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1,1-17)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창세49.1-2.8-10)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화답송시편 72(71),1-2.3-4ㄱㄴ.7-8.17(◎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 그가 가련한 백성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에게 도움을 베풀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복음<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창세47,1-2.8-10)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9-10)
'유다는 어린 사자'
'사자'(아르예;aryeh)는 '잡아찢다'(아라;arah)에서 유래하였다.
백수의 왕 사자는 몹시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무척 사나운 동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군대에서 용사를 묘사할 때나(1역대12,8; 이사5,29) 정복을 묘사할 때(시편57,5; 에제19,2-9),
특히 승리하는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에(민수23,24; 24,9) 자주 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유다를 어린 사자(사자의 새끼)로 표현한 것은, 유다의 후손이 장차 승리자 혹은 정복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성경은 미래의 용맹한 승리자를 예언할 때 흔히 어린 사자(사자의 새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신명33,22; 에제19,2.3.5).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원문의 '미 예키멘누'(mi yeqimenu)를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로 번역했는데, '미'(mi)는 무엇(what) 혹은 누구(who)를 뜻하는 의문사이다.
그리고 '예키멘누'(yeqimenu)는 '일으키다'는 뜻이 있는 '쿰'(qum)의 사역형 미완료로서, '그는 그를 일어나게 하다' 라는 뜻을 갖는다.
그런데 본문의 의문사 '미'(mi)는 사실 반어법적인 표현으로서,'아무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결국 '유다를 일으켜 세우게 할 자는 아무도 없다' 는 뜻이다.
즉 유다는 독보적인 힘을 갖게 될 것임을 강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미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계속 지속될 것을 보여준다.
이 예언은 유다의 후손으로서 근동 지방의 패권을 차지했던 다윗과 솔로몬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2사무8,1-10.19).
그러나 마침내는 유다의 혈통적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만왕의 왕이 되심으로써 완성되었다(묵시5,5).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본문은 절대 부정을 나타내는 '로'(lo)가 문장의 서두에 나오며, 이어 '떠나지'(야쑤르;yasur)가 미완료형으로 쓰여 절대 왕홀이 떠나지 아니한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왕홀'에 해당하는 '셰베트'(shebet)는 일차적으로 '막대기'(레위27,33; 1역대11,23), '지팡이'(판관5,14)를 가리키나, 상징적으로는 '권세'(시편125,3)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왕권 혹은 통치권을 상징하는 작은 지팡이를 가리키는데, 왕들은 공중 집회할 때 항상 이 홀을 휴대하였다.
그러므로 왕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한다는 것은 유다 지파가 계속 왕권을 계승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나 '지휘봉'(우메호케크; umehoqeq)의 해석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견해들이 있다.
먼저 '통치자의 지팡이'로 보는 견해이다.
히브리어 '하카크'(haqaq)가 본문처럼 분사로 쓰일 때 '통치자','입법자','지도자'(판관5,14; 이사33,22)를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동의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본문이 운율을 가진 히브리 시(詩)로서,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평행법에 따르면,'하카크'(haqaq)는 '사람'이 아니라 앞서 나온 '왕홀'과 대비를 이루는 '지팡이'나 '지휘봉'이라는 견해를 취한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새 성경은 그 다리 사이에서 지도자(사람)가 나온다는 해석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그의 다리 사이'라는 말은 남자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 후손들 가운데서' 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왕권의 '혈통적 보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입장을 따르든지,본문은 유다의 자손들이 끊이지 않고 왕권을 계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예언임을 알 수 있다.
이 예언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거쳐 남부 유다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유다의 후손들이 통치권을 이어감으로써 성취되었다(2사무5,3; 2역대36,11).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원문에 나오는 '쉴로'(shillo)를 '평화(안식)의 시기'를 의미하는 추상 명사로 보아서,'안전하게 됨'(욥기3,21)을 뜻하는 '샬라'(shalla)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유다가 그들의 적들을 정복하여 '안전하게 될 때'까지 유다 후손의 통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일부 학자들은 어근으로 추정되는 '쉴'(shill)이 갈대어나 아랍어의 '후손'을 의미하는 단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쉴로'는 '후손' 곧 유다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의 주요 예언이 그리스도에 이르러 완전히 성취된다는 점과 더불어, 창세기 49장 8절로부터 계속되는 유다에 대한 예언은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종결된다는 점에서, '쉴로'(shillo)를 사람의 이름, 그 중에서도 유다 가문을 통해서 오실 '메시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순종할'로 번역된 '익케하트'(yikkehath)는, 아랍어 동족어인 '와크하트'(waqhat)가 '복종'이라는 뜻이며, 잠언 30장 17절에서도 이 단어는 '순종'의 뜻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본문은 메시아의 도래와 하느님 나라의 임재,그리고 영원한 천상 나라의 백성이 될 성도들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꺼이 순종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된다(필리2,9-11; 묵시5,9-14 ;17,14).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마태오 복음 1장 2-17절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메시아이십니다.
그분의 탄생으로 하느님 백성의 구원 역사는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특별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야곱의 아들 요셉과 그의 아내 마리아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요셉은 예수님을 낳았다.” 대신에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에서 15절까지 줄곧 사용한 능동태 문장이 아니라 수동태 문장이 사용된 이유는
단순히 다윗 가문의 계보를 나열하는 문학적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닐 것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16절의 수동태 표현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분의 탄생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진 초자연적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마태 1,18.20 참조).
또한 이러한 문학적 형식의 파괴는 예수님의 족보 다음에 등장하는 이야기(1,18-25)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줍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집중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분께서는 다윗 가문 출신이시지만 성령의 힘으로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먼저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바라봄’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대림 시기 둘째 부분을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정진만 안젤로 신부)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승리(勝利)의 지팡이- 십자나무
독서(창세49.1-2.8-11)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 야곱의 예언(預言), 유언(遺言)이다.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 야곱을 이스라엘로 하느님께서 바꾸어주신 이름이다.
참조~야곱이 하느님과 씨름(기도)을 했을 때 ~
(창세32,25-29.32) 25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야훼)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 (야곱-‘걸려 넘어지게 하는자’라는 뜻) 야곱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 (이스라엘의 승리) 하느님은 야곱(남자)의 힘인 엉덩이 뼈를 치심으로 절뚝거리게 만드셨다. (이스라엘은 엉덩이 뼈를 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으로 생각)
그러니까 자신의 힘이 아닌 지팡이를 의지해야 할 존재가 된 것이 승리(勝利)라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지팡이, 승리(勝利)의 지팡이로다.(탈출4,20. 7,8-13참조)
모세를 통해 죽음의 바다를 가를 지팡이다. ~
(탈출14,15-16) 1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6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 자신(自身)을 의지(依支)하지 않고, 하느님을 의지(依支)하게된 것이 승리(勝利)라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죄)읗 대속(代贖)으로 없애주신 십자(十字)나무의 주님을 믿는 것, 우리의 승리(勝利)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模型)한다. 육(肉)을 입으시고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쟎은가(로마1,-4참조) 5ㅡ래서 오늘복음 그리스도의 족보(族譜)에, 다가 셋째 이면서도 올라간다.(마태1,2-3참조)
그런데 왜 유다를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으로 쓰셨을까? 공부(工夫)해 보자.
동생 벤야민이 위험(危險)에 처(處)하자 유다는~
(창세44,32-33) 32 나리의 이 종(유다)은 제 아버지(야곱)에게 그 아이를 맡겠다고 하면서, ‘제가 만일 그 아이를 아버지께 도로 데려오지 않는다면, 제가 아버지 앞에서 그 죄를 *평생 짊어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3 그러니 이제 이 종이 저 아이 *대신 나리의 *-종으로 여기에 머무르고, 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 형제를 맡아 책임(責任)지고, 죄를 짊어지고, 대신 종(從)이 되겠다는 것, 우리 주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죄인(罪人)인 우리를 형제로 삼아 원수(怨讐)인 죽음의 법을 대속으로 폐지(廢止)하시고, 모든 이들을 당신께 엎드리게, 곧 당신의 지체(肢體)가 되게 하셨다.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 아무도 멸망(滅亡)하지 않고 모두 회개(悔改)할 때 까지(2베드3,3-9참조).... 왕홀- 영원한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나단이 다윗에게 전(傳)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2사무7,10-12) 10 나는(야훼)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다윗의 후손(後孫) 솔로몬은 샬롬 -평화를 뜻한다. (솔로몬 때 나라가 갈라져 망했다.) 곧 ‘영원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불안해하지도 원수들에게서 평온(平穩)하게 해줄 한 곳,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십자가(十字架)의 예수님이시다.
(사도13,23)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미카5,1)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 옛날, 아득한시절(원시복음), 여자, 하와를 유혹(誘惑)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게(죄짓게)한 뱀에게.............
하느님께서~
(창세3,15)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 뱀의 머리(선악의 뜻, 생각)를 밟으시고 뱀에게 발의 피를 빨리실, 곧 여자의 대속으로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갈라3,16)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 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11 그는 제 어린 나귀를 포도 줄기에, 새끼 *나귀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로 제 옷을, 포도의 붉은 즙(피)으로 제 겉옷을 빤다.
= 나귀는 ‘붉다’는 뜻으로 죄를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죄인(罪人)들을 구하시기 위해 생명을 주는 포도나무인 당신께 그들의 죄를 붙들어 매고,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代贖)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구원의 새 계약의 피를 흘리시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인 것이다.
(마태21,5) 5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 죄와 하나, 한 몸이 되시어 우리의 죄로 죽으러 오시는 겸손(謙遜)하신 예수님,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더 이상 불안(不安)해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불의(不義)한 자들의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모든 원수(怨讐)에게서 평온(平穩)하게 해 주실 한 집안, 곧 교뢰(우리)를 다시 일으켜주실 한 곳,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다. 그곳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제자리’다
기억(記憶)하고 되새기자~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가23,33)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갈라5,24)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코린1,17-18)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골로1,20)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소서. 자기 부인으로 그분과 하나되게 하시어 불의한 자들의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1,1-17)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16~18)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장 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복음에는 1장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 이심을 강조한다(1,1).
B.C.1750 년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로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아들','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ㄱ) 타마르(3절) ㄴ) 라합(5절)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ㄷ) 룻(5절)~모압 출신 여자 ㄹ) 바쎄바(6절)~우리야의 아내;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는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 룻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 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마태1,18~25).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 합리화, 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 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말하자면,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 족보, 계보도 그리 개끗하지도, 산뜻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구원의 역사로, 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 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출산전(前)도 출산시(時)도 출산후(後)도 동정녀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님은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 가문의 후예이시다.
우리도 성모님의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축복 누릴 수 있다.
우리도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상대방을 자꾸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은 점만 자꾸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자신에게도 좋게 복으로 돌아오는 피드백을 알고 있다.
무한히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지엄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의 내적 영광은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성삼위 하느님이 지니고 계신 지극히 존귀하심, 엄위하심, 거룩함과 진실함, 권능과 권세 등등을 하느님의 자녀들과 천사들이 자꾸 밖으로 드러내어 기릴 때, 하느님의 외적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 기도', '영광송'을 통해서 그리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하면서 찬양과 감사와 흠숭을 드릴 때,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축복해 주신다.
이것이 인간에게 축복으로 돌아오는 원리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나부터 주님 대전에, 주님 뜻대로 잘 살고 거룩하게 걸으면 된다.
그러면 나를 통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진다.
창세기의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처럼 말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여기서 '남편'으로 번역된 '안드라'(andra)는 원형 '아네르'(aner)의 목적격 단수로서
정관사 '톤'(ton)과 함께 '톤 이오세프'(ton Ioseph)와 동격으로 쓰였다.
'아네르'(aner)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 아내와 구별된 '남편', 그리고 미성년자와 구별된 '어른'이라는 명사인데, 여기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요셉'에 해당하는 '이오세프'(Ioseph)는 '더하다'(to add)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인명 '요쎄프'(yoseph)에 대한 희랍어 음역이며, 족보상 예수님의 아버지지만,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마태1,18)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마태1,18~25).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복음 1장 2절부터 16절 상반절까지는 모두 남자가 그 아들을 낳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본문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들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예언('여자의 후손'; 창세3,15)과 이사야가 한 예언('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사7,14)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낳다'라는 표현인 '에겐네센'(egennesen)이 능동형이었는데, 본문에서는 '태어나셨다'에 해당하는 '에겐네테'(egennethe)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마리아는 자의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를 육체적으로 낳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사가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역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로 번역된 '엑스 헤스'(eks hes; of whom)에서 '엑스'(eks; of)는 '(공간적으로)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서 분리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헤스'(hes; whom)는 관계대명사 '호스'(hos)의 여성 소유격 단수로서 본절 상반절의 '마리아스'(Marias)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엑스 헤스'(eks hes)는 문자적으로 '그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불리는'으로 번역된 '레고메노스'(legomenos; is called)는 '말하다'(to say)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lego)의 현재 수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서 앞에 있는 정관사 '호'(ho)와 함께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즉 '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ho legomenos Christos)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라고 말해지는 (일컬어지는)'이라는 의미이다.
이 시점은 예수님께서 출생하던 당시가 아닌,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하던 초대 교회 시대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나자렛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대망해 오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선교했으며 (사도 5,42; 17,3; 18,5.28), 자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2022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하늘족보에 여자 다섯이 들어가 있다.
복음(마태1,1-16)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 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 남자는 하늘(빛, 씨, 생명)을 여자는 땅(어둠, 죽음, 비어있음)을 모형(模型)한다. 그리고 씨(제라)는 자손, 후손, 아들, 구원자, 말씀을 뜻한다. 모두 하늘을 담지 못하면 비어있음으로 영원한 어둠, 죽음에 갇히게 될 여자들이다.
그래서 ‘타마르’는 남편이 죽어 후손(後孫),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되자 창녀(娼女)로 위장해 시아버지(남자)의 씨를 받아 후손, 아들을 낳았다. 성경(聖經)은 이것을 ‘의(義)’라고 한다.
‘라합’은 창녀로 하느님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나라를 배반(背叛), 부인(否認)하고 하늘남자의 씨를 받아 후손, 아들을 낳았다.(여호2,1-4) 성경은 이것을 믿음(信) 이라한다.
과부 ‘룻’은 보아즈, 곧 구원자의 덮음의 은혜로 후손, 아들을 낳았다.(룻기3-4장)
‘우리야의 아내’, 곧 땅의 씨를 담고 있던 여자가 다윗(하늘)의 씨를 받아 후손, 아들을 낳았다.
‘마리아’, 처녀(處女)로 비어있음, 쓴물을 뜻한다. 곧 그 육(肉)의 상태에 소식, 말씀(씨)이 찾아가시어 말씀을 잉태 시키고 아들을 낳았다 하신다.
(루가1,26-27.31)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성경(聖經)의 모든 말씀을 예수, 곧 구원자(救援者)로 깨달아야, 낳아야한다. 그것이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처럼 아들, 후손, 곧 그리스도를 낳는 것이다. 자격이 없고 불완전하고 병이든 죄인에게서 구원자 그리스도를 낳게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 은혜, 권능이다.
(갈라3,16)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 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루가1,78-79)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빛)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영원한 보호자로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빛,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를 비추시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