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임마누엘 (마태1,18-24)
제1독서<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예레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화답송 시편 72(71),1-2.12-13.18-19ㄱㄴ(◎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찬미받으시리라. 그분 홀로 기적들을 일으키신다. 영광스러운 그 이름 영원히 찬미받으시리라. 그 영광 온 누리에 가득하리라. ◎
복음<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마태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레23,5-8)
남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될 심판의 원인과 결과를 강조한 12개의 단편 예언이 수록된 예레미야서 제2장~25장 중에서, 예레미야서 23장 1절부터 8절까지는 아홉번째 예언에 속한다.
즉 남부 유다의 왕가에 대한 예언이 수록된 예레미야서 21장 1절~23장 8절의 마지막 단락을 이루고 있다.
앞선 에레미야서 21장, 22장에서는 치드키야, 살룸(여호아하스),여호야킴, 콘야(여호야킨혹은 여콘야)등 남부 유다 왕국 마지막 통치기의 인물들이 직접 거명되는데, 이들의 죄악상과 더불어 그들 각각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제시되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메시지는 각각의 왕들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남부 유다 왕국과 유다 백성들 모두에 대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는 여호야킴의 아들 콘야의 자손들 가운데에서 남부 유다를 다스릴 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예언되었다(예레22,30).
이 콘야 왕은 당시 남부 유다 백성들에게 다윗의 계보를 잇는 정통성있는 왕으로 여겨졌으므로, 이같은 메세지는 남부 유다 왕국에 아무런 희망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매우 절망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부 유다 왕가에 대한 예언을 마무리하는 예레미야서 23장 1절 이하 8절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되어 남부 유다 백성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예레미야서 21장, 22장과 달리 예레미야서 23장에서는 남부 유다 백성이 이제까지 백성들을 잘못 인도한 여러 유다 왕들과 공동 운명체로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심판은 유다 민중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각각의 왕들에게 주어질 것이며(1~2절), 포로로 잡혀간 선민들은 귀환하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왕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예언된다(3~4절).
그리고 이어지는 예레미야서 23장 5,6절 단락에서는 이 새로운 왕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예레미야서 23장 7,8절 단락에서는 장차 도래할 포로민의 귀환과 남부 유다 왕국의 회복을 확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인간의 패역부도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인 권한으로 역사하시고 자비와 은총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면모를 드러내 보여주며, 보다 거시적인 구원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모든 성도들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예표하고 있다고 하겠다.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버린 목자들!'
본문은 하느님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을 밝히고 있다.
이것을 나타내는 '목자들'에 해당하는 '로임'(roim)은 '목자'라는 의미를 가진 '라아'(raah)의 복수형이다.
즉 '목자들'이라는 의미로서 남부 유다 말기의 왕들, 특별히 에레미야서 21장, 22장에서 언급된 네 명의 왕들과 더불어 예레미야 예언자 당대의 왕국 관료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국가의 왕을 '목자'로 나타내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드문일은 아니었다.
특별히 목축업과 상당히 많은 권력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자'라는 단어는 보호와 인도와 돌봄의 이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치는 가축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을 잘 돌보는 역할을 하는 목자의 이미지는 하느님의 양 떼를 불행의 길로 인도한 남부 유다의 왕들과 대조되면서 그들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목자들이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인 목자들의 행태가 두 가지 동사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각각 '파멸시키고'와 '흩어버린'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 중에서 '파멸시키고'에 해당하는 '메압베딤'(meabbedim)의 원형 '아바드'(abad)는 '죽다', '사라지다'라는 의미이며, 본문에서처럼 강조형으로 쓰일 경우 '죽게 하다', '멸망케 하다'라는 사역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흩어버린'에 해당하는 '우메피침'(umephitsim)은 '푸츠'(phuts)의 사역형으로서 '널리 흩어 보내다', '몰아내다', '쫓아내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전쟁에 패하여 뿔뿔이 흩어지는 것(2열왕 25,5)과 더불어 이방 땅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것(느헤1,8)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결국 이 동사는 남부 유다 왕국의 왕들이 패전으로 인한 백성들의 죽음과 남부 유다 왕국의 멸망 및 남부 유다 백성들의 바빌론 유배의 원인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왕들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평가와 대조적으로 남부 유다 백성들을 상징하는 '양 떼'에 대해서는 '내 목장의'라는 표현으로 수식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1인칭 접미어 즉 '나의 소유'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은 남부 유다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5ㄷ)
본문은 하느님께서 남부 유다에 새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싹'에 해당하는 '체마흐'(tsemah)는 나무 줄기나 땅에서 새롭게 돋아나는 싹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이사야서에서 두 번 사용되었는데(이사4,2; 61,11), 특히 이사야서 4장 2절의 문맥에서 본문의 예언과 동일하게 장차 하느님의 나라를 이끄실 메시아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즈카리야서 3장 8절과 6장 12절에서도 이 용어의 사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 표현이 이상적인 왕 메시아를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처림 메시아께서 한 싹으로 나신다는 비유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이전의 왕들과 전혀 다른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는 남부 유다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느님의 주도적인 능력에 의해 새로운 왕이 나타나실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이다.
사실 남부 유다 왕조의 역사는 패역부도한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로서 인간 왕에게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여호야킨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빌론 땅에서 그 삶을 마무리하고, 그나마 왕으로 세워진 치드키야 마저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다윗 왕조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왕조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거에 있었던 패역부도한 이런 왕들의 흐름을 끊고,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진정한 왕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관련해 세례자 요한의 부친 즈카리야는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다윗 집안에 일어날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다.(루카1,69.78.79)
2021.12.18.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사제의 묵상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게 되자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법정으로 데리고 가는 공개적인 법적 행위를 하거나
파혼에 대한 사적인 문서를 작성하여 그녀를 돌려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마리아의 일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려 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 말씀과 매우 긴밀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언제나 하느님과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결과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아마도 큰 실망에 빠졌을 것이고,
크게 분노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외적인 법의 준수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요셉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 있는 존재다.
인간의 근본적인 첫 관계인 하느님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다른 어떤 관계도 좋을 수 없다”
(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 유년기』, 68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한 의로운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님의 보호자가 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세심히 보살핍니다.
우리는 누구의 보호자로 불림을 받았을까요?
나에게 맡겨진 사람을 더 세심히 보살피려면 먼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할 때,
내 멋대로가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를 보호하고자 할 때,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18-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 '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는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은 '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의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의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는 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의 부정사형 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는 '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 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는 '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는 소원하고 바라는 것,
즉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는 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아폴뤼사이'는 '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2021년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오늘 독서는 1절부터 봐야 본문 5절 이하를 올바로 깨달을 수 있다~
독서(예레23,1-8)
1 불행하여라, 내 목장(교회)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주님의 말씀이다.
= 하느님의 뜻을 위한 가르침을 주지 않고, 사라의 뜻을 위한 말로 하느님의 뜻에서 흩어버리는 지도자(指導者)들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23,27)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 자기의 의(義), 영광을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信仰)을 힘들게 살지만, 양심(良心)은 더러움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목장(교회)의 양들도 가르쳐 하늘의 대속(代贖), 그리스도의 피로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이 씻어 주시는(히브10,22) 그 하느님의 뜻, 새 계명, 새 계약에서 구원에서 흩어버린다는 말씀이다.
2 - 그러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내 백성을 돌보는 목자들을 두고 말씀하신다. - 너희는 내 양 떼를 흩어 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3 그런 다음 나는 내가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그러면 그들은 *출산을 많이 하여 번성할 것이다.
= 양들을 왜 쫓아 보내셨나? 정의(正義)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잘못 가르친 눈먼 인도자의 말을 분별없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뜻, 욕망(慾望)을 위해 살아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한 그 죄악(罪惡) 때문이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 그 죄인들을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출산(出産), 곧 하느님의 뜻, 말씀을 깨닫게(낳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구원의 새 계명(계약), 그리스도의 피의 계약을 깨닫게(낳게) 하시어 살리시겠다는 말씀이다.
4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공동번역- 그들을 위하여 *참 목자들을 세워 주리라. 그러면 내 양떼는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 없이 살 것이며,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 참 목자(牧者), 우리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실 ‘착한 목자(牧者)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심이다.(요한10,11참조)
그 착한목자 예수님으로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이 없이 살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救援) 하시겠다.’ 하심이다.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 의로운 싹, 다윗의 후손(後孫)으로 육(肉)을 입고 하느님의 지혜(智慧, 슬기)로 오실 예수님이시다.
(로마1,2-4)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모든 인간은 율법(律法)의 모든 조항(條項)들을 다 지켜 낼 수 가 없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으로 다 지켜내신 그 의로움을 우리 죄인들에게 거저 전가(傳家) 시키시어 하늘의 용서, 구원을 이루신 일이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신 공정(公正)과 정의(正義)인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 이전에 대속(代贖)의 그리스도를 예비(豫備)하신 것이다.(에페1,4 참조)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 그의 시대(時代),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원의 정의(진리)로 증언(證言)하실 성령(聖靈)의 시대다.(요한14,6- 15,26 참조)
간직하고 되새기자~
(로마8,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죽음)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야훼)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 당신의 뜻을 저버린 적대자들에게 재앙(災殃)을 내리시는 진노(震怒)의 하느님이 아니라, 배반자들을 용서(容恕)로 살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믿고 따르게 된다는 말씀이다. 곧 율법(律法)의 의로움, 그 옛 계약이 아니라 십자가의 대속,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살리신다는 약속(約束)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새 계약(契約)~
(예레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 죄(罪)란 법에따라 정해지는 것이니, 새 법, 용서의 법이 들어가면 죄가 없는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야훼)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 옛 계약의 하느님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새 계약의 그리스도의 피~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피조물, 인간이 스스로 없앨 수 없는 죄를 창조주 하느님의 뜻으로 하늘의 대속, 그 사랑(십자가)으로 다시 용서해주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공정이고 정의다.
* (예레2,22) 22 네가 비록 잿물로 네 몸을 씻고 비누를 아무리 많이 쓴다 해도 죄악의 얼룩은 그대로 내 앞에 남아 있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 그런데 완전하지 못한 용서를 진리라 한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내는 사랑, 용서로 행위의 신앙을 하고는 깨끗하다고 한다. 불행(不幸)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지는 그 새 계약으로 ~척하는 위선으로 불안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