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열두 사도 (루카 6,12-19)

2020. 9. 8. 오전 5: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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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8일 화요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열두 사도 (루카 6,12-19)


1독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1코린 6,1-11)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9(4)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복음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루카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1코린6,1-11)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3)


여기서 '심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크리누멘'(krinumen)의 원형 '크리노'(krino)는  '비판하다','판단하다','정죄하다'라는 뜻으로 심판과 관련된 용어이다 (마태7,1; 1베드 4,6; 묵시18,8).

따라서 본문의 '천사'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마귀)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 대들고 배신하고 범죄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천사'란 용어가 쓰여서 한국 독자들이 헷갈릴 수 있으나, 천사의 의미가 '선한 영' 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느님의 허락하에 파견된 자(심부름꾼)' 의 의미로 쓰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까 '악한 영' 인 '타락한 천사' 도 해당되는 것이다.

본문은 비록 타락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인간들보다 탁월한 존재인 '타락한 천사들'(악한 영들)까지 성도들이 판단하게 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24,21; 2베드2,4; 유다1,6).


한편 본절에 '하물며' 로 번역된 '메티게'(metige)는 세상과 타락한 천사를 심판할 신분의 성도들이 도리어 세상의 법정에서 판단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지적 준다.

특히 '일상의 일'(세상 일)로 번역된 '비오티카'(biotika)는 법정 용어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평범한 일' 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코린토 교인들이 일반 상식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사소한 일들까지 세상 법정에 송사하고 있는 어리석은 코린토 교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9)


'하느님 나라'는 공관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는 종말론적인 성격(alreadybut not yet;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을 가진다.

본문 역시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하느님께서 만유의 주님이 되시고, 악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는 영광과 축복의 때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1코린15,28).


알다시피,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공동으로 상속받을 상속인들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본질상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에(로마14,17; 마태5,10; 13,43; 루카14,14; 묵시1,18; 2,8 이하) 완성된 의미의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는 불의와 절대 공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 못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불의한 자'(adikoi; 아디코이; the wicked)라고 언급하며, 8절에서 '불의를 저지르고'(adyikeite; 아디케이테)의 '불의'의 이미지를 계속 이어간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전서 5장, 6장에서 자신이 책망한 교인들의 도덕적 무질서 형태를 '불의' 라는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 못할 불의한 자들의 예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기 전에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마십시오' 로 번역된 '메 플라나스테'(me planaste; do not be deceived)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도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대중 앞에서 했던 대중 설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로서 당시 논쟁 가운데 자주 등장하던 말이다(1코린15,33; 루카21,8; 야고1,16).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당시 코린토 교인들이 자신들의 교만한 지혜로 도덕적 기준을 마음대로 정하고,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방종의 극단에 빠졌던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범죄했지만 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는 당시의 공허한 주장에 속지 말라는 의미이다 (1코린15,33; 루카21,8; 갈라6,7; 야고1,4)


사도 바오로는 본문에서 '불의한 자'의 예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첫째불륜을 저지르는 자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음란하는 자)로 번역된 '포르노이'(pornoi;  fornicator; sexually immoral)는 코린토 전서 5장 1절 이하에 나오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성적 타락을 의미한다.

둘째, 우상 숭배자(eidololatrai; 에이돌롤라트라이; idolaters)이다.   '우상 숭배' 당시 이방 신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성적 타락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당시 신전들은 공식적인 매춘 장소였기 때문이다.

셋째, 간음하는 자이다.  여기서 '간음하는 자'로 번역된 '모이코이'(moichoi; dulterers)는  특별히 혼인과 가정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혼인한 자가 자기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성적 타락을 의미한다.

넷째, 남창이다.  '남창'으로 번역된 '말라코이'(malakoi; effeminate; male prostitutes)는  본래 '유약한', '여자같은'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동성애자들 중에 특히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을 뜻한다.

다섯째, 비역하는 것이다.  '비역하는 자'(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  homosexual offenders)는 동성애자 가운데 특히 능동적 위치에  있는 자들 뜻한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언급한 이 다섯 가지의 악의 목록은 모두 성적 타락과 관계되는 것들이다그렇다면, 본절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러한 성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나라임을 나탄낸다.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0)


사도 바오로는 9절에 이어 계속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inherit)받지 못할 불의한 자들을 열거한다. 9절에 열거된 자들이 자신의 몸에 직접적으로 범죄하는 '성적 범죄자들'(1코린6,18)이라 한다면, 10절은 '도덕적 범죄자'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도둑이다.   '도둑'으로 번역된 '클렙타이'(kleptai; thieves)는  전문적인 강도라기 보다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둘째, 탐욕을 부리는 자이다.   '탐욕을 부리는 자'로 번역된 '플레오넥타이'(pleonektai; covetous;  greedy) 자기 욕심에 따라  이웃의 것을 탐하는 자 뜻한다.

셋째, 주정꾼이다.  '주정꾼'(술 취하는 자)로 번역된 '메티소이'(methysoi; drunkards)는 술로 인해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을 의미한다.

넷째, 중상꾼이다.  '중상꾼'으로 번역된 '로이도로이'(loidoroi; revilers; slandelers)는 남을 중상하고, 비방하고 욕하는 자 뜻한다.

다섯째, 강도다.  '강도'(토색하는 자)로 번역된 '하르파게스'(harpages;  extortioners; swindlers) 사기와 협잡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자 뜻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죄를 범한 자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 못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코린토 교회에 관련된 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코린토 교인들이 사랑과 거룩함과 순결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상세하게 이런 범죄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당시 코린토 교회에 이러한 범죄가 성행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죄악들을 이무리 범해도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데 지장이 없다고 가르치는 거짓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35~39절 등에서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선택한 자에 대한 구원의 확실성을 주장하면서 구원의 확실성을 곡해한 반율법주의적 자유방임사상을 표방했던 거짓 스승들 어떠한 죄를 범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능동적인 범죄를 조장했던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6,12-1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2~13)


루카 복음 6장 12절에서 16절까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임명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공관 복음서(마태10,1~4; 마르3,13~19)에 다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사명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보여 주는 문맥에서 12사도의 명단이 나오는 반면에,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택한 이유가 예수님께 임박한 고난과 핍박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 부각된다.


루카는 마르코와 같은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산으로'에 해당하는 '에이스 토 오로스'(eis to oros; into a mountain)라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열두 사도를 택하기 직전의 장면을 다르게 소개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의 임명 전에 홀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셨다는 사실은 루카 복음사가만이 기록하고 있다.


루카 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은 특히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종종 나타난다(루카3,21; 9,18.28.29; 11,1; 22,41).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사도를 뽑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는 것은, 열두 사도를 선택하는 일이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이루는 너무나 중요한 일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동고동락하며 예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이후에는 복음 전파의 주역이 되며 또한 교회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신 후 그 다음 날에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이들 중에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다수의 제자들의 무리 속에서 열두 제자를 특별히 구별하신 것이다.

여기서 '뽑으셨다'에 해당하는 '에클렉사메노스'(ekleksamenos; he chose)의 원형 '에클레고마이'(eklegomai)에 남성 단수 주격 접미어가 붙어 있어서 예수님 당신 자신이 택하심의 명백한 주체임을 보여 주고 있다.

 

특별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수님의 깊으신 뜻과 은총으로 부름받은 열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도'라는 직책을 주셨다.

'사도' 즉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는 '어떤 자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어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아포스텔로'(apostello)의 명사형이다.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파견되는 전권대사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람에게 붙여졌다.


루카 복음사가는 '사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루카9,10; 11,49; 17,5; 22,14; 24,10),  이렇게 사도직에 대한 잦은 언급은 예수님의 지상 선교 활동과 예수님 구원 사업의 동역자로 부름받은 제자들에 의한 교회 시대의 연속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뜻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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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9월 8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16.18-23)

1독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미카 5,1-4)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또는>

<하느님께서는 뽑으신 이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화답송시편 13(12),6ㄱㄴ.6(이사 61,10)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복음<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9월 8일 토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제1독서 (미카5,1-4ㄱ)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


본절은 종말에 한 위대한 왕이신 메시아의 탄생과 그가 행하실 구원 사업에 대한 예언이다. 이를 시작하는 본문에는 그가 태어날 장소로 베들레헴이 언급된다. 여기서는 베들레헴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메시아가 오실 장소가 되는 그 땅의 영광스런 미래를 보다 강조하여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그런데 원문은 ''에 해당하는 '웨앗타'(weathah)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것은 직역하면, '그러나 너는'(But you)이 된다. 여기서 '그러나'에 해당하는 접속사 '와우'(wau)는 앞선 내용과 5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원문을 감안하면, 앞선 4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스라엘의 왕 혹은 오실 메시아가 모욕을 당할 것이란 내용이며, 본절은 메시아의 위대하심과 그 근본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 둘은 모두 메시아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지만, 414절은 메시아의 구원 사업 말기에 당할 모욕에 관한 것이고, 51절은 메시아의 기원 및 탄생에 관한 대조적 내용이므로 '그러나' 라는 접속사로 본절을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접속사에 이어지는 단어는 인칭 대명사이다. 이 인칭 대명사 다음에 이어지는 베들레헴과 에프라타라는 두 고유 명사가 동일 대상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그만큼 가리키는 대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인 대상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고유 명사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인칭 대명사를 먼저 사용한 것은 예외적 어순이다. 이렇게 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여기서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강조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8km 지점에 위치한 유다 산골의 마을이다. '베들레헴' 즉 히브리어로 '베트 레헴'(beth lehem)'빵의 집' 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 땅의 토지가 비옥하여 각종 과일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토양 조건과 관련된 이름으로 풀이된다.

베들레헴은 지질학적으로만 아니라 신앙적인 차원에서나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읍으로 여겨졌다. 구약 성경에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해 이주하는 도중에 그의 아내 라헬이 벤야민을 출산하고 죽은 장소로 처음 공개된다(창세35,19).

이곳은 유다의 자손 페레츠 가문이 살았으며(1역대4,4), 구약 성경의 여덟 번째 정경인 룻기에서 다윗의 증조부 보아즈가 살던 곳으로(룻기2,4),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며 메시아를 예표하는 왕으로 일컬어지는 다윗의 고향으로도 소개된다(1사무16,1;17,12).


그런데 본문에서는 베들레헴이라는 지명과 함께 에프라타라는 지명이 같이 열거된다. 이 두 지명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먼저 베들레헴은 작은 성읍을 언급한 것이고, 에프라타는 베들레헴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야곱이 유언중에 베들레헴을 에프라타와 동일한 장소로 정확히 동격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창세48,7) 이 견해는 받아 들이기가 힘들다.

 

그 다음 베들레헴은 지정학적 지명이라고 한다면, 에프라타는 사회학적 지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실제로 에프라타의 이름은 칼렙의 두번째 아내의 이름이고(1역대2,19) 칼렙의 자손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1역대2,52). 따라서 베들레헴 지역을 이들의 이름을 반영하여 칼렙 에프라타라고 부르기도 한다(1역대2,24).

하지만 에프라타를 반드시 이런 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지명으로 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베들레헴이 '빵의 집' 이라는 풍성함의 의미를 갖는 지명인 것처럼, '에프라타'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프라타'(ephratha)'열매를 맺는' 이라는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에프라타를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 보는 견해이다.


한편 이 두 지명에 대하여 잘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보잘것없지만' 이라는 서술어가 사용되었다. 에 해당하는 '차아르'(tsair)'둘째의','작은'(창세19,38),'미천한'(시편119,27) 이란 의미이다. 이 단어는 후반절의 '아득한 시절'(영원) 이라는 의미의 '올람'(olam)이나 '옛날'(태초)이라는 의미의 '케렘'(qerem)이라는 단어와 대조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본절은 풍요로움과 미천함이라는 두 이미지가 대조를 이루고 또한 영원함과 보잘것 없음이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몇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이스라엘이 죄와 불순명으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나, 이후 베들레헴에서 나신 메시아에 의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메시아의 출신지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장소이지만, 그가 다스릴 곳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우주적 장소가 될 것임을 나타내는 곳으로도 볼 수 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낮은 곳으로 육화하시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구원 사업과 승리로 인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 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 위해 오시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다스릴 이'에 해당하는 '모셸'(moshel)이 하느님을 주어로 사용될 경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된다(창세1,18).

그러나 이 단어는 하느님에 대해서보다 오실 메시아에 대해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자신의 어깨에 왕권이 놓인 분으로(이사9,5),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2사무23,3),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예레30,21) 등으로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


한편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 분이 누구로부터 올 것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여기서 '너에게서' 에 해당하는 '밈메카'(mimmeka)'분리','이탈','기원'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전치사 ''(min)2인칭 단수 접미어가 부착된 것으로,'너로부터' 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는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너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표현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복음서의 진술을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를 위하여' 로 번역된 ''(ly)'~에게' 혹은 '~을 위하여' 라는 의미를 갖는 전치사 ''(le)에 일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경우 ''는 본절의 화자이며 메시아를 보내신 파견자이신 하느님이 된다.


그렇다면, 본문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인데, 그분께서 세상에 오시는 목적이 하느님을 위해서 즉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임을 강조하는 예언이 된다.

또한 본문의 '나오리라' 는 표현은 메시아의 출생 혹은 세상에 오실 때와 관련된 본절의 문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해당하는 '예체'(yetse)의 원형 '야차'(yatsa)는 밖으로 나간다는 장소적 이동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생물의 번식이나(창세1,24), 사람의 출생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창세38,28.29). 여기서는 '탄생하다' 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절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 탄생과 관련하여 베들레헴이라는 장소적 배경을 강조하였지만, 본문에서는 오실 메시아가 탄생 이전 태초부터 존재하셨다는 시간적 배경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서로 대구를 이룬다.

또한 앞절은 메시아의 인간 세상에서의 강생이라는 제한된 현현에 대하여 국한하여 묘사한 것이라면, 본문은 메시아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설명이라는 보다 더 큰 존재 규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본절이 그리는 메시아는 한계를 갖는 인간이면서 한계가 없는 권능한 신적 존재이기도 하며, 또한 인간 세계의 시간에 의해 제한을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간 개념을 뛰어넘는 영원한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오늘 우리가 메시야 탄생에 관한 비밀을 예언한 미가서를 묵상하는 것은 영원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메시야를 보낼 하느님의 계획이 다윗의 가문안에서 구체적으로 성모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카''누가 주님과 같으냐?' 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미카야'의 단축형이다미카의 고향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략할 때 먼저 유다의 평원지대를 침략했으니, 틀림없이 이곳을 거쳐갔을 거라고 본다

미카는 고향에서 아시리아 침략군의 진군을 보면서 국가적 재난이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한다(1,8-16; 3,12).


미카는 소예언서의 예언자들 가운데 호세아와 아모스와 더불어 8세기에 활동했던 마지막 예언자이다  열두 소 예언서에서 6번째 책인 미카서는 하느님과의 수직 관계를 강조한 호세아서와 이웃과의 수평 관계를 강조한 아모스서의 메세지를 고루 포함한다.

오늘 9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미카서 51-4절이 독서로 채택된 것은 새로운 통치자가 베틀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메시아 신탁 때문이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로 오시기 위해 성모님의 살과 피를 취하신,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는 이 세상에서는 성모님의 탄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틀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5,1~4참조)


이 신탁은 메시아를 다윗 가문과 연결시킨 사무엘서의 전통(1사무16; 2사무5,2; 7,8)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전통(이사7,10~17)이 합쳐진 형태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것을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한다(마태2,6; 참조: 요한7,42).

메시아 시대가 오면, 야곱의 남은 자들이 민족 가운데서 크게 성장하여 수많은 민족을 굴복시킬 것이다(미카5,6~8).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마술사, 점쟁이, 아세라 목상을 비롯하여 온갖 부정한것들을 없애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화하실 것이다(미카5,9~14).




 9월 8일 화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복음(마태1,1~16.18~23)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6)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복음에는 1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이심을 강조한다(1,1).


B.C.1750 년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 타마르(3) ) 라합(5)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 (5)~모압 출신 여자 ) 바쎄바(6)~우리야의 아내;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는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 룻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 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유다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마태1,18~25).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 합리화, 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 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말하자면, ()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 족보, 계보도 그리 깨끗하지도, 산뜻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로, 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 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출산전()도 출산시()도 출산후()도 동정녀(평생)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루카1,28)에 해당하는 '케카리토메네'(kecharitomene; you who are highly favored)'거저주다', '은총을 베풀다'를 뜻하는 동사 '카리토오'(charitoo)가 여기서 현재 완료 수동태 분사로 쓰여서,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호의를 입은 상태가 이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동정 마리아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가능하도록 믿음을 고백했다는 사실은 성모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 가문의 후예라는 말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여기서 '남편'으로 번역된 '안드라'(andra)는 원형 '아네르'(aner)의 목적격 단수로서 정관사 ''(ton)과 함께 '톤 이오세프'(ton Ioseph)와 동격으로 쓰였다. '아네르'(aner)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 아내와 구별된 '남편', 그리고 미성년자와 구별된 '어른'이라는 명사인데, 여기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요셉'에 해당하는 '이오세프'(Ioseph)'더하다'(to add)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인명 '요쎄프'(yoseph)에 대한 희랍어 음역이며, 족보상 예수님의 아버지지만,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마태1,18)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마태1,18~25).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복음 12절부터 16절 상반절까지는 모두 남자가 그 아들을 낳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본문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들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예언('여자의 후손'; 창세3,15)과 이사야가 한 예언('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사7,14)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낳다'라는 표현인 '에겐네센'(egennesen)이 능동형이었는데, 본문에서는 '태어나셨다'에 해당하는 '에겐네테'(egennethe)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마리아는 자의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를 육체적으로 낳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사가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역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로 번역된 '엑스 헤스'(eks hes; of whom)에서 '엑스'(eks; of)'(공간적으로)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서 분리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헤스'(hes; whom)는 관계대명사 '호스'(hos)의 여성 소유격 단수로서 본절 상반절의 '마리아스'(Marias)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엑스 헤스'(eks hes)는 문자적으로 '그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불리는'으로 번역된 '레고메노스'(legomenos; is called)'말하다'(to say)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lego)의 현재 수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서 앞에 있는 정관사 ''(ho)와 함께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ho legomenos Christos)'(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라고 말해지는(일컬어지는)'이라는 뜻이다.

이 시점은 예수님께서 출생하던 당시가 아닌,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하던 초대 교회 시대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나자렛 예수님이 바로 유다인들이 그토록 대망해 오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선교했으며(사도 5,42; 17,3; 18,5.28), 자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23)

 

구름이 있는 하늘이 더 아름답다그 구룸을 움직이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마태 1,1-23)

오늘은 매일복음에서 빠진 17절로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그러나 14맞지 않는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10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11 보아즈는 *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12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13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14?

14대는 없다그것은 과부인 타마르와 롯그리고 창녀인 라합이 족보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곧 그리스도는 그들의 죄를 통해 그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다윗이 무시되고 있다솔로몬의 아버지를 우리야로?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10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1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12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13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4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마태22,45) 이렇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당시다윗 시대에 육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메시아를 기다렸던 그들에게 메시아는육의 영화가 아닌 영의 구원 곧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6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9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10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11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2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13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4?

= 14또 없다그 대신 마리아(쓴물)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앞에서 묵상했듯이 과부 창녀 그 쓴물(죄인), 마리아들이 그리스도로 단물이(의인되는곧 그들의 남편 짝으로 구원하실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의 약속 그 족보라는 것그래서 14대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낳으실 교회인 것이다.(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시다.(요한1,1~14참조)

오늘 복음 본문으로~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모든 일은 성령의 이끄심이 하시는 것이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곧 23 “보아라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동정녀처녀는 빈 그릇(데무트-여자)을 뜻한다그리고 비어 있다는 것은 어둠(쓴물-)이다(창세1,2참조)

비어있는 그 없음의 빈 그릇들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담으면 생명의 족보()에 올라 늘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성모님처럼 말씀을 예수님으로 낳아야(깨달아야)한다그러나 성모님을 섬기며 열심히 빌어 달라는 신앙을 산다면 그는 구원의 족보(생명 책)에 들어가지 못한다.

내가 마리아(어둠쓴물)가 되어야 한다그래야 예수님(말씀)을 낳을(깨달을수 있다.

구원은 죄로 받는 것신앙은 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그 예수님 만이 우리의 중개자 이시며(1티모2,5 히브8,6 9,15 12,25참조그분의 영주님의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신다.(로마8,26)

구름비는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인 말씀이며 그 말씀을 완성으로 이끄시는움직이는 바람성령이시다.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쓴물마리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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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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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자비로운 사람 (루카6,27-38)20.09.10조회 346[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루카 6,20-26)20.09.09조회 357[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열두 사도 (루카 6,12-19)20.09.08조회 319[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 6,6-11)20.09.07조회 346[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 (루카 6,1-5)20.09.05조회 266[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루카 5,33-39)20.09.04조회 192[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모든 것을 버리고 (루카 5,1-11)20.09.03조회 172[연중 제22주간 수요일] 기쁜 소식 (루카4,38-44)20.09.02조회 177[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루카 4,31-37)20.09.01조회 174[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 4,16-30)20.08.31조회 168[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마르 6,17-29)20.08.29조회 222[연중 제21주간 목금요일] 열 처녀의 비유(마태25,1-13)20.08.28조회 218[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깨어 있어라.(마태24,42-51)20.08.27조회 213[연중 제21주간 수요일] 회칠한 무덤 (마태23,27-32)20.08.26조회 184[연중 제21주간 화요일]잔 속을 깨끗이(마태 23,23-26)20.08.25조회 198[성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사도 축일]“와서 보시오.”(요한1,45-51)20.08.24조회 191[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섬기는 사람 (마태 23,1-12)20.08.22조회 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