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4일 수요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 (루카7,18ㄴ-23)
제1독서<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이사45,6ㄴ-8.18.21ㅁ-25)
6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8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다. 땅을 빚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 그분께서 그것을 굳게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혼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빚어 만드셨다. 내가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21 나 주님이 아니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22 땅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말하리라.
24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화답송시편 85(84),9ㄱㄴㄷ과 10.11-12.13-14(◎ 이사 45,8) ◎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복음<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루카7,18ㄴ-23)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45,6ㄴ-8.18.21ㅁ-25)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6)
바빌론(페르시아)의 종교는 빛과 어둠을 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주님은 그 모두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런 상태들에 대한 주권적 통치에 있어서, 이원론을 극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사야 예언서 후반부는 바빌론 유배와 유배 이후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군대와 왕들을 이용해서 해방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거만, 고집불통과 우상 숭배는 이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바빌론의 이방 왕인 고레스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내려 오도록 종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는 이방 왕의 말은 듣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움직이시기 위해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이방 왕을 들어 쓰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꼼짝달싹 못하게 하신다.
8절의 "의로움"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들을 이루시는 방법을 선택하시는 주님의 주권적 정의라는 표현으로써 이스라엘이 아닌 페르시아 왕을 선택하는 주님의 선택의 합법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상이 21절의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에게도 그대로 통용되고 적용되고 있다. 주님은 자신이 유일하신 하느님,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고레스를 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신다.
이 선택이 의롭고 적법한지는 이스라엘을 위해 성취하실 구원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주님은 역사적인 세력들을 지배하시는 의로우신 주인일뿐 아니라 구원자이시기도 하다.
23-24ㄱ 에서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관할로 주장되는 영토에서 모든 자에게 충성이 요구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고레스는 오직 주님을 통해 이 '의로움과 권능'이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고백한다.
24ㄴ-25절에서 고레스와 이스라엘은 모두 대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레스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축복들에 대해서, 정치.경제면에서 고레스와의 관계를 초월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지 않을 때, 주님은 내 자신이 매여 있고 나를 지배하는 다른 상위 계층을 통해 역사하시며 나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만큼 내 자신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주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주님의 통치는 '의로움과 구원'을 가져오는 무상의 선물이다.
주님은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이며, 얼마만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사오 바오로처럼, "그리스도는 내 전부" 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아침에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잘 먹으면 혼탁한 내마음과 영이 깨끗해 질 것이다.
(루카7,18ㄴ-23)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 헤롯에 의하여 감옥에 갇힌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치유와 기적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제자들을 부른 것이다.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 세례자 요한은 분명 자신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언했었다.
(요한1,27.29)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하느님께서 보내신 속죄 제물인 어린양, 그 구원자 예수님을 자신이 선포하고는~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 왜? 자신이 생각했던 예수님이라면 자신을 감옥에 그냥 놔두실 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모른 척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신 일이다. 곧 예수님께서 이사야29,18 35,5- 등에 예언되었던 메시아, 그리스도가 맞다는 말씀이시다.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 나무 하나의 희생(대속)으로 받는 생명, 용서, 그 하느님의 진리의 계명(탈출15,25)을 몰라 불구가된 그 영적 불구자들을 예수님께서 올바르게 고쳐주신 것이다. 당신의 십자가 복음으로~(요한3,16/14,6- 로마 3,21-/8,1-참조)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 요한은 왜 의심을 했을까? 감옥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시련이 없을 때에는 자신이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 사건 앞에서는 자신의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이라 하신 요한이다. 모든 인간은 다 그렇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겠다고 했던 베드로가 주님께서 잡혀 가셨을 때, 주님을 모른다고, 거짓말이면 천벌을 받겠다 하며 맹세로 그렇게 세 번이나 배반 했쟎은가.(마르14,71)
세례자 요한도 베드로도 성령받기 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왜 그냥 내버려 두셨을까? 그것은 세례자 요한이 해야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다. 곧 구약의 끝이라는 것이다. 신약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자요한을 메시아로 생각 했었다. 그래서 두 메시아(머리)가 존재하면 안 되기에~ 구약의 요한이 머리가 잘려 죽는 것이고(마르코6,27), 그것이 신약의 시작임을,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 하늘의 진리의 시작임을 알리는 것이다.
(에페1,9-10)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베드1,20)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의 말씀이 어렵다.
(이사45,7-8)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 창조, 첫째 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다. 빛과 어둠은 하늘나라 라는 의미다. 낮과 밤이 하루이듯, 우리 인생에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왜 빛만 있으면 안될까? 그것은 어둠, 밤이 없으면 선(용서)을 모른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과 베드로의 그 어둠(의심, 죄)의 본성이 드러났기에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품으시고 대신 빛으로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아 몰랐다면 그대로 어둠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드러난 것은 모두 빛이라고 하는 것이다.(에페5,13~)
喜怒哀樂,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것이 구원을 위한 재료라는 것이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사45,8) 8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생명은 위에서 이슬로 내린다. 의로움도 구름이 주신다. 곧 이슬, 구름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다. 모든 것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1디모4,5참조)
(이사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에덴의 선이 악을 품고 대신 죽어 생명을 주는 어린양, 곧 그 십자나무의 예수님, 그분의 그 대속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받으면, 먹고 마시면~ 그 하늘의 빛,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빛, 진리, 생명이 되는 나의 구원인 것이다.
그러니 어둠으로 빛을 깨달아 빛이 되었다면 어둠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행을 통해 하늘의 참 행복을 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빛을 만드시고 어둠을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행복을 주시기 위해 불행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 어려운 말씀을, 그 하느님의 뜻을 인간의 지혜로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오늘 영성체송(이사40,5)처럼 하느님께서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성령께서 깨닫고 믿게 해주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인간의 지혜로 깨달아 하늘 아래의 빛(義)과 행복(福)에 머문다면 그것이 어둠이고 불행인 것이다.
(마태6,23)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 그러니 교우여러분! 내안에 어둠을 드러내어 율법(계명)에 죽읍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아드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빛으로 살리십니다. 깨닫게 됩니다.
(갈라2,19)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멘!!!
2022년 12월 14일 수요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오늘 복음은 내일 복음(루카 7,24-30 참조)과 함께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드러나는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신원, 그리고 이 두 인물의 상호 관계를 보여 줍니다.
짝을 이루는 이 두 개의 일화는,
예수님께서 병자(백인대장의 종, 과부의 외아들)를 치유하시는 두 가지 사건(7,1-10.11-17 참조)과
죄지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사건(7,36-50 참조) 사이에 자리합니다.
이로써 병을 고치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아직 예수님의 정체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행적을 전해 듣고도,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분이 정말로 ‘오실 분’이신지 여쭙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일대에서 행하신 가르침과 기적 행위는 세례자 요한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앞서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며 그분을 ‘심판자’로 소개하였습니다(3,9.17 참조).
그런데 그가 자기 제자에게 전해들은 예수님의 활동 모습은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의 정체를 입증하기에 부족하였습니다.
의심에 찬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하십니다.
먼저 병자를 고쳐 주시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십니다.
이어서 이사야 예언자의 언어로 당신께서 보여 주신 치유 활동을 묘사하시면서(이사 26,19; 29,18; 35,5-6; 61,1 참조),
보고 들은 것을 세례자 요한에게 전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이 완성되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당신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치유하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약한 이, 작은 이, 가난한 이와 함께 계시며 그들의 아픔을 낫게 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그분을 ‘메시아’, 곧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자기’라는 감옥(監獄)에 갇혀 ‘이미’ 이루어진 구원(救援)을 ‘아직’으로 만든다.
복음(루카7,18-23)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 병행 마태복음은,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11,2)라고 전한다.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자신은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고 외치는 소리라고,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분명하게 증언(證言)했다.(요한1,19-34참조)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 이사야가 예언(預言)했던 그리스도로 이루어질 해방(解放), 희년(喜年)이다.
(이사6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야훼)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 ‘기름 부음’은 ‘그리스도’를 뜻한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 잘못된, 완전(完全)치 못한 모든 어둠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다 완전해짐’ 이다.
(이사53,4-5) 4 그(예수)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병고(病苦), 악행(惡行), 죄악(罪惡)을 품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罪)값이 다 치러져 받은 평화(平和)다.
그것이 복음(福音)이며 기쁜 소식, 말씀을 갖지 못한, 믿지 못하는 이들이 ‘눈멀고, 귀 먹어 죽은 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진리(眞理)의 길을 가지 못하는 ‘다리 저는 이’, 죄가 그대로 있어 영(靈)이 병든 ‘나병환자(癩病患者)’인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복음(福音)으로 완전(完全)해 졌음이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아멘)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성령(聖靈)의 법(法), 하늘의 대속(代贖), 그 새 계약(契約)이다. *아는 말씀을 왜 자꾸 쓰는가? 말씀은 살아계셔 활동하시기에 그렇다. 말씀이 믿음으로 열매를 맺게 하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자라기 때문이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기적(奇蹟) 등, 큰일을 일으키시면서 자신을 감옥(監獄)에서 꺼내주지 않는 것이 마땅치 않고 이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확인(確認)을 시켰던 것이고,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 주실 것을,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큰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의심(疑心) 품은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곧 ‘하느님의 뜻으로 온 그리스도’를 잘못 알고 있다는 말씀이시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은 조용히 ‘물러나야할 때’인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았다면,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드러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福音)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나와 상관없는 말씀은 문자(文字)일 뿐이다) ‘나를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루카17,9-10)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주님의 일을 할 때 내 이름, 의(義)를 위해 자신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대우(待遇)를 기대하지 말라, 직분(職分)의 권세(權勢)를 누리지 마라’는 것이다.
(마태10,7-8)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인간의 언변(言辯), 지혜(知慧)의 말을 주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복음(福音)을 주라는 말씀이다.
독서(이사45,6ㄴ-8)
6 내(야훼)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야훼)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 말씀은, 하느님은 어둠을 통해 빛을 깨닫게 하시고, 불행을 통해 행복을, 곧 하늘의 복(福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創造主)라는 말씀이다.(로마8,28 참조)
8ㄱ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 이슬은 물, 생명수로 구원의 말씀이고, 구름이 뿌리는 의로움은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신,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이다. 그것이 창조이전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계약이며 우리(땅, 흙)에게 심어주신 말씀(씨)이다. (에페1,4 참조)
그러니~ 8ㄴ땅(우리)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피어나 자라나도록 되새기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나라는 사람이 아닌 그분의 말씀이 완성하심을, 즉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계시고 활동하셔서,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것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지금도 말씀이 내 안에서 창조(새 창조)를 하고 계심을 믿어야한다. 말씀으로- 나(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을 위한 새 창조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의 복음(福音)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심이다.
(요한15,3)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 광야(廣野)에서 죄(罪)로 뱀(사탄)에게 물렸을 때~
(지혜16,11-12)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 깊은 망각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구원)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믿게 하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인간의 언변, 지혜의 말로 불구가 되지 않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소서. 이미 이루어 졌음을 깨닫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7,18ㄴ-23)
♣ 사랑을 실천하며 기다리는 메시아 ♣
마카에루스 감옥에 투옥된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합니다(7,19). 그렇게 한 것은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보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위한 배려였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알아보았지만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 등 현실 문제를 해결해 줄 강력한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되어주는 자비의 메시아로서 행동하십니다(17,21-22). 의로움과 구원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이사 45,21) 몸소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성과 논리로 따지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직접 메시아의 본질을 보여주시며?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17,23)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혹시 내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아,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나 나에게 상처와 피해를 준 사람에게 나를 대신하여 복수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연중에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나서주시고 내가 기부하고 봉사하고 기도한 만큼 보답해주시는 메시아를 바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메시아는 나의 도구나 상거래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빛과 어둠을 창조하시고, 행복과 불행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이사 45,7), 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45,21). 우리는 하느님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메시아의 본질인 자비와 해방을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대림은 그렇게 수동적인 관망(觀望)이 아니라 능동적인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까? 실천하는 행동 없이, 구체적으로 나누는 사랑 없이 말만 앞세우는 ‘빈 깡통 같은’ 요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야고 1,22).
우리 모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메시아의 본질인 자비를 실천하며 오시는 메시아를 기다렸으면 합니다. 한편으로는 ‘착한 가게’, ‘달콤 창고’, ‘서스펜디드 커피’ 등에서 보듯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말없이 배려하고 위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여 불의에 맞서나가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실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프란치스코회)
2022년 12월 14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너도 몰래 너를 보살피신다.
독서(이사45,6-8.15.18.20-25)
6 해 뜨는 곳에서도 해 지는 곳에서도 나밖에 없음을,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 세상(땅)에는 어둠, 불행(고통, 질병)이 있다. 그래서 어둠을 통해 빛을 알려주실 수밖에 없고, 불행(不幸)으로 영원한 행복(幸福)을 깨닫게 하신다. 곧 세상(땅)의 어둠, 불행을 통해 하늘의 영원한 빛, 행복을 주시는 구원의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하심이다.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
8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 땅은 받으면 된다. 그리고 하늘의 영, 생명, 의로움을 진리로 드러내는 것이다.
(에페1,4-5)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15 아, 구원을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정녕 당신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이십니다.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다. 땅을 빚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 그분께서 그것을 굳게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혼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빚어 만드셨다. 내가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 하느님을 떠난 밖은 혼돈(混沌)이다. 빛이신 하느님 밖은 어둠뿐이다.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질서, 빛, 생명이 있음이다.
20 민족들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자들아 모여 오너라. 다 함께 가까이 오너라. *나무 우상을 떠받들고 다니는 자들과 구원을 베풀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지각없는 자들이다.
= ‘나무 우상(偶像)’?, - 자신의 뜻, 의(義), 소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나무를 섬기며 기도하는 것이다. 부서져야 할 우상(偶像)이다.(2열왕18,4)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로마16,18) 18 그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를 섬기는 자들로서, 달콤하고 비위에 맞는 말로 순박한 이들의 마음을 속입니다.
21 말해 보아라. 설명해 보아라. 함께 의논도 해 보아라. 누가 이것을 옛날에 들려주었느냐? 누가 이것을 예전에 알려 주었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22 땅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23ㄱ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의 뜻, 계획(計劃)이기 때문이다.
23ㄴ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말하리라. 24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복음(루카7,22-23)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것으로 다 이루어짐이다.(2코린5,17)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 자신의 뜻, 말, 생각에 갇히면 믿음이 아닌 의심(疑心)이 생긴다.
*사제(司祭)께서~
신앙인(信仰人)은 눈에 보이고 우리에 상식에 합당한 것을 추구(追求)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지성(知性)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초월적(超越的)인 현존(現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알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마태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보호자로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