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마태19,16-22)

2020. 8. 17. 오전 8: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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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7일 월요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마태19,16-22)

   

1독서<에제키엘이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에제24,15-24)

15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6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17 조용히 탄식하며,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어라. 콧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 18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19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겠습니까?” 20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나에게 내리셨습니다. 21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온 너희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22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콧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23 머리에는 쓰개를 그대로 쓰고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스러져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24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화답송 신명 32,18-19.20.21(18참조)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바위를 저버리고, 너희를 세상에 내신 하느님을 잊어버렸다. 주님은 보시고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딸들을 물리치셨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감추고, 그들 끝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리라. 그들은 타락한 세대, 불충한 자식들이다.”

신도 아닌 것들로 나를 질투하게 하고, 헛것들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다. 나도 내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분노하게 하리라.

 

복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마태19,16-22)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제1독서(에제24,15~24)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조용히 탄식하며,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어라. 코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다음날 아침에 나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겠습니까?""(16~19)


새 성경은 에제키엘서 2415절을 시작하면서, '아내의 죽음을 상징으로 삼다'로 제목을 달았다. 그러니까 예언자 에제키엘의 아내의 죽음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알면 오늘 말씀을 알아 듣게 된다. 15절에 '네 눈의 즐거움'21절의 예루살렘을 의미하는데(21), 그것이 또한 에제키엘의 아내로 상징되었다(18).

여기서 '즐거움'(기뻐하는 것)으로 번역된 '마크마드'(maqmad)'원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영의 그리움''마음에 아끼는'이란 뜻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힘의 영광이요, 그들의 눈에 원하는 바요, 그들의 마음에 아끼는 하느님의 성소, 곧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실 것이며, 그들이 버려둔 자녀들을 칼에 맞아 엎어지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의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온 너희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21)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18)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17)는 것은 장차 남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환난이 거족적으로 일어날 것이니, 그때에는 죽음도 너무 흔하기 때문에, 누구나 그 죽음을 하나하나 애곡할 처지가 못되며, 그뿐만 아니라 그 환난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만큼, 조의나 슬퍼할 필요조차 없는 심판인 것이다(예레 16,1~9 참조).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다음날 아침에 나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18)에서 나타난 것처럼,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대변자였기에, 하느님께서 하라고 하시는데로 순종할 따름이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대로 가감없이 그대로 백성에게 전하였으며, 예언자의 아내의 죽은 것은 예루살렘의 죽음을 상징한다. 여기서 보면, 예언자의 가족은 하느님의 일을 위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진리도 나타난다.

하느님의 종은 인정과 육정에 끌리지 말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그 가족을 아주 내 버린 것과 같은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외아들 이사악을 모리야 산에서 바쳤다.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게씁니까?'"(19)

유대인들이 에제키엘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남부 유다 백성을 살려 보려고 예언자의 아내가 죽게 되었다. 하느님의 지시와 명령으로 인한 그 사건에 대한 에제키엘의 순종이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남부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에제키엘 예언자의 예언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까지 사건을 발생시켰다.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온 너희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콧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머리에는 쓰개를 그대로 쓰고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스러져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21~24)


에제키엘이 하느님께 순종한 것처럼,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환난 가운데서 울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곧 그때에는 죽는 자들이 너무 많으니 만큼, 누구든지 그 죽은 자들을 하나하나 조의를 표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콧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22)

유대인들은 슬퍼하는 표로 수염을 가리우는 풍속이 있었다. 수염을 가리우게 되면 입을 가리우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슬퍼하는 표적을 나타내지 말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곧 조객들이 가져오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뜻이다. 조상(弔喪)을 받지 말라는 뜻이다.


'머리에는 쓰개를 그대로 쓰고'(23)

슬픔을 당한 자는 원래 쓰개를 푸는 것이었다.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그 당시 슬픔을 당한 자는 맨발로 다니는 풍속이 있었다.

'너희는 죄 때문에 스러져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그들이 죄악으로 단하는 환난 때문에 쇠약해짐을 말한다. 그들은 슬픔이 너무 크기 때문에 탄식할 뿐이고 울 수도 없다는 말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24)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된 뒤에는 백성들이 그가 누구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예제키엘은 하느님의 주권으로 소명을 받았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표징', 곧 하느님의 기이한 역사하심이란 사실을 그들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예언의 성취는 위대한 일 중의 하나이며, 이같은 예언의 성취를 보는 자는 그 예언이 참되다는 것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제키엘서 24<가마솥의 비유>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정결함을 원하신다.

하느님께서는 피흘린 도성, 녹슨 가마를 진노하셨다. 남부 유다의 죄악은 음란함이었다. 우리는 영적이든지 육적이든지 음행을 버려야 한다(로마 1,24.26; 1테살 4,3-5; 잠언 5,18-21참조).

육적 음행은 영적 음행과 같이 간다. 하느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는 그의 계명도 지킬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꺽고, 하느님께 절대 순종해야 하며, 육적, 영적 음행을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불결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빼앗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남부 유다 백성이 사랑하며 아끼던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왜 그가 그 영광스러운 성전을 파괴시키실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죄와 불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이라도 하느님께서는 빼앗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아름다운 헤롯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셨다(루카21,5~6).

우리에게는 하느님보다 더 귀한 존재가 없어야 한다.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이며 죄이다(마태10,37~39; 루카14,26~27.33참조). 우리는 하느님만을 만유위에 절대적으로 사랑하며 오로지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만 한다.


세째로, 우리는 하느님을 미리 알아야 한다.

본문은 하느님의 징벌과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유다 백성이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두번이나 말씀하셨다(24.27). 하느님을 참으로 아는 자만이 죄를 버리고 의로움을 행할 것이다(1코린 15,34).

우리는 그의 징벌을 통해서가 아니고, 평소에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호세6,3.6; 요한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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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9,16~2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1)


마태오 복음의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1021절과 루카 복음 1822절에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대신에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말씀을 다 하셨는데, 복음서 저자들이 각기 그 가운데 하나씩 선별하여 기록했다고 본다.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고, 이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부족한''완전한'은 대조되는 개념이 된다. '완전한'이란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완전한'에 해당하는 '텔레이오스'(teleios; perfect)는 일차적으로는 결여된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하지만 인간이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보면, '텔레이오스'(teleios)'성숙한' 혹은 '목표에 도달할 만한 수준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히브5,14)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지고(至高)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이 구절을 통해 밝히신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1917절에서 '계명들을 지켜라'는 우회적인 답변을 통해 그가 계명을 전부 지키지도 못함을 교훈하려 하셨던 것처럼, 마태오 복음 1921절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는 명령으로서 구원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진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더욱 더 명백하게 하신 것이다.

구원은 어떤 조건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충족시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것으로서 전적인 하느님의 은총임을 밝히신다.


'가서 ~ 팔아 ~ 주어라'

여기서 나오는 세 동사는 모두 부정(不定)과거 능동태 명령형인데, 희랍어에서 부정과거 명령형은 계속 반복되는 동작을 명령하는 현재 명령형과는 달리, 일회적인 동작을 명령할 때 사용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지금 당장 가서 단번에 모든 것을 팔아 다 나누어 주라는 매우 강력하고도 신속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이다.

즉 재물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끊어 버리고,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의 구제를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세상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으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하느님의 나라를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아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말이다.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보물'에 해당하는 '테사우로스'(thesauros; treasure)'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

'보물'이 상징적으로 쓰일 때에는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것을 가리키며, 쉽게 사라져 버리고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이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 등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 '영원한 생명'을 나타낸다(마태13,44참조).


한편 '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엑세이스'(ekseis; you will have)는 미래형이다.

앞의 '가서', '팔아', '주어라'의 현재 명령형을 지금 바로 행하여야 할 명령으로 알아듣고 실천할 때 미래의 영생이 보장됨을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서, '팔아', '주어라'는 현재 실행해야 하는 명령들이 구원을 보장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현재 주어진 이러한 명령은 구원을 보증받은 성숙한 하느님의 자녀가 자연스럽게 생활 가운데 실천할 수 있는 구원의 열매인 것이다.

따라서 '가서', '팔아', '주어라'를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구원을 보증받은 하느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영생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2020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마태19,16-22)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선한 일선이신 하느님의 일을 믿는 것곧 선(하늘)이 악(세상의 죄)을 대속하여 생명을 주는 일이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속죄 제물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선이신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고 하신 것이다.

그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선한 일인 것이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어떤 행위를 묻고 있다질문 부터가 틀린 것이다.


1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단 한분이신 선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그것이하느님의 말씀모든 계명은 십자가의 대속 그 이타의 사랑그 사랑의 계명 하나인 것이다.(마르12,28~참조)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간음해서는 안 된다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십계명 전체를 대속의 사랑그 하나로 깨닫고 믿느냐아니면 도덕과 윤리의 법으로 지키느냐그것이 문제이다오늘 이 사람은 윤리의 법으로 지켰다그리고 그 자기 의로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겻이다그러나 그 인간의 계명으로 지켰다는 것은 하늘의 계명곧 대속그 구원의 진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티토1,14) 14 유다(세상사람)인들의 신화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그래서~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자신이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가치재물재산)을 버리고 곧 자기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능력이 없음을 깨닫고인정하고버리고 따르면 하늘의 보물하늘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재물그 세상의 명예의로움자기 가치가 구원의 힘능력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그 버림否認을 못한다그것인 인간의 교만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은 有限의 없음으로 끝날 뿐그 흙인 질그릇에 예수님의 길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담으면믿으면그것이 곧 하늘의 생명을 담는 것으로 있음(생명)의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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