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1,1-17)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창세49.1-2.8-10)
그 무렵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화답송 시편 72(71),1-2.3-4ㄱㄴ.7-8.17(◎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 그가 가련한 백성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에게 도움을 베풀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복음<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49.1-2.8-10)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을 일하며,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얻고 싶었지만,
라반의 속임수로 큰딸(맏딸) 레아와 함께 잔다. 이에 분개한 야곱에게, 다시 7년 동안
일해주면, 작은 딸 라헬도 주겠다고 라반은 약속한다. 그리하여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일한 셈이다.
주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어 르우벤, 시메온,
레위라는 세 아들을 낳는다. 레아는 '이렇게 아들을 셋이나 낳아 주었으니, 남편이
나에게 매이겠지.' 했는데,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이제야 말로 내가 주님을
찬송하리라." 하면서, 아기 이름을 '유다'라 하였다. '유다'란 이름은 '찬송하다'라는
뜻이다.(창세 29,15-35 참조)
창세기 38장에 유다는 형제들과 떨어져 살면서 수아라는 가나안 사람의 딸을 만나
아내로 삼고, 에르, 오난, 셀라 라는 아들을을 가진다.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타마르라는 아내를 주었는데, 주님 보시기에 에르가 악하여 자식없이 죽게 된다.
타마르는 수혼제에 의해 시동생 오난을 통해 자손을 얻으려 했지만, 오난은 형수와의
관계에서 나온 자손이 자기 자손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자손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오난도 죽게 된다.
그리하여 타마르는 친정으로 돌아가, 막내 셀라가 클 때까지 기다리며 사는데,
셀라가 다 컸는데도, 자신을 그의 아내로 데려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타마르는 시아버지 유다가 양들의 털을 깎으러 팀나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팀나로 가는 길가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앉아 창녀 행세를 하며, 시아버지
유다에 의해 관계를 갖게 되고, 쌍둥이 페레츠와 제라가 탄생한다.
(창세 38장:46,12 참조)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창세35,33-26)은 야곱이 총애하는 늘그막에 얻은 아들
요셉에 대한 질투로, 요셉을 이집트에 팔아 넘긴 후, 온 땅에 기근이 들어, 양식이
있는 이집트로 양식을 구하러 가서 재상이 된 요셉을 만나게 된다.
요셉은 막내 벤야민(창세35,16-20)을 통한 아버지 야곱과의 상봉을 위해, 벤야민의
자루에 자신의 은잔을 넣어, 종으로 만드는 계략을 꾸민다.
그때 유다가 등장한다. 창세기 44장 14-16절에서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러 보니, 그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그 앞에서 엎드리자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유다가 대답하였다. "저희가 나리께
무어라 아뢰겠습니까?~ 이제 저희는 나리의 종입니다. 저희도, 잔이 나온 아이도 그러합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44장 18절에서, 유다는 갈 때 까지 간 야곱의 아들들의 대표 내지는
대변자처럼, 총대를 메고 요셉 앞에 서서 이실직고 한다. 그는 그 동안의 이집트의
재상 요셉과 아버지 야곱 사이의 오고 간 스토리를 요약해서 전한다.
여기서 보면, 유다는 야곱의 12아들 중에 맏아들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곱
집안 가족 공동체와 그 구성원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야곱 집안의 잘못된 일들에 대해, 가족 공동체를 대표해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다는, 이타적이고 대속적인 정신과 자세가 충만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2021.12.17.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사제의 묵상 (서철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하느님께서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소개하고자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사용합니다.
이 족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심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마치 나무가 뿌리에서부터 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처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맨 처음부터 예수님의 오심이 준비되었고 시간의 충만함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말해 줍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다윗,
다윗에서 여호야킨, 여호야킨에서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직계 중심으로 나열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종족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짐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이스라엘 선조가 반유목 상태로
이리저리 떠돌다가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임금이기에,
예수님께서 임금인 다윗과 혈통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여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아이심을 강조합니다.
또한 족보에는 타마르,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 등
4명의 이방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유다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밝힙니다.
나아가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드러나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서로 작용하여 선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 인생의 여정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도 뵈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대림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1,1-17)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16~18)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장 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복음에는 1장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 이심을 강조한다(1,1).
B.C.1750 년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로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아들','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ㄱ) 타마르(3절) ㄴ) 라합(5절)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ㄷ) 룻(5절)~모압 출신 여자 ㄹ) 바쎄바(6절)~우리야의 아내;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는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
룻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
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 (마태1,18~25).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 합리화, 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 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말하자면,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 족보, 계보도 그리 개끗하지도, 산뜻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로, 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 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출산전(前)도 출산시(時)도 출산후(後)도 동정녀(평생)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아는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 가문의 후예이시다.
우리도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축복 누릴 수 있다.
우리도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상대방을 자꾸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은 점만 자꾸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자신에게도 좋게 복으로 돌아오는 피드백을 알고 있다.
무한히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지엄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의 내적 영광은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성삼위 하느님이 지니고 계신 지극히 존귀하심, 엄위하심, 거룩함과 진실함, 권능과 권세 등등을 하느님의 자녀들과 천사들이 자꾸 밖으로 드러내어 기릴 때, 하느님의 외적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 기도', '영광송'을 통해서 그리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하면서 찬양과 감사와 흠숭을 드릴 때,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축복해 주신다.
이것이 인간에게 축복으로 돌아오는 원리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나부터 주님 대전에, 주님 뜻대로 잘 살고 거룩하게 걸으면 된다.
그러면 나를 통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진다.
창세기의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처럼 말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여기서 '남편'으로 번역된 '안드라'(andra)는 원형 '아네르'(aner)의 목적격 단수로서 정관사 '톤'(ton)과 함께 '톤 이오세프'(ton Ioseph)와 동격으로 쓰였다.
'아네르'(aner)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 아내와 구별된 '남편', 그리고 미성년자와 구별된 '어른'이라는 명사인데, 여기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요셉'에 해당하는 '이오세프'(Ioseph)는 '더하다'(to add)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인명 '요쎄프'(yoseph)에 대한 희랍어 음역이며, 족보상 예수님의 아버지지만,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마태1,18)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마태1,18~25).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복음 1장 2절부터 16절 상반절까지는 모두 남자가 그 아들을 낳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본문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들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예언('여자의 후손'; 창세3,15)과 이사야가 한 예언('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사7,14)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낳다'라는 표현인 '에겐네센'(egennesen)이 능동형이었는데, 본문에서는 '태어나셨다'에 해당하는 '에겐네테'(egennethe)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마리아는 자의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를 육체적으로 낳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사가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역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로 번역된 '엑스 헤스'(eks hes; of whom)에서 '엑스'(eks; of)는 '(공간적으로)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서 분리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헤스'(hes; whom)는 관계대명사 '호스'(hos)의 여성 소유격 단수로서 본절 상반절의 '마리아스'(Marias)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엑스 헤스'(eks hes)는 문자적으로 '그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불리는'으로 번역된 '레고메노스'(legomenos; is called)는 '말하다'(to say)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lego)의 현재 수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서 앞에 있는 정관사 '호'(ho)와 함께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즉 '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ho legomenos Christos)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라고 말해지는 (일컬어지는)'이라는 의미이다.
이 시점은 예수님께서 출생하던 당시가 아닌,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하던 초대 교회 시대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나자렛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대망해 오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선교했으며 (사도 5,42; 17,3; 18,5.28), 자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2021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승리(勝利)의 지팡이- 십자나무
독서(창세49.1-2.8-11)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 야곱의 예언(預言), 유언(遺言)이다.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 야곱을 이스라엘로 하느님께서 바꾸어주신 이름이다.
참조~야곱이 하느님과 씨름(기도)을 했을 때 ~
(창세32,25-29.32) 25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야훼)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 (야곱-‘걸려 넘어지게 하는자’라는 뜻) 야곱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 (이스라엘의 승리) 하느님은 야곱(남자)의 힘인 엉덩이 뼈를 치심으로 절뚝거리게 만드셨다. (이스라엘은 엉덩이 뼈를 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으로 생각)
그러니까 자신의 힘이 아닌 지팡이를 의지해야 할 존재가 된 것이 승리(勝利)라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지팡이, 승리(勝利)의 지팡이로다.(탈출4,20. 7,8-13참조)
모세를 통해 죽음의 바다를 가를 지팡이다. ~
(탈출14,15-16) 1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6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 자신(自身)을 의지(依支)하지 않고, 하느님을 의지(依支)하게된 것이 승리(勝利)라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죄)읗 대속(代贖)으로 없애주신 십자(十字)나무의 주님을 믿는 것, 우리의 승리(勝利)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模型)한다. 육(肉)을 입으시고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쟎은가(로마1,-4참조) 5ㅡ래서 오늘복음 그리스도의 족보(族譜)에, 다가 셋째 이면서도 올라간다.(마태1,2-3참조)
그런데 왜 유다를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으로 쓰셨을까? 공부(工夫)해 보자.
동생 벤야민이 위험(危險)에 처(處)하자 유다는~
(창세44,32-33) 32 나리의 이 종(유다)은 제 아버지(야곱)에게 그 아이를 맡겠다고 하면서, ‘제가 만일 그 아이를 아버지께 도로 데려오지 않는다면, 제가 아버지 앞에서 그 죄를 *평생 짊어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3 그러니 이제 이 종이 저 아이 *대신 나리의 *-종으로 여기에 머무르고, 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 형제를 맡아 책임(責任)지고, 죄를 짊어지고, 대신 종(從)이 되겠다는 것, 우리 주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죄인(罪人)인 우리를 형제로 삼아 원수(怨讐)인 죽음의 법을 대속으로 폐지(廢止)하시고, 모든 이들을 당신께 엎드리게, 곧 당신의 지체(肢體)가 되게 하셨다.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 아무도 멸망(滅亡)하지 않고 모두 회개(悔改)할 때 까지(2베드3,3-9참조).... 왕홀- 영원한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나단이 다윗에게 전(傳)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2사무7,10-12) 10 나는(야훼)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다윗의 후손(後孫) 솔로몬은 샬롬 -평화를 뜻한다. (솔로몬 때 나라가 갈라져 망했다.) 곧 ‘영원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불안해하지도 원수들에게서 평온(平穩)하게 해줄 한 곳,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십자가(十字架)의 예수님이시다.
(사도13,23)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미카5,1)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 옛날, 아득한시절(원시복음), 여자, 하와를 유혹(誘惑)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게(죄짓게)한 뱀에게.............
하느님께서~
(창세3,15)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 뱀의 머리(선악의 뜻, 생각)를 밟으시고 뱀에게 발의 피를 빨리실, 곧 여자의 대속으로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갈라3,16)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 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11 그는 제 어린 나귀를 포도 줄기에, 새끼 *나귀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로 제 옷을, 포도의 붉은 즙(피)으로 제 겉옷을 빤다.
= 나귀는 ‘붉다’는 뜻으로 죄를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죄인(罪人)들을 구하시기 위해 생명을 주는 포도나무인 당신께 그들의 죄를 붙들어 매고,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代贖)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구원의 새 계약의 피를 흘리시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인 것이다.
(마태21,5) 5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 죄와 하나, 한 몸이 되시어 우리의 죄로 죽으러 오시는 겸손(謙遜)하신 예수님,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더 이상 불안(不安)해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불의(不義)한 자들의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모든 원수(怨讐)에게서 평온(平穩)하게 해 주실 한 집안, 곧 교뢰(우리)를 다시 일으켜주실 한 곳,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다. 그곳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제자리’다
기억(記憶)하고 되새기자~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가23,33)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갈라5,24)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코린1,17-18)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골로1,20)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소서. 자기 부인으로 그분과 하나되게 하시어 불의한 자들의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