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2일 토요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마음에서 넘치는 것 (루카 6,43-49)

제1독서<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4-22)
14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8 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20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1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다는 말입니까?
화답송 시편 116(114─115),12-13.17-18(◎ 17ㄱ 참조)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
복음<너희는 나를“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3-49)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코린10,14-22)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19~20)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8장에서 제기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섭취에 대한 문제들이 코린토 교인들의 무절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코린토 1서 9장에서 사도 바오로가 자신은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종이 된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는데(1코린9,19~22), 이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절제 없이 먹음으로써 믿음이 약한 자들을 죄짓게 한 8장의 일부 코린토 교인들의 '무절제'에 대한 비난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1코린8,13).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10장 19~21절에서 코린토 교인들이 주님의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취하는 것은 두 주인, 즉 하느님과 마귀들을 동시에 섬기는 것과 같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코린토 1서 8장 4절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도 바오로는 '세상에는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천명하면서 주님께 대한 순수하고 오롯한 신앙을 가질 것을 엄하게 교훈한다.
8장 4절의 '우상이란 없다'에 해당하는 '우덴 에이돌론'(uden eidolon; an idol is nothing)에서 '우덴'(uden)의 원형 '우데이스'(udeis)는 '아니다'라는 뜻의 '우데'(ude)와 '하나'라는 뜻의 '헤이스'(heis)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단 하나도 없다'는 강력한 의미를 가진다.
즉 우상 그 자체는 신(神)이 아니라 나무 조각이나 쇠 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코린토 1서 10장 21절과 22절에 언급된 우상의 이면에 있는 마귀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상호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상들의 배후에 마귀들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상 그 자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세상에 어떤 우상도 없다고 말한 것은 마귀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그 어떤 존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참된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시편115,4~8; 135,15~18).
당시 희랍인들이 섬기던 제우스나 아테나, 포세이돈, 이시스, 세라피우스, 아스클레피우스로 불리워지는 신들은 사실상 이교적인 미신에 불과하며, 살아계신 참된 하느님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신상이거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신화적 산물일 뿐 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우상은 '없는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살아 역사하시는 신은 오직 한 분, 유일하신 하느님뿐이신 것이다(신명6,4; 이사44,8; 45,5).
사도 바오로는 이교도들이 흔히 신으로 간주하여 제사드리는 대상들은 참된 의미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일도 웃기는 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10장 20절과 21절에는 성찬례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교인들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 바쳐진 제물을 섭취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어야 하는 자신의 마음을 우상에게 빼앗긴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마귀들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성도들은 오롯한 마음과 정신과 힘으로 하느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게 하며 마음을 갈라놓고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마귀들이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온 마음과 정신과 힘으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인간이 만든 희랍의 여러 제신들의 이름과 잡신상들을 통해 역사하는 것은 마귀들이라는 논리를 사도 바오로가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6,43-49)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5)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스'(kardias; heart)의 원형 '카르디아'(kardia)는 원래 동물의 몸 속에 있는 혈액 순환의 중심이 되는 기관, 즉 심장을 뜻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점차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명의 자리와 중심으로 여겨졌던 '마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여기서도 감정, 생각, 판단의 중심 자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으며, 이곳이 또한 말(언어)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또한 '넘치는 것'으로 번역된 '페릿슈마토스'(perisseumatos; abundance; overflow)의 원형 '페릿슈마'(perisseuma)는 '일정한 수나 양을 초과하고 넘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 '페릿슈오'(perisseu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철철 넘칠 만큼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생각과 감정의 중심 자리인 마음에 어떠한 생각이 넘칠 만큼 가득차게 되면,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입을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면서 즉각적으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한 것은 그들이 평소에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하더라도, 나쁘게만 보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곳간'으로 번역된 '테사우루'(thesauru; treasure)의 원형 '테사우로스' (thesauros)는 명사이며, '물건들과 귀중한 것들을 모아 두고 보관하는 장소', 즉 '금고', '창고'의 의미와 '저장소에 보관된 귀중품 자체', 즉 '보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적용된다.
여기서 '선한 곳간'이란 타고난 성품, 또는 오랜 시간을 거쳐 가꾸어 온 좋은 인격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신이 가꾸어 온 마음의 보물이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그가 하는 말과 행위도 달라지는 것이다.
2020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
(루카 6,43-49)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 먼저 어제 37절의 말씀 묵상을 통해 말하지면, 좋은 나무는 용서의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심판으로 죄라는 열매를 맺고 주는 것이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 나무는 하느님의 계약(스타오로스-기둥), 곧 십자나무의 희생(대속의 죽음)으로 얻는 그 구원의 계약, 하느님의 계명을 뜻한다.(탈출15,25참조)
그 십자나무(기둥)를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 나무와 하나가 되면 용서, 곧 포도(생명)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닌 아담처럼 선악의 그 사람의 계명으로 먹고 지켜,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한다면 가시나무의 열매인 심판과 죄, 먼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창세3,18~ 참조)
좋은 나무, 곧 십자나무의 희생으로 맺는 열매는 죄인을 의인으로, 하늘의 생명을 주지만 나쁜 나무, 곧 사람이 스스로 지킨 그 신앙(나무) 의 열매는 심판을 줄 뿐이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성경은 사람의 마음은 모두 악하다 하신다.( 창세8,21 마르7,20~ 로마3,10~ 시편141,1~ 등)
그러나 인간 중에 선한 사람, 선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마태19,17)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 선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오신 그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선한 마음의 선한 사람인 것이다.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질그릇인 내 마음에 예수님의 희생, 죽음 그 선한 마음, 곧 죄인들을 위한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마음에 담으면~ 그 선한 것이 입 밖으로 나가 죄인들을 구원으로 살리게 되지만,~ 선악의 법, 도덕과 윤리로 담으면 법의 열매로 사람을 판단하고 죽이는 악한 말로 나간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깨달아 믿고 마음 안에 간직하는 그 킵, 실행인 것이다.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 반석~
(시편18,3) 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
= 하느님의 뜻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의 말씀을 내(땅) 마음 깊은 곳에 담고 그 말씀 위에 내 집(신앙, 성전)을 지으면, 어떤 시련 속에서도 희망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시련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알기에~(히브12,7 야고1,12 등) 그래서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 예수님의 말씀,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이 없는 맨땅, 사람 스스로의 열심히 짓는 집(신앙, 성전)은 시련이 오면 하느님의 뜻을 모르니 원망과 불평으로 절망하게, 무너진다.
* (1데살5,18)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