은 유다 백성에게 표징을 보여주실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무상의 선물인 은총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은총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여기서 '젊은 여인'(처녀; virgine)에 해당하는 원어는 '하알르마'(haalmah)이다.
이 단어의 원형 '알르마'(almah)는 구약에서 7회 사용되었는데,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 즉 결혼 적령기에 있지만 성(性)경험이 없는 여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창세24,43; 탈출2,8; 잠언30,19).
더욱이 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칠십인역(LXX)은 본문의 이 단어를 숫처녀를 의미하는 희랍어 '파르테노스'(pharthenos)로 번역하였다.
이 '파르테노스'(pharthenos)는 숫처녀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 '뻬툴라' (bethula; 창세24,16)의 번역어이기도 하며, 마태오 복음 사가가 마리아를 가리켜 '처녀'(동정녀)라고 한 희랍어 '파르테노스'와 동일한 단어이기도 하다(마태1,23).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가리키는 예언이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난점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징조가 당시 아하즈 임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700년 후에 일어날 징조가 당시 아하즈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그러하다면 그 징조가 아하즈에게 어떻게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징조가 될 수 있겠는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난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난제를 이렇게 해석하면 물의가 없다.
사실 700년 후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그 사건을 예언하면서 그것이 자기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였고, 또 아하즈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전혀 부자연스런 일이 아니고, 그 예언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다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그 광대한 진리를 하느님께서 계시로 주신대로 왜곡이나 변조없이 그대로 증거한 것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주장을 취하게 되면, 여전히 이사야서 7장 16절이 난해한 구절로 남는다.
'그 아이가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혐오하시는 저 두 임금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입니다' (7,16)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700년 후에 태어날 임마누엘의 예표로서 이사야 시대에 한 아들을 주셨을 것이며, 이사야서 7장 16절은 아마도 그 아들에 대한 예언일 것이다.
그 아들은 이사야서 8장 3절, 8장 4절과 관련하여 이사야가 그 아내를 통해 낳은 아들이 분명하며 그 이름은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이다. 이사야서 7장 16절의 아들이 임마누엘을 예표하는 것은 구약 시대의 이사악이나 요셉, 여호수아 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는 사실과 관련지을 때 조금도 부자연스런 것이 아니다.
창세기의 요셉이 동정녀를 통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또한 이사악이 비록 제단에서 문자적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가 십자가상 희생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그 여자가 낳게 될 아들 역시 믿는 자에게 구원이 되고 불신자에게 심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임마누엘'은 '~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임'(im)에 1인칭 복수 접미어가 결합하여 '하느님'이란 뜻의 명사 '엘'(el)이 함께 쓰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달리 이 아이를 낳은 어미인 그 처녀가 지어줄 것이다.
즉 '이라 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웨카라트'(weqarath)는 '칭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라'(qara)의 여성 3인칭 단수형이다.
사실 700년 이후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들을 낳아 천사의 지시대로 그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마태1,21). 그런 점에서 '임마누엘'은 그 아들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그 아들의 인격속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동정녀를 통하여 이 땅에 보내실 분은 하느님 당신 자신이 육화(肉化)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명칭이 바로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것이다.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logos)이신 성자 하느님께서 (요한1,1~3) 이 땅에 강생(육화)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직접 그의 백성 바로 곁으로 오신 것이다(요한1,14). 곧 임마누엘은 제2위 하느님이신 성자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에 대한 예언이며, 그의 백성이 하느님을 볼 것에 대한 축복의 예언인 것이다.
2022년 12월 20일 화요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하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에 이어지는 루카 복음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이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보다 뒤에 자리한 까닭은 예수님의 우월성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관계는 특별히 1-2장의 이야기 구성을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어제 복음이 태어날 아기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오늘 복음은 태어날 아기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다윗 집안 출신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천사가 알려 준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진 ‘예(호)수아’에서 나왔습니다(마태 1,21 참조).
천사는 ‘예수’라는 이름을 알려 주면서 태어날 아기의 정체성과 특별한 역할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에게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구원자’이시며(1,47.71.74.77; 2,11 참조),
구원자의 정체성은 십자가 죽음에서 정점을 이루는 예수님의 행적으로 드러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구원자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을 예고하는데,
그에 따르면 태어날 아기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다윗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약속(2사무 7,9-16 참조)을 완성하는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반면에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아하즈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두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찾아봅니다.
우리는 어떤 인물을 신앙의 모범으로 따라야 할까요?
(정진만 안젤로 신부)
[대림 제4주간 월요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창조주(創造主) 하느님께서 하늘의 영원한 평화를 주시겠다고 청하라고 하시는데, 피조물(被造物)인 인간은 땅의 순간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청하지 않겠단다. 영원한 하늘의 존재(아들)로 해 주겠다 하시는데 영원히 땅의 존재(노예)로 남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자녀)이라는 직분(職分)은 영원한 것이지만, 인간의 직분(대통령, 검사, 의사, 사장)이라는 것은 순간적인 사라질 연기, 바람일 뿐임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독서(이사7,10-14)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 우리의 구원(救援)을 위한 표징(標徵)이다. 저승의 영원한 죽음과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표징을 청하는 것, 곧 땅의 시련(試鍊)과 영원한 죽음에서 하늘의 쉼, 영원한 생명으로 건저 줄 구원의 표징을 깨달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 얼마나 위선(僞善)인가? 아하즈, 그 에게는 속셈이 있었다. 아하즈는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침공(侵攻)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느님의 힘이 아닌 다른 나라, 곧 강대국(强大國)인 아시리아(사람)를 의지하려 했던 것이다.(열왕하16,5참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힘, 능력(能力)을 믿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힘들 때 세상의 힘, 사람을 의지(依支)하려는 우리들(나)이다.
(이사31,1-3) 1 그들에게 ‘불행하여라,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 군마에 의지하는 자들!’ 그들은 병거의 수가 많다고 그것을 믿고 기병대가 막강하다고 그것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 2 그러나 그분 역시 지혜로우시기에 재앙을 내리시고 당신의 말씀을 거두지 않으신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의 집안에 맞서, 나쁜 짓 하는 자들을 돕는 자들에게 맞서 일어서시리라. 3 이집트인들은 인간일 뿐 하느님이 아니다. 그들의 군마는 고깃덩어리일 뿐 영이 아니다. 주님께서 손을 뻗치시면 돕는 자는 비틀거리고 도움을 받는 자는 쓰러져 모두 함께 망하리라.
= 세상의 힘(지혜)으로 도움을 주려는 이나 도움을 받으려는 이, 모두 망(亡)한다는 말씀이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이사31,4-5.7-8) 4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자와 새끼 사자가 먹이를 놓고 으르렁거릴 때 목자들의 무리가 몰려와 소리쳐도 놀라지 않고 소란을 피워도 아랑곳하지 않듯 만군의 주님이 시온 산과 그 언덕에 내려와 싸워 주리라. 5 둥지 위를 맴도는 새들처럼 만군의 주님이 예루살렘을 지켜 주리라. 지키고 건져 주며 감싸고 구원해 주리라.” 7 정녕 그날에는 너희가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제 손으로 마련해 죄를 지은 은 우상과 금 우상들을 *내던질 것이다. 8 그러면 아시리아(세상)는 사람의 것이 아닌 칼에 맞아 쓰러지리라. 인간의 것이 아닌 *칼이 그를 멸망시키리라. 그는 칼 앞에서 도망치고 그의 젊은이들은 강제 노동을 하게 되리라.
= 하느님의 뜻, 힘(말씀)을 깨닫게 되면 인간의 뜻을 위한 것을 버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자기 부인(否認)을 시켜 살리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칼(劍), 곧 그분의 힘인 말씀에 맞아 쓰러지는 것이다.
(묵시1,16) 16 그리고 주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습니다. 또 그분의 얼굴은 한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오시는 외 아드님, ‘임마누엘(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이 흙(無)에서 사람을 창조 하셨고, 그 말씀으로 가르시고, 그 말씀으로 하늘의 존재(存在,(有)로 새 창조하실 ‘구원자 그리스도’시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그런데 이 말씀을 믿지 못하고 조롱(嘲弄), 비웃는 이들이 있다.
(2베드3,3-6) 3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조롱꾼들이 나와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소? 사실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창조 이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소?” 할 것입니다. 5 이렇게 주장하는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예로부터 있어 왔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6 그때의 세상은 *홍수에 잠겨 물로 멸망하였습니다. 7 지금의 하늘과 땅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으로 보존됩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 홍수- 하느님의 뜻, 말씀(생명수)을 적대(敵對)하는, 영원한 죽음을 부르는 사람의 뜻을 위한 사람들의 말(물)이다.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유지(維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지하며 무엇을 청(請)하는지’ 오늘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이다.
*사람의 말, 지혜(知慧)는 순간(瞬間)의 위로(慰勞)를 줄 뿐이지만, 하느님의 말씀, 지혜(智慧)는 사람의 속셈을 부수시고 하늘의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히브4,12-14)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헛됨, 부끄러운 죄)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셈((定算)을 하셨기 때문이다.
(콜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죄)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 올바른 기도를 하지 못하는 저희를 위해 탄식하시며 기도(간구)해 주시는 천주의 성령님!
땅의 헛된, 부끄러운 것에 매이지 않게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26~38)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37~38)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 루카 복음 1장 37절은 의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자에게 임신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즉 하느님의 모든 말씀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원문의 '말씀'에 해당하는 '레마'(rema)는 일차적으로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카 복음 1장 37절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 탄생에 관해 예언된 모든 말씀을 의미하며, 이러한 예언들이 마치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is impossible)는 '아뒤나토스'(adynatos)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아뒤나토스'(adynatos)는 '능력있는', '강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뒤나토스' (dynatos)에 부정 접두사인 '아'(a)가 붙어서 '능력없는', '약한'이란 뜻을 갖는 단어이다.
따라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는 앞의 '우크'(ouk; nothing)와 연결되어 이중 부정의 의미를 갖고서 매우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과 권세가 있어서 마리아에게 선포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노쇠하여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던 아브라함에게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며 아들 이사악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창세18,14)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루카 복음 1장 38절은 하느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마리아의 순수한 신앙을 잘 보여 주며, 이러한 신앙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고 잔치집 일꾼들에게 지시함으로써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자신을 지칭한 단어인 '둘레'(doule; servant)는 '종'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doulos)의 여성 명사로서 '결코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하녀(계집종)'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주인', '주님'을 의미하는 '퀴리오스'(kyrios)의 소유격 '퀴리우'(kyriu)와 연결되어 철저하게 주님께 예속된 능력없는 계집종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완전하게 맡기겠다는, 철저한 순종과 겸손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본문 서두에 기록되어 있는 '보십시오'에 해당하는 '이두'(idu)라는 단어는 마리아의 이러한 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이두'(idu)의 용법은 이야기의 생기를 돋우어 주거나, 듣는 이나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시킬 때, 그리고 좀 더 깊은 생각을 촉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는 이 단어가 동사없이 명사와 함께 사용되어 마리아 자신의 '종'으로서의 존재를 천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줌으로써, 자신의 겸손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대로'에서 '대로'에 해당하는 '카타'(kata)라는 전치사는 목적격과 연결되어 뒤에 오는 명사의 내용이나 본질이 조금도 훼손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에 해당하는 '게노이토'(genoito; may it be)는 '발생하다'는 뜻의 '기노마이'(ginomai)의 희구법으로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리아의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믿고 바라는 위대한 순종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순간이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의 모친으로서의 성소를 허락하는 순간이며,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피와 살을 취하고 인간의 역사안으로 들어오는 강생(육화; Incarnatio)의 순간이기에, 우리는 사도신경과 삼종경을 바칠 때 고개를 숙여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의 예를 드리는 것이다.
2022년 12월 20일[대림 제4주간 화요일]
마리아, 그 이름에 나를 넣는다.
그것이 내가 생명책에 기록 됨이다. 그래야 지옥의 불못에 던져지지 않는다.(묵시20,15)
복음(루카1,26-38)
26 여섯째 달에(7- 완전한 안식, 그 하나가 빠진 상태)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 ‘호라우’전 ‘블랙보우’의 단계이다. 곧 ‘말씀을 깨닫’기 위한 ‘되새김, 시험의 단계’이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아멘)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말씀을 잉태(孕胎)하여 구원자를 깨닫는, 그 낳음이다. 성모님의 낳으심만으로 묵상한다면 성모님이 우상(偶像)이 될 수 있으며, 예수님, 곧 구원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가 된다.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 야곱(걸려서 넘어지게 하는 자)의 집안, 곧 죄인(罪人)들, 그러나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나. 집안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씨-말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 성령께서 하신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 구약(舊約)의 잉태는 여섯(6)이다. 곧 7(완전, 충만, 안식)이 되지 못한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아멘) 38ㄱ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육(肉), 자신의 뜻이 아니라 말씀, 하느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고백(告白)이다. 곧 천사가 알려준 소식, 마리아의 집(마음)에 들어가 알려준, 넣어준 ‘주님께서 함께 계심과 하느님의 총애(寵愛)’, 성령께서 일으켜 주신 고백이다. (마리아가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놓음으로 자신의 구원이 시작된 것이다.)
38ㄴ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 천사가 떠나고 하느님의 영, 성령(聖靈)께서 이끄시기 시작한다.
(로마8,6-14)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 그 믿음 때문이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육신(肉身)의 모든 것, 육(肉)의 뜻, 죄(罪)와 의(義)까지 허무(虛無)임을, 곧 진리가 아님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 하느님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면 된다. 평탄한 길이든, 고난의 길이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며 품고 가신다.(同行)
*나에게 ‘코로나19’는 은총이었다. 무서운 시련, 고난을 주었지만 하느님의 뜻, 말씀, 마음을 더 알게 해 주었다.
악의 힘, 효능보다 인간의 마음, 고집이 더 강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 인간의 마음보다 더 강한 것이 ‘말씀의 효능’ ‘말씀의 힘’ 이라는 것도 체험하고 있다.
(1베드1,24-25) 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인간의 힘)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 영원한 보호자,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