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금요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마태11,16-19)

2021. 12. 10. 오전 6:30:32

글자


   20211210일 금요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마태11,16-19)

 

1독서<,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사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화답송 시편 1,1-2.3.46(요한 8,12 참조)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복음<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마태11,16-19)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대림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이사48,17-19)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8)


이사야서 48장 18절과 19절은 주님을 떠나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토로된다.

하느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당신 백성이 번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명령과 규정을 주심으로서 옳은 길을 걷도록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느님의 명령 듣기를 싫어하였다.


본문의 서두에 나오는 '루'(lu)는 가정법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했더라면' 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안타까운 심경을 반영한다(민수20,3; 22,29; 여호7,7; 판관8,29).

새 성경은 이러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아~'로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그들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명령(신명10,13)을 경청했더라면, 그들의 삶은 이러한 고통이 없었을 것이고, 평화롭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축복이 아닌 스스로가 자초한 고통스러운 징계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풍성한 평화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 심령과 삶에 놓인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서(시편68,20)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너의 평화'에 해당하는 '셸로메카'(shellomeka)의 원형 '샬롬'(shallom)은 단순히 전쟁이나 불화, 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상태(well-being)를 나타낸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인생 최대의 축복으로 여긴 것이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평화를 강물에 비유한다.

이것은 생명을 공급하는 풍성한 소출을 맺게하는 물이 풍성한 강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넘치는 삶, 풍족하고 풍성한 삶을 살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축복은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의로움'은 앞에 제시된 '평화'와 더불어 주님의 통치의 성격과 관련된다(이사32,17). 사실 의로움은 평화를 초래하는 원천이다.


여기서 '의로움'(정의)에 해당하는 '체다카'(tsedakah)는 하느님의 백성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올바른 삶의 태도, 의롭고 정직한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은 단지 법적으로 의로움을 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의로움을 누릴 수 없는 약한 자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자비와 연민을 베푸는 삶으로까지 확대된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다 물결 같다는 표현은 그러한 삶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비유이다.

바다 물결은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한 파장이 다른 파장으로 연결되면서 계속된다.


하느님의 백성이 그의 명령을 겸손한 마음으로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산다면, 그들의 삶에서는 마치 바다 물결같이 의로운 행위, 자비로운 행위가 끊임없이 계속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그와 그가 속한 공동체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을 힘입게 하며, 그야말로 '샬롬'(shallom), 즉 완전한 평화를 누리는 형통한 삶, 부족함이 없는 삶의 자리로 이끌어 세울 것이다.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19)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이란 표현은 주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삶은 창세기 15장 5절과 22장 19절 있는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축복을 성취하는 첩경이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는 이와 정반대의 결과 즉 저주스러운 일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즉 북부 이스라엘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당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흩어졌으며, 남부 유다 바빌로니아에 정복당하면서도 동일한 결과가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언약을 받은 다윗 왕가는 무너졌으며, 왕의 자손들 역시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민족 자체가 멸절된 것은 아니었지만, 민족의 수효는 급감하고 말았다.


고대 세계에서는 자손이 번성하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큰 축복으로 여겨졌었다.

이스라엘은 범죄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언약된 번성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고 불순종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쇠퇴와 멸망의 길을 걷고 만다.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본문은 완료 시제가 아닌 미완료 시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사야서 48장 18절과 19절 상반절이 완료 시제로 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이 이미 끊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의 계명과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하느님의 명칭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이름을 지닌 대상의 존재와 성품, 사명과 활동 등을 함축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하느님 대전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에 대해 하느님께서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시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과, 사제들의 나라(탈출19,5.6)로 삼으시고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 거룩한 직책을 박탈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하느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이같은 영예로운 이름, 그 안에 함축된 복된 직책과 임무들을 잃지 않았을 것이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업신여김으로써 그 모든 축복에서 멀어지고, 심지어 바빌론에 의해 패망을 당하여 결국 그들이 지닌 거룩한 이름과 정체성까지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코로나가 번지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마태11,16-19)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나의 수고, 예물을 드리고 하느님의 복을 받겠다는, 그 거래하는 장터의 신앙을 살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기쁜소식으로 주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자신들의 잘못을 알려줘도 아파할 줄 모르는 그 철부지 같은 신앙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 아이와 같은 신앙이 하느님의 뜻(지혜)을 거스르는 잘못, 죄임을 모른다. 자신들의 뜻(지혜)으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 율법을 진리로 먹고, 마시지 않으니, 받지 않으니 마귀들렸다 하는 것이고~

 

19ㄱ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 율법을 진리로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으로 그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니, ‘술꾼이며 먹보’라 한다.

 

19ㄴ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 그렇게 죄인들과 친구가 되시는 분, 그 예수님께서 올바름으로 드러난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양식으로 오셨으니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셨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을 죄인들은 먹을 수 없다는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시다.

 

(요한6,51)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 빵, 살 모두 예수님의 죽음인 당신의 생명이다. 그 생명이 죄인들의 양식이다.

 

(1코린11,26-27. 29-30)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 성찬례, 자신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먹는다면, 또 자신의 뜻을 위해 먹는다면, 그는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주님은 그 자격이 없는, 곧 죄인들의 구원의 양식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자신이 죄인이기에 먹어야 한다고, 구원의 진리 그 양식이니 먹어야 한다고 감사로 먹는다면~ 그 대속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먹게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 그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분별없이 먹는 것, 죄다.

 29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에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이미 죽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 지혜의 양식이 십자가에서~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예수님을 죄인들의 양식으로 보내시어 그 죄인들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지혜, 그 지혜가 하신 일이 올바르게 드러난 것이 십자가이다.

우리(내)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어 그분의 사랑(십자가)으로 거룩해 진다는 것과,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내 모든 죄를 용서받아 죄인인 내가 하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늘의 신비, 곧 나의 구원의 신비(비밀)였음을 알아, 우리의 창조목적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게 되었음을, 그래서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의 존재로 완성됨을 믿는 것이다.

 

(에페1,4-10)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지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지혜)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비밀)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 그 지혜, 예수님 이시다.

 

(잠언8,12. 22-32) 12 “나 지혜는 영리함과 함께 살며 지식과 현명함을 얻었다. 22 “주님(야훼)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 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 구약에도 인간의 지혜에도 감추어져 계시다는 말씀이시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 지혜(예수)를 입으면 하느님과 예수님의 기쁨이 된다.

32 “그러니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들어라. 행복하여라, 내 길을 따르는 이들!

=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믿고 의탁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17,28) ~아멘.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사제의 묵상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지만,

유다인들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도 마음을 열지 않는 완고한 이 세대를 비난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혼례를 거행한 뒤 시장에 모여 춤을 추었고,

장례 뒤에는 죽음을 슬퍼하며 곡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이러한 생활 양식을 모방하여,

어린이들은 피리를 불며 춤을 추거나 가슴을 치며 곡을 서로 주고받으며 놀았나 봅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즐거운 가락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데,

다른 무리의 아이들은 함께 흥을 내고 어울려 춤을 추기는커녕

팔짱을 끼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우울한 곡을 연주하거나 장송곡을 불러 보아도 함께 슬퍼해 주지 않습니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추거나 곡을 하는 아이들에게

장단을 맞추지 않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 종말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그는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고행자의 삶을 삽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을 마귀 들린 자로 취급하면서 배척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선포하시고 죄인들과 어울리시자,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하면서,

단식을 하고 죄인들과 어울리지 말라며 배척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합니다.

그것이 조작된 것인지 참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워 주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열어 예수님의 상처(십자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이웃과 형제의 상처에 눈을 떠야 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내생각과 다른것, 그것이 아무리 옳다하여도 

나와 같지 않으면 배척하려하지는 않는지요.~




 

 

 대림 제2주간 금요일  (마태11,16-19)

 

진정 하느님의 수행자는 선인善입니다진인眞人입니다현인賢人입니다착하고 참되고 슬기로운 하느님의 사람이 수행자입니다바로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의 유일한 삶의 목표입니다수행자의 본연의 자세는 무엇일까요말씀을 듣는 것입니다단지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수용受容하고 이해理解하여 실행實行함으로 말씀과 동화同化되어야 비로소 진짜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오늘 복음 전 말씀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1,15).

 

들어야 소통입니다부단히 들어야 자신을 압니다듣지 않아 듣지 못해 불통입니다소통은 생명이요 불통은 죽음입니다. 불통에서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입니다분도규칙도 아들아들어라.’로 시작됩니다잘 듣기 위한 침묵이요 잘 들어야 순종이요 겸손입니다


진정 '마음의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이가 진인이요 선인이요 현인입니다막연한 수행자가 아니라 말씀의 수행자가 진정한 수행자임을 깨닫습니다우리 예수님이말로 참 수행자의 모델입니다오늘 복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는다.”


듣지 못하는반응할 모르고 공감할 줄 모르는 회개를 요하는 불통의 세대를 뜻합니다무감각무의욕무의미의 삶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제대로 볼 줄도 생각할 줄도 모르는참으로 무뎌지고 굳어진 생각이 없는 사람관념이 없는 사람주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단정하고예수님이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죄인의 친구다.’ 하며 일방적으로 매도합니다들을 수 있는 귀는 물론 볼 수 있는 눈도 없습니다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납니다예수님은 물론 무수한 성인들의 삶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참 수행자의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임을 깨닫습니다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그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며 진정 당신의 계명을 듣고 실행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너의 평화가 강물처럼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네 후손들이 모래처럼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꼭 오늘의 우리 세대에 주는 엄중한 예언 말씀 같습니다우리의 유일한 스승이자 인도자이신 주님을 잊었기에 불의不義와 불화不和가 만연된 정의正義와 평화平和가 없는 세상입니다혼인율출산율의 저하와 이혼율 증가로 후손들이 끊어질 것 같은 예감도 듭니다

어제 어느 노 자매의 오늘날 성당에는 젊은이도 아이들도 없고 온통 노인들뿐이라는 탄식어린 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정말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들의 이름도하느님의 이름과 말씀도 끊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수행의 삶을 축복하시어 우리의 평화가 강물처럼우리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리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여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1,20). 아멘.

 

 

  


2021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感謝가 든 나를 治癒變化救援으로 이끈다.

 

복음(마태11,15-19)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성령의 귀로 들어라로 공부했다.(어제 묵상참조)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마르1,15)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속량(贖良)의 때가 왔다는 기쁜 소식이다평화의 하늘나라가 왔다는 기쁜 소식이다그런데 기쁜 소식(복음)으로 기뻐할 줄 몰랐고자신의 뜻을 위해 열심히 지켰던 율법신앙(律法信仰)이 헛된 것이니 버리고 돌아오라고 해도 가슴을 칠 줄(否認모른다는 말씀이다성경(聖經)을 인간의 지혜(知慧),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보면 절대 기뻐할 수도 가슴을 칠 수도 없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人間)의 뜻을 위한 율법(律法)으로 살지(먹지않았고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인 율법(律法)의 완성(完成)을 위해 죄인(罪人)들과 함께 살았다는 말씀이다.

 

(마태9,12-13)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의 용서(容恕)를 위한 제사(祭祀)가 아닌 하늘의 대속(代贖)으로 주시는 용서자유생명그 자비(慈悲)의 말씀을 주라는 말씀이다곧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말씀지혜)으로 오셔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용서(容恕), 구원(救援) 다 이루어 졌다” 하신 일이다.

세리(稅吏), 죄인(罪人)들의 죄로 죽으시고 그 죄인들을 살리신 일이다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일이 옳은 일하느님의 정의(正義). 공의(公義)인 것이다.

병든 이들을 의사(醫師)가 고쳐주듯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죄로 죽으심곧 흙()의 존재들이 어떻게 스스로 하늘의 존재가 되겠는가하늘이 내려 오셔서 들어와 한 몸이 되어 주셨듯이그 일이 하느님의 지혜(智慧)요 옳은 공의(公義), 정의(正義)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필리1,10-11)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착한 행실(行實), 그 의로움과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얻는 의로움을 분별(分別)해야 한다사람의 의로움은 땅의 한시적인 것이나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거저 받는 의로움은 하늘의 생명(生命)이다.

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그리스도인은 더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한다아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죄의 용서를 받았음을 믿는 이들은하느님께 감사(感謝)와 영광(榮光)을 드리는 착한 삶을 살게 된다그것이 어울리는 합당(合當)한 삶이다. ( 가끔아니 자주 넘어지기는 하지만그럴 때 마다(어제 주셨던) ‘내 손을 잡고~’ 하느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사41,13-14) 13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4 두려워하지 마라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주님의 말씀이다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그런데 오른 손을 붙잡고 계신단다사람의 의로움과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을 분별(分別)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傳家)받은 의로움을 생명의 진리(眞理)로 붙들고 있는 옳은오른 손이다.

그리스도의 대속그 하느님의 용서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한 것이다.(히브10장 참조그러니 어찌 감사가 나오지 않겠는가하느님께 영광 드림이 어찌 나오지 않겠는가 말이다그 감사기 병든 나를 치유로변화로구원으로 이끌고 간다.

 

(로마7,18-25. 8,1-3) 18 사실 내 안에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은 세상의 육적(肉的)인 내가 죽고(否認머리(주인)이신 그분의 지체(肢體)로 그분을 붙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자신에게 이롭던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필리3,6-9)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해 간구해 주소서지혜가 이루신 옳은 일을 위해 율법의 나를 부수고 율법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소서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당신은 무슨 권한(權限)으로 (마태21,23-27)21.12.13조회 56[대림 제2주간 토요일] 엘리야가 이미 왔다. (마태17,10-13)21.12.11조회 57[대림 제2주간 금요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마태11,16-19)21.12.10조회 57[대림 제2주간 목요일] 요한이 예언자 엘리야다. (마태11,11-15)21.12.09조회 65[대림 제2주간 수요일] 안식 (마태 11,28-30)21.12.08조회 68[대림 제2주간 화요일]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18,12-14)21.12.07조회 67[대림 제2주간 월요일] 중풍 병자 치유 (루카5,17-26)21.12.06조회 69[대림 제1주간 토요일] 열두 사람 파견 (마태9,35-10,1.6-8)21.12.04조회 59[대림 제1주간 금요일] 눈먼 두 사람 치유 (마태9,27-31)21.12.03조회 64[대림 제1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 (마태7,21.24-27)21.12.02조회 94[대림 제1주간 수요일]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마태15,29-37)21.12.01조회 63[대림 제1주간 화요일] 성령 안에서(루카10,21-24)21.11.28조회 61[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1)21.11.28조회 62[연중 제34주간 토요일] 깨어 있어라 (루카21,34-36)21.11.27조회 59[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시대의 징표 (루카21,29-33)21.11.26조회 64[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성경 징벌의 날 (루카21,20-28)21.11.25조회 65[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증언(證言)할 기회(期會) (루카 21,12-19)21.11.24조회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