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루카 4,31-37)

2020. 9. 1. 오전 4: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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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일 화요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루카 4,31-37)

 

1독서<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1코린 2,10-16)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마찬가지로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8-9.10-11.12-13ㄱㄴ.13ㄷㄹ-14(◎ 17)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주님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 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나자렛 사람 예수님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1코린2,10ㄴ-16)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0ㄴ)


원문에는 원인인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어, 본문은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비밀스런 지혜를 열어 보이실 수 있는 이유 및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하느님의 지혜를 보이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느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통찰하십니다' 로 번역된 '에라우나'(erauna)는 '탐색하다', '주의깊게 조사하다',  '탐구하다' 를 뜻하는 '에류나오'(ereunao)의 현재형이다. 이 동사는 고대 검사관의 보고서에 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파생된 '에라우네타이'(eraunetai)가 바로 세관 업무를 보는 '검사관들' 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로마서 8장 27절에서는 바로 이 동사가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까지 살펴 보신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것을 완전하게 아시는 분이심이 분명하다. 여기서 바오로는 이 동사를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시제인 현재형으로 씀으로써 성령께서 통찰하시는 그 일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바오로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비밀' 까지도 통찰하신다. 여기서 '깊은 비밀' 이라고 번역된 '바테'(bathe)는 '깊이', '깊음'(로마8,39) 혹은 '충만'(2코린8,2)을 뜻하는 '바토스'(bathos)의 목적격으로,  인간이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깊고 풍성하신 하느님의 비밀을 의미한다.(묵시2,24 ; 로마11,33 비교)


바오로는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 성령께서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심오한 뜻과 속성,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의 계획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시므로,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은 하느님의 오묘하신 뜻과 섭리는 제3위 하느님으로서,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되시는 성령만이 알 수 있고, 또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1)


바오로는 여기서 사람의 속사정을 그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알 수 없다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생각도 그 분의 영인 성령 외에는 알 수 없다는 사실, 곧 성령만이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신다는 10절의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영' 이란 말은 물론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영혼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남녀의 구별이 없는 보편 인류 속에 존재하는 자아 의식으로서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 위에는, '사람의 영' 과는 달리, '사람의 영' 을 수식하고 있는 '그 안에 있는' 이라는 뜻의 '엔 아우토'(en auto; with him)가 빠져 있다. 이 점에서 '하느님의 영' 은 단순한 그분의 자아 의식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란 점이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성부 하느님과 관계하시는, 또 다른 제3위 하느님으로서 '인격적인 분' 이시다.


'사람들의 것들은 사람의 영이 알고, 하느님의 것들은 하느님의 영이 안다' 라는 표현같은 어법은, '같은 것은 같은 것에 의해 알려진다' (like is known by like ; gleiches durch gleiches)는 일반 원리를 바오로가 차용한 것이겠지만, 하느님의 영과 인간의 영에 대한 바오로의 유비에 있어서는, '엔 아우토'(en auto ; with him)라는 표현의 사용 유무에 따라서 인간의 영과 철저히 구분되는 성령의 독자성을 부각시킨다.


한편, 바오로는 '마찬가지로'로 번역된 '후토스'(hutos)로 대변되고 있는 이런 유비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코린토 전서 2장 6-10절에 선포된 하느님의 지혜를 나타나시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점 나타내었다.(로마11,34)


바오로가 하느님의 지혜인 복음이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진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받은 이 복음의 진리가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 분, 곧 성령의 증거에 의한 것이므로 견고하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바오로는 이처럼 구원의 진리는 성령을 통하여서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함으로써 인간적 요소가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교회가 하나로 뭉쳐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15)


'영적인 사람'으로 번역된 '호~프뉴마티코스'(ho~pneumatikos) 14절에서 '현세적 인간'으로 번역된 '프쉬키코스'(psychikos)와 대조되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영적인 사람','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의 사람' 뜻한다.


이 사람은 모든 영적 진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에 속한 사람은 깨우쳐지고 밝혀진 마음의 눈(에페1,18)을 갖고 있어 더 이상 이 세상의 신(2코린4,4)에 의해 유혹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의 영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은 구원의 진리에 입각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이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성령을 소유한 사람의 특권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현세적 인간' 아무리 많은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영적인 사람' 구원에 관해 계시된 모든 것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 알지만, '현세적 인간' 성령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세적 인간' '영적인 사람' 판단할 수 없으며, 반대로 '영적인 사람' '현세적 인간' 의해서 판단받지 않는다.


한편, 본절을 결코 소위 '영적인 사람'들이 모든 것에 대한 유권적 해석을 독점하고, 어떤 사람의 징계나 권면에 의해서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해석은 코린토 교회를 향해 바오로가 책망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으로 회귀할 위험을 내포한다.


바오로가 여기서 '영적인 사람' 모든 것을 판단하고,'현세적 인간' 의해 판단받지 않는다는 지적한 것은, '영적인 사람'이 모든 일에 있어서 결코 실수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성령을 받은 코린토 교인들도 여러 가지 실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듯이, 성령을 받은 '영적인 사람'들 역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바오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관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반면, '영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복음(루카4,31~37)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4)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드러나신 후에 출신지인 나자렛도 존귀한 지명이 되었다(사도3,6).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에  나자렛은 유대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었다(요한1,46).


따라서 마귀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크게 떠든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이며, 이것은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였던 카파르나움 고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교하고 사악한 방법이었다.


'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귀들린 사람의 화두에 있는 감탄사 '에아'(ea; ah!)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유일하게 쓰인 독특한 용어이며,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위협을 받게 된 마귀의 놀라움과 두려움, 혐오감과 적대감 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원문의 '에아, 티 헤민 카이 소이'(ea, ti hemin kai soi) 'ah, what do you want with us?'(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뜻이며, '에아'(ea; ah!)를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들을 홀로 두소서'(let us alone)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더러운 마귀의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여호22,24; 판관11,12; 1열왕17,18).


또한 여기서 더러운 마귀의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저희'(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마귀가 마귀들린 자와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마귀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이것은 문법적으로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투의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으로 상당한 지력을 지녔던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꺾어서,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코2,10; 1요한3,8).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야가 오면 모든 악한 영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여기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u theu; the holy one of god)는 33절의 '더러운 마귀의 영'('프뉴마 다이모니우 아카타르투'; pneuma daimoniu akathartu; an unclean devil spirit)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학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이 하느님께 대해 사용한 '거룩하신 분'(이사40,25; 57,15) 이라는 표현과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께 대해서 사용한 '거룩하신 이' (사도21,27; 3,4; 4,27)라는 표현과도 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영적 지각력을 갖추었던 마귀들은 이미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예수님 앞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는 예수님을 '안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압니다'에 해당하는 '오이다'(oida; i know)는 능동태 완료 동사이다.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마귀는 예수님을 알되, 예전부터 그리고 능동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적 존재인 마귀는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시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직접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정확한 고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인 마귀는,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순종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오늘날도 적지 않은 신학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마귀의 지식과 유사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구와 배움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식이 어떻게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며 영신적 유익을 주겠는가? 야고보서 2장 19절에는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라고 나온다.


그리고 잠언 1장 7절에도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라고 나온다.


우리는 신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앎을 기초로 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7년 9월 5일 가해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202091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루카 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 카파르나움(나를 위한고을, 성전) 곧 자신을 위한 자기 의로움으로 지은 그 헛된 신앙이 있는 곳에, 하늘의 구원의 의로움인 참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오늘 독서(코린토12,10-16)에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의 영께서 알려주신 그분의 지혜, 그 권위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말, 뜻이 아닌 아버지의 말씀만 하셨다.


(요한12,49)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 말씀의 권위~ 말씀 안에 숨겨있는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힘, 능력, 그 권위를 느꼈던 것이다.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 창조주의 뜻대로 그 하느님의 결정과 뜻을 따르는 신앙을 사는지?~ 하느님의 규정(계명)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만든 그 신앙은 구원의 권위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규정은 나무 하나의 희생(탈출15,25)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는 용서, 구원, 하늘의 생명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능력의 하느님으로만 알고 섬기는 그 종교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곧 구원의 권위가 없는 신앙이 된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인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그들의 죄값으로 십자나무에 달려 희생 제물로 죽으러 오셨던 것이다.

우리의 죄로 죽으신 구원자, 나의 주인 되시는 그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예수님의 대속 그 의로움과 상관없는 자기 의로움의 그 카타파르나움(나를위한 성전)이 마귀 들렸다는 것이다. 그 카파르나움의 의로움은 하늘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 하셨다.(루가10,15)

사람이 의롭게 착하게살아야 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희생, 그 의로움에는 구원의 권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 우리의 삶에서 내동댕이쳐지는 시련이 일어나지만 구원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마귀의 해꼬지도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일어나는 것이다.(1,12 2,6참조)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자기 의로움으로 교만했던 욥을~ 사탄의 온갖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 그 의로우심을 깨달아 하늘의 의인으로 만드셨듯이(욥기42,1-6참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 喜怒哀樂을 통해 , 救援을 이루신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뜻, 그분의 지혜로 말씀을 받아 간직한다면 그 하느님의 말씀이 일하시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힘을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기적의 예수님으로 , 소문으로만 퍼져나간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성당에 나왔다.

그래서 반드시 성경 말씀 속에 하느님의 뜻, 지혜를 깨닫는 신앙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문 그대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맞춘 신앙을 산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신앙을 사는 것이다..(마르7,7참조)

성경의 구약은 물론 신약의 말 씀안에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얻는,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찾아 깨닫고 믿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루가11,24-26)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자기 의로움으로 예수님의 의로움이 치워진, 그 정돈인 상태)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말씀을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는 것, 신앙인이 반드시 해야 할 실천, 실행인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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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모든 것을 버리고 (루카 5,1-11)20.09.03조회 172[연중 제22주간 수요일] 기쁜 소식 (루카4,38-44)20.09.02조회 176[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루카 4,31-37)20.09.01조회 174[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 4,16-30)20.08.31조회 168[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마르 6,17-29)20.08.29조회 222[연중 제21주간 목금요일] 열 처녀의 비유(마태25,1-13)20.08.28조회 218[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깨어 있어라.(마태24,42-51)20.08.27조회 213[연중 제21주간 수요일] 회칠한 무덤 (마태23,27-32)20.08.26조회 184[연중 제21주간 화요일]잔 속을 깨끗이(마태 23,23-26)20.08.25조회 198[성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사도 축일]“와서 보시오.”(요한1,45-51)20.08.24조회 191[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섬기는 사람 (마태 23,1-12)20.08.22조회 262[연중 제20주간 금요일]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마태22,34-40)20.08.21조회 188[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비유 (마태 22,1-14)20.08.20조회 190[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포도밭 주인 비유 (마태20,1-16)20.08.19조회 180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9,23~30)20.08.18조회 190[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마태19,16-22)20.08.17조회 1832020년 8월 15일 토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루카1,39~56)20.08.15조회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