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간 목요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46-56)

2022. 12. 21. 오전 9: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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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2일 목요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46-56)

 


1독서<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1사무1,24-28)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화답송1사무 2,1.4-5.6-7.8ㄱㄴㄷㄹ(1참조)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주님은 비천한 이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 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복음<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루카1,46-56)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대림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 1,24-28)

 

사무엘 상권의 첫째 부분인 1-7장은, 이스라엘에 닥친 위기가 무엇이고 그 위기를 사무엘이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다룬다. 이스라엘에 닥친 위기는 두 가지, 곧 지도자의 부재라는 내적 위기와 필리스티아인들의 침략이라는 외적 위기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는 실로의 사제 엘리였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 필리스티아인들의 침공을 막아내기는 고사하고, 집안 단속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였다. 

 

이스라엘은 에벤에제르의 전투에서, 실로에 모셔 두었던 주님의 궤(계약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뺏기고 엘리의 집안은 몰락하였다. 이스라엘 안에 주님의 현존을 확인해 줄 사제직과 계약의 궤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를 극복할 우선적 대안으로 주변 민족들이 이미 오래 전에 받아들인 왕정의 도입 절실하게 요청하였다. 

 

땅을 확보한 이스라엘은 그 땅을 지켜줄 현실적 제도 찾고 있었다. 임금과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줄 예언직도 중요한 직책으로 떠올랐다. 하느님의 말씀과 현존이 약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언자들이, 외적의 침입과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 준 인물이 바로 사무엘이다.

 

오늘 독서는 자식이 없던 한나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한 아이 즉 사무엘을 낳게 되었는데,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에 데리고 가서, 주님께 봉헌의 서약을 하는 내용이다.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가 드린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1사무1,26-28참조) 한나가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아들을 주님의 것으로 되돌려 드리는 이야기이다. 

 

봉헌(dedication)은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룩한 목적으로 쓰임받도록, 사람, 물건, 장소를 속된 것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별(聖別)이란 말로 쓴다. 하느님 편에서 그러한 목적으로 간택하여 쓰실 때에는 축성(consecration)이란 말을 쓴다. 어쨌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되돌려 드린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절대권 즉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것이다. 

 

기도해서 얻은 아이인 사무엘의 존재, 생명, 성품, 탈렌트, 신앙, 시간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려 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축복과 놀라우신 간섭과 역사로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쓰임받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사무엘은 충실한 하느님의 도구요, 나지르인으로써 예언자적 역할을 종신토록 잘 수행한 것으로 나온다. 이 뒤에는 어머니의 봉헌과 신심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외적 재화(물질, 돈, 토지), 내적 재화(신망애 삼덕과 성령의 은사등 초자연적 은혜) 우리 영혼, 육신, 심령, 가정과 사업체, 본당 공동체, 조국, 환경 등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것이 많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부채, 마음의 상처, 병고,원수등도 봉헌의 대상이 된다. 이런 것을 예수 성심 혹은 성모 성심께 봉헌 했을 때, 우리 구원과 성화를 위해,주님과 어머니께서 그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오늘 아기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자식인 사무엘을 봉헌하는 것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즈카리야, 엘리사벳의 성소와 더불어 구세주의 모친이신 성모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동정 수태를 예고하는 사건인 것이다.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하느님과 함께 하면, 아니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교훈이 구세사 안에서 하나 하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우리 존재와 생명의 절대권(주권)을 가지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있는지~~~ 

 

그래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되돌려 드려서, 다시 하느님께로부터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느님 뜻에 맞게 모든 것이 새롭게 재편성 혹은 개편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봉헌은 그러기에 세례성사때 한 서약의 갱신이요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성탄 시기에 봉헌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자.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매일미사, 루카 1,46-56

 

20221222일 목요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면,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칭송에 노래 형식으로 응답합니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에게 드러내신 하느님의 역사를 찬양하면서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주님을 향한 찬송으로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송하고 그분을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큰일을 완성하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당신의 강함을 보여 주시려고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를 누리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셨으며,

부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는 낮은 이들을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는 자비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시리라고 예언합니다.

하느님의 최종 목적은 세상의 권세와 부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권세에 취하여 교만하고 부유한 이들이

당신의 구원 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낮은 위치에 두고자 하십니다.

자신을 비천한 종으로 낮추신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를 통하여 실현된 역전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하느님 체험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낮은 이가 되어 하느님의 위대함과 자비를 찬양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12월 22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

 

애 끓는 사랑, 그 사랑으로 생명을 키워내는 자궁, 자비의 하느님이시다.

 

(루카1,46-56)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 비천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구원자)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엄청난 말을 듣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사벳을 찾았을 때,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확신의 찬사를 드린다.

 

(루가1,42-45) 42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3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 이 말에 마리아는 확신에 찬 믿음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찬송을 드린 것이다.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 피조물인 자신(쓴물)에게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시고 구원자 예수님을 낳게 하시는 그 큰일이다.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그 큰일이 얼마나 큰 은총(은혜)인지 자각한다면, 믿는다면 하느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 자비(宮恤)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애가 끓는 사랑의 마음과 생명을 키워내는 여자의 子宮을 뜻한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 교만한 마음을 부수시는 것, 자비(궁휼)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 통치자를 끌어내리심도 비천한 이를 높이심도 자비다.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굶주린 이,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 빈손으로 내치시는 것, 자비다. 좋은 것-토브,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 좋았다, 토브.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목적대로 완성되어 존재하는 상태가 좋은 것- 토브다. 부수심도, 끌어내리심도, 내치심도, 좋은 자비라는 것이다. 하늘로 완성하시기 위해 세우시고 올리시는 자비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적 소돔과 고모라를 파멸하실 때, 당신의 천사들을 롯에게 보내시어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경고의 말씀을 하시지만~

(창세19,16) 16 그래도 롯이 *망설이므로 그들은 보다 못해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끌어 내었다. 야훼께서 롯을 그토록 불쌍히 여기셨던 것(자비)이다.

= 세상의 화려함이 좋아 망설일 때, 그 화려함에서 끌어내리심, 하느님의 자비다. 구원, 새 생명을 주지 못하는 세상의 욕망, 힘에서 끌어내시고 부수셔서 다시 살리시려는 자비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 자비로 꼭 찾으신다는 것이다. 그 자비 안에는 용서가 들어가 있다.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아픈 사랑이다. 죄인들에게 하늘의 새 생명을 시기 위해 찢어지는 그 아픈 사랑의 마음으로 이루신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마리아는 성령 충만한 엘리사벳의 말을 듣고 그 하느님의 자비를 기쁨으로 찬송한 것이다. 그렇게 석달을 함께 지냈다. 숫자3은 하늘의 숫자다.(성경의 숫자는 말을 한다.) 마리아는 구약(모세오경-5)의 엘리사벳에게 신약의 진리(하늘-3)를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그 모습이~ 후에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열두살이 된 후에도 사람의 관습에 따른 신앙을 살아 예수님을 잃었던 것이다.(루가2,41-참조) <숫자 12는 완성된 하늘교회, 백성을 뜻한다.>

사람의 관습에 따른 신앙은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을 안다 하면서도 그 하느님의 뜻으로 살지 못하고 인간 중심의 삶, 내 뜻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구원자 예수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으셨다.

 

착각하지 말자~

영성체 후 기도(참조)- 성체를 말씀으로, 새 계약으로 받아 모시는 것, 구세주를 기쁨으로 맞는 믿음의 삶이다.(루기22,20참조),

오늘 예물기도에서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아 믿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히브10,16-18.22)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십자가로 얻는 용서, 그 피의 법, 새 계약이다.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다시~ 앞49절로 돌아가 보자.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 마리아만이 아니라 우리(나)에게 하느님께서 말씀을 잉태하게 하시고 구원자 예수님을 깨닫게 하신 그 큰일, 그래서 땅의 티끌(먼지)인 내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큰일이다,그 큰일이 오늘 우리(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오늘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예수)으로 우리(나)를 새 사람으로 새 창조하신 것이다. 우리의 것,우리의 속셈을 드러내 부수시고 비워내시어 하느님 당신의 사랑을 채우셔서 이루신 새 창조인 것이다. 애끓는 사랑으로, 하늘의 생명으로 키워내신 하느님의 자비다.

 

☨천주의 성령님 감사합니다. ~아멘!!!

 

  

 


2022.12.22. [대림 제4주간 목요일사제의 묵상 

 

말씀은 기쁨의 빛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 하고 노래합니다.

구약 성경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 나자렛 출신의 한 여인에게

말씀이 찾아와 그 맑은 마음 안에 머무릅니다.

메시아와 하느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는 ‘비천한 종’을 하느님께서 굽어보십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당신 종에게 머무르시니,

그 마음에 영혼의 빛이 들어섭니다.

그 영혼을 밝히는 빛은 감추어 놓을 수 없어 기쁨의 노래로 울려 퍼집니다.

 

말씀은 사랑의 빛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큰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땅 이집트를 탈출하도록 큰일을 일으키신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시고,

그분의 탄생으로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 시작하십니다.

‘말씀’을 잉태한 그 사랑의 빛이 이제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진실한 우리 안에 머무르고,

그 말씀을 간직한 우리에게는 사랑의 빛이 들어섭니다.

 

말씀은 희망의 빛입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교만하여 하느님과 원수가 된 자들을 흩어 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통치자들을 끌어내리시고,

움켜쥐고 자기만 위하는 부유한 자들을 내치십니다.

그리고 비천한 이들은 들어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은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 한 모퉁이에 머무릅니다.

말씀이 머무는 자리엔 희망의 빛이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온 빛은 감추어 둘 수 없기에 기쁜 노래로 세상을 밝힙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46-56)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어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1~53)

 

루카 복음 1장 51절에서 53절까지는 하느님의 공평하신 속성에 대한 찬양이 이어진다.

 

루카 복음 1장 51절의 '팔'로 번역된 '브라키오니'(brachioni; arm)는 단순히 신체의 한 부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야드'(yad)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구약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신명26,8; 시편29,14). 

 

이 단어가 '권능'으로 번역된 '크라토스'(kratos; strength; mighty deeds)와 함께 사용되어 하느님의 크고 무한하신 힘과 능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교만한 자들'에 해당하는 '휘페레파누스'(hyperephanus; the proud)는 '~위에','~을 넘어서', '~이상의' 등의 뜻을 가진 전치사 '휘페르'(hyper)와 '나타나다', '자신을 나타내 보이다'등의 의미를 가진 '파이노'(phaino)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내보이는 자들',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이것은 루카 복음 1장 50절의 '경외하는 이들'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 결과 또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그분의 자비가 미치지만, 반면에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흩어지는'심판이 따른다는 것이다.

 

루카 복음 1장 51절은 '주님이신 그분께 맞서는 자들은 깨어진다'(1사무2,10)는 한나의 노래를 연상시키는데, 여기서 마리아는 교만한 자들을 치시는 하느님의 성품을 정확하게 깨닫고, 자신의 모습을 비천한 종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높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이제 루카 복음 1장 52절은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어 귀인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1사무2,8)라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으로서,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통치자들' '비천한 이들','끌어내리시고'와 '들어 높이셨으며'라는 단어들이다.

 

권세있는 자와 비천한 자에 대한 하느님의 공평하신 심판을 다루고 있는 루카 복음 1장 52절은  이 단어들의 대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먼저 '통치자들'로 번역된 '뒤나스타스'(dynastas; the mighty; rulers)는 '주권자','통치자' 등을 의미하는 '뒤나스테스'(dynastes)의 복수이므로, '권세있는 자들','통치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왕좌'로 번역된 '트로논'(thronon; thier thrones)은 그 통치자들이 앉는

 

'권좌들', '보좌들'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끌어내리신다'는 것은 비록 세상 가운데서 권세있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합당치 않는 자들을 얼마든지 그 권좌에서 내리칠 수 있는 능력의 하느님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한편, '비천한 이들'로 번역된 '타페이누스'(tapeinus; the humble)는 '낮은 지위의', '천한', '겸손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 '타페이노스'(tapeinos)의 복수형이므로, '비천한 이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이 단어는 앞의 '통치자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직접적으로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의미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비록 그들이 세상에서는 낮고 천한 자들일지라도, 하느님 대전에 겸손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높이시는 분임이 드러난다. 

 

세상 사람들은 좀 더 높은 지위와 권세를 위해 목숨을 걸지만, 그 모든 것들이 느님 앞에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대전에 우리가 먼저 겸손한 모습으로 바로 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 1장 53절에서도 52절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이들'과 '부유한 자들', '좋은 것'과 '빈손', '배불리시고'와 '내치셨습니다'라는 단어들의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굶주린 이들' '부유한 자들'은 복수형으로 일차적으로 경제적 의미에서의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보면 부자들은 그들의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가난하게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본문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5,3),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5,6)등과 같은 산상설교의 표현처럼, 자신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자들 교만하여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좋은 것'으로 번역된 '아가톤'(agathon)는 '선한', '적합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로서, 하느님께서 굶주린 이들에게 주시는 '좋은 것'은 바로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들임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배불리시고'로 번역된 '에네플레센'(eneplesen; He has filled)은 '채우다', '만족하다'는 의미를 가진 '엠피플레미'(empiplemi)가 원형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는, 가득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대전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주리는 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들로서 부족함이 없이 가득 채워 배부르게 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빈손으로'라고 번역된 '케누스'(kenus; empty away)는 '빈', '헛된', '내용이 없는'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로서, '좋은 것으로'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루는 단어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의미하는 '케누스'(kenus)는 부족할 것이 없는 부자들이 받게 될 심판의 엄중함을 부각시켜 주며, 두 단어의 대구를 통해 심판을 행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부자라고 할지라도, 하느님 대전에 교만한 자라면 얼마든지 '텅 빈' 가난뱅이로 만드실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배불리시고'와 대조를 이루는 '내치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엑사페르테일 '(eksapesteilen; he has sent)은 '밖으로'란 뜻의 '에크'(ek)와 '내보내다'란 의미를 가진 '아포스텔로'(apostello)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밖으로 멀리 내보내어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 부자라고 하는 자들을 빈 손으로 멀리 내보내시어 가까이하지 않는, 공의로우신 하느님을 드러낸다.

 




 

2022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

 

보셔요그이가 오잖아요.”

 

1독서(아가(雅歌)2,8-14)

내 연인의 소리보셔요그이가 오잖아요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구약의 산을신약의 언덕을 뛰어넘어곧 하느님의 말씀을 다 이루시고 기뻐하시며 오시는 우리()의 연인(戀人), 남자(男子그리스도시다우리 죄로 죽으셨다 부활하시고 승청하신 후 진리(眞理), 생명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모형(模型)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인(罪人)들과 한 몸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기뻐하시며 대속(代贖)의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셨다.(히브2,11참조그 사랑이다그 사랑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 같답니다보셔요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10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일어나오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이리 와 주오. 11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12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겨울장마같은 죽음시련의 삶에 생명부활의 때가 왔다는 평화의 기쁜 소식이다.

 

13ㄱ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무화과나무곧 구약(舊約)의 나무(옛계약)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신약(新約)의 포도나무(새계약), 생명나무다.

 

13ㄴ 나의 애인이여일어나오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이리 와 주오. 14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갇혀있고위험 속에 있는 우리()를 부르신다하늘의 평화안식용서자유를 누리라고~~

 

(요한15,4.9) 4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독서 (스바3,14-18)

14 딸 시온아환성을 올려라이스라엘아크게 소리쳐라딸 예루살렘아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아들이 되어야한다딸이라 하심은 자신의 뜻을 위해사는곧 하느님의 뜻에 들지 못한 죄인을 뜻한다.

 

그런데~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6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두려워하지 마라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7 주 너의 하느님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ㄱ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새것새 사람으로 그리스도와의 혼인(婚姻)잔치축제(祝祭). *이 기쁜 소식(消息)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성모신심(聖母信心)이다.

 

복음(루카1,39-42)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어둠딸인 인간들 안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복()이다곧 말씀을 받는 것이 복이다그 복으로 복이 된다하늘의 생명으로 생명이 된다하늘의 빛으로 빛이 된다그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다.

 

사제께서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잉태하고말씀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심을 깨달은낳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찾아감임을 놓치면 안 된다.

먼저 말씀 안에 기쁜 소식인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진리로 전할 수 있다그래야 그리스도와 혼인을 시킬 수 있다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말계명이 아닌 선과 악을 하나로생명으로 깨달아 갖은그 진리를 품은 이가 전해야한다는 것이다.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먼저 만나야한다그헣지 않으면 선악(善惡)의 인간의 계명규정말을 전하게 된다그 말은 죽음을 주는 불의(不義)로 진리가 아니다.

 

(창세2,17) 17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그 열매를 따 먹는 날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사29,13-14) 1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계명일 뿐이니 14 나는 이 백성에게 놀라운 일을놀랍고 기이한 일을 계속 보이리라그리하여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는 사라지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는 자취를 감추리라.”

 

(티토1,14) 14 유다인들의 신화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마르7,6-8) 6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는가?


☨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오늘 주님의 기쁜 소식말씀이 우리()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믿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2년 12월 22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말씀만을 진리로 철저히 지키며 먹어야

 

사람을 체질로 나누어 치료하는 한의원에서는 각 사람의 체질에 따라 먹어야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할 음식을 철저히 지키게 한다.(성경적이다.) 그런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는 다는 것너무 힘들고 어렵다그래서 고통을 크게 겪는 사람이 그 고통의 아픔을 아는 사람일수록 잘 지킨다.

그렇듯 영()의 구원치유를 위해서는 사람의 선악의 말을 먹지 말아야하며하느님의 말씀만을 진리로 철저히 지키며 먹어야한다.

 

화답송(1사무2,1-8)

한나가 이렇게 기도하였다. “제 마음이 주님(야훼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제 입이 (주님의 말씀으로원수들을 비웃으니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2 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이 없습니다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저희 하느님 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3ㄱ 너희는 교만한 말을 늘어놓지 말고 거만한 말을 너희 입 밖에 내지 마라.

인간의 뜻의로움영광을 위한 선악(善惡)의 말이 교만거만한 말이다선악의 계명을 십자가에서 깨고 생명 하나로 갖은 하느님의 외아들(獨生子그리스도구원의 지혜진리로 말해야한다. (1코린1,24) *외아들(獨生子)- ‘모노게네스’ - ‘하나로 갖은 자.’

 

3ㄴ 주님은 정녕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의 행실을 저울질하시는 분이시다.

저울질을 하셔서 구원의 근거로 삼으신다높은 것은 쳐내시고 낮은 것은 채우셔서 완성하신다.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는 이들은 힘으로 허리를 동여맨다. 5ㄱ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다시는 일할 필요가 없다.

배고픈 이들은 하느님께서 먹이신다.

 

5ㄴ 아이 못 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선악의 말로 스스로 낳았던 아들은 시들어갈 것이다곧 인간 스스로의 열심(熱心), ()로는 영원한 생명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 7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는 분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높은 것은 부수시고모자란 것은 채우셔서 구원(救援)을 완성(完成)하신다.

 

그래서~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어 귀인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땅의 *기둥들은 주님의 것이고 그분께서 세상을 그 위에 세우셨기 때문이다.

= ‘기둥’ - ‘스타오로스로 하느님의 계약(契約)이다곧 십자나무다그 십자나무 안에서 살리심인 것이다우리()...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아멘!)

 

복음(루카1,46-56)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ㄱ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처녀(處女), 빈 그릇인 여자(쓴물)에게 하늘의 씨(말씀-예수)를 잉태(孕胎)시킨 일이다곧 땅(), 어둠에 하늘의 빛을 주신 큰일이다.

 

49ㄴ 그분의 이름(말씀)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사람의 입에 맞는 선악의 말을 먹지 않은그 굶주린 이는 진리말씀을 먹여 살리신다선악의 말로 배부른 이는 내치신다곧 나의 강한 힘고집교만을 끌어 내리시고빈손으로 내치시고좋은 것곧 하늘의 생명인 말씀으로 채우심이 자비(慈悲).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후손(後孫)이 왜 단수(單數)일까단수면 그리스도 예수님이신데~

 

(갈라3,16)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곧 나의 강한 힘교만을 부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또 그분 십자가 안에서 하신다는 것이다.(에페1,4참조그래서 좋은 것하늘의 생명빛인 그리스도에 넣어 나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다그렇게 땅이 하늘의 존재 삼(3)이 된다.

 

그래서~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삼으로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하늘의 말씀만을 진리로 먹게 하시고말씀의 힘믿음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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