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7일 화요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18,12-14)

제1독서<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이사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화답송 시편 96(95),1-2.3과 10ㄱㄷ.11-12.13(◎ 이사 40,10 참조)
◎ 보라, 우리 하느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
○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마태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이사40,1~11)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를 간 이유는 야훼 유일신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을 배신할 때,주변 이교 강대국(앗시리아,바빌로니아 등등)을 통해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 잃은 설움을 주거나 유배를 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그들의 죄의 벌에 대한 (죗값; 갑절의 벌; 복역)을 치루고, 정신차리게 하며,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오늘 이사 40.1-2를 보라.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여기서 '나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바빌론 유배지에 있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복역의 때'가 끝났음을 외치라는 소명을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의 지위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이다.
이 요새화된 성은 다윗의 전투시 군사적 중심지로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전쟁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전쟁은 국가 존립을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다. 이스라엘(북)과 유다(남)는 더 이상 국가로 남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주변 이교 강대 제국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은 자유롭게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 40.3-11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과 삶의 터전과 공동체에 주님으로 찾아오시고, 통치하실 수 있도록,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길을 닦으라는 말씀이 선포된다.
성전 전승에 의하여 잘 알려진 야훼의 길은 시내산이나 에돔에서 나와(이사 34장; 63.1-6 참고) 사해 남쪽의 사막(=아라바)를 지나 동쪽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이다(diaspora가 거주하는 길).
이 선포의 핵심, 즉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야훼께서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에 좌정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왕의 행차를 준비하라고, 한 외침(소리)이 촉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르코복음1장 2~3절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마음 준비를 하도록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며, 예수님 앞에 오셔서 정지 작업을 하는 소명을 받은 예수님의 선구자이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사막에 길을 곧게 내는 것, 골짜기를 모두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게 하는 것, 거친 곳을 평지로, 험한 곳을 평야로 만드는 것"
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정지작업은 높은 것을 깎아내리고, 골짜기는 메우는 작업이다.
하느님 위에 올라간 영적 교만은 겸손으로, 죄악과 분열과 열등감의 깊은 계곡은 회개를 통해 은총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거칠고 험한 곳은 주님께 반항하고 대들고,제 마음대로 하던 마음인데, 그 폭력과 고집의 마음을 겸손과 온유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주님의 영광" (이사40.5)이 드러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다함께 보게 된다고 한다.
하느님 임재와 능력의 표징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볼 수 있고,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40.9ㄹ-10ㄴ). 상급과 보상이 무상으로 내린다(10ㄷ).
"상급"과 "보상"은 승리한 전사가 집으로 가져오는 노획물과 공물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야훼 하느님의 예루살렘 귀환이 승리의 행사로 묘사된다.
그분은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양무리)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이스라엘 백성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어미 양들(지도자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40.11).
이 목자와 양무리에 대한 시구는 시편 23.1-3과 유사하다. 목자는 대개 "왕"을 위한 비유로 쓰인다. '그의 양무리, 어린 양, 암컷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넓은 의미로 묘사한 것이다.
유다의 성읍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에, 수십 년동안 외면과 고통스런 상황으로 고난 받아온 사람들을 묘사한다.
예루살렘에로의 하느님의 귀환은 그들 모두, 특히 약한 자와 곤궁에 빠지고 궁핍한 자를 위한 목자의 외투 속 사랑을 가리킨다.
"젖먹이는 암컷들"은 "갓난 어린양들"과 함께 지내며 돌보는데, 양떼가 이동할 때마다 어린양들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8,12~1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2)
'길 잃은'에 해당하는 '프라노메논'(planomenon; which is gone astray; that wandered off)의 원형 '플라나오'(planao)는 '길을 잃다'(to go astray), '방황하다'(wander roam abou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실제로 양은 심한 근시이므로, 무리와 조금만 떨어져도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길 잃은' 양도 무리로부터 떨어져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애처롭게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단어는 은유적으로 '속이다' '유혹하다', '꾀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18장 12절은 자신의 잘못에 의해 길을 잃게 된 행위 뿐 아니라, 유혹당하여 진리로부터 벗어나 죄에 빠지게 된 상황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않느냐?'에 해당하는 '우키'(ouchi)는 '아니다'(not)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부정어이다.
하지만 본문처럼 의문문에서 사용되면 당연히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문은 '반드시 그 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를 버려두고 찾는다'라는 뜻이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그냥 남겨 둔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되지 않지만,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맡겨진 자들에 대해서는 한 영혼이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소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착한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길잃은 양 한 마리일지라도 크나큰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암브로시오는 아우구스티노, 예로니모,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위대한 네 명의 교부’라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12월 7일은
암브로시오 성인의 선종일(397년 4월 4일)이 아니라 주교 수품일입니다.
성인들은 보통 천상 탄일을 축일로 하는데, 암브로시오 성인은 다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암브로시오는 독일 트리어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서른 살 즈음인 370년에 발렌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와 에밀리아 주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도지사입니다.
이들 주의 주요 도시가 밀라노였습니다.
당시 밀라노교구의 주교가 선종한 뒤,
후임 주교를 선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정통 교리를 수호하려는 신자들과
아리우스 이단에 물든 세력 사이의 알력으로 큰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에 암브로시오는 밀라노 대성당에서
“평화롭게 주교를 선택해야 한다.”고 연설을 합니다.
연설 도중에 누군가 “암브로시오를 주교로!” 하고 소리치자,
군중은 모두 그를 따라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주교로 추대된 암브로시오는 일주일 만에 세례와 견진을 받고,
이어서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으니, 그날이 12월 7일이었습니다.
암브로시오는 주교가 된 직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학생도 되기 전에 스승이 되었구나. 배워야 할 내가 가르치게 되었구나!”
그는 열심히 성경 공부에 몰입하였을 뿐 아니라,
바쁜 사목 활동 가운데서도 늘 성경을 읽었고,
그 안에서 깊은 의미를 찾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강론하여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의 가르침처럼,
사제들은
사람들을 책망하고 고발하기보다는
하느님께 그들을 위해서 전구해 주는 자세로 일하고,
신자들은
말씀을 지니고 살아 구원의 길을 힘차게 걸어야 하겠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2021년 12월 7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되찾은 양의 비유
복음(마태18,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 양(羊) 아흔아홉 마리가 모여 있는 산은 율법(律法)의 산이다. (숫자99는 100에서 하나가 부족한, 곧 하느님의 뜻, 진리가 빠진 불완전을 뜻한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율법(律法)을 대속(代贖)으로 완성하신 하늘의 의로움을 찾아야 한다고 그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기 부인(否認), 버림, 그 작은이로 율법의 산을 나온 양 한 마리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왜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작은이가 되라고 하셨나? 인간의 모든 것, 즉 세상의 명예(名譽), 의(義), 생명(生命)까지 그 모든 것은 사라질 연기(煙氣), 그림자일 뿐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다. 하느님은 그런 작은이를 뒤쫓아 가 찾을 때까지 찾아내신다. 그리고 기뻐하신다.(루가15,4참조)
독서(이사40,10-11)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 보이는 세상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독서(이사40,6-8)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말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 인간의 영광의 꽃, 곧 인간의 의로움은 구원의 의로움인 주님의 말씀 앞에 시들어 버릴 풀일 뿐이라는 것이다.(이사64,5참조)
(이사45,23-25)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바룩2,6) 6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와 우리 조상들 얼굴(의로움)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약, 약속, 그 하느님의 말씀만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구원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영광, 권세의 주인인 사탄에게~
(루가4,4)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그러니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과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를 많이 알고, 들었어도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새 계약의 말씀을 모르면, 믿지 못하면 헛것인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아래 모든 것은 헛것일 뿐이라 하신다.
(코헬1,2-3)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 모든 노고(老姑)? 율법의 행위와 세상의 선악의 도덕과 윤리의 삶이 하늘의 용서, 구원에 무익(無益)한, 보람이 안된다는 것이다.
독서(이사40,1-2)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 죄의 값은 두배, 갑절로 갚아야한다. 하느님의 명(命)이시다.(탈출22,4-8참조) 곧 우리의 죄 값이 하늘의 대속으로 갚아져 죄의 복역 기간이 끝난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손, 일로 갑절의 벌을 치룬 것이다. 그런데 왜 갑절일까? 그것은 하늘의 대속이 갑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인데~
(탈출16,16) 16 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는 이렇다. ‘너희는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여라. 너희 식구의 머리 수대로 한 오메르씩, 저마다 자기 천막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가져가거라.’”
=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루 양식으로 주신 ‘만나 한 오메르’다.
(탈출16,22.29) 22 엿샛날에는 한 사람에 두 오메르씩, 양식을 *갑절로 거두어들였다. 공동체의 수장들이 모두 와서 모세에게 이 일을 알리자, 29 보아라, 주님이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 그래서 엿샛날에는 너희에게 *이틀치 양식을 준다. 그러니 이렛(7)날에는 저마다 제자리에 머무르고, 아무도 자기가 있는 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지 마라.”
= 양식(糧食)인 만나, 곧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으로 하늘의 안식, 쉼을 누리게 된 것이다.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그래서 인간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버린, 작은이만이 누릴 수 있는 갑절의 용서(容恕), 자유, 쉼, 안식이다.
그러니 광야(廣野) 같은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로 안식을 주신 하느님의 길, 하느님의 영광의 길을 내야(닦아야)한다.
독서(이사40,3-5)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영광만이 오롯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메우고 낮추는 삶이 우리의 구원을 넘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1코린1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사람의 뜻을 위한 세상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복음, 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입어 하늘의 안식을 누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