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6일 목요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 (루카7,24-30)

제1독서<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은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이사54,1-10)
1 환성을 올려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즐거워하여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혼인한 여인의 아들들보다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3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
4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리라. 네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네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5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8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9 “이는 나에게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10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화답송 시편 30(29),2와 4.5-6.11-12ㄱ과 13ㄴ(◎ 2ㄱㄴ 참조)
◎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
○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복음<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루카7,24-30)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대림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이사54,1-10)
어제에 이어 제 2 이사야, 위로의 책(40-55장)이 전개된다.
54장 1절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산고를 겪지 못한" 이란 표현은 49장 14절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너 시온은 말하였었지')의 버림을 받은 것에 대한 예루살렘의 불평을 말한다.
49장 18절 (고개를 들어 둘러 보아라. 모두들 너에게로 모여 오고 있다) 에서 예루살렘은 주위에 모여 든 자녀들을 보라는 요구를 받았다.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 많을 것이다." (1ㄷ)는 말은 오랫동안 내버려졌던 예루살렘의 인구 증가가 다른 도시들의 자연적인 증가보다 능가한다는 것이다.
2절의 천막터와 장막 휘장의 펼침은 확대되는 가족을 위한 장소의 확장의 촉구를 예루살렘이 받고 있다는 말이다.
3절은 유다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 갔을 때에 방치된 성읍들이 인근 지역의 무단 입주자들에 의해 채워졌기에, 이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땅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밝힌다.
예루살렘의 자손들은 성읍들로 이주하면서 계속 증가될 것이다.
4-5절에서 예루살렘은 그처럼 오랫동안 무력했던 것을 잊고 담대하라는 격려를 받는다.
이제 예루살렘을 '만드신 분'이신 하느님께서 "남편"과 소유자와 경작자가 되신다.
하느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지원하시고 키우신다.
"너의 남편"이라는 비유적 표현은, 이 백성이 자기들의 땅을 재건하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너의 구원자"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페르시아(바빌론) 황제들을 사용하시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만군의 주님"은 옛 이스라엘이 계약의 궤 주변에서 드리던 예배 때에 사용된 호칭이었다.
이 호칭은 출애굽과 광야의 여정과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다윗의 팔레스티나 지역의 정복을 상기 시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이사야의 환시에서 사용되는 특별한 호칭이다.
선민 이스라엘을 아브라함과 연결시키는 "완전히 다른 분"으로 주님을 묘사할 때 쓰는 호칭이다.
"온 땅의 하느님"은 유프라테스에서 이집트의 강까지 이르는 팔레스티나 전체가 특별한 의미에서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주님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다윗의 정복에 의해 더욱 강력하게 주장된다. (청세15,18 : 신명11,24 : 여호1,4 :1열왕4,21)
6-8절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버림받은 채로 있었던 예루살렘의 재건은 깨어진 혼인의 재결합으로 묘사된다.
이제 "버림"(소박, 퇴박)과 "분노"(진노)는 지나간 일이 되었다.
영원한 "자애"(자비)와 "가엾이 여김"은 구원자이신 주님의 태도와 활동을 묘사한다.
9-10절에서 노아 홍수와 같은 징벌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홍수 후에 노아에게 하신 약속(창세9,11)을 인용하시고, 자신의 "자애"(hesed, 헤세드)와 "평화의 계약"의 흔들리지 않는 본질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대림절에 진정한 참회와 생활 개선의 결심을 통해, 수많은 호칭으로 묘사되는 구원자이신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자.
그래서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의 자애와 평화의 계약 당사자로 거듭 태어나서 주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로,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로 몰려와 하느님의 축복을 감사하고 찬양하게 하자.
2021.12.16.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사제의 묵상 (서철 바오로 신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가자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요한에 관하여 증언하십니다.
아마도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위대한 인물로 받아들여졌고,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길을 닦아 놓는 사람이며,
옛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면서 메시아의 구원 시대를 알리는 사명을 이행하는 큰 인물이기는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 라도 그보다 더 크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구원이 성취되는 새 시대가,
구원을 약속하는 데 그친 옛 시대보다 더 위대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시대에는 가장 작은 이 일지라도,
약속의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훌륭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그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에,
많은 백성과 세리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고
하느님께서 의로운 분이심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가졌던 마음을 상기해 보고,
예수님을 합당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의 길을 닦아야 하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윤리적 문제나 감정의 혼돈뿐 아니라,
그 뿌리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행동과 감정의 혼돈이 어디에서 오는지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하느님 앞에 자신을 열어 보이면 어떨까요?
내게 일어난 일들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다 보면,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더 사랑받고 더 인정받고 더 가지고 싶어 움직인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욕망입니다.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느님 앞에 펼쳐 놓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을 모형(模型).
복음(루카7,24-30)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광야(廣野)는 하느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하늘)으로 건너가기 위해 건너야 할, 우리 삶의 현장(現場)인 세상을 뜻한다.
즉 ‘너희는 왜 사니? 이 세상에 왜 나왔니? 왜 태어났니?’ - 흔들리는 세상을 위해, 구경하러? 곧 ‘신앙(信仰)의 목적(目的)이 뭔지 아니?’ 물으시는 것이다.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脫出)해 약속의 당,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했던 광야(廣野)다. 그러니까 가나안(하늘)으로 건너야 할 삶이 아니라 이집트의 왕국(王國), 그 땅의 화려한 삶을 위해 살고 있음을 지적(指摘)하신 말씀이다.
곧 이스라엘 민족(民族)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이집트, 로마의 왕국, 곧 세상의 화려한 삶을 그리워하여, 추구(追求)하며 살고 있음을 지적(指摘)하시는 것이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곧 땅(육(肉)의 사람은 하늘(남자)로부터 다시 태어난 영(靈)의 사람보다 작다는 말씀이다.
(요한3,5-6)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땅-광야)에서 하늘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신명8,2-3)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세상의 지혜(知慧), 계명의 말을 먹고,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진리(眞理)로 사는 사람이 육(肉)의 사람이다. (물론 이 땅에서 의롭게 사는 거ᅟᅩᆺ, 맞다. 그러나 그 의(義)는 땅에서만 유효(有效)한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智慧), 계명(誡命),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이 진리임을 깨닫고 그 진리(眞理)로 사는 사람이 영(靈)의 사람이다. 그렇게 하느님(남자)에게서 태어나야 한다.
(창세2,22-23)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남자)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1요한5,1)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다’고 하신다.~
독서(이사54,4-10)
4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리라. 네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네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5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약속)하신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8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약속)하신다. 9 “이는 나에게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10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멘)
= 우리의 부끄러운 일,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창피한 일을 예수님께서 모두 가져가시고 당하셨기 때문이다.(히브10,8-22 참조) 그래서 깨끗해지고 거룩한 자로, 우리를 다시 거두어 주시고 우리가 영원한 평화(平和)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영원한 맹세, 변하지 않는 약속, 새 계약의 말씀이기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땅, 세상의 지혜로 “훌륭한 삶을 살자” 라는 가르침을 받아 의롭게 살았어도 땅에게서 태어난 작은 사람일 뿐이다. 땅의 작은 사람이라는 것은 영원히 땅(찌옥)에 갇힐 존재(存在)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祈禱)에서~
(마태6,11)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일용할 양식은 ‘내일의 양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땅(육)의 양식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 곧 영(靈)의 양식(糧食)으로 먹게 해달라고(깨닫고 믿게 해달라고) 청(請)하라고 하신 것이다.
일용할 양식- 히브리어 ‘에피시오우스’- ‘꼭 필요한 양식’, 아람어 ‘마헬“- ”내일의 양식“ 내일은 땅의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이다. ’노후(老後)가 아닌 사후(死後)의 신앙(信仰)을 사는지 살피라는 말씀이다.‘
마음에 새기자, 먹자. - 오늘, ‘내일의 양식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얻는 평화의 계약의 말씀’을.....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야훼)께서 말씀(약속, 맹세) 하신다.“
☨ 높으신 하느님의 힘이신 천주의 성령님!
인간의 언변, 지혜의 말로 땅의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내일(하늘)의 영의 사람이 되게 허소서. 우리 모두가 이미 이루어 졌음을 깨닫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